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석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의 답장

강기석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연합뉴스
강기석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연합뉴스

 

허재현 기자께서 평화나무를 통해 제게 쓴 편지를 잘 읽었습니다. 언론계에 이처럼 나와 ‘진보 언론관’이 닮은 후배가 있다는 것이 반가웠고, 내가 후배들을 비판하면서 혹시 놓친 부분은 없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는 잘 모르는 사이인 것 같지만 나는 허 기자를 꽤 잘 알고 있기도 합니다.

오래 전 허 기자가 한겨레를 그만 둔 사연도 다른 한겨레 후배에게 들었고, 최근 친정집 한겨레 법조팀으로부터 소송까지 당하게 된 전말도 잘 알고 있고, 이곳 저곳 팟케스트나 유튜브를 통해서도 허 기자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허 기자는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겠지만, 내가 지난 2017년 1월 내 페이스북에 ‘안기부 X파일 수사를 문재인이 막았다'는 주장을 펼친 이상호 기자를 비판한데 대해 허 기자가 날카롭게, 그러나 절제있게 문제 제기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 나는 막연히 알고 있던 허 기자가 진보언론인이면서도 치우치지 않고, 냉정하고, 팩트를 중시하고, 논리의 비약을 거부하는 기자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 우리가 주고 받은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허재현 한겨레 허재현 기자라고 합니다. 처음 인사드리면서 조금 불편한 내용의 댓글을 달아 송구합니다. 이상호 기자가 '이런 류의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하시지만 좀더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누군가를 평가하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으나, 내용이 너무 빈약해 쉽게 수긍하기 어렵고 단순한 트집잡기 용도의 글로 비칩니다. 이상호 기자가 카톡이나 블로그에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사람으로 분류될 만한 근거가 있습니까? 저는 본 적이 없어서 묻는 질문입니다.

허재현 그냥 페이스북에 개인적인 잡글을 남기신 것이니 상관하지 말라고 혹시 답하신다면 저는 더이상 이곳에 들르지도 댓글을 남기지도 않겠습니다. 다시 한번 초면에 송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허재현 가만 생각해보니, 이글은 문재인에 대한 최근의 이상호 기자의 기사 탓에 쓰신 것 같습니다. 글을 쓰신 시점과 전후 맥락상 그렇게 읽히는데 맞는지요. 그렇다면 더더욱 이 글은 더욱 형편 없게 느껴집니다. 이상호 기자의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될 것이지 별로 인과관계가 맞지 않는 '품성 비판'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크게 주는 이런 글은 정말 지켜보기에 화가납니다.

강기석 제가 지금 이동 중이어서 허 기자님의 댓글을 늦게 봤습니다. 그래도 제가 페이스북의 특성을 나름 잘 알고 있고, 제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는데, 아무리 내 타임라인이라 할지라도 어찌 잡글을 함부로 올릴 수 있겠나요. 시간 되는대로 답글 올리겠습니다.

송경화 강기석 끼어들어 죄송합니다 저도 대기자님의 후속글 기다릴께요 다른 분들의 얘기는 흘려듣지만 대기자님 말씀은 제게 무척 중요합니다 ㅎㅎ

강기석 허재현 송경화 님 지금에야 한가한 시간을 발견해 답글을 씁니다(하지만 내 가슴 속까지 한가한 것은 아닙니다) 기자는 모름지기 ‘팩트’를 신성시 한다고 합니다. ‘팩트’를 통해서 ‘진실’로 갑니다. 그러므로 ‘팩트’는 기자가 상정하는 ‘진실’을 암시합니다. 진실 이전에 의견을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 의견도 ‘팩트’가 받쳐줘야 힘이 있습니다.

강기석 이상호 기자는 “문재인이 삼성 특검을 막았다”는 것을 진실처럼 말하면서도 전혀 팩트로 받쳐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팩트’는
첫째, 당시 사적 권력(재벌)이 공권력을 매수한 것(삼성 떡값)이 문제냐, 국가권력(안기부)이 민간을 도청한 것이 문제냐,
둘째, 끝내 특검을 못하게 한 것이 청와대냐, 한나라당이냐에 관한 ‘의견 차이’입니다. 이런 논란에서 어떤 한 ‘의견’만을 악용해, 자신이 삼성 떡값보도로 인해 당한 고난을 ‘힘센 사람’(아마도 문재인)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것이 이상호 기자의 속셈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입니다.(정치적 고려가 있었는지 여부는 여기에서 추론하지 않겠습니다)
진짜 힘센 놈들은 당시 삼성과 검찰인데도 그렇습니다. 강기석 솔직히 지금 국민의 염원은 정권교체입니다. (한겨레가 앞장서고 있다는데 나도 동의합니다) 많은 사람이 문재인이야말로 정권교체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믿고 있는데 나 역시 동감합니다.(문재인 지지자들은 한겨레(정치부)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나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호 기자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가 자신의 보도로 인해 정권교체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고 고민한 흔적은 없어 보입니다.
무조건 자신이 겪은 고난에 대한 책임소재를 찾는 것이 이 기자의 지금 당면 목표 아닌가 생각할 정도입니다.(다시 한 번 이번 사태에서의 그의 정치적 고려 여부는 추론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입장으로 인해 지금 이 기자는 문재인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 나아가 정권교체를 염원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준 인물에게 내가 설혹 상처를 좀 주었다 한들, 허 기자님이 발끈해서 비판한다는 것 자체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처음 사단이 났을 때부터 일 주일 가까이 지켜보면서 나는 이 기자의 성의있는 해명 혹은 입장표명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내가 품성론을 꺼낸 이유입니다. 참고로 나는 ‘다이빙벨’을 아무 편견없이 감명깊게 관람한 사람입니다. 이런 후배야말로 언론계를 지켜낼 진짜 언론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자신이 없습니다.

