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오성 공동대표 인터뷰

 

권지연 평화나무 기자(권지연) : 하나님의 공의를 바로 세우는 시간, 카이로스 시작하겠습니다. 함께하실 분들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보이는 쪽에서 가장 왼쪽에서부터 소개하겠습니다. 
평화나무 공명선거감시단장 김디모데 목사 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디모데 평화나무 공명선거감시단장(김디모데) : 안녕하십니까. 

권지연 : 요즘 모발에 좋은 걸 많이 드신다고요?(웃음) 제가 하도 가발설을 제기했더니...

김디모데 : 탈모약을 먹고 있습니다. 

권지연 : 부작용 나오는 거 아닙니까?

김디모데 : 뉴스진실성검증에 관심을 기울여 주십시오. 제 머리에는 무관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권지연 : 아니, 볼 때마다 생각이 나는 걸 어떡합니까. 보이는 거잖아요. (웃음) 평화나무 이사장 김용민 PD 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김용민) :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권지연 :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이십니다. 저희 공명선거감시단 발대식에도 와주셨고요. 남오성 목사님 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남오성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남오성) : 예, 반갑습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남오성입니다. 

권지연 : 어떻게 지내셨어요?

남오성 : 코로나19 때문에 교인들과도 만나지 못하고 지내다가 지난주부터 제한적 대면 예배를 시작했어요. 백신 접종한 분들이 모이는 예배를 시작했는데 코로나 전처럼 많이 오지는 못하고 코로나19 이후 교회가 새해를 맞이해서 움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권지연 : 오늘 목사님 모신 이유는, 교회개혁실천연대가 내년이면 20년이 됩니다. 

김용민 : 2002년 11월이었죠? 제가 그때 초대 집행위원이었습니다. 

권지연 : 과거 자료에 이사장님 사진도 많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김용민 : 그때 산정현교회라고 서초에 있는 거기서 출범 예배를 했었고요. 기억에 남는 건 김동호 목사가 동영상으로 축하 인사를 했는데 ‘교회개혁이 빨리 이뤄져서 교회개혁실천연대가 빨리 망하기를 바란다’고 얘기했던 게 생각납니다. 그런데 망하기는커녕 실천연대의 역할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권지연 : 그래서 오늘 교회개혁실천연대 얘기도 듣고, 목사님의 개인적인 얘기도 듣고 싶습니다. 목사님 처음 뵙는 시청자분들도 있을 수 있어서 목사님 소개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오성 : 남오성이라고 하고요. 

권지연 : 남 씨가 별로 없는데, 그죠

남오성 : 아니에요. 많아요. 경기도 일산에 살고 있고요,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주날개그늘교회 담임을 맡고 있고요. 저희 모 교회가 일산은혜교회, 최근 교단 탈퇴 건으로 이슈가 됐던 그 교회가 분립 개척한 교회입니다. 

김용민 : (일산은혜교회는) 이광하 목사님이 담임 목사님으로 계시고 

남오성 : 네. 그전에는 강경민 목사님께서 계셨죠. 교회가 수직성장보다는 수평 확산을 해야한다고 해서 정책적으로 분립개척을 했는데 저희교회가 두 번째로 분립개척을 하게 됐고요. 

권지연 : 그러면 (예장)합신 소속인건가요?

남오성 : 아닙니다. 저희교회는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교회고요. 저희교회의 특징이라면 최초에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독립적인 예배공간을 갖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예배당을 많이 지어놓고, 쓸데없이 크게 지어놓고 빚 못 갚아서 이단에 넘기고 이런 일이 파다하잖아요. 우리는 그러지 말자, 그리고 또 교회가 공간이 있는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특별히 한국교회에서는 교회라고 하면 건물, 공간을 떠올립니다. 

김용민 : 당장 주보 1면을 보면 대개는 교회 건물 사진을 올리지 않습니까. 

남오성 : 그렇죠. 그래서 보통 ‘교회 소개’라고 하면 목사 얼굴과 목사의 스팩, 그리고 교회의 건물, 예배당이 없는 교회는 미래에 지을 교회의 조감도 이런 거를 하죠. 저희는 그렇게 하지 말자고 해서 독립적인 예배당을 안 갖고 자그마한 새벽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을 따로 갖고 있고요. 대신 주일예배는 장애인 복지관 강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어요. 그러다가 코로나 때문에 대관할 수 없어서 계속 비대면으로 하다가 방금 말씀드린 대로 제한적인 대면 예배를 시작할 때 저희 동네에 지역아동센터가 공간 공유사업을 하는 작은 아트홀이 있습니다. 거기서 저희가 예배를 재개했고요.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어요. 보니까 저는 교회개혁실천연대 원년 멤버는 아니에요. 창립할 때 저는 신학생이었고요. 제가 교회개혁실천연대에 언제부터 발을 딛게 됐냐 하면, 2007년부터.

