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은 한센병이 아닌 모든 피부병

마가복음 1장 40~45절에 나오는 ‘나병 환자’는 한센병이 아니다. 온갖 악성 피부병을 총칭하는 것이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던 과거에는 아마 아토피도 나병으로 불렸을 것이다. 이 말씀을 접할 때 단순히 ‘예수님이 신통방통한 능력으로 고쳤다’라고만 생각하지 말자. 어디서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고쳤는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떤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는지 살피자.

고대 나병은 ‘하늘이 내린 병’ 

당시에도 의사가 있었을 텐데 왜 그들이 아닌 예수님이 고쳤을까? 고대의 나병은 온갖 악성 피부병 중에 하늘이 내린 병이라고 했다. 이를 천형병(天刑病)이라고 한다. 열왕기하에 보면 시리아 왕이 나아만장군이라고 그 나라에서 존경받는 장수를 이스라엘로 보내는 사건이 나온다. 나아만은 악성 피부병에 걸렸고 시리아에서는 아무도 못 고쳤지만, 이스라엘 예언자 엘리사는 ‘용하다’는 소문을 들었던 터다. 성경은 엘리사가 병을 낫게 했다고 소개한다. 나병은 한마디로 의사가 있어서도 못 고치는 병이다. 그러면 왜 많은 병이 있는데 하필 성경이 피부병 환자를 내세울까? 회당을 주목하자. 회당은 공적 질서 최정점에 있는 권력이다. 공권력을 가진 사람이 잘못했을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밑바닥’ 백성에게 미친다. 피부병 환자가 그러했다.

레위기 “스스로 불결하다고 소리쳐라”

그들은 생김새도 행동도 이른바 ‘정상인’보다 많이 달라 괴물 취급을 당하는 등 왕따가 된다. 게다가 레위기 13장 45~46절을 보면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되고는 하나님한테 벌 받은 사람으로 규정된 점을 인정하며 “자기를 불결하다”라고 외쳐야 했다. 이 사람은 성곽의 도시에 못 산다. 성전에 못 들어간다. 홀로 살아야 한다. 어쩌다 회개해서 나으면 하나님이 용서해 준 것이라고 인식했다. 참고로 나으면 완치 판정을 의사가 하는 게 아니라 제사장이 해준다. 왜냐? 천형이니까. 

예수님 “피부병은 천형 아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이 모든 것에 대한 타파선언이다. 예수님은 피부병 나은 사람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명실상부한 치유가 되니까 그러하다. 마가복음은 이렇게 낙인찍히고 소외당한 사람을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주인공으로 세운다. 그런 의미에서 큰 감동이 된다. 예수님은 병을 이유로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의 낙인을 지워주는 해방의 수문장이었다. 자, 그런데 이것이 마가 공동체 상황과 결부 지어 볼 여지가 있다. 예수님의 이 같
은 사역은 상당히 위험했다. 병 고침의 선포는 제사장이 해야 한다. 그게 정결법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 일을 해 버린다. 유대인은 이를 사회 교란 행위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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