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드라마 2화_뉴스는 반만 믿어라

 

그녀는 '노조파괴' 전문가였다. 병원 노조부터 통신사 노조, 증권회사 노조까지 그녀가 개입하면 아무리 단단한 노동조합이라도 여지없이 박살났다. 

"당신 회사의 노조를 화끈하게 부숴드릴께요"  

회장들은 열광했다. 거액의 컨설팅 비용을 싸들고 앞다퉈 그녀에게 달려왔다. 그녀도 만족스러웠다. 2년도 안돼 80억 넘게 벌었고, 전에는 '감히 노무사 따위가 어딜~''하며 눈길조차 안주던 동창 변호사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가 관리하는 회장들과 연줄이라도 닿아보려는 속내였다.그러는 동안 그녀가 파괴한 노조의 조합원들은 부당해고를 당해 비참한 모습으로 길거리를 헤맸다. 하지만 그녀는 눈꼽만큼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파괴는 창조의 어머니"

이런 사훈을 내건 그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면 모든 게 달라질 거라며 혼신의 힘을 다해 노조를 파괴하는 '창조의 여왕'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무리한 요구가 들어왔다. 아직 쟁의행위(파업 등)조차 하지않은 노조를 파괴해 달라는 것이다. 무리한 요구라며 거절하려 했지만 "얼마면 되겠냐"는 말에 그만 받아들이고 말았다. 알아보니 충남에 있는 자동차 엔진부품공장인데 일이 너무 많아서 철야작업을 밥먹듯 했고, 펄펄 끓는 쇳물 크레인이 공중에서 뚝 떨어지는 등 위험천만한 공장이었다. 그곳 노동자들은 '우린 올빼미가 아니다. 밤에 잠 좀 자자' 라며 주야 2교대 근무를 요구했다.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다. 그러나 노조를 파괴해야하는 창조의 여왕은 1단계 행동지침을 이렇게 건넸다.

"노조의 요구는 작은 거라도 절대 들어주지 말고, 파업하도록 유도할 것"

회사는 그대로 실천했다. 노사협상은 결렬됐고 결국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창조의 여왕은 2단계 지침을 내렸다.

 "직장을 폐쇄 하고 중무장 용역을 투입해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끌어낼 것" 

회사는 '직장이 없으면 일자리도 없다' '강성노조는 북한으로 가라'는 대형 현수막을 붙인 뒤 용역을 동원했다. 헬멧과 방패로 무장한 용역들은 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노동자들에게 달려들었다. 무자비한 자들이었다. 벽돌을 집어던지고 무거운 소화기까지 집어던져 18명의 노조원이 피투성이 상태로 실려갔다. 파업이 진압되자 창조의 여왕은 3단계로 넘어갔다. 언론 플레이였다.

"언론에 이렇게 뿌리세요. 노조 파업 뒤에 외부배후세력이 있었다고"

보수언론들과 경제신문은 일제히 1면 톱기사로 이 내용을 다뤘다. 파업을 선동한 외부세력이 누구고 어떻게 개입했다는건지 증거는 하나도 없었지만, "공장파업에 외부세력 개입" 언론이 뽑아낸 선명한 헤드라인이 여론을 돌려놨다. 반면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언론에 나오지 않았다. 몇 몇 작은 언론이 노조의 목소리를 담으려했지만, 회사는 즉시 언론을 상대로 '왜곡보도'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나중에는 아무도 노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노조에 남는 사람에게 징계와 소송을, 어용노조로 간 사람에겐 보너스를"

4단계는 노동조합을 탈퇴하게 하는 일이었다. 80% 넘는 조합원을 탈퇴시킬 경우 1억원의 성공보수를 따로 받도록 계약했기에 창조의 여왕은 이 부분에 전력을 다했다. 회사가 조종하는 어용노조를 만들었다. 임금협상은 어용노조하고만 했기에 어용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의 연봉은 갈수록 높아졌다. 반면 기존 노조에 소속된 사람들에게는 엄격한 체벌과 징계, 고소고발이 잇따랐다. 밥먹으러 1분 빨리 일어났다고 수당을 깎고, 이런 법이 어딨냐고 항의하면 명령불복종으로 징계를 줬다.

