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교역자가 거쳐간 일곱 교회 이야기
상태바
한 부교역자가 거쳐간 일곱 교회 이야기
  • 권지연 기자
  • 승인 2020.04.28 21: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지연 평화나무 기자
권지연 평화나무 기자

세습한 교회, 재정이 투명하지 않은 교회, 성문제가 발생한 교회 등, 교회가 범죄의 온상처럼 비춰진 지 오래다. 아무리 건강한 교회가 훨씬 더 많다고, 교회는 범죄의 온상이 아니라고 외쳐봤자 이미 드러난 범죄에 대해 제대로 된 해결책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모습은 이런 주장을 궁색한 변명처럼 만들어 버린다. 더 큰 문제는 '침묵'을 강요하는 분위기다. 

이 지점에서 부교역자들에게 질문을 던져 보겠다. 만약 당신이 섬기는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아들 목사가 다수의 여신도를 상대로 성적 욕구를 채워 왔다면, 그래서 그 일로 교회가 두 동강이가 났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아마 ‘피해자 편에 서겠노라’고 자신 있게 손을 들 수 있는 부교역자는 드물 것이다.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것만으로도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잘못을 저지른 목사보다 고발한 사람을 더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는 사탄처럼 취급하는 것도 한국교회의 현 주소다. 애석하게도 적어도 내가 40여년을 보고 자란 한국교회의 모습이 그렇다. 

인천 S교회에서 발생한 그루밍성범죄 사건에서 정직하게 취재에 협조했다가 쫓겨난 한 부목사가 있다. 그가 뒤늦게 신학 공부를 시작해 지금껏 거쳐 간 교회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가 언급한 교회의 이야기는 언론에 보도된 수많은 문제 있는 교회를 생각하면 싱겁기도 하고, 한 사역자가 거쳐 간 교회가 어쩌면 하나같이 문제였을까 싶은 마음에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 생각의 추를 기울이든 답답함이 몰려 온다. 한국교회는 소망이 있을까. 

'기독청 설립이 성경적일까?' 늦깎이 신학생의 의문 

이 목사는 2003년, 서른이 넘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청소년기부터 부모님 속 꽤나 썩여 봤다는 이 목사는 세상의 쓴 맛을 본 후, 대인기피증이 생길 무렵 아버지로부터 신학 공부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받았다고 한다. 

이 목사의 아버지는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가 추천한 교회가 있는데, 본교가 미국에 있다고 한다. 졸업하면 네가 첫 번째 졸업생이 되니, 10년 후면 그 학교에서 교수도 될 수 있다고 한다’며 아들인 이 목사를 설득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결국 나이 서른이 훌쩍 넘긴 늦깎이 신학생이 됐다. 그가 입학한 학교는 2003년 개교했다가 2012년 폐교된 선교청대학교(옛 성민대학교)다. 

이 목사는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와 유착돼 있던 목사가 학생 유치를 위해 오매불망 아들 걱정인 아버지를 꼬드긴 것이었는데, 당시에는 지금부터 공부해서 10년 후쯤 교수가 될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천안 병천에 지어진 허름한 컨테이너 건물로 지어진 학교에서 이 목사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날마다 혼란이 더해져 갔다고 한다. 이사장이라는 목사가 늘 ‘기독청을 세우겠다’고 공언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이사장의 신앙관에 의문을 품고 1년여 만에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산하 칼빈대학교에 입학했다. 

능력 과신하던 목사에서 프로그램에 미친 목사, 황제노름 하던 목사까지 
‘운이 나빴던 것일까요?’ 찢어지고 상처 난 교회 부교역자는 괴롭다 

신학을 하면서 그가 전도사로서 처음 섬긴 교회는 김포의 S교회다. 당시 교회는 상거 건물 3층 세 칸을 분양받아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교인은 30여명이 전부였다.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예배당을 분양 받다보니 날마다 이자 내기가 빠듯한 교회였다. 

