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성경 왜곡

정병진 평화나무 기자

지난해 12월 7일 예비역 장성과 현역 군인들로 구성된 국군장로연합회(회장 권오성)가 송년 예배에 정동수 목사(인천 사랑침례교회)를 초청했다. 

뉴스앤조이 보도에 따르면 정 목사는 이날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주제로 특강을 하면서 “(정부가) ‘자유’를 빼고 사회주의·공산주의, 독재 체제로 가는 쪽으로 헌법 개정을 이루려고 하면 우리 기독교인들이 모두 반대해야 한다”며 하나님은 우파의 하나님이란 주장을 펼쳤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이 좌익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그것은 성경을 잘못 읽은 거다. 하나님은 오른쪽의 하나님이지, 왼쪽의 하나님이 결코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다. 

“현 정부가 헌법에 나오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란 단어를 빼고 헌법을 개정해 사회주의·공산주의로 가려 한다”는 주장은 지금 서울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전광훈 씨가 해온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가짜뉴스에 불과하다. 지난 2017년 국회 개헌 특위가 ‘헌법 개정 권고 초안’을 만들었다. 그 내용에 지금의 헌법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문구 대신 ‘평등한 민주사회의 실현을 기본 사명’이 들어갔다. 그러자 이를 두고 조선일보가 국가 체제의 근간인 개념을 뿌리째 흔드는 ‘좌편향 개헌안’이라며 맹공격을 퍼부었다. 

이 ‘헌법 개정 권고 초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말 그대로 ‘권고 초안’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 초안을 마련한 개헌특위 위원장은 자유한국당 의원이었고 이 특위에는 자유한국당 의원이 14명이나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도 “현 정부가 의도적으로 헌법에서 ‘자유민주’를 빼고 사회주의·공산주의를 만들려 한다”는 주장하는 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려면 시간이 들고 복잡하니, 누군가 이런 가짜뉴스를 일부러 만들어 퍼뜨리곤 하나 보다. 평소 현 정부를 좌편향이라 생각하며 싫어했던 사람들은 이 같은 가짜뉴스에 쉽게 현혹당한다.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정동수 목사가 현 정부를 ‘가짜뉴스’로 비난한 내용보다 더욱 심각한 왜곡이 있다. “하나님은 오른쪽의 하나님이지, 왼쪽의 하나님이 결코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게 노골적인 선거운동성 발언이라는 사실은 자치하고라도 성경의 가르침을 들먹이며 하나님을 우익만을 위한 분으로 규정하는 황당무계한 주장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다. 성경을 깊이 잘 알지 못하는 신자라면 자칫 현혹될 것 같아 위험해 보인다. 정동수 목사가 왜 그런 주장을 하는 건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그는 자신이 담임하는 교회나 다른 강연회에서도 몇 차례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그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우리말에 ‘외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에서 왼쪽이 나왔다. ‘외다’라는 말의 뜻은 ‘비뚤어졌다’는 거다(뜻이다). 외롭다, 외지다, 외골수 등 ‘외’자가 들어간 건 다 비뚤어졌다는 의미다. 구원받기 전 모든 사람은 왼쪽 사람으로 태어난 거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돼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속한 사람이 된다. ‘옳다’라는 건 영어로 ‘rght’이다. ‘left’는 틀린 거고 ‘right’가 맞는 거다. 성경 말하는 ‘의’도 영어로 ‘righteousness’이다. 왼쪽으로 태어난 사람이 오른쪽 사람으로 바뀌는 게 구원받는 (증)거다.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양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오른쪽에 서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마귀를 따랐던 사람은 왼쪽에 서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오른쪽의 가치를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돼야 한다"


 (2019. 11. 5 인천 목회자 시국기도회 특강 중) 

정 목사의 황당한 주장에도 청중은 ‘아멘’을 연발했다. 평신도뿐 아니라 목회자를 상대로 하는 강연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성경을 자신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교묘히 왜곡해 속이는데도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모르는 듯하다. 

겉보기에는 비슷하지만 속은 완전히 다른 걸 두고 ‘사이비’라고 한다. ‘이단들’도 정통교단과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 교리가 전혀 다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이단 사이비’라는 말을 붙여서 쓰는 경우가 많다. 정동수 목사는 소위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를 내세워 이미 이단성 시비가 있는 자이다. 이런 자들에게 속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치우친 선택

성경이 구약성서부터 신약성서에 이르기까지 ‘왼쪽’보다는 ‘오른쪽’을 선호하고 ‘오른쪽’을 더 긍정적으로 묘사한다는 건 사실이다. 가령 야곱은 요셉이 이집트에서 낳은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손을 얹어 축복 기도를 할 때, 큰아들 므낫세에게는 왼손을, 작은아들 에브라임에게는 오른손을 얹어 축복했다. 요셉이 큰아들 므낫세를 아버지 야곱의 오른쪽에, 작은아들 에브라임을 왼쪽에 서게 했는데도 야곱은 자신의 손을 엇갈려 축복한 거다. 이에 요셉이 못마땅하여 므낫세가 큰아들이니 그에게 오른손을 얹으셔야 한다고 하였으나 야곱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 아우가 형보다 더 크게 될 것”이라며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어 축복한다(창 48:17~19). 실제로 ‘에브라임’은 므낫세보다 훨씬 더 커져서 북 왕국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별칭으로 쓰였을 정도다. 시편에는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꽉 붙드신다”(시 63:8; 139:10) “주님께서 그의 오른손으로 나를 구원하신다/하소서”(시 60:5; 108:6; 138:7), “주님은 네 오른쪽에 서서 너를 보호하시는 그늘이 되신다”(시 121:5)...이런 문구가 수두룩하다. 반면 “하나님이 왼손으로 구원을 베푸시고 보호하신다”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전도서에는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다”(전 10:2)는 성구마저 있다. 

