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권 매체, "기독교인이라는 증거 없어…유언장도 가짜" 아내 푸쉐제도 확인

[평화나무 박종찬 기자] 중국 우한에서 최초로 코로나19를 알리고 치료에 전념하다 7일 병사한 리원량 우한시 중앙병원 안과 과장이 기독교인이라는 주장이 퍼졌으나, 기독교 매체를 포함한 중화권 언론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했다. 고인에 대한 왜곡된 정보 전달은 고인과 유가족을 괴롭히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7일 순직한 리원량 우한시중앙병원 안과 과장(사진=리원량 웨이보)
7일 순직한 리원량 우한시중앙병원 안과 과장(사진=리원량 웨이보)

리원량 의사는 작년 12월 코로나19를 발견하고 대학 동창들인 의사들에게 소셜 미디어 플랫폼 위챗(WeChat)을 통해 알렸으나, 공안에 체포되어 허위사실을 유포하지 않겠다는 훈계서에 서명하고 올해 1월 3일 풀려났다. 그는 우한에 돌아와 바이러스 감염 환자들의 치료에 힘쓰다 코로나19에 감염되어 2월 7일 순직했다.

이후 위챗에서 리원량이 기독교인이며, 그의 아내 푸쉐제가 정리했다는 리원량의 유언장이 확산됐다. 해당 글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일부 기독교 언론이나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에서 퍼져 나갔다. 

아래는 리원량과 아내 푸쉐제가 썼다는 중국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과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 인터넷에서 확산되는 글.

중국 인터넷에서 떠도는 리원량과 아내 푸쉐제가 썼다는 글
중국 인터넷에서 떠도는 리원량과 아내 푸쉐제가 썼다는 글.

동이 트지 않았지만 나는 갑니다!

가야 할 시간, 나루터는 아직 어둡고, 배웅하는 이 없이 눈가에 눈송이만 떨어집니다. 그립습니다. 눈송이가 눈시울을 적십니다.

캄캄한 밤은 어둡고, 어두움에 집집마다 환하던 등불조차 떠올릴 수 없습니다. 일생 빛을 찾았습니다. 스스로 반짝인다 자랑했습니다. 온힘을 다했지만 등불을 켜지는 못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어젯밤 눈바람 무릅쓰고 나를 보러 왔던 여러분! 가족처럼 저를 지키며 밤새 잠 못 이루던 여러분 감사합니다. 하지만 연약한 인간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본디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나에게 그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나에게 태평한 세상에 소란피우지 말라며, 도시 가득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이 보이지 않냐고 말했습니다!

전 세계가 지금의 안녕을 계속 믿게 하기 위해 나는 단지 마개 닫힌 병처럼 입을 다물었습니다. 선홍색 인장으로 내 말이 모두 동화 속 꿈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왕관을 쓴 치명적인 황후는 반란을 위해 속세에 내려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천하는 다시 북적거렸습니다. 누구도 몰랐습니다. 거대한 비극이 곧 성문을 잠그리라고는.

이후 하늘이 대노하고 산하는 시들고 나는 병 들었습니다. 내 가족까지 모두 병 들었습니다. 우리는 천 송이 만 송이 눈보라처럼 송이송이 흩날렸습니다.

봄이 오고 강물이 녹으면 가족과 만나리라 기대했습니다. 그 때가 되면 노란 유채꽃밭에 앉아 흩날리는 꽃 송이송이 새며 하루 일 분 일 초를 보내리라 여겼습니다.

기다렸습니다. 어젯밤 눈 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내 머리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착하지, 나와 같이 가자. 인간은 가치가 없어! 이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비록 인간은 빈한하고 하늘은 따뜻한 곳이더라도 말이죠. 저승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기 두렵습니다. 고향을 떠올려도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나의 기개는 보증서 한 장으로 죽었습니다. 나는 계속 햇빛이 비치듯 살아 생명을 노래하고 소나무 잣나무를 찬미하고 싶었습니다. 이 나라 이 땅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이제 내 육신은 죽지만 한 줌 재가 되기 전에 조용히 고향의 검은 땅과 하얀 구름을 떠올립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니 바람은 마음껏 춤추고 눈은 새하얗게 티 한 점 없습니다.

삶은 참 좋지만 나는 갑니다. 나는 다시는 가족의 얼굴을 쓰다듬을 수 없습니다. 아이와 함께 우한 동호(東湖)로 봄나들이를 갈 수 없습니다.

