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누가복음서 4장 14절에서 30절 중 17절부터 보면,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받아서 펴 읽었다고 했다. 누가? 예수님이. 예수님은 나사렛 자기 고향 회당에서 했던 성서 봉독이다. 이것을 성경은 ‘메시아 취임 설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건 일종의 예수님의 매니페스토(manifesto), 공약이었다.

메시아 취임한 예수의 공약 

누가는 18절에서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라고 했다. 이건 이사야의 말인 것같지만 예수님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메시아. 기름 부음 받은 자. 당시엔 왕이었고 예언자하고 제사장들이 이제 특별한 상황에서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이다. 기름 부음 받은 자가 그러니까 영이 내려와 하나님으로부터 왕이라고 인정받은 주체가 무엇을 하는가?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그다음에 포로가 된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고 주님의 은혜를 선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천국 가세요’라는 말이 한마디라도 있는가?
이런 말 자체가 사실은 충격이다. 오늘날 일반 교회에서 하는 그런 전도 활동과 아주 다르다. 그런 언어가 아니다. 예수님이 읽은 성경은 실제 이사야서 61장 12절에 나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셨으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일부가 다르다. ‘보복의 날’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이 낭독할 당시, 이사야에는 정말 ‘보복의 날’이 없었는가?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다. 같다. 결국 누군가 이를 일부러 뺐다고 볼 수 있다. 

원문에서 사라진 ‘보복의 날’

여기서 세례요한이 소환된다. 세례요한은 ‘심판의 하나님’을 생각했고 그래서 그 하나님이 곧 오셔서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심판한다고 봤다. 그래서 예수님이 활동할때 물었다. 누가복음 7장 18~20절 “요한은 자기 제자 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불러 주님께로 보내어 선생님이 오실 그분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어보게 하였다.” “그때 예수께서는 질병과 고통과 악령으로 시달리는 사람을 많이 고쳐주시고 또 눈먼 많은 사람을 볼 수 있게 해주셨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보고들은 것을 가서 요한에게 알려라. 눈먼 사람이 다시 눈먼 사람이 다시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꺾고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이것은 모두 ‘은혜의 해’이다. 은총이고 기쁨이고 행복한 이야기이다.
근데 세례요한은 분명히 심판을 해야 하는데 예수님은 그와는 상치되는 행보를 취하고 있으니 궁금했지만, ‘보복의 날’ 대신 ‘은혜의 해’를 선포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고통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예수님은 자기의 약속을 실현했다. 

희년 사상, 예수에게서 실현되다

레위기 25장 8절부터 13절에 나오는 ‘희년’사상을 보라. “50년이 시작되는 이 해를 거룩한 해로 정하고 전국의 모든 거인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누릴 해다. 이 해는 너희가 유산 곧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는 해이며 저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해”라고 한다. 경제적으로 억압받던 자들에게 해방이 선포되는 희년, 가나안 땅에 열세 지파가 들어간다. 여기서 레위를 제외한 12지파에게 똑같이 땅을 나눠준다. 평등 공동체를 실현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눠준 땅에서 거둔 수 확물 중 십분의 일을 과부와 나그네와 고아와 이방인들 뭐 그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그런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그렇게 50년이 지나면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되고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된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 평등하게 원점으로 돌리는 것. 이게 자유의 해고 은총의 해고 은혜의 해이다. 그런 꿈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제사장이 아니다. 랍비도 아니다. 예언자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목수의 아들이다. 그런데 유대교 회당에서 설교했다.