이 목사에 따르면 당시 담임 목사는 교회 위치가 좋지 않아 교인이 모이지 않고, 자신의 능력 발휘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늘 지상에 교회를 짓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런 담임 목사는 이 목사의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웠다. 담임 목사를 신뢰했던 이 목사의 아버지는 마이너스 통장까지 내어주었고, 담임 목사가 지상에 교회를 건립할 수 있도록 7천만원을 빌려 주었다. 

결과는 쪽박이다. 상가 교회는 이자도 못 내면서 경매에 넘어갔고, 목사는 도주했다. 실종 신고를 냈으나 소용없었다. 도주한 담임 목사가 경찰의 전화를 받으면서 실종 신고가 자동 취소된 것. 

이 목사는 “그는 내가 만난 목사 중 최악의 목사 중 한 명 이었다”며 “노회 소속 다른 목사님들을 비롯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빌려간 돈만도 5천만원이 넘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도 목회를 하고 있다고 한다. 교인들이 불쌍하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사역지는 강원도 철원의 K교회였다. 이 목사는 K교회에서 2006년부터 2008년경까지 약 3년간 사역했다. 그는 이 교회 목사를 존경한다고 표현했다. 

이 목사는 “교인은 100명에서 150명 정도 출석하는 교회였고, 워낙 시골교회다 보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담임목사가 사례비 받으면서 얼마든지 편하게 목회할 수 있는 교회였다”며 “그런게 그 목사님은 더 시골교회로, 더 작은교회로 가셨다”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목회자들이 처음엔 작은 교회에 청빙 원서를 넣고, 큰 교회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는데, 보기 드문 존경스런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건강한 목사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 목사가 옮겨간 다음 사역지를 보면서 느끼게 된다. 

이 목사가 2008년 신대원에 입학하면서 옮겨간 세번째 사역지는 동대문 창신동에 위치해 있었다. 이 목사는 그 교회를 ‘프로그램에 미친 교회’라고 평가했다. 

이 목사는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미싱사였다. 하루에 많게는 18시간씩 앉아 미싱을 돌리는 분들이었다”며 “그런 교인들을 대상으로 담임목사는 두 날개 훈련 프로그램을 시도했다”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어 “담임 목사는 늘 두 날개 세미나만 쫓아 다녔고, 정작 방치된 아이들에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그 지역에서 더 필요한 사역은 두 날개가 아니라, 피곤한 미싱 노동자들에게 쉼을 제공해 주고, 방치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보호할 보루가 되어주는 것이었지만 교회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이미 분열을 맛봤던 교인들은 어렵게 모셔 온 목사에게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못하고 끌려가고 있었다고 하니, 한숨이 나올 법도 하다. 

이 목사는 10개월 만에 사역지를 옮겼다. 이번에는 일산에 위치한 제법 큰 교회였다. 담임목사는 유명한 조폭의 아들로 에쿠스를 타고 다니는 그야말로 폼생폼사였다. 

이 교회는 2011년 5월 하나님의 교회에 매각됐다. 이 목사는 “보상 받은 땅에 대출을 받아서 교회를 지어놓고 감당이 안 됐는지 팔았다”며 “기성교회 중에서 사겠다고 나선 교회가 있었는데 하나님의 교회가 3억인가를 더 준다고 하니까 하나님의 교회에 팔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이 목사가 옮겨간 교회는 당시에도 130년 전통을 자랑하는 파주 문산 소재 교회였다. 이 목사에 따르면 담임 목사는 절약 정신이 매우 투철한 짠돌이였다. 예를들어 교역자 회식은 십시일반 회비를 걷어 했다. 한번은 부교역자들이 심방 중에 1인당 1만5천원 상당의 식사를 했다가 난리가 난 적도 있다. 

이 목사는 “그날 이후 담임 목사가 지출결의서 1년치를 탈탈 털어서 ‘안 나갈 돈 60만원이 나갔다’며 일장 훈계를 늘어놓고 식비를 6천원 이하로 정했다”고 했다.  

