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전문가' 박가분 작가 만나다

박가분 작가(출처=MBC)
박가분 작가(출처=MBC)

[평화나무 신비롬 기자]

4·7 보궐선거 이후 20·30대 남성 및 청년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청년 정치 네트워크 ‘진보너머’. 진보너머는 대중적 진보정치를 지향하는 청년들이 한국사회의 불공정, 불평등에 맞서 대중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획을 모색하기 위해 모인 단체다.

지난 20일, 진보너머 2대 (전)대표이자 지금도 왕성히 활동 중인 박가분 작가를 만났다. 박 작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청년 정치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 ‘일베의 사상’, ‘혐오의 미러링’, ‘공정하지 않다’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박 작가는 정체성 정치를 가장 큰 문제라고 규정하며 진보너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라고 소개했다. 그는 “현재 청년들이 원하는 건 청년들을 향한 혜택이 아닌 공정한 룰”이라며 ‘기존 제도 안에 숨어있는 특권이나 반칙을 찾아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박 작가와의 인터뷰다.

 

‘진보너머’의 탄생 배경은?

진보너머를 만든 건 전 정의당 부대표 정혜연 씨다. 2016년 게임 ‘클로저스’ 성우 교체 논란 상황에서 정의당 문예위가 ‘성우 해고는 부당해고다’라는 논평을 냈는데, 이를 두고 정의당 내부에서 ‘성우와 회사가 합의한 상황에서 부당해고라고 바라볼 수 있느냐’는 반발과 레디컬 페미니즘을 지향하던 ‘메갈리아’ 문제가 불거졌다. 이에 정혜연 씨는 ‘메갈리아처럼 청년들을 갈라치는 형태의 운동엔 동의할 수 없다’며 위원장을 그만두고 진보너머를 만들었다.

출발에서 알 수 있듯 진보너머는 초기에 정의당 당원 중심의 모임이었다. 정의당 내부 의견 그룹 혹은 정파로서 반(反)메갈리아라는 느슨한 지향을 공유하는 당원들의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정의당에 한정된 단체는 아니다. 지난 총선 때 운영진은 당원만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그걸 바꾸면서 폭넓은 시민단체 형태가 됐다.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를 다루는 데 정의당에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지금은 정의당과 갈라졌다.

 

진보너머 탄생 과정에서 정의당 내 반발도 심했을 것 같다.

심했다. 정의당의 고질적인 문제가 있는데 ‘이중구조’라는 점이다. 당원들 민심과 활동가의 생각이 다르다. 진보와 좌파를 표방하며 스스로 정치화하는 활동가들은 진보너머를 싫어한다. 활동가들 사이에서 진보너머에 대한 흑색선전이 돌아 그 이미지를 걷어내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정의당은 노동과 시민이 슬로건 아닌가? 최근 정의당은 노선이 좀 변한 것 같다.

정의당이 처음 출범할 땐 노동과 시민이라는 두 가지 지향점을 가져왔다.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함께 갈 수 있는 정치조직을 고민하다 나온 게 정의당이다. 그러다 노동당 쪽 탈당파들이 정의당에 합류하면서부터 페미니즘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들은 ‘페미니즘이 곧 좌파정치’라고 믿는 신좌파들이다. 예전 좌파 세계관에선 노동자들을 변혁주체로 삼았다면 신좌파들은 레디컬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목소리를 내는 젊은 여성들을 기층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있다. 그게 그 사람들의 신앙이자 종교다.

그런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정의당은 여성주의 정당이다’, ‘정의당은 메갈리아 비판에 동참하면 안 된다’ 이런 목소리가 나왔고, 많은 활동가가 거기에 동조했다. 약자로 규정된 사람이라면 덮어놓고 편 들어줘야 한다는 게 활동가들의 관성이다 보니 페미니즘이나 젠더 문제에 대해 편향된 목소리가 활동가들 중심으로 나오게 됐다.

그런데 아까 말한 것처럼 정의당은 이중구조가 심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메갈리아 사태 당시 대규모 탈당과 김종철 대표 이후 SNS 검열로 인한 대규모 탈당이다. 정의당은 아직 그 이중구조를 극복하지 못했다.

 

진보너머가 바라보는 현시대 정치권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민주진보진영 내 존재하는 ‘정체성 정치’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생물학적 정체성이나 다른 정체성으로 갈라 누가 더 약자고 누가 더 불쌍한지 경쟁시키는 이 정치가 진보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의당 산하 단체였을 때 레디컬 페미니즘과 싸우고 떠나간 당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면 지금은 정의당을 넘어 민주진보진영에 공유되고 있는 이 정체성 정치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고, 활동 방향이다. 물론 이 외에도 복지나 노동 친화 정책을 비롯해 오랫동안 유예됐던 정책들도 문제다.

 

정치권에서는 페미니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민주당의 경우 20·30대 내 젠더갈등이 심하다는 걸 이제야 인지한 상태다. 공식적으로 이 사실을 드러내진 않을 거다. 그러나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의당도 내부에서 곪다가 결국 터졌던 것처럼 민주당언 어느 시점에선 이 갈등에 대해 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20·30대 남성이 문제 삼는 건 여성 우대 정책이 아니다. ‘페미니스트 우대 정책’이 문제의 핵심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여성과 관련된 좋은 정책들이 분명 있다. 그런데 보통의 여성과 상관없는, 여성 지원 활동가들의 자리를 보장해주는 정책을 많이 펼쳤다. 여성을 위한 복지정책이나 유의미한 정책이 있는가 하면, 특정 활동가 카르텔, 활동가들의 몫이나 자리를 보장해주는 정책도 많았다. 그런 것에 대한 불만이 나오는 것 같다.