내 월급이 왜 깍였는 지 물어봐도 대답 안해주고 대답 좀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면 징계를 줬으며 흥분해서 멱살을 잡으면 폭행죄로, 의자를 발로 차면 기물파손죄로 고발했다. 노동조합 간부로 찍히면 일단 해고시킨 뒤 몇 년에 걸친 소송 끝에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복귀하면 또 잘랐다. 조금이라도 회사 뜻에 어긋나면 곧바로 소송을 걸어서 조사받고 법원 출석하게 했다. 이러다보니 직원들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혼한 사람들도 늘었다. 직원의 1/4이 자살을 꿈꿨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전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창조의 여왕은 회사가 별도의 언론모니터링 팀을 운영하며 조금이라도 입맛에 맞지 않는 보도를 하면 즉시 소송을 걸라고 조언했고 회사는 이를 충실히 따랐다. 무려 7년동안.....

그러던 어느 날, 결국 한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칠순 노모를 모시고 살던 가장이었다. 그동안 회사로부터 두번 징계를 받고 세번째 징계를 앞두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긴 채 떠났다. 남은 동료들을 피눈물을 삼키며 회사에 맞섰다. "부당한 노조파괴 공작을 고발합니다." 노동자들은 청와대 앞에서 검찰청 앞에서 노동부 앞에서 오체투지 삼보일배를 하며 기어다녔다. 두 팔꿈치와 두 무릎과 이마를 하루 종일 땅에 대고 절을 하며 다녔기에 온 몸에 멍이 들었지만, 이를 보도하러 오는 언론은 가물에 콩 나듯 적었다. 한 조합원이 탄식했다.

"언론이 낮은 곳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말은 거짓말 같아. 아무리 발버둥쳐도 우리 목소리는 기사 한 줄 나오기 어렵잖아..."

그런데, 그렇게 침묵으로 일관하던 기자들이 어느 날 노동조합으로 몰려왔다. 수십명이 노조사무실 앞에 카메라를 설치한 채 진을 쳤고 노조 간부들의 전화기는 마비될 정도였다. 몇 몇 노조원들이 회사 간부를 폭행한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창조의 여왕이 건네준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충실히 이행해오던 회사 간부를 향해 흥분한 몇몇 노조원들이 달려들어 주먹질을 한 것이다. 이 모습이 회사가 설치해둔 CCTV로 촬영되었고 회사 언론팀이 즉각 보수언론, 경제신문에 뿌렸다. 그랬더니 기자들이 몰려왔고 그들은 이렇게 썼다. 

 "집단폭행 참혹현장"
 "쓰러져도 또 때렸다."
 "주먹, 발길질하고 니킥까지 날렸다."
 "이쯤 되면 귀족노조를 넘어 '조폭노조'라는 비판이 나온다"

7년간 노조파괴 공장에 시달려온 조합원들은 이제 '조폭노조'라는 멍에까지 뒤집어쓴채 쓰러졌다.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오직 '폭력여부'만 캐묻는 기자들을 향해 한 노조간부가 울부짖었다. 

"주인이 개를 때릴 때는 한 줄도 안 쓰던 자들이 개가 주인을 무니까 이렇게 많이 몰려오네. 재밌지? 니들에겐 그저 재밌는 기사일 뿐이지 이 @@아~"

창조의 여왕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묘사된 사건은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건에서 실제로 있던 상황을 각색한 것입니다. 유성기업 노조파괴 활동을 기획했던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대표 심종두 씨 등에 대해 2018년 8월 23일 법원은 노조파괴 혐의로 징역 1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습니다.

2020년 5월 13일 대법원은 ‘노조파괴’ 컨설팅을 받기 위해 회사 자금을 창조컨설팅에 지불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류시영 유성기업 회장에게 징역 1년4개월과 벌금 500만원 실형선고를 확정했습니다. 유성기업 노사는 최근(2020.12.31) 10년만의 노사합의를 이뤄 경영진의 진성성 있는 사과와 위로금 지급, 조합원들의 심리치료 협조 등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노조원들은 언론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끔찍한 노조파괴의 실상을 사회에 알린 것은 언론도 검찰도 아닌 우리 조합원들이 목숨 걸고 드러낸 것이라고...노사분쟁 등 사회적 갈등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이 최소한 양측의 의견을 골고루 반영하는 균형감각을 가졌더라면, 창조의 여왕의 악행도, 노동자들의 극단적인 선택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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