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추=연합뉴스
출추=연합뉴스

‘메시지를 공격할 수 없을 땐, 메신저를 공격하라’거나, ‘달을 가리킬 땐 손가락을 보라’는 것은 정치권의 오래된 격언이다. 정치권에서 공방이 이어지면, 언제나 어느 한쪽의 정치세력은 반드시, 이런 행위를 하곤 한다. 하지만, 이 낡고 비열한 전술이 성공하려면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메시지에서 메신저로 돌릴 때, 달에 모인 시선을 손가락으로 돌릴 때, 바로 언론이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움직여야, 세상을 얻을 수 있고. 그 프레임에 협조하는 세력이 바로 언론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그렇게 언론에 공을 들이고, 또 언론에 등을 돌리는 행위를 정치적 자살행위라고 부른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둘러싼 ‘고발 사주’ 의혹은 매우 중차대한 문제다. 어느 국가든 법이 있고, 그 법에 따라 국가를 통치한다. 법은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질서이자 사회 구성원들의 약속이다.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법을 준수하고 따르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 언제나 그렇듯, 일부는 그렇게 살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는 법을 ‘집행’한다.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수사를 하고, 재판을 통해 법에 따라 시시비비를 가리고 처벌한다.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체계에서 누군가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 집행은, 그 자체로 매우 강력한 권력이며,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우리는 투표를 통해 통치자를 선출하고, 그 통치자는 이 강력한 권력을 아주 소수에게 위임해 사회를 통치한다. 그리고 이 강력한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이 바로 법에 대해 잘 아는 엘리트들, 판사와 검사들이다.

특히 경찰이 수사권을 가져가기 전까지 수사권은 검사에게만 부여된 그야말로 막강한 권력이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통해 만들어진 법은 그 막강한 권력을 남용시키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제약을 걸어놨다. 검사는 범죄 행위를 인지하면 수사에 돌입할 수 있지만, 그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검사는 고발이 있지 않는 한, 자기 마음대로 수사에 착수할 수 없고, 누군가를 기소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제한적으로 권력을 사용해야 하는 검사가, 누군가를 사주해서 자신의 정치적 목적 혹은 이익을 위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누군가를 고발하게 했다? 그리고 그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수사하고, 기소해 처벌을 받게 한다? 이건 법치주의를 무너뜨리는 행위이며, 그 자체로 국기 문란 사건이다.

등장인물도 많고, 법적 용어도 난무한, 이 어려운 사건이 연일 언론에 도배가 된 건 그 때문이다. 사건 자체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또 그 이유로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도 즉각 수사에 착수했고, 검찰도 자체 감찰을 바로 시작했다. 이 사안의 진상을 규명해내지 못하면, 한국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심각한 위기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웬걸? 거짓말처럼 주말이 지난 월요일, 상황이 바뀌었다. 고발 사주 의혹은 갑자기 ‘박지원 국정원의 정치 공작 사건’이 됐다. 조선일보에는 ‘윤석열’ 보다 ‘조성은’의 이름이 더 많이 나오기 시작했고. 국민의힘은 박지원 국정원장의 사퇴를 주장하며, ‘게이트’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전형적인 메신저 공격에, 달이 아닌 손을 보는 공세다. 이들이 메신저 공격에 나선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조성은 씨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을 만났기 때문이고, 또 조성은 씨가 SBS에서 발언한 내용도 문제가 됐다. 그런데, 이들의 메신저 공격은 합당할까? 메시지를 반박 못하니 메신저를 공격한다고는 하지만, 메신저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분명히 있었다. 메신저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주장하거나, 주장에 허점이 가득한 경우도 많았다. 이번 경우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하지만, 간단히 생각해도, 이번 메신저 공격은 분명 과도한 측면이 있다. 일단 첫 번째, 조성은씨가 박지원 국정원장과 아는 사이라는 주장. 당연히 이 주장만으로 박지원 국정원장의 정치공작이 있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언론은 조성은 씨가 박지원 국정원장의 공관까지 갔으니, 보통 사이가 아닐 거라고 주장하지만, 조성은 씨는 박지원 국정원장과 국민의당에서 정치인-당직자로 알고 지낸 사이었고, 공관을 방문했을 당시, 조성은 씨 혼자가 아닌 당시 국민의당 당직자들 여럿이 함께 했다고 한다.