예수는 어떻게 유대인 회당에서 설교했나
회당에서 유대교인은 신명기에 나오는 “들어라 이스라엘”로 시작하는 말씀과 민수기에 나오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잘 해주실 것”이라는 메시지의 말씀을 통성으로 낭송한다. 그리고 18번 축복 기도Tepillah, Shemone Esre를 하고 성경 낭독을 한다. 물론 당시 히브리어를 못 읽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통역자가 읽어주고 그다음에 아랍어 성경도 읽어줬다. 
그다음, 성경 낭독한 사람이 설교하는 것이다. 통상 설교는 제사장이나 동네 가장 큰 어른, 아니면 그 주간 결혼한 신랑에게 맡긴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것이다. 여행 다녀오고 오랜만에 귀향한 구도자라고 해서 시킨 것일까?
그런데 말씀이 끝나고 일부 부류가 목수 요셉과 아내 마리아의 아들이라며 수군댄다. 무시당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 와중에, 엘리야 시대에 시돈의 사르밧 과부, 그리고 엘리사 시대에 아람의 군대 장관이었던 나아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건을 비유했다. 이방인이 축복의 주인공이 되는 두 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자 고향 사람들이 참던 분노가 폭발해 예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죽이려 했다. 그런데 다행히 예수님은 살아난다. 그러나 끝내 죽임을 당하게 된다. 같은 민족 유대인에 의해. 예수님의 죽음이 복선에 깔린 것이다.
 
예수가 벼랑 끝에 몰린 이유 
그렇다고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것은 과도한 것 아닌가? 게다가 예수의 고향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귀족 유대인도 아닌 갈릴리에 살던 하류 인생인데 말이다. 그러나 2등 유대인이기에 그들마저 건너뛰고 이방인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메시지만으로도 그들을 분노하기에 충분했다. 유대인의 이런 별난 선민의식은 하류 유대인에게도 도드라진 것이다. 
사실 갈릴리는 북이스라엘 쪽이다. 남유다보다 앞서 외세에 점령당했다. 그러다가 기원전 165년 정도에 마카비 왕조가 서고 그 무렵 잠깐 유대 땅이 된다.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로마에 먹히지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자긍심을 가졌다. 
시대적으로 생각해보면 예수님은 당시에 ‘뜬금포’였을 것이다. 세례요한한테 세례받고 왔다고 하는 예수에게 ‘너도 한 번 강단에 서서 설교해봐라.’라고 하며 시켰을 때만 해도 목수 아들에 불과한 그를 우습게 봤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비늘이 낀 눈을 벗고 괄목할 시선으로 세상을 논하는 것이다. 
이 내용을 왜 누가복음이 전했을까? 사도행전 저술까지 관여한 누가 공동체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교회가 이방인 선교를 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복음의 소식이 이방으로 확장되었다고 하는 서사를 기록해야 했다. 만약 예수가 유대교적 인식에 멈췄다면 결국 지역 종교에서 정체됐을 것이고, 그리스도교가 세계 보편적인 종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가복음 사도행전도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의 선민의식
이렇게 이야기하면 유대인 보다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것 같지만 오서독스orthodox파 말고도 개혁파도 있다. 이들은 자기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인식이 강하지 않다. 말하자면 진보이다. 오서독스처럼 탈무드에 토라 교육받고 오후에 영어 수학 등을 배우지 않는다. 이스라엘을 회복하고자 할 때 무력으로 팔레스타인을 내쫓으려던 시오니즘을 표방하지 않는다. 양식 있는 유대인으로서 같이 사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고 보면 어느 나라든 극우가 문제이다. 

불트만에서 멈출 법한 역사적 예수 연구
‘역사적 예수’ 연구자로 에른스트 케제만Ernst Käsemann이라고 하는 학자가 있다. 그는 루돌프 카를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 제자였는데 역사적 예수 연구는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다고 본 스승을 반박했다. ‘성경이 이미 역사적 예수를 말한 게 아니라 신앙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으므로 불필요하다’라는 주장을 논파한 것이다.
케제만은 스승님 주장을 비판 없이 수용하면 가현假現주의에 빠진다고 했다. 즉 예수라는 실상을 허깨비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예수의 독특성 연구를 벌였다. 주장의 골간은 이러하다. 갈릴리를 그리스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봤다. 실제 갈릴리는 남유다와 페니키아, 바벨론과 함께 서구 문명의 관문이었다. 그래서 대제국들은 유대를 접수하기 위해 갈릴리 호수를 교두보로 하려고 했다. 갈릴리는 게다가 곡창지대여서 수탈을 쉽게 하려고 교통 여건을 좋게 구축했다. 이로써 예수가 유대에 갇히지 않은 세계적 식견을 가진 관점의 인물이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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