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드라마 1화_뉴스는 반만 믿어라

노광준 전 경기방송 PD

10대 소녀 줄리아는 초능력자였습니다. 이른바 '뉴스 투시 능력'. 뉴스가 쓰지않은,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숨겨진 진실을 꿰뚫어보는 능력이었죠. 뉴스는 늘 자신이 곧 진실이라고 주장했지만, 줄리아는 뉴스를 읽게 되었을 때부터 줄곧 기자가 취재하고도 밝히지 않은 진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딸의 이 신기한 능력을 알게 된 줄리아의 부모님은 걱정에 휩싸였죠. 딸이 크면 클수록 왕따가 될 것이 뻔했으니까요. 사람들은 줄리아의 말보다 CNN이나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말을 백배 천배 더 신뢰할테니 말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날 아침도 아빠는 거실에서 모닝커피를 즐기며 '워싱턴포스트'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신문)를 보고 있었죠.

"세상에..."

신문을 보던 아빠가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혼잣말을 합니다. 엄마는,

"왜요?"
"8살 짜리가 헤로인 중독이래"
"응? 정말요?"
"봐봐. 1면 기사. 꿈이 강력한 마약거래자가 되는 거라는군"

설겆이를 멈춘 엄마는 손을 닦고 신문을 집어듭니다. 1면기사의 제목은 이러했죠.

"지미의 세계"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자가 워싱턴 빈민가에서 만난 지미라는 이름의 8살 흑인 소년은 3대째 내려온 헤로인 중독자였고 소년의 장래희망은 마약거래자였다는, 다섯살때부터 마약에 중독된 지미는 그날도 엄마의 남자친구가 놓아주는 헤로인 주사를 맞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현장취재 기사였습니다.

"도대체 경찰은 뭐하고 있는거야? 정부는?"

엄마 역시 신문을 보며 혼잣말을 했습니다. 아이에 관한 뉴스였기에 더 몰입할 수 밖에 없었죠. 그 때 엄마 등 뒤에서 신문을 힐끗 보던 줄리아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안보이는데?"

방금 일어난 줄리아는 토끼무늬 잠옷차림에 부스스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죠. 안보인다고..

"뭐가 안보이는데?"
"지미 말이야..뉴스 속 주인공...아무리 떠올려봐도 안보여.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 그 아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 살아있는거 맞아?"
"줄리아, 여기 신문 좀 보렴. 지미에 관해 이렇게 자세히 쓰고 있잖니."

엄마는 신문을 보여줬습니다. 엄마 말대로 기사에 나온 8살 소년의 모습은 너무나 구체적이었죠.

"지미는 노르스름한 모랫빛 머리카락을 가졌고 비단같은 부드러운 갈색 눈을 가진 조숙한 꼬마다. 옅게 탄 갈색 팔의 보드라운 피부에는 주근깨처럼 수많은 주삿바늘 자국이 있다. 지미는 위싱턴 남동부에 살며...."

그래도 줄리아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그런 줄리아가 너무 걱정스러웠어요. 결국 참아둔 말을 꺼냈습니다. 

"줄리아, 어떤 사람들은 무지개 너머에 뭔가 엄청난게 있을거라 말하지만 가보면 아무것도 없었단다. 살다보면 '보이는게 전부'일 때가 많다는걸 깨닫게 될거야."

그러나 줄리아는 엄마의 충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진실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신문 활자 속에 감춰져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모습은 8살 소년 지미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기자의 모습이었죠. 지미에 대한 기사를 쓴 기자, 여성이었습니다. '편집장실'이라는 팻말이 보입니다. 기자를 부른 워싱턴포스트의 편집장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죠. 

"수고많았네."
"과찬의 말씀을요..."
"자네를 부른 이유는 또 하나의 어메이징 스토리를 전해주기 위함이지."
"무슨......"
"오늘 자네의 기사를 본 독자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결정했네. 자네 기사를 퓰리처상 후보로 추천하기로"
"예? 아니 편집장님 그건...."