권지연 : 꽤 됐네요. 

남오성 : 15년 정도 됐죠. 그때 제가 대학교수였어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라는 곳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는 교수였는데 그 학교가 정책적으로 한국교회 건강한 운동하는 NGO들과 산학협력을 맺었습니다. 뉴스앤조이, 복음과 상황 등등의 단체들과 산학협력을 맺으면서 교회개혁실천연대도 산학협력을 맺었죠. 과거에 그 학교가 서울대입구역, 2호선 그 바로 옆에 있던 학교인데 현재 위치인 용인으로 옮기면서 학교가 ‘새로운 비전으로 나아가자’고 하면서 ‘한국 교회개혁의 신학적 중심’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저만 빼고 다른 모든 훌륭한 교수님들과 함께 정책을 만들었고 그때 제가 교수로서 협력을 맺었기 때문에 교회개혁실천연대에 파송된 집행위원이 됐고요. 여차저차해서 교수직을 일찍 떠나게 되고 2010년에 연락받은 게 사무국장으로 오지 않겠냐. 그래서 2010년에 사무국장으로 가서 3년 근무를 했고요. 작년부터 공동대표로 2년째 섬기고 있습니다. 

권지연 : 평화나무도 그렇지만 교회개혁실천연대 대표직은 정말 십자가의 길입니다. 

김용민 : 십자가죠. 세상 영광과 명예와는 무관하게 큰 십자가죠. 십자가도 보통 십자가가 아니라 큰 십자가입니다. 정말. 

권지연 : 게다가 같은 목사님들 사이에서도 힘드실 것 같아요. 개혁에 관심 있는 목사님만 계신 건 아니잖아요. 

남오성 : 저희 전대 선배님들 박득훈, 방인성 백종국, 오세택 이런 선배님들이 그런 어려운 시절을 보내셨어요. 힘든 시절을 보내셨고, 다행히 저희 대에 와서는 교회개혁이라는 담론이 조금 보편화 됐어요. 옛날에는 교회개혁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경스러운 시대가 있었거든요. 

권지연 : 그 단어를 쓰는 것 만으로도요?

남오성 : 그렇죠. 그런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빨갱이 취급을 받는다든가, 그럴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보편담론이 됐죠. 심지어 개혁대상으로 여겨지는 목사님들도 교회개혁을 얘기해요. 교회개혁이 보편적인 용어가 된 상태에서 대표를 맡다 보니까 과거처럼 그렇게 혹독하지는 않은데 그래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망받는 직책은 아니죠. 

권지연 : 정말 애쓰고 계신데요, 교회개혁실천연대에 20년간 어마어마한 자료도 쌓여 있고 이야기들이 그 안에 무궁무진하게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의 운동은 어떤 운동이 기억나세요? 

남오성 : 맨 처음 교회개혁실천연대가 탄생한 거를 김용민 이사장님도 언급하셨지만.

권지연 : (김용민 이사장께서 교회개혁실천연대 초창기에) 레크레이션 진행도 하셨다면서요?

김용민 : 레크레이션? 그때 그런 게 있었나? 기억이 안 나는데요. 기억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예. 

남오성 : 교회개혁실천연대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줄여서 기윤실 내에 있는 교회건강성운동본부라는 게 있었어요. 교회건강성운동본부에 계신 분들이 활동하다가 기윤실과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었습니다. 기윤실은 교회와 함께 가면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고 건강성운동본부에 계신 분들은 우리가 선도해야 한다, 그러면서 방법상으로라도 더 강하게 해야 한다고 했었어요. 


권지연 : 그런데 함께 가려다 묻어가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죠. 

남오성 : 의견 차이가 있다가 기윤실에서 분리독립을 하게 됩니다. 기독교 NGO 중에서 기윤실에서 분리 독립한 곳이 굉장히 많아요. 법률가 모임 하다가 기독 법률가 모임이 탄생했고 저희도 그런 맥락에서 탄생했고요. 저희 개혁연대는 크게 네 방향으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현안대처, 두 번째는 대안 제시, 세 번째는 교육지원, 네 번째는 연대참여 이렇게 나눠지고 있는데 현안대처라고 하면 가장 출발점이 어디냐 하면 교회 상담이에요. 

권지연 : 간사님들이 참 많이 어렵겠더라고요. 

남오성 : 권지연 기자님도 문의하는 분들과 대화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실텐데 

권지연 : 이게 취재인가, 상담인가 싶은 때가 있습니다. 

김용민 : 취재 겸 상담이죠. 사실. 누구도 들어준 적이 없었으니까. 

