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

#1. SBS는 파워FM과 러브FM 등 두 개의 라디오 방송을 운용하고 있다. 서울 관악산 송신소에서 두 개의 전파를 송출한다. 그런데 지난해 6월 2일부터 오후 4시 파워FM으로 나가던 ‘붐붐파워’를 러브FM에서도 동시 방송하고 있다. 부산 민영방송인 KNN도 황령산 송신소에서 두 개 라디오 전파를 내보내지만 ‘노래하나 얘기 둘’이라는 자체 방송을 SBS처럼 오후 4시에 동시 송출한다. 같은 프로그램을 같은 가청 권역에서 동시 송출한다는 것은 전파 낭비일 뿐이며 재허가에 영향을 미칠 사안이다. 9월 17일 자 전국언론노조SBS본부 발행 ‘SBS 노보’에 따르면 SBS 라디오 PD들은 편성 당시 “청취자의 채널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비난이예상된다”라고 우려했다. SBS는 그래서 한때 러브FM에서는 오후 6시에 재방송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도했다. 

#2. 방송통신위원회는 2019년 6월 19일 KBS, MBC, CBS에 과태료 2700만 원과 과징금 4509만 원을 부과했다. 이들은 AM 라디오 전파를 송출하는 방송이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발행 ‘방송기술저널’이 2019년 7월 9일 자 사설에서 밝힌 대로 AM은 “청취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고부가가치 자산’인 주파수를 반납하는 것은 미래에 큰 손실이다. 그래서 ‘억지춘양’격으로 AM을 내보낸다. 그런데 송신기 연한이 다가온다. 교체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게 방송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허가된 것보다 현저히 낮은 출력으로 방송했다. 끝내 적발돼 무거운 과태료와 과징금을 부과받았지만 그게 차라리 더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3. 경기지역 민영 라디오인 경기방송은 지난해 3월 30일을 끝으로 방송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지상파 방송 주파수 포기는 전례 없는 일이다.

실로 라디오의 위기이다. ‘지상파라디오진흥자문위원회’가 작성해 7월 발표한 ‘라디오 방송 진흥을 위한 정책건의서’에 따르면 라디오 매출액과 광고액은 갈수록 줄고 있다. 우선 매출액. 2010년 3373억원이던 것이 2019년 2933억 원으로 –13%가 됐다. 라디오 방송 광고수익도 2010년 2541억 원에서 2019년 1608억원으로 36.7% 감소했다. 같은 기간 49개 방송사 중 35개사의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KBS와 EBS 등 23개사는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했고, CBS등 6개사는 흑자 규모가 감소했으며, TBN(지역 교통방송) 등 6개사는 적자 규모가 증가했다.

다양한 방송통신서비스의 등장으로 전통적 방식의 라디오 이용률은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2019년 주 5일 이상 매체 이용 비율은 스마트폰(87.3%)이가장 높고, TV 수상기(75.0%), PC/노트북(25.7%), 라디오(8.0%) 순이다. 그래서 라디오방송을 컴퓨터,모바일 등 데이터로 청취하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상파를 통해 수신하는 라디오이용 빈도는 2010년 16.2%였던 것이 2019년 절반 규모인 8%로 줄었다. 주간 라디오 청취율은 2010년30.7%에서 2019년 21.3%로 감소 추세를 보인다.

현재 3233명, MC 또는 작가 등 겸업 인력까지 포함하면 4644명이 라디오 산업에 종사 중인데 이들의 일자리가 지속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건의서는 지상파 방송의 일종인 라디오가 TV 수준의 심의 기준을 적용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규제 완화가 답일까? 라디오 방송 심의 강도를 하향 조정하더라도 기계적 중립의 기조를 포기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인사가 10분 이야기하면 국민의힘 인사에게도 10분을 할애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대중은 팟캐스트 유튜브를 통해 ‘탈 심의’ 즉 편파 방송을 경험했고 만끽하고 있다.

게다가 플랫폼 환경은 지상파의 고립감을 강화하고 있다. 유튜브는 현재 현존하는 모든 미디어 콘텐츠를 쓸어 담고 있는 형국이다. 전 세계를 망라하는 초 권역에 숨소리까지 들리는 고음질의 데이터 수신은 청취권역과 음질이 제한된 지상파 수신을 더욱더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다. 기성 지상파는 선택의 폭이 매우좁다. 한국에는 49개 방송사, 229개 매체가 라디오 서비스 중이다. 229개의 방송이 24시간 각기 다른 방송을 내보내는 게 아니다. (예컨대 KBS는 국내에서 1, 2, 3라디오, 1,2FM, 한민족방송 등 6개 라디오를 운용하고 있다. 이중 1라디오는 1개 중앙국과 18개 지역국에 83개 송중계소가 일부 자체 방송을 빼고 거의 같은 내용의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요컨대 주로 서울에 기반을 둔 37개만이 24시간 독자 제작 방송을 내보내고 있고 나머지 방송이 이를 거의 재전송하고 있다. 이들 방송의 운영 주체도 국·공영방송,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종교단체, 소수 민간기업 컨소시엄에 한정돼 있다.

