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퇴, 그러나 시민은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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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퇴, 그러나 시민은 지지 않았다
  • 평화나무
  • 승인 2019.11.1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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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초등학교 시절, 학교 운동회 때 꼭 박 깨기라는 종목을 하곤 했다. 모래와 콩으로 만든 오자미를 높이 걸린 박을 향해 던져 깨는 게임이다. 수 십, 수 백 번을 던지다보면 거짓말처럼 박이 펑 하고 터진다. 그 때의 그 쾌감이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서술한 정치경제학에는 양질(量質) 전환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마르크스로 인해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이 변증법 철학에서 먼저 정립한 법칙이다. 이 법칙은 자연법칙에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양질 전환의 법칙은 쉽게 말하면 양적(量的)인 변화가 누적되면 질적(質的)인 변화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박 깨기가 좋은 예다. 박은 오자미 한 방에 깨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깨기 위해서는 수 십, 수 백 번 오자미로 박을 두들겨야 한다. 그 양적인 변화가 누적되다보면 마침내 박이 깨진다. 양이 일정 수준으로 축적이 돼야 비로소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주의할 점이 있다. 질이 변한다는 것은 혁명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혁명적 변화는 매우 극적으로 벌어진다. 박이 펑 하고 일순간에 터지는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그 극적인 상황이 오기 전까지 아무런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자미로 아무리 박을 때려도 터지기 직전까지 박은 멀쩡해 보인다. 심지어 저거 도대체 언제 터지는 거야? 아예 안 터지는 박을 걸어놓은 것 아냐?’라는 의심이 들 때쯤, 불현듯 박은 펑 하고 폭발한다.

  양질 전환의 법칙은 자연에서도, 인간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이 수증기로 바뀌는 과정을 보라. 99도가 될 때까지 물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그런데 가열이 누적되다보면 딱 100도가 되는 순간 액체가 거짓말처럼 기체로 변한다.

  그래서 사회의 모든 변화는 직선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일어난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발전 또한 한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 보이다가 한 번에 점프 하듯이 바뀐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혁명이다.

  고대 노예사회가 중세 봉건사회로, 중세 봉건사회가 근현대 자본주의 사회로 변화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천천히 조금씩 바뀌지 않았다. 절대 바뀔 것 같지 않아 보이던 기존의 공고한 사회가, 어느 순간이 펑 하고 폭발적으로 터져 버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혁명적 변화란 수많은 실패를 자양분으로 삼아 일어난다는 것이다. 헤겔은 양이 차지 않으면 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로 양질 전환의 법칙을 설명한다. 허공에 걸린 박은 단 한 번의 오자미질로는 절대 터지지 않는다. 그 전에 누적된 수 백 차례의 오자미질이 있어야 터진다. 수많은 실패는 성공을 위한 중요한 필요조건이라는 뜻이다.

  14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임했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은 신이 났고 자유한국당 무리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두 달 동안 조 전 장관 일가에 융단폭격을 퍼부었던 검찰도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상대가 이번 싸움의 목표를 조 전 장관의 낙마로 삼았기에, 국지적으로 이번 싸움은 민주사회의 패배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안타깝고 아쉽다. 이 슬픔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슬픔과 아쉬움은 딱 이번 주까지다. 물론 우리에게는 아쉬워하고 슬퍼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검찰 개혁이라는 지대한 과제가 진행 중이고, 이 사회에는 인간다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바꿔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역사는 늘 누적된 실패 끝에 눈부신 변화를 만들어 냈다. “양이 차지 않으면 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헤겔의 말처럼, 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수 백, 수 천 번의 투쟁과 좌절이 누적돼야 한다.

  20세기 최고의 화가 피카소가 그리는 그림마다알제의 연인같은 명작을 만들어 낸 게 아니다. 피카소가 평생 그린 작품 숫자는 유화 15000. 데생 34000. 판화 10만 점 등 무려 15만 점이었다. 15만 점이면 사람이 10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섯 점씩 그림을 그려야 나오는 수치다.

  피카소가 왜 15만 점의 그림을 그렸을까? 그림이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런 15만 점의 실패 위에서 포기하지 않았고 양의 누적을 계속 쌓았다. 그래서 피카소는 20세기 최고의 화가의 위치에 오르는 질적 변화를 만들어 냈다.

  실패는 늘 쓰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실패를 딛고 또 도전해서, 또 다른 실패마저 각오할 의지가 있어야 질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피카소는 무려 15만 번의 실패를 겪었다. 하지만 우리의 싸움은 이제 첫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검찰 개혁과 사회 진보를 위한 자랑스러운 시민들의 싸움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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