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방송 사각지대 된 폭설 고립된 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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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방송 사각지대 된 폭설 고립된 고속도로
  •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
  • 승인 2021.03.1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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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강원 영동 북부 폭설 때 고립된 김용민 PD 후일담
김용민 시사평론가 
김용민 시사평론가 

 

3월의 첫날, 강원 영동 북부지역에 내린 눈은 경이적 적설 기록을 남겼다. 그날 아침 나는 아들에게 ‘고속도로는 눈이 쌓이는 법이 없다’라고 했다. 실제 아무리 눈이 많이 와도 정상성을 잃지 않아야 할 고속도로였다. 하지만 보기 좋게 마비됐다. 그날 낮부터 동해고속도로 삼척 방향 속초에서 서울양양고속도로 서울 방향 내린천휴게소까지는 주차장의 형세 그대로였다. 낮 1시쯤 속초에서 출발한 한 지인은 인제나들목까지 엉금엉금 가더니 10시간 지난 밤 11시쯤에서야 비로소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고 연락해왔다.

이보다 앞선 시점 9시에 방송된 KBS 1TV ‘뉴스9’에서 한국도로공사 재난안전처 실장은 “2~3시간 내 개통 목표”로 제설작업 중이라고 했다. 당시 양양의 한 거처에 있던 나는 상황을 종합한 뒤 자정쯤 ‘이제는 소통 걱정 없이 이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길을 나섰다. 새벽 3시까지 양양 분기점 앞에서, ‘앞서가신 이들’의 고립이 답습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고속도로에 고립, 도로공사는 없었다

당황하다가 나중에는 황당했다. 누구도 동해선 속초 방향 양양 분기점에서 서울양양선 서울 방향으로 진입하는 길이 (나중에 알게 됐지만) 두절돼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막연히 지체인 줄 알고 멈춰선 길, 앉은 자리에서 40km 못 되게 갈 거리의 기름이 소진됐다. 도로공사에 전화해 무려 8분 만에 연결된 콜센터 직원도 상황 파악이 안 됐다. 마침내 세종시에 있는 도로공사 감독기관 국토교통부의 야간 근무팀에 연락해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다. 사실상의 구조 요청이었다. 고속도로 진입 후 세 시간 지날 무렵 경찰과 도로공사 직원이 도보로 현장에 접근해 상황을 파악하더니 정체된 차량을 양양나들목으로 보내서는 회차로를 통해 서울양양선 서울 방향에 진입하게 했다. 3분이 걸렸을 길일까? 결국 누군가가 회차 안내를 하지 않아 장시간의 고립상태가 방치됐다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방재의 셧다운이었다. 그런데 셧다운은 도로공사의 홈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도 마찬가지. 전날 저녁, 인제나들목까지 차가 제대로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도로공사 홈페이지는 예상소요시간이 서울양양선 서울 방향 종점인 남양주나들목까지 1시간 40분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시속 100km로 내리달아야 가능할 시간이었다. 이뿐 아니다. 양양 분기점 앞에서 오도 가도 못할 때 도로공사 앱은 서울양양선 속초 방향에 ‘소통 원활’ 즉 녹색등을 표시했다. 도로공사 제공 인터넷 교통방송은 전날 저녁 오후 6시 38분을 끝으로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 먹통이었다. 

고속도로 고립돼 있는데
“소통 원활”이라는 도공·강원TBN

고속도로에 멈춰 있는 동안 가장 궁금했던 게 있다. ‘상황이 왜 이런지’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연락했다. 하는 수 없이 강원교통방송을 찾았다. (강원교통방송 등 지역 교통방송은 서울교통방송 즉 서울특별시미디어재단TBS와는 별개의 기관이고 도로교통공단 산하의 TBN 브랜드이다) 공교롭게도 내 차가 멈춰 서 있는 지점에서 강원교통방송 양양 FM 중계소는 육안으로도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그래서 가장 깨끗한 음질로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음질로 된 완벽한 가짜뉴스가 곧 흘러나왔다. 방송에서 교통 리포터는 “양양 분기점 부근이 살짝 지체되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고속도로에서 고립돼 멈춰 서 있는 운전자들은 이렇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말았다.