부모님과 우한대학 벚꽃 놀이를 할 수 없습니다. 흰 구름 깊은 곳까지 연을 날릴 수도 없습니다. 나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이와 만나기를 꿈꿨습니다. 아들일지 딸일지 태어나면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사람의 물결 속에서 나를 찾을 것입니다.

미안하다, 아이야! 나는 네가 평범한 아버지를 원했음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평민 영웅이 되었구나.

하늘이 곧 밝습니다. 나는 가야합니다. 한 장의 보증서를 들고서, 이 일생 유일한 행낭입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나를 이해하고 나를 동정하고 나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 나는 당신들이 모두 동트는 새벽을, 내가 산마루 건너기를 기다릴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합니다.

이번 생애 태산보다 무겁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새털처럼 가볍기를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유일한 바람은 얼음과 눈이 녹은 뒤 세상 모든 이가 여전히 대지를 사랑하고 여전히 조국을 믿기를 희망합니다.

봄이 와 벼락이 칠 때 만일 누군가 나를 기념하려는 이가 있다면 나를 위해 작디작은 비석하나 세워주기 바랍니다! 우람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왔다 갔음을 증명해 줄 수만 있으면 됩니다. 이름과 성은 있었지만 아는 것도 두려움도 없었다고.

내 묘지명은 한 마디로 충분합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하여 말을 했습니다(他爲蒼生說過話).”


하지만 한 중화권 기독교 매체는 이 같은 주장에 반박했다. 해당 매체는 위챗의 기독교 네트워크에서 리원량이 기독교인이라는 소문 때문에 천국에 갔다고 축하하며, 그가 사도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친”(디모데후서 4장 7절 부분 편집 인용) 것이라고까지 칭송한다고 중화권 기독교 네트워크의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매체가 추적한 결과 리원량의 웨이보(微博, 중국판 트위터)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없었으며, 그가 교회에 가서 성경 공부에 참여한 적은 있으나 세례를 받은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우한의 교회들에서도 소속 성도라면 리원량을 위한 기도 제목을 올렸을 텐데 그러한 흔적 역시 없었다.

매체는 영웅이 된 리원량이 기독교인이기를 바라는 심리가 소문을 확산시킨 것이라고 짚었다. 종합적으로, 리원량은 내적으로는 확실치 않지만, 공적으로는 기독교인으로 드러난 바는 없다.

중국 언론 양쯔만보(揚子晚報)는 지니우신문(紫牛新聞)이 리원양의 동기 후황에게 연락하여 해당 글이 위조된 사실을 밝혔다고 전했다. 원문과 작성자가 따로 있는 글이었던 것이다. 해당 기사는 대만 매체 산리뉴스채널(三立新聞網)이 다시 정리하여 알렸다.

리원량의 유언장이라는 글이 허위임을 알리는 산리뉴스채널의 9일 기사(사진=산리뉴스채널 기사 캡처)
리원량의 유언장이라는 글이 허위임을 알리는 산리뉴스채널의 9일 기사(사진=산리뉴스채널 기사 캡처)

결정적으로 리원량의 아내 푸쉐제는 8일 웨이보에 성명을 내고 “인터넷상에 퍼진 것은 모두 가짜”라고 밝혔다. 해당 유언장뿐 아니라 푸쉐제를 사칭하여 기부금을 요청하는 글들이 떠돌기 때문이었다.

리원량이 기독교인이라는 주장을 최초로 알린 위챗 공개 계정 중 하나는 사실이 드러나자, 해당 유언장이 루머라는 것을 알리며 원문의 작성자가 다른 사람임을 밝혔다. 한 위챗 공개 계정에 올라온 해당 유언장은 표절·복제되었다는 것이 밝혀져 삭제 처리되었다.

한편 이희학 목원대학교 교수는 12일 ‘재림주 의혹’ 장재형 계 매체 크리스천투데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리원량)가 기독교인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해당 유언장에서) 하나님으로 번역된 상제(上帝)라는 단어는 기독교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주로 신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라며, “‘모든 이’를 뜻하는 창생(蒼生)이라는 단어는 불교 용어”라고 주장했다. 해당 유언장에 대해서도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창생은 일반 명사화된 불교 유래 용어이며, 상제는 중국 기독교인들이 한국어 ‘하나님’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일반 명사화된 불교 유래 용어로는 강당(講堂), 건달(乾達), 관념(觀念), 대중(大衆), 이심전심(以心傳心), 이판사판(理判事判), 장로(長老), 전도(傳道), 주인공(主人公), 지식(知識), 찰나(刹那), 출세(出世) 등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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