전자는 취하되 후자는 명확하게 선을 긋고 버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갈등은 불가피하다. 이걸 어떻게 잘 헤쳐나갈지가 관건이다.

지난 4.7 보궐선거 3사 출구조사
지난 4·7 보궐선거 3사 출구조사(출처=중앙일보)

정치권의 페미니즘에 대한 지형이 변할 수 있다고 보는가?

해봐야 안다. 민주진보 진영 내 공론장이나 언론에서 20대 여성, 그중에서도 일부의 목소리만 대변됐다. 레디컬 페미니즘에 위화감을 느끼는 여성과 20대 남성 절대다수는 그 입장에 반대하니 그 처지를 대변하는 스피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좋은 노동환경, 더 많은 복지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할지 명확하게 메시지를 내야 한다. 극우 청년들이라던가 레디컬 페미니즘은 확실하게 버리고 더 많은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선명한 메시지를 낼 수 있는 청년 정치인이 필요하다. 아직은 그 후보가 안 보인다. 어떻게 발굴할 건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또 단순히 예전처럼 청년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고 더 많이 퍼주면 돌아올 것이라는 근시안적인 접근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청년들이 원하는 건 더 많은 복지나 더 많은 지원, 자신들에 대한 특별한 혜택을 원하는 게 아니다. 공정한 룰을 원한다. 차별하지 않는 공정한 룰. 이미 존재하는 제도에서 특권이나 반칙 이런 요소를 찾아 해소하는 걸 보여줘야 청년들이 환호한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줘야 한다.

또 청년들은 일상에서, 대면하는 자리에서 정치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갈등이 극심하게 분출된다. 이런 면을 생각하고 면밀하게 모니터링해야 한다.

 

언론에서도 페미니즘은 성역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특히 진보 매체라고 할 수 있는 언론사에선 더욱 그런 분위기다.

개인적으로 진보 언론 중 한겨레 같은 경우 언론의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이번 4·7 보궐 ‘이남자’(20대 남자) 현상에 대해 현실 부정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는 곳이 한겨레다. 그 외에도 경향이나 오마이뉴스, 시사인 등도 원죄가 있다. 이들은 ‘일부’ 여성의 편향된 목소리가 나타나면 그 목소리 편에 서는 걸 정의라고 믿었던 사람들이다.

결과적으로 정의도 아니었고, 민주진보 진영 전체에 마이너스가 됐다. 그 부분에 대해 반성하지 못하면 자력갱신이 불가능할 것이고 그럼 자연스럽게 도태되지 않을까 싶다. 이젠 진보주의자라고 하더라도 한겨레는 안 본다.

 

진보너머가 생각하는 진보의 가치는 무엇인가?

세대 간 연대라고 생각한다. 진보너머는 정체성 정치를 비판하고 나온 단체다. 정체성 정치가 뭐냐면 세대별, 계층별, 성별마다 억울한 사정이 있고, 취약한 지점이 있다. 그 모든 세대를 아우를 연대의 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복지와 노동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동안 보편적 복지를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는 식의 접근을 했다면 앞으로는 이걸 기본권으로 보장해 모든 사람이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고 하면 ‘누가 어려운 사람이냐’를 둘러싸고 또다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것을 이용하는 게 바로 정체성 정치다. 레디컬 페미니즘도 이 사각지대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이 틈을 없애기 위해선, 정체성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선 일자리나 주거, 복지의 대상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사회적 서비스나 재화들을 보편적 복지의 틀로 집어넣어 시민적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 그게 진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로서 어떤 종류의 복지를 보장할 것인가’ 이 방향으로 진보정치가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지 4년이 지났다. 진보너머의 입장에서 총체적인 평가를 해 본다면?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아쉬움이 남는다. 먼저 정체성 정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 한계가 결국 젠더갈등과 계층 갈등을 키웠다고 본다. 노인빈곤 문제만 하더라도 그들이 지지층도 아니고 사각지대이며 정부의 목소리가 들리는 계층이 아니기에 해결하지 못한 것 아닌가.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건 선의는 있었지만, 지갑을 열지 않았다는 점이다. 청년들이 가장 실망한 사태 중 하나가 인천국제공항정규직 전환사태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규직 전환하는 과정에서 그 재원을 정부가 아닌 지자체와 기관에 떠넘겼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디는 정규직으로 해주고, 어디는 안 해주고, 어디는 잘해주고, 어디는 아닌 이런 사태가 발생했고, 갈등이 생겼다. 지원할 거면 모두에게 일관되게 지원해 주며, 그걸 위해 정부도 과감하게 재정을 사용하는 행보를 보였어야 한다. 그 점이 아쉽다.

 

청년들을 비판하는 기성세대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청년들이 뭘 몰라서 그렇게 찍은 게 아니라 그들만의 철학이 확고하게 정립돼 있다. 20대들이 가진 공정관이나 공정의식은 뭘 몰라서 하는 투정이 아니라 철학이다. 불가역적인 변화며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본다. 그들이 보는 공정관을 요약하자면 결과의 평등, 결과의 정의도 중요하지만, 기회나 과정상의 공정이 담보되지 않으면 결과의 정의도 담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게 지금 20대의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20대의 관점이자 10대의 관점이며, 10대가 또 20대가 되면 같은 목소리가 나올 거라고 본다. 재생산된다. 20대에 일어난 변화를 좀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경청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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