신약성경도 사정은 비슷하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너는 자선을 베풀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 6:3)고 가르치신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가 아니다.

남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은 선행에 속하는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할 때 “자신의 왼손조차 모를 정도 은밀히 하라”고 하신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양에 비유된 의인들은 임금의 오른쪽에, 악인들은 왼쪽에 세울 것(마 25:33)라고 나온다. 또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 즉 오른쪽에 앉으신다(막 16:19; 눅 22:69; 히 1:3; 8:1; 10:12; 골 3:1). 이처럼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 모두 왼쪽보다는 오른쪽을 훨씬 더 의롭고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 좌익이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성경을 잘못 읽은 거다. 하나님은 오른쪽의 하나님이시지 왼쪽의 하나님이 결코 될 수 없다”라는 주장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건 성경에 대한 무지의 표출이거나 교묘한 곡해에 해당한다. 성경이 왼쪽보다는 오른쪽을 더 의롭고 선하게 묘사한 것은 성서 시대 유대인의 생활문화 관습이 그러하였기 때문이지 실제로 하나님이 우익이나 우파라서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른쪽을 올바르고 좋게 여기는 문화는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서양을 비롯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나라가 오른쪽을 우대하며 좋게 여기는 건 아니다. 중국의 경우는 예로부터 왼쪽을 길하고 명예롭게 여겼고, 오른쪽은 불길하게 여겼다. 가령 노자의 도덕경에는 “길한 일에는 왼쪽을 높이고, 흉한 일에는 오른쪽을 높인다”(31장)는 구절이 나온다. 중국 영향을 짙게 받은 탓에 조선 시대 최고위 관직인 좌의정, 우의정 중에 높은 사람은 좌의정이었다고 한다. 세배법도 남자는 왼손을 위로,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올리게 되어 있다. 이는 왼쪽을 오른쪽보다 더 우위에 두고 신성하게 여겨서 그런 거지 다른 무슨 심오한 뜻이 있는 게 아니다. 


좌우를 넘어

성경이 왼쪽보다 오른쪽을 더욱 긍정적으로 보고 선호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드물지만 왼쪽, 왼손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대목도 일부 찾아볼 수 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은 8년간이나 모압 왕 에글론을 섬기며 몹시 시달렸다.

그 무렵 하나님은 베냐민 지파 게라의 아들인 ‘왼손잡이 에훗’을 구원자로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건져 내셨다(삿 3:12~30). 신약성경에도 왼쪽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대목이 있다. 야고보와 요한이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때에, 하나는 선생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달라”(막 10:37)고 요구한 적 있다. 순서상 동생인 요한이 자신을 왼쪽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한 셈인데, 오늘날 일찍 순교한 큰 야고보보다 요한이 훨씬 더 유명하다.

사도 바울은 “(우리는)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오른손과 왼손에 가지고 (일한다)”(고후 6:7)고 하였다. 이처럼 성경이 왼쪽을 오로지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다. 오른쪽 없이 왼쪽이 존재할 수 없듯, 왼쪽이 없으면 오른쪽도 외따로 있기 어렵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고, 사람은 좌우 손과 발을 사용해 일하고 걷는다. 좌우는 서로를 반드시 필요로 하게 마련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파도 좌파도 아니시다. 인간에게는 그렇게 편 가르는 게 필요하고 중요할지 모르나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는 우파나 좌파 모두 한쪽으로 치우쳐 부족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왼쪽은 악한 길이니 오른쪽 길로만 나아가라”고 명하시지 않는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성심껏 지켜야 하며,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신 5:32)고 가르치신다.

하나님도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오직 너는 크게 용기를 내어,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지시한 모든 율법을 다 지키고,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않게 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수 1:7)고 말씀하신다.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치는 걸 경계하는 말씀은 성경에 여러 군데 나온다. 가령 전도서의 현자 코헬렛은 “하나를 붙잡되, 다른 것도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한다.”(전 7:18)고 가르친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방향은 오른쪽과 왼쪽 같이 치우친 곳이 아니다. 그분이 바라시는 길은 어느 방향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하나님이 명하신 길,’ ‘주님의 정의와 공평, 사랑과 긍휼을 실현하는 방향’(호 2:19)으로 올곧게 나아가길 바라신다. 이 같은 주님의 길이 아니라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나아가는 자는 “곁길로 빠져서 쓸모없게 되는 사람들”(롬 3:12)일 뿐이다.

오랜 사회 문화적 관습과 편견을 마치 절대 진리처럼 여기는 어리석음과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전 세계 인구 중에 왼손잡이 비율은 약 10%가량이라고 한다. 오른손잡이가 많다고 왼손잡이를 차별하거나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연구에 따르면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보다 예술적 감각이나 운동신경 등이 더 뛰어나다고 한다. 이처럼 다수가 오른손잡이라고 해서 그게 반드시 더 옳거나 훌륭한 건 아니다. 조금 달리 생각하면 왼손잡이가 드물기에 더 귀할 수도 있다.

특히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편견과 차별의식을 버리고 왼쪽과 오른쪽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골 2:2)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는 살롬의 세계, 곧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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