권지연 : 다른 분야 취재랑 다른 게 이분들 얘기를 끊지를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취재는 충분히 됐는데도 계속 들어주고 있는 거예요. 

남오성 : 교회개혁실천연대는 최초부터 교회 문제 상담소와 함께 출발했고요. 생각해 보면 교회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다 얘기할 데가 없었어요. 지금도 별로 없지만 그 때는 더 없었거든요. 그래서 상담소가 출범했고, 그다음에 교회를 변화시키려면 총회의 문제를 안 다룰 수가 없죠. 교단 총회에 우리 평신도들이 참관해야 한다. 

김용민 : 그렇지. 

남오성 : 보는 눈이 있다. 지금 되게 많이 나아진 거예요. 

권지연 : 그렇죠. 참관하니까. 

남오성 : 옛날에는 버젓이 보고 있는데 돈봉투 돌리고 용역 동원하고 

김용민 : 가스총 사건, 예장합동의. 

남오성 : 그 얘기는 제가 잠시 뒤 자세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현장에 있었던 거의 유일한 참관자였기 때문에. 

권지연 : 멱살 잡는 건 보통이었죠. 

남오성 : 보통이고요. 몸싸움도 보통이고요. 별의별 생쇼를 했습니다. 또 중요한 이슈가 된 게 세습반대 운동. 개혁연대 초기부터 감리교 세습이 큰 문제였거든요. 사실 거기서 촉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 외에도 대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여러 기독교 문제가 터지면 거기에 대해 대처하는 현안대처 사업을 해왔고요. 

그런데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너희는 비판만 한다’ 그래서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저희가 열심히 한 게 교회 정관 운동입니다. 이것도 많이 뿌리 내렸죠. 아니, 교단 헌법이 있는데 교회 정관이 왜 필요하냐. 많은 분이 착각하시는 건데, 은행 대출을 받으려면 정관이 있어야 해요. 

권지연 : 그렇죠. 

남오성 : 그리고 대부분 교회에 은행 대출이 있어요. 그 얘기는 정관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정관대로 하자고 하면, 교단법대로 안 하고 정관대로 하자고 하느냐는 이상한 구조로 되어 있죠. 그런데 이제는 많은 교회가 교회 정관 갖는 걸 당연시하고 있고요. 정관 안에 담임목사 임기제라든가,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담기고 또 중요한 게 교회재정 건강성 운동입니다. 헌금을 내라고는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거라고 얘기하는데 하나님께 드려진 거룩한 헌금을 제멋대로 관리하고 엉망진창으로 지출하고 목사가 그걸 가지고 카지노에 간다든가 아니면 교회가 그걸 가지고 돈을 불려보자고 투자를 했다가 날린다든가 뭐 이런 거죠. 재정 건강성 운동 최초부터 되게 열심히 해서 지금은 교회재정건강운동이라는 분립된 단체를 저희가 설립했고요. 

권지연 : 저도 어릴 때는 헌금은 하나님께 드린 거니까 그거 어디에 쓰였는지 꼬치꼬치 묻는 게 좀 그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생각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정말 큰 역할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남오성 : 거기서 파생된 게 목회자 납세운동이에요. 지금은 정책적으로 결정됐지만, 그때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어요. 어디 목사한테 세금을 내라고 하느냐. 빨갱이다. 별별 소리를 다 들었죠. 


김용민 : 교인들이 세상에서 돈을 벌어 오면 소득세를 냈는데, 교회에 낸 헌금을 교회에 과세하면 이중과세라는 희대의 논리를 제기했었어요. 이건 세기의 개드립입니다. 그렇게 신박할 수가 없어요. 

남오성 : 맞아요. 또 교회가 언제 문제가 생기냐 하면, 후임 목사 청빙 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그 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민주적이지 않으면서 교회의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면 목사 청빙을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좋냐는 가이드도 만들어서 드리고 부교역자 문제가 있습니다. 부교역자는 말 그대로 목사의 종처럼 되잖아요. 전도사를 포함한 부교역자의 인권문제를 많이 다뤘고 중요한 게 성평등이죠. 목사 안수 안주고, 지금도 보수 교단들은 그렇게 하는데...

김용민 : 예장합동은 여성(목사)이 한 명도 없습니다. 여성 총대가

권지연 : 예장합동, 합신, 고신이 여성 목사를 인정하지 않죠. 

김용민 : 통합이나 기장교단은 여성 목사가 있지만 그것도 극소수고요. 

