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진 아주경제 사회부장

 

“내 목을 높은 곳에 내걸어라.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프랑스 대혁명을 이끌었고 제1공화국을 수립하는데 지대한 공로를 남긴 조르주 당통이 단두대에 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로베스피에르, 장 폴 마라와 함께 프랑스 혁명을 이끈 3대 거두였던 그는 어처구니 없게도 혁명 동지이자 절친이었던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사형에 처해진다.    

로베스피에르가 당통에게 뒤집어 씌운 죄는 뇌물죄와 반역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적을 제거하는데 흔히 쓰인 죄목이었다. 당통이 정말로 뇌물을 받았는지. 혹은 반역을 저질렀는지는 아직도 논쟁거리다. 
혁명재판소를 만들어 공포정치의 단초를 마련했던 그가 잘못을 깨닫고 제1공화국의 사법제도를 바꾸려고 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로베스피에르가 누명을 씌워 죽였다는 설도 있고. 반역죄는 아니지만 뇌물죄는 맞다는 반론도 있으며, 그저 ‘조금 시혜적인 거래’에 불과했던 것을 뇌물로 과장해 죽였다는 설도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조금씩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아무튼 당통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데에는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당통이 죽은 것이 1794년이니 벌써 200년도 더 된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죽음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전적으로 로베스피에르의 탓이다. 당시 혁명재판소는 공안위원회 통제하에 있었고 로베스피에르는 공안위원회의 수장이었다.

당시 혁명재판소는 수사권과 체포권, 기소권은 물론 재판권까지 모두 가지고 있었다. 판사가 검사이자 수사관이었고, 피의자를 체포하는 경찰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 로베스피에르의 말 한마디면 누구든지 ‘혁명의 적’으로 몰려 체포돼 법정에 서야 했고, 감옥에 가거나 죽임을 당할 수 있었다. 제1공화국의 지도자였던 당통도 똑같았다.    

당통이 죽은 뒤 권력을 한 손에 쥔 로베스피에르는 독재자가 된다. 하지만 얼마 못가 쿠데타가 일어났고 그 역시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진다. 고등학교 세계사 시험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테르미도르 반동’이다 
로베스피에르의 죽음 이후, 프랑스는 왕정이 복고됐다가 다시 혁명이 일어나고 새로운 공화국이 수립됐다가 나폴레옹의 황제정이 들어서는 혼란기를 맞는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을 맞는다. 수사와 기소, 재판권을 한 사람의 손에 쥐어준 사법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 
 
숱한 희생을 바탕으로 프랑스는 사법제도를 새로 만든다. 그 기본은 수사와 기소, 재판을 각각 다른 기관에 부여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오늘 날 사법경찰과 검사, 판사의 분리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오늘 날 프랑스 사법제도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검사의 권한이 매우 작다는 점인데, 우리 시각에서 보자면 검사라기 보다 ‘기소 담당관’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일단 수사권이 없다. 기소권은 있는데, 기소를 받아줄 것인지는 ‘경찰법원 판사’가 결정한다. 기소를 하는 과정에서 수사지휘권 비슷해 보이는 권한이 있기는 한데, 사법경찰이 그에 따를 의무는 없다. 수사관은 자신이 붙잡아온 범인을 기소하기 위해 스스로 보강수사를 할 뿐이다.  
게다가 ‘사인소추’(개인이 범죄자를 법정에 세우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예비판사가 받아들여야 하지만 재산범죄나 명예와 관련된 범죄 같은 것은 사인이 소추를 제기할 수도 있다.

검찰총장이라는 자리가 있기는 한데, 우리나라의 윤석열 검찰총장이 앉아있는 자리와는 크게 다르다. 대검찰청의 검사들을 지휘할 수는 있는데, 30여곳에 달하는 고등검찰청을 비롯해 지방의 검사들을 지휘할 권한은 없다. (우리나라에 6개의 고등검찰청과 25개의 지방검찰청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프랑스 고검은 우리나라의 지검과 비슷한 지위로 보인다.) 

