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찬 평화나무 기자
박종찬 평화나무 기자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졸업한 대학교의 교직원이었다.

그가 내게 연락해 온 이유는 대학교에서도 신천지 학생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다. 하지만 신천지 학생들이 자진 신고를 하지 않기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위장 동아리, 학교 인근 신천지 센터, 위장 교회 위치 파악도 쉽지 않다.

그래서 오죽하면 졸업한 지 10년 가까이 되는 기자에게까지 연락한 것이었다. 기자는 대학생 때 기독교 선교단체 중 한 곳에 신천지 학생들이 침투하여 장악하는 ‘산 옮기기’를 막는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기자는 재학 중인 학과나 동아리 후배도 잘 모르는데 신천지 학생을 알 리 만무했다.

당시 신천지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대학생 중에는 리더십이 뛰어나 위장 동아리의 리더를 맡은 학생도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학생회장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학생은 가정을 등지고 가출하여 아버지가 위장 센터 앞에서 1인 시위를 해도 나타나지 않았다.

20대 대학생들이 왜 신천지에 청춘을 바치는 걸까. 신천지는 사람을 등급을 매겨 포교하는데, 60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 가난한 사람은 포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반면 20대 대학생들은 높은 등급을 매긴다. 한 번 신천지에 빠지면 가출도, 부모 고소도 마다 않을 정도로 충성하기 때문이다.

20대 대학생들이 신천지에 왜 빠질까
청년들이 신천지에 깊이 심취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볼 수 있다. 가정과 학교에서 받아보지 못했던 사랑을 신천지 선배들이 주기도 한다. 부모로부터 독립 성향이 나타나는 한편 또래 집단 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기에, ‘챙겨주는 선배’는 멘토 이상의 존재로 다가온다.

하지만 신천지 선배들이 교육생을 챙겨주는 건 자신의 포교 실적을 늘려 신천지에서 제시한 특별한 14만4천 명에 포함되기 위한 거짓 사랑일 뿐이다. 2013년 신천지를 탈퇴한 대학생을 신천지 전도사와 청년 등 3명이 집단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은 폭행과 납치 시도를 하고 현장과 경찰서에서 거짓 진술을 했으며, 신천지 매체 천지일보도 사실과 다른 보도를 했다. 이 사건은 법정에서 폭행 피해자가 승소하고 천지일보도 기사 정정 판결을 받았는데, 당시 폭행 피해 학생은 “나를 가장 잘 챙겨주던 사람이 죽일 듯한 눈으로 때려 몸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컸다”고 했다.

청년들이 신천지에 매료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일반 교회에서는 몰랐던 신천지의 성경 공부를 신기해하기 때문이다. 신천지는 성경이 무슨 의미인지 해석하는 게 아니라 이미 세워놓은 교리 틀에 성경 구절을 뜯어다가 조립하고, 이분법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복잡한 성경과 세상을 확실하고 명확한 것처럼 가르친다. 그래서 신천지 성경 공부를 받으면, 실제로는 신천지 세계관이 덧씌워지는 것이지만 세상의 비밀이 풀리고 눈이 뜨이는 것 같은 경험을 한다. 이러할진대 고등학생 때까지 교회에서 일주일에 한 번 성경 공부를 제대로 할까 말까 한 한국 교회 현실에서, 그리고 대학 진학 일변도의 입시 교육을 받아온 한국 고등학생들의 입장에서, 신천지의 성경 교육은 재미있고 참신하게 다가올 수 있다.

이는 성도를 제대로 돌보고 교육하지 못한 한국 교회와, 매해 입시 전쟁을 치러야 하는 교육 당국과 학교가 져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정하고 전략을 짜서 사기 행각을 벌이는 1차 가해자가 더 잘못이라는 인식이 우선해야 한다. 소 잃고 울면서 외양간 고치는 사람에게 평소 관리를 잘못했다며 탓하는 건, 성경에 등장하는 욥의 세 친구의 말처럼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은 말일 뿐이다. 소와 도둑의 발자국 등을 짚어 서둘러 도둑을 추적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다.

더하여. 학교 공부밖에 모르다가 갓 대학에 입학해 아직 사회로 시야가 확장되지 않았을 때, 사회와 차단되었다가 군에서 갓 전역했을 때의 청년들이 신천지의 주요 표적이 된다. 불법 다단계 판매책의 주요 표적 대상과 같다. 수능 다음날 고등학교 정문 앞에는 운전면허 학원, 재수 학원, 판촉 행사를 알리려는 기업 등에서 나온 사람들뿐 아니라, 신천지 ‘추수꾼’들이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자신들을 신천지라고 밝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사회적으로 경험이 축소된 상태에서 신천지를 만난 청년들은, 신천지가 제시한 14만4천 명 안에 들어 영생을 하며, 전 세계가 재물을 들고 신천지로 찾아올 거란 환상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다. 남들은 몰랐던 비밀스러운 길을 열심히 가다 보면 놀라운 보상을 받으리라는 허황된 기대를 갖고, 가출하여 제대로 못 먹고 말라가면서도 겉으로는 행복하다고 되뇌는 것이다.

올해 1월, 법원은 신천지의 위장 포교의 위법성을 인정했다. 소위 ‘청춘 반환 소송’이었다. 신천지를 탈퇴한 청년은 적은 금액이나마 신천지에 속아 빼앗겼던 자신의 청춘을 보상받게 되었다.

그들이 필요할 때
다시 코로나19 국면으로 돌아오면, 지도부의 지시가 바뀌지 않는 한 신천지 청년들은 여전히 정체를 꽁꽁 드러내지 않으리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신천지 교육생 ‘탈락자’들이나, 신천지를 탈퇴한 대학생들의 용기가 필요하다. 교육생 탈락자들은 주로 수능 직후 신천지 선배들과 어울리다가, 신천지 학생들이 정체를 밝혔을 때 모임 참석을 그만둔 경우가 많다.

앞서 신천지 선배들에게 구타당한 탈퇴 학생도 고3 겨울 방학 때부터 “좋은 사람들”을 따라다녔었다. 그러다 선배들이 신천지라는 걸 밝히자 배신감이 들어 함께 교육받던 친구들을 탈퇴시키고,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신천지의 추가 포교를 막아 신천지 학생 리더들에게 보복 당한 것이었다.

물론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신천지 탈퇴 학생에게 용기를 내달라는 게 아니다. 신천지에 직접 무언가를 하라는 게 아니라, 방역 당국과 학교에서 제보자를 찾을 때 전화 한 통 넣는 정도의 용기를 내달라는 뜻이다.

신천지가 허위 명단을 제출하는 이때, 탈퇴자들의 정보는 코로나19 대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탈퇴자들의 제보는 자녀가 신천지에 빠져 가출하여 울고 있는 부모들에게도, 한 오라기나마 희망을 줄 것이다.

이미 가출한 청년들이 모여 사는 신천지 합숙소에서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나오고 있다. 서둘러주기를 바란다. 신천지가 수년 전 탈퇴자까지 명단에 넣고 합숙소 위치를 누락하며 방역 당국에 혼선을 주고 있는 지금, 1분 1초가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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