남오성 :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성평등 문제, 교회 내 성 역할의 문제도 꾸준히 다뤘습니다. 왜 여성 성도는 죽으나 사나 부엌에만 있는데 그 여성 성도에게 교회 가지 말라고 박해하던 남편은 나중에 예수 믿고 집사 되고 장로 되면 당회에 들어가요. 그런데 그 여성성도는 아직도 연세드실 사이에, 불신자가 당회원이 될 동안 아직도 설거지만 하고 시즌 되면 김장담그고 이런 거죠. 여기에도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건 신학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신학적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해서 탄생한 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입니다. 

김용민 : 느헤미야도 교회개혁실천연대와 패밀리군요. 

남오성 : 그렇죠.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여러 신학자가 모셔서 조언 듣고 하던 그룹들이 모여서 성서 한국 운동이라든가, 제가 몸담았던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교에서 학내 문제로 나온 분들을 중심으로 시작됐고요, 교육사업도 많이 했습니다. 교회개혁 제자훈련이라고 해서 관심이 있어서 오셨다가 지금은 집행위원이 된 분들도 많고요. 아카데미, 강좌들, 기도회, 수도 없이 많이 했고요. 마지막으로 중요한 게 교회개혁실천연대는 단체 성격이 말 그대로 연대예요. 예를 들어서 기윤실은 운동이거든요. 그냥 내가 운동하면 돼요. 그런데 교회개혁실천연대는 교회개혁을 실천하려는 연대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못해요. 그런 구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회원 300여 명, 후원교회가 수십 교회가 있고, 집행위원이 30여 명, 전문위원이 10여 명, 대표만 지금 5명이니까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비효율적이에요. 누구 한 명이 확 잡고 치고 나가면 좋은데 그러다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그러잖아요. 소수의견이라도 청취해야 하고 존중해야 하고 이런 게 되게 많아요. 그래서 연대 운동을 열심히 하고요. 특별히 작은 교회 연대 운동, 건강한 작은 교회들이 서로 힘이 되고 격려하고 목사들 교제하고 이런 운동에서 많이 파생됐습니다. 지금 그런 건강한 작은교회 운동이 여러 개 있고요. 그런데 지역별로 묶어 드리는, 그래서 발전한 게 성서대전, 성서광주, 성서부산 등등으로 됐고, 정치 사회적인 이슈가 있으면 그것도 교회개혁실천연대에 중요한 이슈가 돼요. 물론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정치사회 개혁 운동을 전담해서 하는 곳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의 영역이 사회이기 때문에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있는 곳에 가서 연합예배, 기도회를 함께 한다든가 가장 컸던 게 세월호죠. 세월호 터졌을 때 교회개혁실천연대가 계속 함께했고 강정마을 이슈가 있었을 때 제주 군사기지 이슈가 있었을 때 열심히 했고요. 교회가 생태 이슈를 빠뜨릴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것도 함께했고 그런 운동들을 쭉 해왔던 것 같습니다. 

김용민 : 정말 빛이요, 소금입니다. 후원해주시는 교회들은 찐(진짜)교회입니다. 대형교회도 있습니까?

남오성 : 대형교회들도 있습니다. 

김용민 : 있어요? 

남오성 : 아주 큰 교회 말고 

김용민 : 비난을 받는 곳

남오성 : 아 네. 그런데도 모르겠어요. 왜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있습니다. 저희는 감사하게 받습니다. 

김용민 : 대부분 찐(진짜) 교회인데, 몇 개교회는 보험을 들어 놓은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고마운 교회. (웃음)

김디모데 : 사실상 기윤실(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모체가 되어서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인큐베이터 허브 역할이 돼서 수많은 단체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져나온 사례가 됐네요. 

권지연 : 저는 얘기를 쭉 듣다 보니까 충분히 그럴려고만 했다면 교회개혁실천연대도 세력화도 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네요. 

김용민 : 그런데 관심을 두지 않았고 초심을 지키기 위해서 애써오셨습니다. 벌써 그렇게 (오래) 됐어?라는 생각이 드는 단체가 있고요, 이렇게 오래됐어? 이런 단체가 있는데요, 실천연대는 ‘벌써?’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초심을 잘 지켜온 거죠. 고난의 현장에서는 개혁연대가 있었고요. 온 몸을 던지는 활동가들이 계셨고 그 노력을 잊지 못합니다. 특히 교회세습반대운동 때는 가서 얻어맞고 그랬습니다. 

권지연 : 그러니까요. 이제 20세 청년이 돼서 저와 비슷한 나이가 됐는데요. (웃음) 활동을 모두 동영상으로 촬영한 거는 아니지만, 20년 동안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어떤 일을 했는데 쭉 지켜봤지 만 마지막 때 의인 10명과도 같은 단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권지연 : 아멘 

남오성 : 과찬이시고요

김용민 : 그러면 의인 100명으로 하겠습니다. 

