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라사의 광인

마가복음 5장 1절부터 20절을 보면, 거라사의 광인 이야기가 나온다. (같은 내용이 마태, 누가복음에도 나오는데 길이 면에서 마태는 7절, 누가는 14절로 대단히 단출하다) 이보다 앞서 마가복음은 뇌졸중 환자를 예수님이 고칠 때 ‘네 죄가 용서받았다’ 라고 말했다. ‘내가 너를 고쳤다’ 또는 ‘네가 너를 용서한다’가 아니다. 이를 신학적 용어로 신적 수동태라고 한다. 치유의 주체가 아니라 아픈 사람이 낳은 것을 강조한다. 그 사람이 용서받고 죄가 낳은 것인데 이는 하나님이 그 자리에 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마가복음은 아픈 사람들을 고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단순히 병 걸린 것 때문에 고통받았고 이를 치유하는 것에 천착해서는 안된다. 이 문제에 사회구조적인 바탕은 없는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이곳은 바다 건너편 거라사라는 지역이다. ‘악한 귀신’이 들린 사람이 있다. 마가복음 1장에서 똑같이 등장한 ‘더러운 영’을 가진 이는 안식일 회당 질서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그와 무관하다. 이 차이가 왜 중요할까? 유대교 회당의 안식일 질서는 당시 가난 등 불우한 처지인 사람들을 억압했듯 거라사에서도 그런 불이익과 차별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냥 미쳤다고만 볼 수 없었던 남자

센 귀신이 들어간 그 남자는 요컨대 제어가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단순히 그냥 미쳤다고만 볼 수 없었다. 그는 예수님을 알아본다. 상대가 누구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정신 분열 상태여서 옳고 그름을 구분 못 하는 그런 지경도 아니다. 쇠고랑을 끊고 소리를 질러대고 자기 몸에 상처 입히는 걸 보니 오늘날에서는 조울증 판단을 받을 법하다. 그가 사는 공간이 무덤 즉 죽음의 공간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그는 홀로 있는데 마을 사람들하고 어울릴 수가 없는 것이다. 가끔 막 화가 나고 정신이 막 감정이 끓어오를 때는 너무 세니까 자기 몸 상하게 한다. 쇠고랑과 쇠사슬도 끊었다. 쇠고랑과 쇠사슬은 누가 채웠을까? 동네사람이었다. 그를 통제할 방법이 이것 말고 없었다.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군대’라고 했다. 아마 로마 군단급 4000~6000명 규모의 부대였을 것이다. 거라사에 로마군이 진주했다. 당시 로마는 제국 전역을 다스리기 위해 25개 군단을 뒀다. 이 중 한 군단인 제10군단이라고 하는 군단이 주로 예루살렘 유대 다음에 갈릴리를 관장했다. 원래 주둔지는 시리아인데 거라사에도 일부 부대가 자리한 것 같다. 왜 군대를 보내는가? 반란을 막기 위해서다.

거라사는 광주였다

예수님 태어날 때 영아살해를 지시한 헤롯왕의 사후 팔레스타인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갈릴리도 그랬다. AD 6년 갈릴리의 유다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 일으키는 사람을 전부 제압하면서 로마는 무려 2000명을 십자가형에 처한다. 그리고 군대를 주둔시킨다. 그렇다면 주둔지 백성을 아래로 보고 반란을 꿈꾸지 못하게 공포를 조장하고 힘을 과시했을 것이다. 거라서는 갈릴리 호수 동쪽에 있다. 여기는 바벨론 아시리아 이집트 문명의 교차 지점이다. 페니키아 슈타이트 문명과도 겹친다. 대단히 중요한 요충지이고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이 크고 화려하게 지었다. 그리고 68년부터 72년까지 있었던 유대 로마 전쟁에서 로마에 넘어간다.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도 나와 있다. 마을을 공습한 후에 미처 피하지 못한 1000여 명의 청년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가족들을 포로로 잡고 또한 군사들에게 재물을 약탈케 한 기록도 있다. 이런 일을 마가복음서가 보도했다. 그렇다면 거라사 이 남자는 원래 멀쩡한 사람이었는데 엄청난 전쟁과 학살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굴 안 무덤으로 도망치고 이 와중에 미쳐버렸을 수 있다. 트라우마이다.

몸에서 로마군의 악한 영을 끌어내 돼지에게로

그래서 이 남자에 틈탄 나쁜 영은 자신을 군대라고 했고 예수님은 이 귀신을 내쫓았다. 그의 안에 틈탄 영은 자신을 몰아내지 말라고 빌고 있었지만 결국 돼지 떼에 옮겨갔다. 사실 돼지는 유대인에게는 부정한 존재였고 먹지조차 않는다. 그러니까 부정한 것이 부정한 것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돼지는 로마 군인의 식량 또 로마가 믿는 신에 제사할 때 쓰이는 제물 감이었다. 로마에 대한 노골적인 정감이 마가복음에 서려 있다. 게다가 로마 1군단의 깃발에는 멧돼지가 그려져 있다. 예수님은 청년을 이렇게 만든 로마 군단의 영을 돼지와 함께 저 악한 것과 함께 그냥 바다에 처넣어 버린 것이다. (참고로 마태복음은 ‘물속’, 누가복음은 ‘호수’라고 했다.) 이 서사는 로마 제국이 점령했던 10개 도시 이곳에 제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소식이 전파됐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는 아니지만 치유하고 새 삶을 누리는 역사가 주변으로 확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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