당일 강원교통방송은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정규편성을 깨고 로컬 재난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재난의 ‘핫플’을 간과하고 있었다. 나는 원주에 있는 강원교통방송 주조정실에 3월 2일 새벽 1시 46분에 전화를 해 “내가 양양 분기점에 있는데 소통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방송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PD로 보이는 담당자는 도로공사 제공 정보에 기초해 방송했다고 해명했다. 그렇다. 문제의 원인은 양양분기점까지 별문제 없다고 한 도로공사였다. 그래서 적설량 40cm 가까운 폭설이었다지만 그날의 차량 고립사태를 천재지변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때마침 양양 분기점에서 멈춰 서 있던 한 시민이 연결됐다. 고통스러운 상황이 가감 없이 전달됐다. 그렇다. 식상한 말이지만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 스튜디오는 일순간 바보가 됐다. 오보가 나간 것이 못내 걸렸던지 남자 아나운서로 보이는 진행자는 “도로공사 정보를 믿지 말라”는 웃지 못할 멘트를 내보냈다. 시침이 2시를 향해갔다. 진행자는 시보 이후에도 생방송이 있는 것처럼 발언했다. 하지만 2시 이후에는 녹음된 전국 방송이 송출됐다. 노래 중간에 볼륨을 내리고 강원도 교통상황을 전해준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나는 강원교통방송에서는 양양 분기점의 고립 상황에 대한 본말이 듣지 못했다. 

교통방송이 도로 교통 및 생활 정보에 특화돼 있지만, 상황이 이쯤 되면 국가재난방송인 KBS가 나서야 옳다. 그러나 강원교통방송이 헛스윙을 날릴 때 KBS 1라디오 강릉방송국은 아예 잠들어 있었다. 서울 것을 그대로 내보내고 있었다. 기억하는가? 2019년 4월 4일 속초 고성지역 산불 당시 사고 발생지점으로부터 72km 거리인 강릉방송국에서 사건 현장에서 리포트하는 것인 양 눈속임한 일. 이건 정말 방송사에 길이 남을 시청자 기만이다. 사실 KBS는 2004년 10월 속초방송국 폐쇄 이후 강원 영동 북부지역의 재난 상황에 취약하고 지금도 그러하다. (사실 해법이 없다. KBS를 포함한 지상파방송의 영향력이나 수익구조가 갈수록 열악해지는 마당에서 재난 대비를 위한 지역방송 예산 확충은 가능한 대안이 아니다. 심지어 KBS는 강원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원주의 지역국도 작년 9월 문 닫았다. 강릉은 원주보다 인구수가 훨씬 적다.)

재난방송 KBS 지역국,
서울 것 내보내면서 “쿨쿨”

KBS는 강원 산불 이후, 화재를 포함, 호우, 태풍, 폭설 등 재해 징조가 보이면 즉각 정규편성을 중단하고 속보체제로 전환했다. 코로나19 국면에 이르러서는 뉴스 타이틀을 ‘코로나19 통합 뉴스룸’으로 개칭하며 ‘뒷북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이 최선일까? 이제는 효율성을 점검할 시점이다. 전국적 재난 상황에서 편성되는 특집방송만으로 모든 게 아니다. 국지적 폭설, 재해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해당 지역국의 기능 확충이 전제돼야 한다.

지역방송에서 재난방송 플랫폼으로 TV는 현실적이지 않다. 보도 영상이 따로 필요 없고, (양질의 재난 정보 수집 시스템 구축을 전제로) 최소의 인력으로 운용 가능하며, 쌍방향 소통도 가능한 라디오의 재평가가 필요하다. 1995년 고베 일본지진 당시 지역 소출력 지역 라디오방송이 보여준 재난 보도는 일본방송사에 기록될 활약이었다. 언제든 긴급한 지역 현안을 중계하는 로컬방송일 때 한국의 지역방송도 새로운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지역방송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답은 나와 있기 때문이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1월 29일 “KBS 직원 60%가 연봉 1억 원 이상, 억대 연봉자 73.8%인 2053명이 무보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KBS는 “1억 원 이상 연봉자 중 무보직자는 1500여 명”이라며 유휴인력의 존재를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새로운 조직 설계로써 만성적 인력난으로 또 방송 품질 저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역국에 이들을 배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결국 의지가 관건이다.

‘왜 내가 고속도로에서 세 시간 가까이 고립돼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 지역방송의 부재를 경험하며 서울로 돌아왔다. 나의 경험은 어쩌면 해프닝일 수 있다. 평소 2시간 걸리던 길에 6시간 동안 있었다면 불편해하기보다 심드렁하게 명절 정체 겪은 셈 치부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비상 상황에서 공공적 컨트롤타워의 이해할 수 없는 침묵과 무지는 가벼운 일이 아니다. 기상이변은 이제 상수이다. 재난 수습 시스템은 전반에 걸쳐 재점검돼야 한다. 방송도 마찬가지이다. 재난 상황에서도 서울의 방송이나 틀며 고이 잠자던 지역방송을 깨워야 한다. 그리고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어디든 재난의 사각지대는 없기 때문이다.

깊은 피로감 속 6시간 만에 남양주나들목에 진입한 나에게 도로공사와 서울춘천고속도로는 11,200원의 통행요금을 한 푼 깎지 않고 받았다. 부디 통행료 값을 하는 유료도로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부디 혈세 및 수신료의 가치로 보답하는 공영방송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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