남오성 : 김용민 이사장도 (교회개혁실천연대) 설립할 때 함께해주셨고 뉴스앤조이 편집장도 잠깐해주셨고 지금은 또 평화나무 설립해서 동지라고 생각합니다. 

김용민 : 감사합니다 

권지연 : 피해자들 발생해서 평화나무가 활동할때마다 교회개혁실천연대가 항상 함께해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김디모데 : (김용민) 이사장께서는 제가 아는 바, 뉴조 편집장에서부터 극동방송 PD까지. 

권지연 : 스팩트럼이...

김디모데 : 심지어 CTS까지 

김용민 : 하는 업무로 보면 김장환 목사 일대기 슬라이드, 영상 원고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서 

김디모데 : 제가 신학생 시절만 하더라도 수구적인 목사들이 항상 비판하는, 신학교 교수님 중에도 수구성향이 강한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런 분들이 항상 ‘교회개혁실천연대 이놈들’, ‘기윤실, 이자식들’ 이런 말을 항상 달고 사셨어요. 

김용민 : 기윤실은 참 안타깝네요. 굉장히 거기는 슬로우 킥으로 가는데 

김디모데 : 요새는 세 군데로 늘었습니다. 평화나무까지 해서 교회개혁실천연대, 기윤실, 평화나무.

김용민 :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권지연 : 영광이네요. 

김용민 : 이런 훌륭한 단체들에 평화나무가. 신생 단체나 다름없는데 같이 거론된다는 점이 영광이고 

김디모데 : 김용민 이사장께서도 교회개혁실천연대 초대 집행위원 출신이잖아요. 

권지연 : 그분들에게 살짝 알려드리고 오겠습니다. 예하운선교회도 넣어달라고 (웃음)

김용민 : 초대집행위원장이 박득훈 목사님이셨고 고생을 많이 하셨죠. 욕먹는 일이었는데 ‘내가 뭐가 중요하냐. 이 한 몸 불살라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겠다’라면서 의지와 열정을 보여주신 분들이었습니다. 

권지연 : 진짜 너무 존경스러운 분들이시죠. 

김디모데 : 박득훈 목사님이 공명선거감시단 모금 생방송 할 때 설교해주셨는데 준비하면서 잠깐 여담을 나눴습니다. 20년 전 교회개혁 운동 뛰어들기 전에 영국에 계셨는데 그때 어떤 교회에 대한 문제 제기했더니 바로 외압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멘트가 두 가지였답니다. ‘목사 맞냐’, ‘교단과 소속이 어디냐’ 교단과 소속을 알아서 윗선을 통해서 외압을 행사하려 했던 것이죠. 제가 그 얘기를 듣고 참 기가 막혔던 게 제가 최근에 듣는 얘기와 똑같다는 겁니다. 20년이 흘렀지만 멘트와 레파토리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권지연 : 교회개혁 활동가분한테 목사냐 묻고 소속 묻는 게 압력을 가하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기자한테는 그게 왜 중요한 거예요? 자꾸 저한테도 물어보셔서. 

김용민 : 같은 기독교인끼리 다 알면서 선수끼리 왜 그러느냐, 뭐 이런 얘기인 것 같고요. 20년 전? 40년 전에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안 봐도 비디옵니다. 

권지연 : 여러 현장을 가보셨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을 소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흑역사들. 

남오성 : 일단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교회 상담이 제일 힘들어요. 찾아오시는 분들을 만나고 응대하는 게 되게 힘들죠. 그래서 제가 사무국장을 그만둘 때 ‘왜 그만두냐’, ‘왜 3년만 하고 그만두냐’고 했을 때 “교회 상담 때문에 힘들어서 못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권지연 : 대부분 간사님들도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시더라고요. 

