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기반 새로운 SNS로 급부상‥ 평가와 전망도 제각각

민동기 고발뉴스 기자
민동기 고발뉴스 기자

 

“목소리 기반 SNS ‘클럽하우스’에 유명인들이 속속 뛰어들면서 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 한동안 이렇다 할 SNS가 새로 등장하지 않았던 데다 코로나19로 소통에 결핍을 느끼는 이들이 몰리면서 사용자가 급속도로 늘었다.”
 2월 22일 국민일보 18면에 실린 기사 가운데 일부다. 

 “요즘 ‘인싸’들로 북적인다는 ‘클럽하우스’ 대세 SNS 될까?”라는 제목이다. 
 대세가 될까? 그건 필자도 쉽게 단정하기가 어렵다. 클럽하우스에 대한 언론의 전망 역시 엇갈린다. 일단 전망을 논하기 전에 클럽하우스에 대한 소개부터 간단히 해야겠다. ‘쩌날리즘’ 구독하는 독자분들에게 생소한 개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클럽하우스는 지난해 5월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음성 기반의 소셜 앱이다. 다양한 주제의 대화방을 자유롭게 만들고 참가할 수 있다. 국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이달 초부터다.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가입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알려졌고, 일부 기업인과 유명인들이 잇따라 클럽하우스에 가입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필자 역시 그런 보도를 접하고 클럽하우스에 가입했다. 

클럽하우스의 가장 큰 특징은 오디오에 기반한 서비스란 점이다. 서비스 방식은 간단하다. 사용자가 방을 만들고 대화할 사람을 초청하면 된다. 개설된 대화방을 보고 선택해서 골라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주제는 정치부터 경제, 스포츠, 문학, 일상, 잡담까지 다양하다. 똑같이 음성에 기반한 팟캐스트가 일방적인 소통 방식이라면 클럽하우스는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게 차이점이다. 

대화방에서는 ‘발언자’(스피커) 자격을 얻어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지만,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듣기만 할 수도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기존에 가입한 참가자의 ‘초대장’을 받거나 인증을 받아야 가입할 수 있고, 아이폰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클럽하우스의 방은 스피커와 관객으로 구분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스피커는 방에서 말을 할 수 있고, 관객은 들을 수만 있다. 관객은 ‘손들기’를 통해 스피커가 될 수 있지만, 그 권한은 모더레이터(진행자)에게 있다. 처음 방을 만든 모더레이터는 누군가의 말할 권리를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은 클럽하우스를 ‘또 다른 스카이캐슬’이라고 비판했다. 

글로벌 기업인과 국내 유명인들이 잇따라 클럽하우스에 가입하면서 언론들 역시 ‘클럽하우스 열풍’을 비중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대부분 현상을 주목하고 이용자들의 반응을 소개하는 형식. 새롭게 등장했고 열풍이 불고 있지만 쉽게 전망을 쉽게 내릴 수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기사 형태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클럽하우스 열풍을 가장 ‘삐딱하게’ 보는 언론이 있다.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지난 20일 “클럽하우스는 평등하다고?···‘또 다른 스카이 캐슬’”에서 “누구나 평등하게 대화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막상 이용해보니 소수 ‘인싸(인사이더)’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라는 쪽에 방점을 찍었다. “‘잘난 사람'이 발언권을 독차지하다 보니 평범한 이용자들은 평생 청중으로 남는다”는 반응도 소개했다. 클럽하우스에서 사기를 당해도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대목도 있다. 

매일경제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클럽하우스 열풍을 소개하고 있다. 매경은 “‘머스크 보러왔다 부장님 만났다’…클럽하우스 떠나는 사람들”(2월20일)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 등 유명인과 대화할 수 있다는 초반 유명세와 달리 단순 놀이에 그친다는 부정적 평가도 나온다”며 클럽하우스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유명 인사와 대화할 수 있는 ‘발언권’을 얻기가 쉽지 않아 일방 소통에 그치는 일이 다반사다. 또 ‘얼평방(얼굴 평가방)’, ‘맞팔방’ 등은 클럽하우스의 본래 취지와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물론 “유명 인사라 해도 클럽하우스에서는 인기가 그대로 보장되지 않고, 전문가라 해도 잘난 체하는 말투로 꼰대 기질이 드러나면 곧바로 우수수 방을 나간다”(경향신문)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곳도 있다. 오마이뉴스는 클럽하우스의 긍정적인 측면을 주목하면서도 “클럽하우스에 권위적이고 차별적인 문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싸들만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차별의 시작이라는 시각도 있다”며 부정적인 측면도 언급했다. 

