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언론의 부적절한 관계 대놓고 드러내다…솔직한 의견 표명할 수 있는 검찰 간부들 몇이나 될까

민동기 고발뉴스 기자
민동기 고발뉴스 기자

예를 하나 들어보자. A 정부 부처 장관이 차관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한다. ‘과거 A부처 직원이 연루된 사건이 하나 있는데 절차 및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재논의하라.’ 6천여 쪽이 넘은 방대한 자료를 장관이 직접 검토한 결과 ‘문제 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이후 행한 조치다. 

해당 부처 차관, 국장급 확대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14명이 참석한 회의에서 13시간 마라톤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은 ‘문제없음’, ‘문제없다’는 의견이 10명, 2명은 징계를, 나머지 2명은 기권했다. A 부처 차관은 이 같은 결과를 장관에게 보고한다. “논의한 결과 문제 없는 것 같다.” 해당 부처 장관, 간부회의 결과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이를 사실상 수용한다. 

예를 들긴 했지만, 실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A 부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장관이 ‘문제있다’고 재검토 지시를 내린 사안을 차관이 국장급 간부들과 논의해 ‘문제없다’고 결론 내는 시스템이라면 장관의 존재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해당 부처 차관과 간부들이 지금까지 비슷한 사안을 두고 전임 장관과 지속적인 갈등과 대립을 해온 점을 감안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조직적 저항으로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레임덕이 심해지는 정권 말기에 나타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정부 부처라면 이런 식으로 노골적인 반기를 들긴 어렵다. 공직사회라는 게 그렇다. 아무리 ‘힘없게 보이는’ 장관이라도 해당 부처 간부들에 대한 인사권을 쥐고 있는 게 바로 장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임덕과 상관없이, 정권 초기부터 꾸준하게 자신들의 이해에 반하는 장관에 대해 저항과 반기를 노골화하는 곳이 있다. 바로 검찰이다. 눈치 빠른 독자는 이미 짐작했겠지만 앞서 필자가 예로 든 A 정부 부처는 바로 검찰을 상징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팀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에 대한 대검의 불기소 결정은 검찰의 ‘자기 식구 감싸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검찰의 자정 능력과 윤리 의식이 얼마나 바닥으로 떨어졌는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상당수 기성 언론이 지금까지 ‘검찰에 기울어진 보도’를 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비슷한 보도가 이어질 거라고 예상은 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책임론을 제기하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임은정 검사가 대검 간부 회의에서 제대로 반박도 못 했다는 식의 일방적인 기사도 마찬가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류의’ 기사는 계속 나올 거라고 본다. 전혀 놀라운 기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에 필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게 있다. 바로 ‘실시간 중계 보도’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정말 대검과 조선일보로부터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이었다. 

대검이 기자단에게 대검 간부회의 관련 메시지를 보낸 시각은 3월 19일 밤 11시 59분. “회의가 종료됐고 결과는 비공개”라는 짧은 내용이 전부다. 하지만 정확히 16분 뒤 – 그러니까 3월 20일 0시 15분 경, 조선일보가 ‘단독’으로 대검 간부회의 결과를 온라인에서 자세히 보도한다. 

대검 대변인도 회의 내용을 몰랐다는데 조선일보는 마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알았을까. 회의 참석자 중에 누군가 ‘현장 중계’를 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단독 기사’는 나올 수 없다. 

비공개 회의라도 기자 입장에서 취재원을 통해 결과를 파악해서 기사화하는 게 무슨 문제냐 – 이렇게 반론을 펴실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원칙적으로 보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번 회의는 부당하고 무리한 수사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검사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검토하는 자리다. 그런데 그 회의에 참석한 고검장과 부장검사들의 발언이 실시간으로 ‘검찰 편향적인 보도’로 유명한 특정 언론에 전해진다? 

만약 어떤 간부가 대검의 ‘전반적인 기류’에 반하는 의견을 개진할 경우, 즉 해당 검사에 대해 기소 의견을 낸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실제 조선일보는 자신들 마음에 들지 않는 법조인에 대한 ‘신상털기식 보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어떤 발언’을 하느냐에 따라 회의에 참석한 간부들의 향후 ‘진로’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조선일보의  ‘한밤 중 단독 보도’를 정상적인 언론과 취재원의 관계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관련해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3월 23일 KBS 1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을 했는데 인용한다. 

“이번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무기명 투표를 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기명 투표를 한 것 같다. 회의 내용을 비공개하기로 해놓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특정 언론에 회의 내용이 그대로 유출이 됐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마음 놓고 자신의 의견을 그대로 표명할 수 있을 것인가. 대검 부장 2명이 기권을 했다고 하는데 왜 기권을 했겠나. 기소하는 의견에 찬성하고 싶은데 그것을 얘기했다가는 향후 자신의 변호사로서 입지나 검찰 식구들에게 보이는 이미지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대검에선 이런 점들을 모두 염두에 두고 사전에 기획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필자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팀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에 대한 대검의 불기소 결정보다 확대 간부 회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검찰과 언론과의 ‘부적절한 관계’ - 이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검찰 스스로 ‘비공개회의 방침’을 무너뜨린 게 문제라는 걸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어차피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회의 내용은 언론에 공개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사화되기까지 걸린 시간. 대검 간부 회의가 끝난 시간과 조선일보 기사가 온라인으로 출고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6분 정도. 앞서 언급했지만, 이는 ‘실시간으로 회의 상황을 전달받지 않고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검찰과 법조기자단 ‘유착 의혹’이 불거지면서 검찰과 언론 간에 이런 식의 노골적인 ‘주고받기’는 한동안 자제되는 분위기였다. (그동안의 관행이 사라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이번엔 최소한의 눈치를 보는 과정 자체가 사라졌다. 이런 식의 보도가 실시간으로 나갔을 경우 유착 의혹이 불거지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그런 여론의 향배를 살피는 최소한의 움직임은 없었다. 거칠게 말해 ‘대놓고’ 검찰과 조선일보가 ‘우린 원팀’이라는 걸 세상에 공개했다는 얘기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필자는 검찰과 조선일보를 위시한 일부 언론이 앞으로 주변의 시선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표명한 거라고 본다. 실제 이번 대검 간부 회의에 한 전 총리 수사팀에 있었던 현직검사 - 10년 전 한명숙 전 총리 재판에 앞서 재소자들을 불러 위증 연습을 시켰다는 의혹의 당사자가 참석해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일이 벌어졌다. 해당 검사 근무지가 창원지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전에 조율된 출석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 이를 문제 삼는 언론은 드물었다. 

법무부는 앞으로 진행될 합동감찰에서 검찰의 부적절한 수사관행을 개선하는 새로운 수사규칙을 제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반기를 드는 검찰과 일부 언론의 유착이 공고화되는 상황에서 이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일부 언론이 검찰의 부적절한 수사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조금씩 내고 있지만 ‘검찰과 기자단의 울타리’를 깨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우리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팀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을 통해 다시 확인한 분명한 사실은 검찰과 언론에 자정 능력을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것. 그렇다면 방법을 바꿔야 한다.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당사자를 재판에 넘기지도 못하는 상황이 상식적이진 않으니까. 박범계 장관의 ‘대검 간부회의 사실상 수용’ 결정을 쉬이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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