순간 기자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편집장도 그런 기자의 표정을 보고는 이상하다는듯, 

"의외네. 늘 자신만만하던 재닛 쿠크가 이렇게 겸손할 때도 있다니."
"......"
"난 자네가 퓰리처의 주인공이 될거라 믿네. 축하하네."

편집장실을 빠져나오는 기자의 표정은 어두운 것을 넘어 아예 백지처럼 하얗게 질려있었습니다. 손가락이 덜덜 떨렸죠. 숨기려고 애써 호주머니안에 손을 집어넣어봤지만, 떨리는 손가락은 진정될 줄 몰랐습니다. 왜일까요?

6개월 뒤, 기자는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언론분야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기자 최고의 명예였죠. 그러나 상을 받는 기자의 표정은 기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긴장 그 자체였습니다. 다음날 그 이유가 밝혀습니다. 기사가 조작되었음이 드러난거죠. 심지어 기자의 학력까지도 조작이었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8살 소년 지미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이었죠. 경찰이 지미라는 소년을 찾아 무려 3주간 워싱턴 빈민가 일대를 뒤졌지만 그런 소년은 없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미가 안 보인다는 초능력자 줄리아의 말이 맞았던 겁니다. 그러나 줄리아는 이런 능력을 꽁꽁 숨기면서 살아갑니다. 뉴스를 꿰뚫어보는 순간 외톨이로 살게 되니까요.

초능력자 이야기는 제가 지어냈지만, 워싱턴 포스트 기사 날조 사건은 1980년 9월 실제로 있었던 실화입니다. 1980년 9월28일 워싱턴포스트 1면에 '지미의 세계(Jimmy's World)' 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기사는 3대째 내려온 헤로인 중독자인 8살 흑인 소년의 이야기를 전했지만 보도 직후 경찰력을 총동원해 3주간 워싱턴 빈민가를 뒤졌던 워싱턴 경찰은 '그런 소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기자 재닛 쿠크는 1981년 4월13일 퓰리처상의 특집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수상 직후 재닛 쿠크의 학력 위조 논란이 일었고, 4월15일 워싱턴포스트의 밴 브래들리 편집장은 학력 날조는 물론 기사도 날조되었음을 밝히며 퓰리처상을 반납했습니다. 워터게이트 폭로기사로 닉슨을 주저앉혔던 밴 브래들리 편집장은 재닛 쿠크 기자가 '자신의 날조기사가 퓰리처상 수상작이 되지 않도록 기도했다'고 회고하며 그녀가 진실을 털어놓던 순간을 이렇게 썼습니다. 

"1981년 4월 15일 이른 새벽 재닛 쿠크는 모든 내용이 조작된 것이며 지미도 없고 지미 어머니의 동거인 남자 친구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 순간부터 '재닛 쿠크'는 미국 저널리즘에서 최악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가 최선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여기서 독자 여러분께 질문을 드려봅니다. 지금은 저런 일이 안 일어날까요? 미국의 저널리즘 권위자인 댄 길모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열린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무조건 (뉴스를) 의심해야 된다." "나는 뉴욕타임스도 의심하고 페이스북도 의심한다. 그게 뉴스 소비자들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넘쳐나는 가짜뉴스로부터 나와 우리 가족을 보호하려면 우선, 무조건 의심해보는 겁니다. 맹신하는 순간 낚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이상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 피해 보는 세상은 그만....그래서 저는 제가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뉴스는 반만 믿어라'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어떤 뉴스든 절반만 믿고 나머지는 우리가 직접 판단해보자는 거죠. 그랬더니 어떤 분께서 "그러면 네 말도 반만 믿어야겠네"라고 비꼬십니다. 저는 이렇게 답하죠. "바로 그겁니다. 모든 걸 의심하라. 그래야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현명하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참고문헌
1) 저널리즘 평론 '오보' (한국언론재단, 2003년 1호 통권 15호), 192~194쪽
2) 김지숙, '진짜 뉴스를 원한다면 "무조건 의심하라" (미디어오늘, 201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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