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나무 권지연 기자]

“2010년 시행된 신문, 잡지, 웹, 모바일 등에 대한 공사는 광고시장의 오랜 염원에 부응하는 획기적인 거보였습니다. 특히 신문부수 공사를 통해 매체 시장의 개선은 한국 언론사에 크나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한국ABC협회 홈페이지에 적힌 이성준 회장의 인사말의 일부다. 

그러나 이 같은 야심찬 인사말은 최근 불거진 ABC협회의 부수 조작 의혹으로 참으로 무색해지고 말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ABC협회에 대한 신뢰도는 그동안에도 저조했고, 조선일보 부수 조작과 관련한 내부 고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부 광고를 ABC협회에 의존해 부수 즉, 양으로 결정하기보다 질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전망이다. 

 

광고주 요구로 도입된 ABC제도, 
정작 매체에 기울어진 불공적·특혜 지적 

ABC란 Audit Bureau of Certification(신문ㆍ잡지 ㆍ 웹사이트 등 매체량 공사기구)의 약자로 신문, 잡지, 뉴미디어 등 매체사에서 자발적으로 제출한 부수와 수용자 크기를 객관적인 방법으로 실사, 확인해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매체의 경영합리화에 도움을 주고 광고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적 아래 40여개국에서 매체, 광고환경에 맞는 기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ABC 제도를 처음 도입한 건, 1914년 미국이었다. 
 매체와 광고주, 광고회사 3사로 구성된 비영리조직으로 제3자인 협회가 광고비용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 매체력을 부수를 통해 인증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신문사 등 1578개 회원사를 두고 있어며, 회비수익은 16억 규모다. 여기에 1995년 방송광고공사와 전경련이 총 80억원의 기금을 출연했다. 남은 기금은 40억원 규모다. 
 이사회 구성을 살펴보면, 일간지 관계자 9명(중앙지6명, 지방지2명, 경제지1명), 잡지 1명, 전문지 1명와 광고주 6명, 광고회사 5명, 협회임원 1명 총 23명으로 구성돼 있다. 얼핏 보면, 매체 관계자와 광고계 관계자가 50:50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매체에 기울어진 운영을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용학 전 ABC협회 사무국장은 언론인 출신인 이성준 회장의 사유화 문제를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이나 해외사례와 마찬가지로 ABC 제도 자체가 광고주들의 요구를 바탕으로 도입됐다. ABC 제도가 신문시장에 미친 긍정적 측면도 있겠으나, 부수 공개를 통해 광고단가를 투명하게 하고 불공정거래를 방지하겠다는 취지는 무색해질 뿐이다. 
 현재 불거진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ABC협회의 신뢰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게다가 지난 2008년에도 경향신문 단독보도를 통해 2002년과 2003년 실사 당시 조선일보 유료부수가 조작됐다는 점이 공론화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불거진 후 이듬해인 2009년 10월 도리어 정부 광보는 한국ABC협회의 발행 부수 검증에 참여한 신문과 잡지에 우선 배정하도록 개정됐다. 

 정부광고 시행에 관한 규정
국무총리훈령 제541호, 2009.10.6 일부개정
제6조②항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제1항에 따른 홍보매체를 선정하는 경우 광고를 의뢰한 정부기관 및 공공법인의 희망을 존중하여 홍보매체를 선정한다. 다만, 신문 및 잡지에 광고하는 때에는 정부광고의 효율성을 높이고 광고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한국ABC협회의 전년도 발행부수 검증에 참여한 신문 및 잡지에 정부광고를 우선 배정한다. <신설 2009.10.6.>


 

공공기관 아닌 민간에 맡긴 부수공사 ‘신뢰도 바닥’ 
 ‘양보다 질’ 따지는 정부광고 집행 기준 마련해야 

이에 따라 국내 광고를 대행하는 한국언론진흥재단도 한국ABC협회 회원사들에만 정부광고를 배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없지 않았다. 

2013년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당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유기홍 의원(민주당)은 “민간기구인 한국ABC협회의 회원사들을 정부광고 우선 배정의 대상으로 규정한 현행 총리 훈령은 협회에 대한 특혜 규정”이라며 “정부 광고 배정 매체를 한국ABC협회가 미리 제한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 광고 배정을 공공기관이 아닌 한국ABC협회 같은 민간기구가 미리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특혜라는 것이다. 유 의원은 “정부 조달 물품을 선정할 때 필요한 각종 기술인증 발급 기관들은 법령에 의해 설립되고 정부의 감독을 받는다. 예를 들어 KS마크를 인증하는 한국표준협회는 산업표준화법에 따라 설립된 산업통상자원부의 산하 기관”이라며 “그러나 이와 같은 법령의 설치 근거도 없고, 정부 감독도 직접 받지 않는 한국ABC협회가 훈령에 의해 사실상 정부 광고 배정 매체를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ABC협회의 부수 검증은 정부 광고 배정의 참고자료로 삼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한국ABC협회의 부수 검증에 참여한 신문 및 잡지에 정부광고를 ‘우선 배정한다’는 강제 규정을 ‘우선 배정할 수 있다’는 임의 규정으로 바꾸거나 이 규정을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기구에게 주어진 특혜’라는 지적을 허물기 위해서라도 ‘부수조작 의혹’은 절대 되풀이 되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신뢰성 문제는 ABC협회의 부수인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유료부수 인증을 가장 많이 받아왔다는 점, 그래서 정부 광고를 가장 많이 받아 챙기는 언론이라는 점은 항상 아이러니한 지점이었다. 

ABC협회에 대한 불신이 일파만파 거세진 상황에서 대안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을 전망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24일 성명을 통해 “ABC협회를 해체하는 수준의 개혁이나 새로운 평가지표 개발이 요구되지만, 신문사 판매국장이 대거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ABC협회 인적 구조나 그동안 역사를 볼 때 자정 노력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더이상 의미 없는 ABC협회 부수 공사 인증제는 폐지되어야 하며, 대안적인 인증기관을 통해 신문·디지털 통합지수 등 새로운 언론 영향력 평가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발행 부수나 면수 등의 외형적 크기로 평가하기보다 얼마나 공적 기능을 잘 수행하고 사회에 긍정적 역할을 담당했는지, 언론의 본령을 따져 매체에 대한 정부광고 집행 근거를 새로 마련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도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양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발상은 실패라는 것을 거듭 학습했으니 말이다. 
정부 광고를 배정하는 기준을 보도의 질로 따지겠다고 마음먹으면, 명백한 가짜뉴스 또는 악의적으로 왜곡한 보도를 남발할 경우 정부 광고에서 배제하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물론 그 ‘질적 평가’는 또 누가 할 것이며, 어떤 기준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숙제는 남는다. 그러나 ‘언론개혁’이 시대적 요구이자 화두인 시점에서 정부광고에 대한 공정한 근거 마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이성준 회장이 ABC협회 인사말에서 인상 깊은 한 대목을 다시 인용해 본다. 
“이제 협회는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되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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