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교총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차별금지법안과 궤 같이하는 과잉 입법”
시민사회단체들 “정부·국회, 혐오 선동 세력 눈치 보지 말아야”

한국한부모연합,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가족구성권연구소는 16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괄할 수 있도록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촉구했다. (사진=평화나무)
한국한부모연합,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가족구성권연구소는 16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괄할 수 있도록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촉구했다. (사진=평화나무)

[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정춘숙 의원이 지난해 대표발의한 ‘건강가정기본법 일부개정안’이 해를 넘겨서도 보수 개신교계와 반동성애 진영의 막무가내식 반대에 시달리고 있다. 그야말로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이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법 개정을 통해 건강한 가정을 해체하고, ‘동성애 합법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인권종합계획 수립 등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는 고비 때마다 온갖 가짜뉴스와 악의적 왜곡을 동원해 가로막는 한국교회에게 시민사회단체들은 한숨을 넘어 한탄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가 선교 초기 교육, 의료 분야 발전이나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는 이제 말을 꺼내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건강가정기본법 일부개정안’ 저지를 위해 보수 개신교계와 반동성애 진영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서고 있다.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소강석, 이철, 장종현 목사)은 지난 15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건강가정기본법 일부개정안’이 건강한 혼인과 가족제도를 해체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회 여성가족위에 발의되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은 차별금지법안과 그 궤를 같이하는 과잉 입법의 대표적 예이며,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폐기된 낙태죄의 대안 입법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입법 나태의 예”라는 것이다.

‘동성애 합법화’를 우려한다는 주장도 여전했다. 또 여성가족부(정영애 장관)가 지난 2일 발표한 ‘2021년 핵심 추진과제’도 걸고 넘어졌다. 여성가족부는 다양한 가족에 차별 해소와 함께 촘촘한 돌봄 지원을 위한 방안 중에 하나로 가족 유형이 다양화된 환경을 반영하고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혼인·혈연·입양에 기초한 가족 개념 삭제하고, 비혼이나 동거 등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한교총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은 ‘가족’의 정의규정을 의도적으로 삭제함으로써 동성혼을 합법화하려는 의도가 보이기에 더욱 심각하다”며 “개정안 제2조 ‘누구든지 가족의 형태를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은 전통적 가족개념을 해체하고 사실혼, 동성혼을 헌법상의 양성혼과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열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저지를 위해 출범한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제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이하 진평연)’도 빠지지 않았다. 진평연도 지난 3일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이 “동성결합 및 동성결혼 합법화의 문호를 열어 강력히 반대한다”고 했다.

진평연은 “동성결합과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근거가 되는 개정안과, 개정안을 뒷받침하는 여성가족부의 건강가정기본정책을 강력히 반대한다”며 “개정안은 즉각 철회되어야 할 것이며, 만약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정을 계속 추진한다면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다양한 가족이 평등한 삶 보장받는 제도적 장치 필요”

시민사회단체들은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괄할 수 있도록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지난 9일 미혼·한부모 가족 복지 시설인 애란원을 방문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정상적 엄마 많지 않아” 발언에 대한 사과도 요구했다.

한국한부모연합,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가족구성권연구소는 16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양한 가족을 포괄하는 가족정책이 필요하다. 국회는 건강가정기본법 전면개정에 앞장서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1인 가구, 비혼, 동거가구 등이 급증하면서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괄하지 못하고 차별적 의미가 담긴 ‘건강가정’이라는 용어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또 ‘가족’의 정의도 법률혼이나 혈연 중심의 소위 ‘정상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 “‘건강가족기본법’은 이제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명칭을 바꿈으로써 가족 전반을 포괄하는 법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도 건강가족기본법이 공포된 지난 2004년에 “‘건강가정’이라는 법률명은 전형적 형태 외의 가족을 건강하지 않은 가정으로 보는 것이고, 법률상 정의에 해당하지 않는 가족·가정 형태에 대한 차별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수정을 권고한 바 있다.

가족의 개념,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5월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66.3%는 ‘혼인·혈연에 무관하게 생계와 주거를 공유할 경우 가족으로 인정한다’에 동의했다. 가족의 의미가 혼인·혈연중심에서 생계주거공동체 또는 정서적 유대가 있는 친밀한 관계 등으로 확장된 것이다. 또 ‘사실혼, 비혼 동거 등 법률혼 이외의 혼인에 대한 차별 폐지’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63.4%가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154만 가구의 한부모 가족을 비롯한 다양한 가족이 평등한 삶을 보장받고 기본적인 생활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때”라며 “비혼, 1인 가구, 노년기 가족 등 가족구성원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지역사회의 사회적 돌봄, 위기·취약에 대한 사회적 안정망 구축, 가족과 개인의 삶을 지원할 수 있는 가족정책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더욱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으며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보수 개신교계와 반동성애 진영에 대한 뼈있는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이들은 “‘건강가족기본법’ 개정을 가족형태의 변화에 따른 가족정책의 변화의 필요성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동성결혼 합법화’ 시도라고 혐오를 선동하는 세력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는 이러한 혐오선동을 여론이라고 눈치 보면서 제대로 된 행보를 하지 못하고 있다. 가족다양성과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공격하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가족정책의 방향을 제대로 세울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기자회견에서 연대발언에 나선 김소형 연구원(가족구성권연구소)은 기존의 가족 개념이 가족 형태에 따른 편견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념적인 가족 규정으로 인해 시민들의 수많은 가족 실천은 부정당해왔다”며 “의료, 장례 등 인생의 중요한 시기마다 내 곁에 중요한 사람들이 아무런 권리 없이 배제됐다”고 했다.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담긴 “누구든지 가족의 형태를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하며, 가족구성원이 서로 존중하고 부양·양육·가사노동 등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관계를 이루어야 한다”는 내용이 단순히 명시적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연구원은 “실질적인 돌봄과 친밀성을 실천하는 다양한 관계를 지원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며 “평등을 명시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부양, 양육, 가사노동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가족문화의 변화가 함께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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