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최숙현 선수와 엘리트 중심 스포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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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최숙현 선수와 엘리트 중심 스포츠 문화
  • 평화나무
  • 승인 2020.07.2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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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민정 뉴스캐스터
심민정 뉴스캐스터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줘”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 최숙현 선수. 하나만 해내기도 어렵다는 수영, 마라톤, 사이클까지 다 해내는 강한 선수였지만 상습적인 폭력과 모두가 침묵하는 현실은 살아서 견딜 수 없을 만큼 가혹했다.

결국 최 선수가 떠나고 나서야 감독, 팀 닥터, 선배에 이르는 조직적인 가혹행위 사실이 드러났고 도움을 구하던 최 선수의 외로운 싸움도 이 세상에 밝혀졌다.

故 최숙현 선수 훈련일지를 살펴보면 체중조절에 실패했다고 사흘 동안 굶게 하고, 신발과 손바닥으로 뺨을 맞는 일은 일상이었다.

회식 자리에서 탄산음료를 시켰다는 이유로 새벽 1시까지 빵 20 만 원어치를 강제로 먹고 토하는 고문도 당했다. 팀 닥터라고 부르는 사람 최 선수 심리 상담도 맡아 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 선수를)극한 상황까지 몰고 가서 자살하게 만들 수 있다’ 는 말을 하고 다닌 것으로 밝혀졌다.

선배들은 남자부 선수들을 시켜서 최 선수를 폭행하도록 지시하고, 감독은 폭행에 가담하거나 묵인했다. 이는 밝혀진 몇몇 사건일 뿐이었다. 최 선수는 중학교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계속 정신적 신체적 폭력에 시달리며 훈련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최 선수는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든 곳을 찾아다녔다. 경주시, 경북체육회, 철인3종경기협회, 경찰, 인권위, 대한체육회에까지 모두 여섯 곳에 폭행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구했다. 그러나 경북체육회와 경주시는 합의를 권하며 사건을 무마하려는 태도를 보였고, 경찰도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함께 고소한 동료들에게 최 선수가 말한 것 외에 증언을 보태지 말라고 압박하고 가해자들은 벌금 2-30만 원 정도 받고 말 거라며 고소를 포기하게 부추겼다.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는 피해 입증 자료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되풀이하기만 했다. 적극적인 보호 조치는 없었다. 철인3종경기협회는 감독에게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사실이 아니라는 감독의 말에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최 선수는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디서도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여섯 곳에서 모두 외면당한 최숙현 선수가 느꼈을 무력감은 어느 정도였을까. 차마 가늠할 수가 없다.

최 선수의 죽음 이후, 동료들이 용기 내 추가 피해를 밝히고 있다. 선수들은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지원금이 나오는 것도 주장 통장으로 입금해야 했다며 금품갈취에 대한 내용도 증언했다. 또 팀 닥터라고 불리던 사람이 치료를 핑계로 선수들의 몸을 만졌다는 성추행 의혹도 제기했다. 많은 의혹을 받는 이 팀 닥터는 수사가 시작되고 보니 의료 관련 면허도 없는 사람이었다. 가족들과 선수들은 모두 의사라고 알고 있었다. 

운동선수들의 가혹행위, 인권침해는 왜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을까?

첫 번째 문제는 우리나라 스포츠문화가 몇몇 엘리트 선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엘리트 문화라는 것이다. 이 시스템 속에서는 감독이 왕이다. 감독이 키워주는 몇 명만 유리한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훈련도 기회를 얻은 몇 명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실력으로든 다른 것으로든 감독의 눈에 들어야만 훈련도, 출전 기회도 얻게 되는 것이다.

감독에게 가혹행위나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신고해봤자 제대로 된 조치를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러니 선수 생명을 걸고 감독을 신고 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 큰 용기를 내서 신고한다고 하더라도 제 식구 감싸는 식의 조치뿐인 현실은 피해자를 더 벼랑 끝으로 내몬다. 이런 맥락에서 대한체육회는 내부 기구가 아닌 제3의 감시 기구를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선수들이 운동 말고 다른 길을 고려하기 힘든 시스템도 문제이다.

2006년에 교육부가 발표한 통계를 살펴보면 고등학교 운동선수 중 약 98% 정도가 교과 성적의 하위 20% 정도 성적을 가지고 있다. 꽤 오래된 자료지만 그동안 학생 선수들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학교에서 체육특기생으로 분류가 된 학생 선수들은 학교 교과과정이 아니라 시합 일정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정규 교과과정에서도 열외가 되어서 학습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여전한 것이다. 기본적인 학과 공부를 포기하고 운동을 해 온 학생 선수들은 운동 말고 다른 길을 선택하기도 쉽지 않다.

어려운 관문을 뚫고 체육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한다고 해도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대한체육회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2년 7월까지 대학을 졸업한 선수 중 약 1/4만 취업에 성공했다. 학습권도 보장해주지 않으며 운동만 시킨 선수들의 3/4은 어떤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학습권은 다른 권리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권리여서 ‘권리를 위한 권리’라고 부른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 권리기 때문에 선택 사항도 아니다. 그러나 운동선수들의 학습권보장을 위한 제도는 미비하다. 학습권보장을 위한 대표적인 제도는 ‘최저학력제’가 있다. 이 제도는 ‘최저학력에 도달하지 못하는 학생은 대회 출전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약 7년 전부터 시행돼 왔다. 그러나 최저학력에 도달하지 못해도 교장 선생님 재량에 따라 출전을 시킬 수가 있어서 학교 현장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운동선수들의 입시 제도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체육특기생의 대학진학에 내신 성적이나 수능 성적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입시 성적만 좋으면 진학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체육특기자도 16개의 필수과목을 이수해야 하고 정해진 점수 이상을 받아야하는데, 이 점수는 합격을 위한 점수가 아니라 대학 지원 자격을 얻는 점수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연세대와 고려대가 학습권을 보장해야한다는 취지로 체육특기자 최저학력 기준을 구체적으로 합의했다. 체육특기생들에게 영향력 있는 대학이니만큼 효과가 있기를 바라지만, 중고등 운동선수들이 학습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기타 상황들도 함께 개선되어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문경란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장은 우리나라의 엘리트 선수 중심 스포츠 체계를 바꿔야만 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몇몇 엘리트 선수를 키우기 위해 작동하는 우리나라의 스포츠 체계를 일반 학생들의 스포츠 참여를 활성화 하는 쪽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년체전을 학생 스포츠 축전으로 확대 개편해서 학교 운동부뿐 아니라 청소년 운동 클럽도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문 위원장은 현재 전국체전에 출전하는 고등부를 학생 스포츠 축전에 참가하도록 하고, 초등부는 전국이 아닌 권역별로 축제처럼 만들어서 학생 선수들에게 경쟁보다 스포츠의 다른 좋은 가치를 먼저 배우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의 균형 발전을 이루는 것이 결국 스포츠인이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을 더 넓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최숙현 선수가 말했던 ‘그 사람들’에 직접적인 폭력에 가담한 사람만 포함되지는 않을 것이다. 운동선수들의 학습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학교, 1등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는 사회, 운동 선수들 사이의 군기와 폭력을 묵인하는 분위기까지. 최숙현 선수의 마지막 말은 이 문제와 관련해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다시는 같은 벌어지지 않도록 ‘그 사람들’인 우리 모두가 애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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