설립은 PP로 불리는 채널사용사업자, 일명 ‘케이블’보다 어렵다. 신생 사업자 출현은 불가능한 형편이다. 건의서도 “현행법상 라디오는 (...) 대부분 기존 방송사업자가 방송구역 확장을 위해 신규허가를 신청하고 방통위가 수시 검토”하는 현실을 짚었다. 게다가 중립이나 균형의 원리를 방패막이 삼아 시시비비의 역할을 도외시하는 ‘속 터지는’ 시사방송, 올드 팝·7080세대 가요 등 ‘추억팔이’로 도배한 음악방송, 내비게이션의 도움만으로 충분한 시대임에도 동네마다 고을마다 자리한 교통방송, 사회 공동체 내 도의심 윤리의식 향상보다는 자기 종교‘세 불리기’에 혈안이 된 종교방송, ‘서울방송 중계소’로 전락한 지역방송이 주파수를 과점하는 상황에서 다양하고 창의적인 라디오 방송환경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기존 사업자 중심 사고의 틀이 혁파됐고, 인터넷 문명으로 인해 가청권역의 금이 사라진 세상에서 229개 아니 그 이상의 각기 다른 라디오가 생기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아니면 국가가 주파수를 확보해 역량있는 오디오 창작자들의 활동 공간을 제공하는 ‘퍼블릭 액서스 방송’은 불가능할까?

대안은 간단하다. 기성 라디오 방송의 주파수 기득권 포기이다. 1997년 정부가 지상파디지털방송추진협의회를 발족하면서 라디오도 디지털화에 시동을 걸었다. DMB와 한원리인 DAB가 우선 대안으로 꼽혔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시점에서 라디오보다 지상파DMB 방송의 사양화 속도가 더 빠르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동 수신 가능성이 거의 유일한 강점이었던 지상파DMB는 운전 중 동영상 시청 금지에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나 핵심은 거대 지상파·종합편성·스포츠 채널 방송 프로그램에 의존한 것이었다. wavve 등 N스크린 애플리케이션 등 고도화된 플랫폼이 시장에 나왔을 때 즉각 도태될 운명을 자초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HD라디오가 대두되고 있다. 이 서비스는 별도 주파수, 별도 수신기가 필요하지 않다. 기존 무선망을 이용하되 (8월 말로 7000만명을 넘긴) 이동통신 가입자의 휴대전화기(스마트폰)가 수신기가 되는 것이다. 원리는 스마트폰에 기본 장착된FM 라디오 수신 칩이 가동된 환경에서 데이터망이 결합해 고음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데이터망이 연계되니 방송사에서 제공하는 방송 정보와 교통, 뉴스 등 실시간 정보도 송신할 수 있다. 그러나 HD라디오는 지상파 주파수를 확보한기존 매체에 최적화됐다. 새 사업자를 위한 문호는 없는 셈이다. 기술만있고 콘텐츠 확대의 전략 전술이 없는 디지털화는 저물어가는 지상파DMB의 길을 답습할 뿐이다.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방송은 자본과 인력이 집약됐던 ‘장치산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라는 표현이 익숙하듯 장비 크기부터 방송 개설 절차까지 모든 것이 ‘슬림’하다. 비디오 영역이 그러한데 오디오는 오죽하겠는가? 팟캐스트 스타가 지상파 DJ로 활약하는 일은 생경하지 않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방송 중 TV는 PP(케이블·위성·IPTV)까지 확장했지만, 라디오는 여전히 지상파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가용 가능한 주파수가권역당 30여 개에 불과한 현실에서 창의적이고 다양한 방송은 불가능하다. 라디오를 개방해야 한다. 주파수를 회수하고 망 중립성 기반 위에 모든 라디오 방송을 데이터로 송출하게 해야 한다. 이로써 신규사업자의 진입을 보장해야 한다.

규제에 찌든 소수의 뻔한 라디오 방송으로서 어떻게 ‘진흥’이 가능하겠는가? 보장받는 안정적 광고 수익구조는 또 얼마나 오래가겠는가? 디지털화의 전제는 ‘개방’이다. 라디오 진흥을 위한 구상은 기존사업자의 이해관계마저 백지상태로 놓은 채 새로 설정해야 한다. 229개라디오 채널이 각기 다른 방송을 내고 팟캐스터 등 1인 미디어 창작자가 뜻만 품으면 방송할 수 있는 환경 즉 다양성과 창작성이 생동하는 구조 속에 라디오의 활로가 있다.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 전 라디오PD
쩌날리즘 2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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