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사태, 국가의 중요성 다시 생각한다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 정부는 제발 좀 닥치고 있어라."
애덤 스미스(Adam Smith) 이래 시장주의자들이 200년 가까이 고수해온 한결같은 주장이다. 그들은 ‘시장의 전지전능함’을 맹신하고 정부의 기능을 악마화했다. 이들이 지금 한국 보수의 중추를 이룬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는 시장주의자들이 왜 정부의 감염병 대처 능력을 비판할까? 마스크 품귀 현상에 게거품을 무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전부 다 시장에 맡겨두면 해결될 거라면서? 

시장주의자들은 ‘특정 제품의 수요가 늘어나면 → 제품 가격이 오르고 →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늘어나 → 수요와 공급이 다시 일치하고 가격은 안정된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런데 정말 그랬냐고? 시장에 맡겼더니 매점매석이 판을 치고, 불안심리가 자극돼 마스크 가격은 떨어질 줄 몰랐다. 2월 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서야 가격이 안정됐다. 시장주의자들이 신(神)으로 모셨던 가격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감염병 사태도 마찬가지다. 시장주의자들의 논리대로라면 감염병 치료제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에 제약회사들이 돈을 벌 심산으로 즉각 감염병 치료제를 개발했어야 했다. 그런데 치료제 개발에는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이 공백 기간에 감염병은 급속도로 확산된다. 
이걸 시장에 맡기고 가만히 놔두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인류는 공멸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과감히 시장에 개입해, 통제하고 방역하고 검역해야 한다. 단언컨대 시장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시장주의자들이 이중성
내가 시장주의자들을 경멸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이들은 감염병 사태가 확산되면 입을 싹 닫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장이 전염병을 막을 수 있으니 정부는 제발 좀 닥치고 있으라”는 말을 하는 시장주의자들을 본 적 있는가? 되레 그들은 “국가가 제대로 기능을 안 해서 주가가 떨어지고 소비가 줄어들어 우리가 손해를 입었다”고 게거품을 문다.

그런데 사태가 끝나면 이들의 태도는 다시 돌변한다. “복지제도를 확충해 빈곤층의 삶을 개선하자”고 주장하면 “정부가 왜 자꾸 시장에 개입하느냐”며 게거품을 문다. 지금 장난하냐? 빈곤으로 국민의 삶이 위협받는 것도 질병으로 국민의 삶이 위협받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란 말이다.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고 게거품 무는 자들은 서양의 금융자본과 한국의 재벌들이다. 그런데 걔들? 국가의 보호가 없었다면 절대로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없었다.

생각해보자. 정부의 비호가 없었다면 한국 재벌들이 시장에서 자기 힘으로 저렇게 성장할 수 있었겠나? 정주영이 1972년 만든 포니 자동차가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했다면 성공했을까? 웃기는 이야기다. 그 허접한 포니로 미국과 독일,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과 시장에서 경쟁했다면 현대자동차는 1년도 못 버티고 망했다. 그들의 성공 뒤편에는 정부의 보호가 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 재벌들이 박정희-전두환 시절 그렇게 정경유착에 집착했던 거 아닌가?

제정신 못 차리고 문어발 확장하다가 1997년 외환위기(IMF)를 맞았을 때, 구제금융에 들어간 돈은 누가 댄 건가? 전부 국민의 세금이었다. 

위기에 처하면 “국가가 우리를 보호해줘야지”라고 구걸을 하는 게 이자들의 특기인데, 구걸하는 태도가 너무 당당해서 어이가 없다. 그래서 죽어가던 기업을 공적자금으로 살려놓은 뒤 국가가 죽어가는 민중들 좀 살려보겠다면 “시장에 맡기라니까! 왜 세금을 허투루 쓰는 거야?”라며 발악을 한다. 이들에게는 염치라는 것이 없다.

국가와 공공의 기능을 다시 생각한다
이런 뻔뻔함은 자본의 종족 특성이다. 월가 금융자본의 탐욕으로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졌을 때, 미국 정부가 수조 원에 이르는 구제금융과 수경 원에 이르는 달러를 퍼붓지 않았다면 걔들은 다 망했다. 미국 정부가 찍어낸 수경 원의 달러는 전 세계 민중들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렇게 국가의 혜택을 입어서 살아남은 자들이 걸핏하면 국가는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며 신자유주의 깃발을 휘두른다. 말종도 이런 말종들이 없다.

그래서 유럽을 대표하는 진보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는 자본의 이중성을 이렇게 질타한다. 

“국가 권력 없이 개인의 이윤과 시장경제는 전혀 가능하지 않았다. 국가는 운하를 건설하고 실업자들을 구제했다. 병원을 짓고 보건계획을 세워 전염병을 퇴치했다. 자본가들에게 양질의 노동자를 공급하기 위해 미래의 노동자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학교도 세웠다. 국가는 시장경제를 안정화했다. 

그렇게 부(富)는 노동자, 발명가, 국가공무원과 기업가에 의해 함께 생산되었지만, 그 부는 가장 힘 있는 개인들의 손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국가가 세금을 통해 자신들의 부를 빼앗아 간다고 국가를 원망한다. 

강자들은 국가를 비난하지만, 간이나 콩팥이 필요한 것처럼 강자들에게는 국가가 반드시 필요했다. 힘 있는 개인들은 국가를 악마라고 비난하면서도 더욱더 국가에 매달린다. 그러면서도 국가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려 한다.”

그 어떤 재벌도, 그 어떤 금융자본도, 그 어떤 부동산 갑부도 국가가 산업화를 주도하고, 전염병을 치료하고, 학교를 세우고, 도로를 깔고, 그들이 어려웠을 때 구제금융을 퍼부어주지 않았으면 그들은 절대 부자가 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혜택을 입은 자들이 걸핏하면 정부의 기능을 폄훼하고 세금을 줄이라고 난동을 부린다.

부디 이번 감염병 사태를 정부가 잘 대처해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데 그런 소망과 별개로 이번 일을 계기로 국가의 기능과 정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무엇보다 시장 만능론을 외치는 시장주의자들과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 바루파키스의 말처럼 저들은 필요할 때만 국가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장이 아니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국민의 삶과 건강, 생명과 안전을 진정으로 위하는 공공성으로 무장한 정부와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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