허재현 알겠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글을 쓰셨다면. 이건 선생님의 견해이기에 그럴수 있겠다 하고 읽을수도 있지않나 싶습니다. 송구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건강하시고 좋은 글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강기석 그리고 허 기자께서 “진보언론 법조기자들의 문제를 바꾸려면 기자 개개인의 성향을 지적할 게 아니라, 그들이 친검 성향을 띌 수 밖에 없는 보도 시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면서 내 글에는 이 분석이 빠져 있는 거 같다고 해서 내가 지난 2월 4일 올린 글을 참고로 보냅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언론계 생활 만 42년차 언론인으로서 ‘기레기’라는 소리를 죽도록 싫어합니다만 그 단어를 막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혀 극복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나는 많은 부분 진보언론의 문제가 나무에 매달려 숲을 보려 하지 않는데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프레임을 바로 수구언론, 검찰, 관료, (재벌의) 연구소 등이 짜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 건투합시다.  

강기석 2월 4일 · 
<기자동일체>
기자가 아무리 검사들하고 한 패거리처럼 놀아도 검찰 소속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검사동일체’ 원칙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자들도 소속된 언론사가 어디냐에 따라 ‘동일체’ 비스므리한 것의 적용을 받긴 한다. ‘기자동일체’라 할 만하다. 윤석열 검찰청장은 "어느 위치에 가나 어느 임지에 가나 검사는 검사동일체 원칙에 입각해서 운영되는 조직이기 때문에 (인사이동은) 여러분들의 책상을 바꾼 것에 불과하고,
여러분들의 본질적인 책무는 바뀌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딴 생각 하지 말고 위에서 결정하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 검찰 밖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검사동일체’ 원칙이다. 조폭논리와 다름없는 것이다. 언론계도, 특히 조중동같은 족벌언론은 같은 논리로 작동된다. 검사들의 맨 위에 검찰청장이 있듯 기자들의 맨 위에는 편집국장이 있다. 검사들 중에 차장검사가 있고 부장검사가 있듯 기자들 중에도 에디터가 있고 데스크가 있다.
평상 시 일선 검사가 인지 사건을 윗선에 보고하고 수사하듯, 평상 시 기자도 자잘한 일상 취재거리를 데스크에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 자발적으로 취재 보도한다. 하지만 큰 건이 터지면 일선 기자는 완전히 자발성을 잃어버리고 위에서 결정하고 지시하는 대로 따라 해야 한다.
채동욱 찍어내기가 됐든, 조국 죽이기가 됐든, 기자들은 위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과장보도, 별건보도, 심지어 허위보도를 일삼는 것이다. 마치 특수부 검사들이 강압수사, 별건수사, 인디언 기우제 수사를 하는 것과 같다.

기자동일체’의 정점에는 편집국장을 넘어 족벌사주가 있다.(조선은 방씨, 중앙은 홍씨, 동아는 김씨)
제 맘에 드는 이를 언제든 편집국장에 임명하고 또 해임할 수도 있는 막강한 인사권을 휘두르며 최상위에서 ‘기자동일체’를 즐기는 것이다.지금까지의 윤석열 검찰이 조폭을 닮았다면 ‘기자동일체’의 조중동 또한 조폭언론이 맞는 것이다. 그런데 왜 특정 족벌 사주가 없는 공영언론, 경향신문, 한겨레 등도 가끔씩, 큰 이슈가 터지면 조중동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걸까?

출입처 기자단이란 또 다른 차원에서 ‘기자동일체’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비록 소속사는 달라도 한 출입처에서 똑같은 취재원에게 정보를 얻고 밥 먹고, 술 먹고, 경조사 챙기며 친목을 도모하다 보니 아뿔싸!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잃고 어느새 조중동과 한 통속으로 놀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이 속한 사주 없는 언론사는 ‘기자동일체’는커녕 의사결정 과정도 복잡하고, 위계질서도 흐리고, 명령체계도 잘 잡혀 있지 않다.
힘이 중앙으로, 위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아래로 퍼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한 마디로 각각의 출입처에서 뭘 좀 더 알고, 기사 물 먹지 않고, 말빨 센 놈이 왕노릇하게 되는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 청장의 말이 나오자마자 신임검사들에게 "상명하복 문화 벗어나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고 한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15년 전 법전에서 사라졌지만 아직도 검찰 조직에는 상명하복의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며 검찰의 조직문화 개선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것을 박차고 나가서 각자가 정의감과 사명감으로 충만한 보석 같은 존재가 돼 국민을 위한 검찰로 빛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는데, 검사들이 아니라 기자들에게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이다. “각자가 정의감과 사명감으로 충만한 보석 같은 존재가 돼 국민을 위한 언론으로 빛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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