필자가 이렇게 클럽하우스에 대한 언론의 시각과 평가를 다양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현재 그만큼 클럽하우스를 놓고 이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클럽하우스는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대안 소셜미디어로 인식되고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그냥 ’또 다른‘ 소셜미디어가 등장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필자는 클럽하우스에 대한 언론들 평가를 보면서 한국 언론의 고질병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클럽하우스에 대한 열풍이 시작된 건 분명하지만 클럽하우스가 새로운 대안 SNS 혹은 미디어가 될 수 있을지 현재로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기존 SNS보다 좀 더 수평적인 새로운 소통의 장이 될 수 있을지도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무슨 얘기냐? 클럽하우스의 미래를 평가하고 전망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는 얘기다. 

다만 클럽하우스가 오디오를 기반으로 한 소셜미디어라는 점에서 라디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 클럽하우스 열풍이 불면서 일부 지상파 라디오 PD들이 클럽하우스에 방을 개설해 라디오 미래를 우려하며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유명인이나 정치인들 기업인들이 직접 방을 개설해 직접 현안에 대해 얘기하고, 토론을 이끄는 상황이 매일 같이 벌어진다면? 더구나 일방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유명인과 음성으로 소통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굳이 라디오를 선택할 이유가 있겠느냐 하는 것. 

물론 필자 역시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지나친 불안감을 가정해 우울한 미래를 전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최근 클럽하우스 공동창업자 겸 CEO인 폴 데이비슨(Paul Davison)이 미국의 ’비즈니스 오브 패션‘과 인터뷰에서 한 발언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폴 데이비슨은 클럽하우스가 다른 소셜미디어들과 구별되는 장점으로 △대화와 연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음성 기반이기 때문에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는 점 △클럽하우스에서 ‘좋은’, ‘찝찝하지 않은’ 시간을 가질 수 있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부분은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데이비슨의 설명은 이렇다. “다른 소셜미디어들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영상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거나, 스크롤을 올렸다가 내렸다만 한다. 그러나 클럽하우스는 참여와 만남으로만 만들어질 수 있다.” 

나름 장점인 것은 분명한데 필자는 이 같은 점들이 반드시 클럽하우스만의 ‘독보적인 장점’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새로운 대안 미디어로 부상하기엔 클럽하우스가 가진 한계도 많다. 미디어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 ‘기록과 저장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의 유통’인데, 현재 클럽하우스는 이 모든 것이 제한적이다. 수익 모델도 불분명하다. 라디오를 비롯한 기성 언론의 대안으로 떠오르기엔 여전히 극복해야 할 요소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참 묘하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런 한계 때문에 클럽하우스가 라디오를 비롯한 기성 언론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성장 가능성이다. 현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열려 있다는 의미다. 폴 데이비슨(Paul Davison)도 그 점을 잘 아는 것 같다. 그는 앞서 언급한 ’비즈니스 오브 패션‘과의 인터뷰에서 클럽하우스의 수익 모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구독모델, 클럽별 유료 멤버십, 유료 이벤트 호스팅, 크리에이터 개인별 수익화 등등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저희는 크리에이터들이 흥미로운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이용자들이 거기 만족하고 행복해서 기꺼운 마음으로 경험에 돈을 지불하도록 클럽하우스를 성장시켜나갈 계획이다.” 

라디오를 비롯한 기성 언론 종사자들이 현재의 열풍보다 주목하고 긴장해야 하는 건 바로 이 대목 아닐까. 클럽하우스가 ’이용자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개방형 수익모델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성 언론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나 하는 것. 현재 라디오를 비롯한 ’레거시 미디어‘는 “이용자들이 만족하고 행복해서 기꺼운 마음으로 경험에 돈을 지불할 수 있는” 매체일까. 고민의 시작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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