남오성 : 진이 빠져요. 맨 처음에는 비판하고 그러면 시원해요. 그런데 그게 반복되잖아요. 엄청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EBS 다큐멘터리에서 봤는데 사람이 말할 때 튀는 침이 분노해서 나오는 침을 모으고, 즐거워서 웃을 때 나오는 침을 모아서 색깔을 보면 색깔이 다르다고 합니다. 분노의 침은 탁한 갈색이고, 즐거움에서 나오는 침은 맑은 분홍색이래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 침을 실험용 쥐에 주사하잖아요. 그 분노의 침을 맞은 쥐는 죽는대요. 그런데 그 침을 누가 가장 많이 먹나. 분노하는 사람이 많이 먹죠. 그러니까 교회개혁 운동을 하면서 진이 빠집니다. 에너지 소진이 아주 크고요. 아무래도 대형교회와 싸울 때 기억이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사랑의교회 건축문제, 맨 처음에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이 귓등으로 들었어요. 그게 뭐가 문제냐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교회가 옥한흠 목사님이 계실 때는 교회개혁 운동들을 많이 지원하셨어요. 건강한 복음주의 운동과 사회선교 운동을 많이 지원하셨기 때문에 소위 복음주위권에서 봤을 때는 내부문제였거든요. 우리 안의 교회에서 이런 일이 났다, 그때는 옥한흠 목사 시대에서 오정현 목사 시대로 전환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으니까. 그때 오정현 목사 시대 때 우려하는 소리는 있었죠. 교회가 변하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오정현 목사가 적합한 사람이냐, 이런 얘기들이 많았는데 그게 터진 게 사랑의교회 건축 건이었고 오정현 목사와 식사를 한 적이 있어요. 교단 총회에 갔다가 거기서 사랑의교회 계열의 잡지를 만드는 분이 저와 아는 분이라서 얘기하고 밥 먹자고 하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갔더니 사랑의교회 식구들, 부교역자, 목사들이 함께 고급 뷔폐를 전세 내서 드시는데 저도 갔죠. 그 편집장이 제 손을 잡고 오정현 목사한테 가서 ‘남오성 목삽니다’라고 인사했더니, “아, 남목사, 반가워요. 이제 만났네”라고 하면서. 일단 인상이 좋습니다. 처음 만나면 참 훌륭한 것 같다. 키가 크고 미남이고 

김용민 : 찬양도 잘해요. 

남오성 : 손도 아주 따스하시고 누구라도 실물을 만나면 호감을 가질 분이에요. 그런데 왜 그런 결정들을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사랑의교회 건축 반대 운동을 하면서 거의 제 살을 떼어 내는. 교회개혁실천연대도 그렇지만 많은 성서한국 운동을 하는 사회선교 단체들이 엄청난 후원금을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그런 곳들이 많았어요. 

김용민 : 사랑의교회의 물적 지원을 많이 받았습니다. 옥한흠 목사님 때. 

남오성 : 최초의 복음주의권운동이 부정선거 운동, 지금 (평화나무가) 하고 계시는 게 거기서 모태가 됐고, 공간적인 센터가 사랑의교회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옥한흠 목사가 남긴 좋은 유산을 오정현 목사에 오면서 변질이 돼 버렸죠. 지하 공간을 메우니 마느니

권지연 : 아직도 안 메우고 있죠. 

김용민 : 또 메우라고 하는 부분이 공교롭게도 강단, 십자가가 있는 그 부분이야. 나는 이 지점이 갖는 영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지연 : 영적인...(웃음)

김용민 : 그렇잖아요.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강단을 흙으로 메워라, 이게 보통 의미입니까. 
그런데 목사님, 부럽습니다. 고급 뷔폐에 가셨던 게 (웃음)

권지연 : 뷔폐에 진심이시거든요. (웃음)

김용민 : 뷔폐 매니아입니다. 부패한 뷔폐라도 갑니다. (웃음)

남오성 : 제가 그날 부교역자분들과 같이 앉아서 식사하고 오정현 목사는 다른 분들하고 식사했는데, 부교역자들이 자기들끼리 얘길 나누면서 ‘내가 이 교회에 언제 입사했는데’라는 표현을 그냥 편하게 사용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분들은 여기를 직장으로 생각하시나,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김용민 : 국가정보요원들도 소속을 국가정보원이다 그런 얘기하지 않고, 회사라고 얘기합니다. 그건 자기 단체를 감추기 위해 전략적인 의미가 있다고 이해가 되죠. 그런데 교회가 입사라니. 그러면 그 교회를 그만 두면 퇴사입니까?

남오성 : 그러게요. 그렇게 서로 간에 대화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뜨끔했던 기억이 있고요. 대형교회 이슈 중 충격적이었던 것이 삼일교회 문제였죠.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1년에 몇 번 있는 집행위원회 때였어요. 지역으로 가서 하룻밤을 자면서 회의도 하고 교제도 하고 그런 때였는데 분위기가 되게 무거웠어요. 함께하는 변호사 한 분이 제보를 받았고, 그 문제를 피디와 방송국 피디와 함께 어떻게 할 것이냐, 다들 안 믿었어요. 설마 설마했죠. 저도 사실 신학교 다닐 때 전병욱 목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책을 감동깊게 읽으면서 제가 유학 가기 일주일 전에 그 책을 읽고 가슴이 뜨거워져서 ‘내가 지금 유학할때인가’, ‘한 영혼이라도 구원해야 할 때 아닌가’ 하고, 제 합격 통지서를 포기해야 하나하는 고민을 할 때였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행했다는 추태가 상상할 수 없는 지경이었어요. 