대검찰청도 독립기관이 아니라 파기법원(대법원 : Cour de cassation)에 속한 부처의 일종으로 정식명칭은 ‘파기법원 검사처’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러니까 검찰총장(Procureur general)의 정확한 지위는 ‘파기법원 검사부장’ 쯤다. 대검 내에서 소속 검사들의 지휘권은 있지만 딱 거기까지. 각 고등검찰청에 대한 지휘통제권은 없다.  

각 지방의 고등검찰청도 각 고등법원의 소속으로 역시 정식명칭은 ‘고등법원 검사부’다. 역시  고검 검사들을 지휘통제하고 상소사건의 공소유지를 맡지만 지방검찰청(Parquet)을 지휘통제하지는 못한다. 검사에 대한 지휘권은 법무부 장관이 갖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 검찰총장, 즉 프랑스 파기법원 검사처장의 임명권은 내각이 갖지만 그 전에 국가평의회의(Conseil d’Etat) 심의를 거쳐야 한다. 
고검장이나 검사장은 최고사법평의회 (Conseil supérieur de la Magistrature)에서 뽑은 사람을 법무부 장관이 임명한다. 최고사법평의회는 일반시민과 변호사 등으로 구성되는데, 의회에서 선출한다. 고검장의 정식 명칭도 검찰총장과 같이 ‘Procureur general’다.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면 지방사법평의회가 있는데, 각 지방의 검사를 선임하는 역할을 맡는다. 역시 일반시민과 변호사로 구성이 되는데, 각 지방의회가 선출권을 갖는다. 

프랑스는 법조계는 사법관(Magistrat)과 변호사, 이원제로 운영된다. ‘사법관’은 검사와 판사를 말하며 국립 사법관양성학교 졸업자 중에서 시험을 치러 뽑고, 변호사는 일반 대학의 로스쿨 졸업자 중에서 뽑는다. 그러니까 프랑스 변호사는 법률 전문가일 뿐 일반시민과 전혀 다를 게 없다.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선출한 일반시민과 변호사들로 사법평의회를 구성하고, 그 사법평의회가 검사와 판사를 뽑는 만큼 판검사들의 임명권은 시민에게 있다. 당연히 판·검사들은 시민들에게 충성할 뿐 상급법원·검찰청에 충성하지 않는다.

검찰총장의 말 한마디에 압수수색에 착수하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고, 검찰총장이 공금인 특별활동비를 주머니 쌈짓돈처럼 쓸 수도 없다. 검찰총장이 지검장을 불러서 보고를 받을 일도 없고, 수사와 기소, 공소유지에 감놔라 배놔라 할 수도 없다. 

최근 프랑스에서도 법원에서 분리된 ‘국가 검찰총장’을 만들자는 주장이 나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게 생긴다고 해도 대한민국의 윤석열 검창총장과 같은 사람은 나올 수 없다. 검사들에게 수사권이 없으니 검찰총장에게 일선 검사들을 지휘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고 해도  별 볼 일은 없다. 

당연히 특수부 검사들이 목에 힘주고 다닐 일도 없고, 귀족검사 운운하는 이야기도 나올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수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특수통’ 출신으로 ‘조직에 충성’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은 프랑스식 검찰제도를 무척 사랑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는 새로 부임하는 부장검사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하면서 프랑스를 그렇게 애타게 찾았다고 한다. 

‘공화국 검찰’이라고 추켜세우며 마치 이상형이라고 되는 것처럼 찬양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강한 검찰을 추구하는 ‘검찰주의자’로 알려진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특수통 검사로 살아있는 권력을 때려잡는 것이 취미인 윤 총장이 약해 빠진 프랑스 (제5)공화국의 별 볼일 없는 검찰총장(대법원 검사처장)을 정말 그리도 애타게 원하시는지는 몰랐다.

장용진 아주경제 사회부장 

 

#이 글은 쩌날리즘 2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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