이 목사는 짠돌이 담임목사 덕에 부교역자에게 내려오는 스트레스가 컸지만 그런 모습이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어찌나 절약 정신이 투철한지, 그 철칙은 투자해야 할 청소년들에게도 예외 없었다. 

이 목사는 “한번은 청소년들과 문학의 밤 대신 찬양의 밤을 열기로 했다. 300석이 넘는 공간의 임대료 문제도 해결했지만 다른 비용이 문제였다”며 “그런데 9월에 결산을 해보니 예정된 헌금의 85%밖에 안 들어올 것 같다면서 교육부에 예산 지원을 못 해주겠다고 했다. 행사를 하려면 사비로 하라고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교육부에 주는 예산마저 나 몰라라 했던 목사는 그 해에 사택을 구입했다. 이 목사는 “문산에 아파트 파동이 났는데, 성도 한 명이 아파트를 싸게 팔고 서울로 이사를 나가야 겠다는 얘기를 심방 중에 듣게 된 담임 목사가 당회에 대출받아 사자고 설득해서 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교육부 예산은 안 주면서 자기 사택을 사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때부터 이 목사의 눈에는 담임목사의 행동이 자기중심적으로 비춰졌을 것. 도서비를 두둑하게 챙겨주는 교인 심방은 반드시 담임목사가 전담하는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교사 워크숍은 재정을 아껴야 한다면서 1박 이상은 못 하도록 하면서 당회원 수련회는 제주도로 가버리는 스케일을 보이는 등 여러 가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담임 목사를 존경할 수 없는 부목사의 마음은 괴로움이 됐다. 

이 목사가 간 다음 사역지는 인천 부계동에 위치한 B교회다. 길자연 (왕성교회 원로) 목사 파로 분류되던 담임 목사는 첫날 만남부터 범상치 않았다고 한다. 

설교는 반드시 몽블랑 만연필로 작성하며, 면접 시 대화는 마치 영화 속 사장님처럼 뒤로 한껏 재껴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응시해 주는 포스가 남다른 목사였다고 한다. 

어딘지 꺼려졌으나, 사역지가 다급하게 필요했고 지인 목사가 추천해 준 곳이기도 해서 이 목사는 2015년 7월부터 이곳에서 사역하기로 했다. 

이 목사는 “사역을 시작한 그 주 금요일에 사무실에 찾아 온 수석장로에게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했더니, 수석장로가 대뜸 ‘교회에서 오래 버티려면 저와 친한 척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일주일 만에 안수집사들이 교회 마당에서 피켓을 들고, ‘담임 목사의 해임’을 촉구하는 광경을 마주하게 됐다. 제왕적 리더십으로 당회록마저 금고에 넣어 놓고, 재정 사용도 자기 멋대로 하는 목사를 향해 교인들은 “나가 달라”고 항의했던 것. 

이 목사는 “교인들의 항의에 교회는 ‘교회가 승인하지 않는 모임을 하지 말라’며 맞섰고, 심지어 목사가 안수집사를 폭행해 고소를 당하는 등, 민·형사 소송이 2년간 끊이질 않았다“고 했다. 

이 목사는 “당시 교회는 재개발 지구에 포함돼 있었다”며 “대리하는 컨설팅 회사에서 60-80억 정도 나올 것이라고 했다. 목사는 보상금을 크게 챙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노회가 중재해서 5억을 받는 조건으로 교회를 나갔다”고 했다. 

이 목사는 2016년 11월 30일부로 담임 목사가 쫓겨난 상처 많은 교회에서 담임목사 대행을 맡았다. 이후 후임 목사가 청빙될 때까지 자리를 지키다 2017년 말경, 인천의 S교회로 사역지를 옮겼다. 

S교회 담임목사는 같은 고향 목사였다. 인천 B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로 골치가 아플 때마다 상의를 할 만큼 믿었던 목사이기도 했다.