김용민 : 극동방송에 있을 때 전병욱 설교가 나가는 시간이 월요일이었나 밤 8시였어요. 그 설교가 끝나면 어마어마한 전화가 옵니다. 그 테잎을 갖고 싶다고.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다 들을 수 있지만, 그때는 듣고 싶은 설교가 있으면 극동방송에 헌금하면 그 헌금에 상응하는 대가로 방송된 녹음 테이프를 보내줘요. 저작권이고 세금 관계고 무시하고 그 목사에게 동의를 받았겠어요?그냥 보내주는데 제일 청취율이 높은 게 전병욱 설교 시간대였고 저도 기다렸다 들었습니다. 

권지연 : 그래요?저도 제 주변에 삼일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이 정말 많았는데 저는 그때도 ‘나는 저 목사 위험해 보인다’고 얘기했었거든요. 고지론을 계속 주장하고 그러잖아요. 그리고 청년들이 기초없이 순간적으로 불타올라서 하는 게 저는 좀 위험해 보였어요. 

김용민 : 그리스도인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고 세상적으로 성취해야 영향력이 생기는데 그 영향력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면 되는 것이다.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이 뜨겁지. 내가 마치 그 주인공이 될 것 같은 환상도 생기고 말이죠. 

김디모데 : 파워 시리즈라고 해서 파워로마서, 파워전도서, 파워 크리스찬 그 책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신학생과 목회자들 사이에서 정말 많이 팔렸어요. 또 전병욱 목사가 책도 책이지만 설교도 위트있게 많이 해서 인기가 많았죠. 지금도 기억나는 게 그 책들을 보면서 소위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제 동료들에게 그랬어요. 제 동료들에게 그랬어요. 이분 메시지에는 사회적 약자와 구조악에 대한 비판이 단 한 개도 없다고 했다가 ‘시기해서 그러는 거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김용민 : 어떻게 똑같냐. 정치무대에서도 어떤 셀럽이 잘못한 게 있어서 비판하면 바로 그 반응이 오는 거예요. ‘너 시기해서 그렇지?’, ‘ 너 그 사람이 갖고있는 명성이 탐나서 그렇지?’

남오성 : 기억에 남는 일 중에 아까 얘기가 나왔던 가스총 사건이 기억에 남습니다. 예장합동 교단 총회에 가면 특별히 예장합동이 유명했는데 그때가 2012년이에요. 대형교회인데 주차장이 큽니다. 들어가는데 대형버스가 주차장에 꽉 차 있어요. 누가 봐도 사람을 동원한 것 같은 거죠. 그런데 양복을 입고 머리가 짧은 건장한 남성들이 있는 거예요. 용역이죠. 쉽게 말해서 용역 깡패, 그때는 아주 일상화됐었어요. 선거가 있거나 교회 내 분쟁이 있다고 하면 이쪽도 용역불러, 이쪽도 용역불러. 용역끼리 몸싸움. 이게 다반사였어요. 그때 예장합동 황모 총무가 있었는데 이분이 총무가 되는 게 맞나, 그래서 총무 자격 논란을 미루다 미루다 총회 마지막 날까지 미뤘거든요. 그런데 본인이 신상발언 하겠다고 나와서 가스총을 들었죠. 주머니에서 총을 빼들었습니다. ‘나는 총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그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죠. 그분을 사적인 곳에서 만나면 되게 잘해줘요. 그분들의 공통점입니다. ‘내가 요즘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가스총을 들고 다닌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총회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고 이전투구를 하니까 그때 어떤 일이 생겼냐 하면요. 갑자기 교회의 모든 전기를 내립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마이크도 꺼지고 조명도 꺼지고 다 꺼졌어요. 엄청나게 큰 대형교회거든요. 그러니까 참여하신 분들은 암흑 속에서 멘붕이 온 겁니다. 의장이 긴급히 폐회를 선언하고 총회가 끝났어요. 그래서 제가 그때 뉴스앤조이 기자들하고 ‘총회장 어디갔냐?’
그래서 제가 기자들하고 황규철을 끝까지 찾는다고 해서 회의가 다 끝나고 총대들이 다 퇴장했는데 입구에서 계속 지켰어요. 해가 져가니까 어디 숨어 있다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달려가서 물어보니까 ‘다음에 봐’그러면서 사라지더라고요. 

김용민 : 그 황 목사가 나중에 칼을 휘둘러가지고 

권지연 : 칼부림 사건. 

남오성 : 맞아요. 칼부림 사건도 났고요. 

김용민 : 박 목사를 칼로 찔렀어요. 칼은 황규철 목사가 가져온 것이고 이건 뭐.. 다행히 돌아가신 것 같진 않아요. 그런데 이건 뭐. 

