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총수 정용진이 시작한 ‘멸공 챌린지’가 지난 주말 보수 쪽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모양이다. 8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장 보는 사진과 함께 #멸치, #콩 등의 해시태그를 달았고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이마트를 방문해 “멸공! 자유!”를 외치며 정색을 했다는 소식. 존재감이 너무 없어서 ‘이 사람이 누구였더라?’를 한참 생각하게 만든 최재형 전 감사원장(아 맞다, 출마 선언하는 날 애국가 부른 그 인간이었지!)까지 멸치볶음과 콩 조림을 곁들여 아침식사를 하는 영상으로 ‘멸공 챌린지’에 동참했단다.

그 결과 신세계그룹 주가는 월요일에 박살이 났고, 정용진의 병역 면제 사실은 만천하에 알려졌다. 나는 개인적으로 각종 엽기적인 재벌 병역 면제 사례 중 정용진의 사례가 가장 압권이어서 이 사실을 어떻게 널리 알릴까 오랫동안 고민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라? 정용진이 스스로 “나 병역면제 받았어요. 하지만 멸공은 할래요” 이러면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거다. 하여간 정용진 씨, 열라 멍청해서 참 좋으시겠습니다.

이번 사태로 정용진의 병역 면제 사유가 체중초과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대학 입학 때 정용진이 직접 작성한 학생 카드에는 키 178㎝, 체중 79㎏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3년 뒤인 군 입대 신체검사 당시 정용진의 몸무게는 104㎏으로 25㎏이나 불어났다. 3년만에 25kg이 불어난 것도 이상한데 그 숫자가 당시 과체중 면제 기준(103㎏)에 딱 1㎏ 초과해 아슬아슬하게 면제를 받은 것이다. 이러니 그의 병역 면제가 정상으로 보일 리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를 더 추가하겠다. 이 사실이 불거진 이후 신세계가 해명을 내놓았는데, 그게 뭐였을 것 같은가?

“대학 입학 이후 정용진 부회장(당시 직책)이 유학을 갔는데, 유학시절 살이 110㎏까지 불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통해 살을 뺐는데 104㎏이 나온 거다. 절대 병역을 면제 받기 위해 고의로 살을 찌운 게 아니다.”

이게 그들의 해명이었다. 이것들이 지금 장난하냐? 그러니까 니들 말은, 정용진이 신체검사를 앞두고 살을 열라 뺐는데 아깝게(!) 1kg이 모자라 면제를 받았다는 이야기 아니냐? 총수부터 홍보실 관계자들까지 단체로 실성을 했나? 그렇게 해명하면 니들은 그게 믿기겠냐?

즐겨찾기 가설

아무튼 이 철 지난 멸공 레토릭이 다시 등장하는 것을 보니 재벌은 물론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 유력 정치인(최재형 씨, 축하합니다. 댁도 유력 정치인에 끼셨습니다)들도 이 짓이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짓이 선거에 도움이 될 리가 만무하다.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이런 색깔 공세가 선거에서 무슨 확장성을 갖겠나? 물론 가스통 할아버지들은 좋아라 하시겠다만.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를 학문적으로 분석해보자. 세계적인 뇌 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의 이론 중 ‘체감표지 가설’ 혹은 ‘신체 표지 가설’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말이 좀 어려워서 이를 간단히 ‘즐겨찾기 가설’이라고 부른다.

이게 뭐냐면 우리의 뇌가 효율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뇌 곳곳에 표식을 남겨놓는다는 이야기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인터넷 할 때 즐겨찾기 설정해 놓듯이 뇌도 즐겨찾기를 따로 저장해 놓는다는 것이다.

뇌는 어떤 판단을 할 때마다 에너지를 쓴다. 예를 들어 김치찌개를 먹을까, 된장찌개를 먹을까, 이런 간단한 판단을 할 때도 칼로리를 소모한다. ‘뭘 먹어야 나에게 최대 만족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돼 있다. 그래서 모든 판단을 할 때마다 에너지를 쏟아붓는다면 뇌는 너무 피곤해진다.

이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뇌의 전략이 바로 즐겨찾기다. 깊이 판단하면 에너지가 너무 많이 필요하니 과거의 경험을 즐겨찾기로 기억해 뒀다가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그걸 그대로 꺼내 쓰는 것이다. 이러면 에너지 소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냄비 안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이 장면을 처음 본 뇌는 ‘냄비에서 수증기가 나네. 저건 과학적으로 물이 끓는다는 이야기일 텐데, 그러면 뜨겁겠네? 만지면 데이겠지?’라는 판단을 한다. 이 판단에는 에너지가 꽤 많이 소모된다.

그런데 이후에도 냄비에서 수증기가 나올 때마다 이 판단을 다시 다 한다면 뇌가 얼마나 피곤하겠나? 그래서 뇌는 ‘수증기=뜨겁다’라는 공식을 머리에 만들고, 즐겨찾기 기능을 이용해 뇌에 표시를 새겨 놓는다. ‘앞으로 수증기를 보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피해라.’는 시스템을 정립해 놓는 것이다.

뇌가 게으른 자들의 특징

윤석열 후보를 비롯한 국민의힘 일당들이 대선을 앞두고 멸공 운운하고 자빠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과거 쌍팔년도에는 이런 색깔론이 선거에서 먹혔다. 그러다보니 이들의 뇌는 ‘색깔론=선거 승리’라는 단순한 공식을 즐겨찾기로 새겨 놓은 거다. 그리고 선거 때마다 이걸 꺼내 써먹는다.

무슨 뜻이냐? 한마디로 이들의 머리가 열라 불성실하다는 이야기다. 30여 년 전 즐겨찾기 해 놓은 것을 아직도 꺼내 쓰고 싶은 욕구는 그러려니 한다. 그건 뇌의 속성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중차대한 선거를 앞두고 최소한 새로운 것을 찾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들은 여전히 30여 년 전 즐겨찾기에 목숨을 건다는 데 있다. 복잡하게 생각해도 답이 나올까 말까 한 선거에서 판단하는 게 귀찮아 30년 전 즐겨찾기를 꺼내 쓰다니 진짜 얘네들 뇌는 게을러도 너무 게으른 것 아닌가?

나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매우 싫어하며, 그의 많은 주장을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를 인정하는 대목이 딱 하나 있다. 그의 뇌는 그나마 윤석열, 나경원, 최재형 등에 비해 성실하다는 거다. 그러니 30여 년 전 즐겨찾기로 저장해놓은 색깔론보다는 뭔가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나머지 꼰대들은? 그냥 30년 전 멸공으로 이번 선거에서 또 뭔가를 해보려 한다. 진심으로 응원한다. 꼰대 씨들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멸공 거리며 살기 바란다.

뇌의 즐겨찾기 습관은 인간을 관성의 늪으로 빠트린다. 나는 인류가 진보하는 데 가장 큰 생물학적 장애물 중 하나가 이것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게 편하고, 그냥 살던 대로 사는 게 편한 뇌의 습성은 진보를 꿈꾸는 우리가 반드시 넘어서야 할 벽이다.

자, 저쪽 꼰대들은 그냥 멸공, 멸공 거리며 선거를 하도록 놓아두자. 이럴 때 우리는 즐겨찾기의 관성을 넘어서서 한국 사회를 뿌리부터 바꿀 근본적인 변화를 치열하게 추구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늘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을 피한다면 우리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들이 과거에 천착하는 동안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주저하지 말고, 거침없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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