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개인적으로 진짜 웃기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 보수 세력들이 민주정부를 향해 “이렇게 나약한 정권으로 어찌 전쟁을 한단 말인가!”라며 사뭇 비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전쟁 나면 제일 먼저 일본과 미국으로 튈 놈들이 전쟁은 무슨!

괜한 험담이 아니다. 한국전쟁 때 한국의 보수가 조국을 지켰을 것 같은가? 당시 한국을 지배했던 친미(親美), 친일(親日) 성향의 지주 세력은 전쟁 나자마자 잽싸게 배 타고 일본으로 튀었다. 

실명을 거론할 수도 있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년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장남 이맹희(CJ 이재현 회장의 아버지)는 당연히 징집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맹희는 전쟁을 피해 배를 타고 진짜 일본으로 튀었다. 

“그를 음해하기 위한 헛소문 아닌가?”라는 비난은 너무 안이하다. 내가 명색이 기자인데 헛소문을 글로 쓰겠나? 이 이야기는 다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무슨 기록이냐고? 이것도 진짜 웃긴 이야기인데, 1993년 발간한 이맹희의 자서전 <묻어둔 이야기>에 이 이야기가 나온다. 이 자들은 감춰야 될 이야기와 자랑해야 할 이야기를 구분도 못한다. 
조국이 어떻고, 전쟁이 어떻고 하는 보수 세력들은 사실 엄청난 쫄보들이다. 광화문 가스통 집회에서 소리치는 자들을 보라. 그들이 전쟁 나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 그들이 집단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며 ‘쎈 척’을 하는 것은 사실 그들이 쫄보들이기 때문이다. 

“전쟁 나면 북한 사람, 2000만 명 죽이자”던 장경동 목사님, 입만 열면 “사회주의에 맞서기 위해 순교하자”던 빤스 목………, 아니 참, 전광훈 목사님. 전쟁 나면 그분들이 제일 먼저 비행기 타고 외국으로 튄다는 데 내 한 달치 최저임금을 걸겠다.

잡식동물의 딜레마

어떤 사람이 보수적이 되고, 어떤 사람이 진보적이 되느냐에 대한 연구 중 ‘잡식동물의 딜레마’라는 이론이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문화심리학 교수인 폴 로진(Paul Rozin)이 1976년 「쥐, 인간, 그리고 또 다른 동물들의 음식 선택」이라는 논문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다.  

로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무엇을 먹느냐?’는 문제는 그 동물의 정신세계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인간 같은 잡식동물은 매우 특이하고 복잡한 양면성을 갖는다. 

육식동물이나 초식동물은 무언가를 먹을 때 ‘오늘은 뭘 먹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지 않는다. 육식동물은 고기만 먹으면 되고 초식동물은 풀만 먹으면 된다. 힘든 사냥으로 먹이를 얻는 육식동물은 ‘오늘은 유난히 얼룩말 고기가 당기네. 특별히 얼룩말을 사냥해야겠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잡히는 거 먹는 거다.

초식동물은 풀을 먹는데, 풀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하지만 초식동물들은 대부분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선천적으로 안다. 예를 들면 코알라는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즐겨 먹는데, 이건 누가 가르쳐줘서 안 게 아니다. 여러 나뭇잎을 먹어본 뒤 그게 제일 맛있어서 먹는 것도 아니다. 코알라는 태어날 때부터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먹도록 유전자적으로 설계가 돼 있다. 그래서 초식동물도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잡식동물인 인간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인간에게 묘한 딜레마를 선사한다. 

우선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을 매우 진취적인 동물로 만든다. 내가 살던 안정적인 거처를 떠나도 어디에서든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동을 하고 모험을 한다. 신대륙을 발견하러 떠나기도 하고. 북극이나 남극도 탐험한다. 정 먹을 게 없으면 물고기라도 잡아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잡식성이라는 사실은 인간에게 새로운 공포를 안겨주기도 한다. 사자나 코알라는 늘 먹던 것만 먹기 때문에 ‘이걸 먹으면 탈이 나지 않을까?’라는 공포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예를 들어 인간이 산에 갔더니 버섯이 있었다. 사자나 코알라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겠지만, 인간은 속으로 ‘저것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는다. 그리고 버섯을 실제로 먹는다. 그러다가 독버섯을 집어먹어 탈이 난다.

그래서 로진은 “잡식동물인 인간은 평생 두 가지 동기가 엇갈리는 삶을 산다”고 표현한다. 첫 번째 동기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도전이다. 두 번째 동기는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혐오다. 도전에 대한 욕구와 변화에 대한 공포를 함께 갖고 있는 존재가 바로 잡식동물 인간이라는 이야기다. 

미국 뉴욕 대학교 스턴 경영대학원 사회심리학과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 교수는 이 사실을 이렇게 해석한다. 이 두 가지 성향 중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욕구가 더 강한 사람은 진보적 성향을 갖고,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은 보수적 성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 긴 연구를 한 줄로 요약하면, 보수는 대게 쫄보라는 이야기다. 

새로움을 향한 두려움 없는 전진

종로 출마 여부를 놓고 한 달 넘게 전전긍긍하던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를 생각해보라. 왜 칼을 뽑고도 휘두르지 못하고 한 달 동안 이것저것을 쟀을까? 들리는 소문에는 상대적으로 ‘덜 험지’인 용산과 양천 지역 여론조사까지 돌렸다고 하던데? 그게 다 겁이 많아서 그런 거다.

‘보수의 정의당’이 되겠다고 패기만만하게 광야로 나갔단 유승민 의원이 3년 만에 왜 또 ‘도로 새누리당’으로 들어왔겠나? 소수정당 해보니까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을 사로잡았다. 즉 그게 다 쫄보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전광훈 목사나 장경동 목사가 왜 게거품을 물고 순교니 전쟁이니 운운할까? 새로운 세상이 겁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항상 먹던 것만 먹는 잡식동물이다. 새로운 것을 먹으면 죽는 줄 안다. 너무나 심한 쫄보여서 이들은 절대 자기가 살던 안식처를 떠나지 못한다. 그래서 과거에 연연하며 박정희, 전두환을 찬양한다. 

반면 진보는 선천적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가 강한 잡식동물이다. “새로운 세상? 해보지 뭐. 왜들 쫄고 그래?”라며 유쾌하게 변화를 추구한다. 그리고 이런 진취적 태도가 세상을 바꾼다. 

쫄보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쫄보들만의 세상이었다면 우리는 그 맛있는 버섯이나 복어도 못 먹었을 것이다. 우리가 오늘 이 풍요로움을 함께 누리는 이유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모험에 과감히 나섰던 조상들 덕분이다. 

쫄보들은 평생 쫄보로 살라고 내버려두자. 대신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숱한 도전과 실패 속에서 인류는 해법을 찾는다. 우리는 그것을 바로 ‘인류의 진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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