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의 조간브리핑] 청년은 왜 '위선'에 넌더리치는가?

'OECD 교육지표 2020'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층의 69.8%가 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년간 이 ‘최상위권’은 유지 중이고 굳어지다시피 했다. 그러나 ‘대학교육 수요자 만족도 조사’ 최신결과(2019년도)에 따르면 59.8점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에서는 이 정도면 D 학점 수준이다. 칼럼에서도 지적하듯 현행 대학교육은 미래 한국 사회를 대비하지 못한다. 18세기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이 실용 학문을 도외시한 채 고전 교육에 치중하다가 깊은 침체의 늪에 빠졌던 선례는 명징하다.

생각해보자. ‘비트코인’이나 ‘채굴’은 수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거나 다른 뜻으로 쓰인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문명사의 한 페이지를 채울 화두가 되고 있다. 전자(電子)적 행위에 한정하는 줄 알았던 채굴이 심지어 환경파괴의 요인이 되고 있다는 보도는 이채롭다. 비트코인 채굴의 성지인 중국의 내몽고 자치정부가 비트코인 채굴마저 금지했다는 미국의 경제잡지 포천 보도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최근 비트코인을 “잘못된 길”이라고 단정했다가 이튿날 12.95% 급락을 불렀다. 청년층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신분 상승의 마지막 사다리인 비트코인마저 불온시한 은성수 등 기성세대는 순식간에 부동산, 주식으로 떼돈 벌고도 점잖은 체하는 위선의 아이콘이 됐다. 청년세대에 ‘위선’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엄청난 뒷감당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조형근 사회학자는 “위선은 선에 바치는 위의 경배”라고 했다. 위선이 잘못됐지만, 선을 닮고 싶은 본성일 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선의 변태적 지류인 위선까지 모두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과연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프로보커터’ 저자 김내훈 연구자가 ‘시사IN’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젊은 세대는 위선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품는다. 이것이 말하자면 ‘생각의 그물망’이 되었다. 위선이 아니라 대놓고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은 이 그물망에 안 걸린다. 위선자인 민주당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 국민의힘이 더 나쁘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거대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4·7 재보선에서 몰패를 당한 이유도 이 맥락으로 봐야 한다. 항상 착한 척, 옳은 척하는 민주당 의원들이 밥이 된 것이다. 20·30세대 남성들의 공분을 자아낸 ‘페미니즘’ 이슈도 실은 ‘없는 체’, ‘모른 체’하는 여당 의원들의 태도에 실망한 탓이 크다.

국민 특히 청년을 기만하는 '~인체'하는 정치를 끝내야 한다. 적당히 개혁적인 체, 적당히 깨끗한 체 등. 선명한 자기 입장과 이에 따른 불이익 감수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1일 토요일 자 한겨레 오피니언란에는 ‘서로 다른 인간의 권리와 상호 존중이 본질’이라는 정의에서 이탈된 오늘날의 페미니스트를 조심스럽게 비평한다. ‘남녀 편 가르기’는 매우 심각한 병폐이다. 그렇다면 “남성은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가 아님을 정성스럽게 입증하라”라는 여성가족부 산하 단체장(나윤경 한국양성평등연구원장)의 발언은 페미니즘의 극단적 타락을 상징한다고 봐야 한다. ‘서로 다른 인간의 권리와 상호 존중’이 사라진 페미니즘, 과연 반성하고 있을까? 각설하고, 한겨레가 이런 칼럼을 싣다니 놀랍다. 그래서 우선된 관심은 다은에도 문정희 시인의 칼럼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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