허재현 리포엑트 대표 기자/전 한겨레신문 기자

요즘 인터넷에서 정치 뉴스를 보다보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발언을 옮겨적은 기사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2020년 1월1일부터 1월28일까지 진중권 이름으로 검색해보면 54곳 주요언론사에서 무려 877건이나 기사를 쏟아냈다고 한다.

그가 유명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전문 영역이 아닌 곳에서까지 쏟아내는 말들까지 우리 사회가 이렇게 귀기울여 소비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의 발언을 부정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 우리 사회는 화끈하게 소비하고 언론은 트래픽 장사를 한다. 소란스럽다. 수심이 얕은 강물이 시끄럽게 흘러가는 것처럼. 

‘소란 저널리즘’이라고 설명하면 어떨까. 일단 목소리 큰 사람을 패널로 앉혀다 놓는다. 그자가 어느 분야에서 어떤 성과물로서 전문가의 깊이를 축적해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떠들게 둔다. 대중은 귀를 기울인다. 가끔은 욕하면서도 본다. 종편 방송들이 오후 시간대 콘텐츠의 빈약함을 이런 식으로 채우곤 했다. 소위 '권위의 전성기'가 지난 전문가들을 불러와 온갖 이슈를 놓고 떠들게 했다. 영향력을 잃어가던 '과거의 권위자'들은 대중의 눈길을 사로 잡아 좋고, 종편 방송사들은 시청율을 올려서 좋아 '윈윈'이다. 그러나 신뢰가 담보되지 않은 정보의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해악은 국민 모두의 것이 된다.

최근 진중권식 소란 저널리즘이 언론계에 발을 들이고 그 부작용이 도를 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언론과 정치 혹은 법조 전문가가 아님에도 (특히 인터넷) 언론들은 그에게 '양적으로' 전문가적 권위를 부여해 그의 발언을 중계하듯 전달한다. 별반 내용이 없어도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화끈함만 있으면 언론은 소비한다. 소비가 생산적이라면 다행인데 그것도 아니다. 진 교수의 주장을 놓고 호오가 분명하게 갈리는 두 부류의 소비층은 서로를 혐오하고 싸우기만 한다. 사회적 갈등은 커지고 승자는 그저 트래픽을 올려 장사해 먹은 언론사들 뿐이다.

진 교수는 대중의 화끈한 소비에 고무된 듯 가끔 선을 넘는 막말성의 언어들도 내뱉는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좀비'라고 지칭해 몰아부치거나(경향신문 칼럼 2020년 1월5일 '웰빙 인 좀비), '이탄희 판사는 정권의 애완견'(2020년 1월29일 개인 페인스북), 임은정 검사를 상대로는 '니가 검사냐'(2020년 1월28일 개인 페이스북) 고 공격한다. 이러한 정제되지 않은 개인적 화풀이에 가까운 발언들이 '소란스럽게' 대중에게 무차별적으로 전달된다. 

그의 발언이 단순히 거칠어서 문제는 아니다. 수많은 오류들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대중에게 전달되어 소위 진흙탕 같은 '진영다툼'의 소재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언론·법조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오류의 발생은 기실 당연한 것이지만, 문제는 '레거시 미디어'들이 이를 검증하기는 커녕 되레 그대로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한국일보>는 지난 23일 무려 2면을 통틀어 진 교수의 칼럼(사실-허구 뒤바뀐 버티고 현상...오직 믿어야 할 계기판은 이성)을 실었는데 내용을 뜯어보면, 아연실색할 정도로 오류 투성이에다 주장의 근거마저 별로 적시하지 않아 글을 읽는 내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스스로가 언론 전문가인데 왜 비언론 전문가인 진중권 교수의 글을 이렇게까지 검증없이 크게 실었는지 의아할 정도다.

진 교수는 이 칼럼에서 "(조국국면)에서 <JTBC>는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하게 ‘사실’을 보도했다. 그런데 결과는 신뢰도의 급락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건 틀린 분석이다. 검찰 수사를 전하는 언론보도에는 사실과 주장이 뒤섞여 있다. 에를 들어 '압수수색했다'는 사실이고, '표창장이 위조됐다'는 검찰의 주장(혐의)이다. 주장은 검증한 뒤 보도해야 한다. <JTBC>등 많은 법조기사들이 검찰 주장에 대한 검증을 충실히 하지 않은 채 보도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은 것이지 사실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은 게 아니다. 

진 교수는 또 "보도가 당파적일 수록 신뢰도는 오른다"라고 주장하며 <MBC>의 최근 신뢰도 향상을 비판했지만 그에 대한 근거는 내놓지 않았다. 보도가 당파적일 수록 신뢰도가 오른다면 가장 당파적 보도를 일삼는  <TV조선>의 신뢰도가 가장 높아야 하는데, 당연히 그렇지 않다. 또한 신뢰도 조사는 모든 국민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 교수의 주장은 그저 자신의 인상비평일 뿐이다.  

이외에도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검찰발 보도를 검찰 괴담'으로 격하시켰다"고 주장하거나 "어른이들은 진영부터 정하고 거기에 정의의 기준을 뜯어맞춘다"는 주장도 했다. 검찰출입 기자를 단 6개월만 해봤다면 진 교수가 저런 주장을 못할 것이라 확신한다. 또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구속을 소위 '친문 진영'이 부당하다고 비판하는 흐름도 없다.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 수사에 한정된 특이한 상황을 갖고 진 교수가 '진영주의자들은 모든 부패에 눈감아준다'는 식으로 침소봉대하는 것이다.

진중권 교수의 주장중 우리 사회가 귀기울일만한 게 없는 건 아니다. 특히 지나치게 특정 진영의 이해관계만 대변하고 팩트검증에 훈련되지 않은 대안매체들이 기존 언론매체들을 통째로 대체해주기를 바라는 듯한 최근 언론소비자들의 흐름은 우려스럽다. 진 교수가 ‘레거시 미디어’의 불신에 따른 대중의 과도한 반작용을 우려하는 것은 이해될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반작용을 우려하는 진중권식의 반작용 또한 지나치게 거칠고 한쪽을 적대시한다는 점이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사실 대단히 뛰어난 기자였다. 그는 80년대 중반 치열한 취재 끝에 어떤 살인사건에 대한 수사에서의 오류를 밝혀내고 책으로 쓴 기자다. 이후 국가정보기관을 출입하며, 북한의 실상에 대한 정보를 수없이 캐내어 특종보도를 해왔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성찰이 없는 지식인의 극적인 말로가 바로 조갑제다. 조갑제 기자는 그 훌륭한 취재력을 활용할 줄만 알았지,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과 자신이 수집한 정보들의 오류를 되돌아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북한에 대한 정보만 진실이라고 믿고, 점점 반공주의 기자가 되어갔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빨갱이'에 세뇌당했다고 생각했다. 

진중권 교수는 최근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좀비,'애완견'이라고 몰아부친다. 조갑제가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비난하고 이문열이 홍위병 주장을 들고 나온 것과 유사한 행태를 진보 지식인 진중권에게서 최근 발견하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진중권이 조갑제와 이문열의 '오래된 미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언론의 ‘소란 저널리즘’이 그의 막말을 더욱 고무시키고 '성찰없는 평론 괴물'로 만들어가는 듯 해 우려스럽다. 진중권을 야단스럽게 소비하는 언론이 어쩌면 그에게 몹쓸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 기자/전 한겨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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