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벙커1교회 설립자인 김어준 총수의 모친상이
지난 10일부터 3일간의 일정으로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순조롭게 치러졌습니다.
빈소 표정 보고 오시죠.
자료화면
[김어준의 뉴스공장 ‘김어준 생각’ 2020.7.20]
30여 년 전 대학을 낙방한 후에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근 채 울고 있을 때
모친은 그 문을 뜯고 들어와서 위로 대신에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까지 대학이 뭐라고 내가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뜯겨나간 문짝을 보며 잠시 멍했던 저는
빵 터졌습니다.
고3 때도 도시락도 안 싸줬으면서
뭘 그렇게 키웠냐는 제 대꾸에
이번에는 모친이 빵 터졌습니다.
그건 맞다며
제 삶에서 청승과 자기 연민은 그날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는 한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고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제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은
제가 잘 난 게 아니라
온전히 모친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엄마! 안녕!
[장례식장 스케치 & 인터뷰]
김등모 대전영락교회 담임목사
오늘 대전에서 올라오면서
우리 권사님 생전의 모습을 생각해봤습니다.
항상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시면서
본인은 병마와 싸우며 힘드시지만 내색하지 않고
옆에 사람에게 힘들게 않으시고
뵐 때마다 손을 꼭 잡으시고
“목사님 감사해요”
제가 40여 년 목회하면서
가장 진심 어린 인사를 받았다면
우리 이복임 권사님의
따뜻한 인사였어요.
바쁜 중에도 듣기로는 엄마의 일이라면
열일을 제치고 달려오는
아드님의 그 고귀한 효도를
건강하셔서 더 자유롭게 마음껏 받아 누리셨더라면
이말임 전도사(김어준 총수 이모)
직접 체험한 체험 신앙이고
길거리에서 나물 파는 분이 계시면
꼭 늦게 가서 시들시들해진 나물을 사 오는데
왜 그러시냐 물으면
그분들이 그걸 팔아야 집에 가지 않겠느냐고
신앙생활을 하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컸죠.
또 우리가
남대문, 동대문에 잘 놀러 다녔는데
한 번은 지하철 타러 가던 중에
도움이 필요한 할아버지를 봤어요.
우리가 시장에서 쓸 돈을 할아버지께 드리면서
할아버지가 집에 가실 수 있겠다 싶어서
(김어준 총수는) 학생 때 신앙생활을
무척 열심히 했고, 친구들 전도도 많이 했어요.
자기 말로는 무교라고 하지만
어릴 때 본인이 체험한 하나님을 과연 부인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