사역지로 말이 오가는 다른 교회가 있었지만, 선교를 계획하던 이 목사에게 S교회 담임목사는 ‘노회 파송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노회 파송에 솔깃한 이 목사는 S교회를 택했다. 

이 목사는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며 토요일과 주일에만 인천 S 교회를 섬겼다. 그런데 인천 S교회 분위기도 어딘지 불안했다고 한다. 이후 사건은 여지없이 터지고 말았다. 교회의 모든 살림을 도맡다시피 한 담임목사의 둘째 아들목사가 교회 청년들을 상대로 미성년 시절부터 그루밍성범죄를 저질러 왔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폭로된 것이다. 

이 목사는 “인천 B교회에서 담임 목사가 퇴직금으로 처음에 7억을 요구해 골치 아팠을 때 이를 S교회 담임 목사에게 가서 상담을 받았다"며 "S교회 목사는 보통 3-4억은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게는 가재 편이었고, 다를 바 없는 목사였는데 이를 알지 못한 채 상담까지 받았으니 한심하다”라고 말했다. 


고된 부교역자 생활 청산할까...성직 매매의 유혹 

이 목사가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받은 사례비는 100만원을 넘겨본 적이 없다. 60만원에서 최대 90만원을 받았고 담임 목사 대행을 지낸 교회에서는 180만원을 받았다. 전도사 사역을 하면서는 기름값도 지원을 못 받아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이때문에 이 목사의 아내가 밤낮없이 일해야 했다. 

수백만원 사례비에 판공비와 도서비, 자녀 교육비, 사택 관리비까지 다 교회가 책임져 주는 담임 목사와는 달라도 참 많이 다른 형편인 것이다. 이 목사에게도 담임목사 청빙 제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목사는 “군산에 있는 교회에서 청빙 자리가 나왔다”며 “교회 건축으로 10억 정도 빚을 지고 있는 교회였다. 그럼에도 일흔이 넘은 담임목사가 은퇴자금으로 10억을 요구했다가 계획대로 안 되자, 은퇴를 하지 않고 교단을 탈퇴해 버렸다. 결국 그 목사는 10억을 받고 원로가 되는 조건으로 교단 안으로 들어왔는데 새로 부임한 목사가 여자 문제에 걸려 쫓겨난 것이다. 교회에 부채도 있고 담임목사가 필요한데 그 자리를 나에게 맡아 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한 번 찾아간 후로 3주가 지났는데도 면접 보러 오라는 얘기가 없어 물어봤더니, 3억을 내고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고 말해 접었다”고 했다. 

이후로 서울에 있는 한 교회에서도 추천이 들어왔다. 이 경우도 3억을 주고 담임 목사가 되면, 4억5천만원짜리 아파트를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이 자리를 추천해 준 목사는 “‘아파트 한 채 산다고 생각하라’며 매우 쉽게 자리를 추천했다”고 했다. 

이 목사는 돈도 없었지만 그렇게는 청빙 받아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엄청난 사명감으로 시작한 사역은 아니더라도 너무 부끄럽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딸아이의 질문이 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7살짜리 했던 말은, "아빠, 교회는 왜 이렇게 소리만 질러요?" 였다. 교회의 소란스러움은 어린 아이의 눈에도 이상하게만 비춰졌던 것인데, 나는 다시 묻고 싶다. 그 소란함은 누가 만들었을까. 
 


주요기사
이슈포토
  • "민경욱, 참관인에게서 투표용지 받았다"
  • 전광훈, 보석 석방되자마자 다시 꺼내든 ‘세계기독청’
  • [인분교회] 합숙소 겹쳐서 앉아서 잤다
  • 김명진 목사 옹호 나선 '인분교회' 교인
  • 경향신문에 대한 취재 거부운동이 필요할 수 있다
  • 부천 신중동 사전투표자 1만8210명, 그 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