두 번째, 뉴스버스에 보도에 나오기 직전, 조성은 씨가 박지원 국정원장과 만났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지난 8월 11일 서울 시내 호텔에서 조성은 씨가 박지원 원장을 만나 식사를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제기됐는데. 조성은 씨가 뉴스버스 전혁수 기자와 만나 텔레그램에 대해 처음 얘기한 시점이 6월 말이다. 그리고 텔레그램 내용 일부를 보내며, 본격적으로 제보를 한 시점은 7월 21일이다.

그럼, 조성은 씨는 모든 일을 마무리 짓고, 기획자인 박지원 국정원장과 만났다는 말이 된다. 박지원 원장과 전화로 일을 구상하고, 모든 공작을 끝내고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할는지 모르지만, 공작을 마무리하고 공작을 꾸민 사람들이 만났다는 것이 너무나 부자연스럽다.
 그러자, TV조선이 지난 2월, 조성은 씨가 박지원 국정원장 공관을 찾아가 만났다고 보도했다. 2월에 공작을 모의하고 7월에 실행한 뒤, 8월에 다시 만나 논의했다는 흐름은 언뜻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더라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있다.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그냥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었다는 점이다. 정치에 참여할지 안 할지도 몰랐던 상황인데, 이런 형태의 공작이 있었다?

어차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치할 수 있다는 건 예견된 일 아니었나?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전 총장이 정치한다고 해도, 어디서 정치를 할지, 어떻게 정치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 이야기의 출발은 지난해 총선 때였다. 이후 벌인 공작이라고 하기엔, 김웅 의원의 해명이 너무나 미덥지 못한 상황이다. 그런데. 윤석열 전 총장의 임기가 한참 남았던 그때, 조성은 씨가 이런 공작을 시작했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조성은 씨가 SBS와의 인터뷰에서 “이 보도의 시점이 국정원장님이나 제가 원하던 시점이 아니었고, 제가 배려를 받은 날짜가 아니었다”고 말을 한 것을 두고, 여러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이 발언만 툭 떼어 놓으면 분명 의심을 받을 수 있는 발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해당 질의응답 과정에서, 사회자의 질문 자체가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의 논란의 만남 시기에 대한 것이었다. 조성은 씨는 해당 발언을 했지만, 전반적인 답변 취지는 박지원 국정원장이 관련 사실을 알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본인도 누구에게 이 얘기를 터놓고 나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며, 당시에는 보도가 나갈지 안 나갈지, 어떻게 나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답변이다.

더욱이, 해당 인터뷰를 진행한 SBS가 해당 발언을 방송에 내보내지 않았다. 정말 박지원 국정원장과 커넥션을 의심할 만한 내용이라면, SBS가 이 내용을 방송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SBS는 국민의힘과 문재인 정부를 반대하는 분들에게, 친여 매체로 ‘찍히지 않은’ 매체이기 때문이다.

인터뷰하게 되면, 종종 말이 엇 나오는 경우도 있고, 황당한 얘기가 쏟아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내용을 모두 기사화하지 않는다. 대화의 문맥상 순간 튀어나온 말실수인지, 아니면 실제 사실인지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성은 씨의 인터뷰 전문을 보면, 해당 발언이 귀에 들어올 정도로 의아한 내용이었지만, 전반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상, 말실수에 가까운 발언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그러나, 언론은 디테일에 천착하며, 메신저를 공격하고, 달을 가리키는 손을 공격하고 있다. 그리고 윤석열과 김웅, 손준성에게 향해야 할 질문을 조성은 씨에게 쏟아내고 있다. 김웅의 답변이 엉망진창이고, 손준성은 아예 사라졌고, 윤석열은 화만 내는 상황에서, 누구도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는 이 상황에서 이 엄청난 국기 문란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지만, 지금 언론은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모양이다. 조선일보는 공수처 수사 보다. 검사가 누구인지 까 내리기에 바쁘다.

지금 언론의 주요 타깃은 조성은 씨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윤석열 전 총장을 정치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든, 문재인 정부가 싫어서든, 혹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싫어서든, 언론이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근 프리랜서 기자
정상근 프리랜서 기자

 

저작권자 © 평화나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