남오성 : 처음엔 겁먹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기대되요. 이번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용역들 물리치고 들어가고 그랬던 기억이 나고. 한기총 해체운동, 그건 성공했죠. 제가 선언했죠. 한기총은 이제 해체됐다고 선언하고 나서 주요교단들로부터 버림받고 그 빈자리에 전광훈 씨가 가서 ‘내가 회장이네’ 하면서 한기총 장례식 인증을 했죠. 

권지연 : 지금 또 전광훈 씨가 대표회장으로 나오려고 한답니다. 

김용민 : 아, 그래요? 또? 폐가에 가서 ‘여기가 내 집이다’ 이런 꼴이 됐네요. 

남오성 : 한기총 사무실이 있는 종로5가 빌딩 앞에서 4박5일인가, 3박4일인가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저하고 다른 분들과 같이 그 입구에 앉아서 단식 농성을 했고,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임원회가 있었는데 거기 우리를 참관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안된다고 해서 회의장에 난입을 한번 한 적이 있죠. 몸싸움으로 뚫고 들어가서 ‘당신들 이따위로 하면 안 된다’고 소리 지르면서 사고를 한 번 친적이 있는데요, 그런 것들이 기억나네요.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건 그런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권지연 : 명성교회 세습 수습위원회가 불법 세습을 용인해줄 때 누가 그런 말을 했어요. ‘이럴 때 방인성 목사님 같은 분이 한번 드러 누우셔야 하는데’라고. 
남오성 : 그리고 교회개혁실천연대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교회 문제 현장에 가서 피켓을 들고 저항의 목소리를 내게 하고 거기 또 반발하는 분들과 같이 의도치 않게 사건이 발생하고 이런 모습을 어떤 분들은 좋게 보시고, 또 어떤 분들은 나쁘게 보시면서 교회개혁실천연대에 대한 모습이 각인됐던 것 같아요. 

김용민 : 그건 정말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권지연 : 그럼요. 

김용민 : 돈 주고도 시킬 수 없는 일이에요. 

권지연 : 교회를 정말 사랑하는 분들이라서 가능한 일이고, 여러 우여곡절도 겪으면서 오셨는데 무엇보다 그런 일들을 하다 보면 스스로 피폐해지잖아요. 

김용민 : 사무국장을 그만두고 대표가 되셨으니 책임은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이런 목사들의 이루말할 수 없는 만행과 비루한 행동들, 열심히 교회개혁실천연대가 바로잡기 위해서 애를 많이 썼지만 이들의 영향력이나... 언론이 또 그들을 주목한단 말이죠. 교회개혁 단체의 노력들, 자정노력들은 잘 조명해주지 않고요. 그래서인지 교회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게 현장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지시죠?

남오성 : 그렇죠. 아무래도 돈이 있고 사람이 많이 모이고 힘이 있는 곳이 그쪽이다 보니까 세속적인 영향력이 그쪽에 있고, 그들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노력하잖아요. 그렇지만 저희단체는 우리 자신을 드러내려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더 안 하거든요. 그러다보니까 덜 조명되는 그런 것도 있고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그렇지 않고요. 오히려 너무 많이 노출되면 이러다 우리가 자만해질 수 있다, 조심하자, 이런 얘기도 나오고 예전에 박득훈 목사님께서 손석희 100분 토론에 나가서 토론을 하셨다가 그 교회가 엄청 성장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 작은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정말 많은분들이 오셔서 박득훈 목사님이 깜짝 놀라고 어려워하셨죠. 또 이슈가 한번 터지고 조명받으면 사무국이 항의 전화를 받느라고 거의 업무 중단. 그때는 손으로 드는 전화기만 있을 때니까 일주일 후유증이 가고 그랬죠. 

김용민 : 그럴 때는 ‘삐 소리와 함께 교회개혁실천연대로 후원금이 납부됩니다’ (웃음)

권지연 : 와, 괜찮은 생각입니다. 

김용민 : (항의전화는) 일상이고 그런데 또 응원해주시는 분들, 교회개혁에 우군이 되어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니까 교회개혁실천연대도 20년간 잘 이어져 오지 않았을까 싶고요.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처한 어려움이나 연대의 요청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남오성 : 이 일이 어렵다보니까 오래 못해요. 오래하기가 어려워요. 특별히 젊은 간사님들이 오래 버티질 못해요. 계속 성장해서 사무국장도 되고 그런게 정상적인 구조인데 그렇게 하는 게 어려워요. 급여도 많이 못 드리고 일 자체가 사람을 진 빠지게 하는 일이다 보니까 
교회개혁실천연대는 내년에 20주년이라서 계획하고 있는 게 많은데, 추가 모금도 필요하고 그렇습니다. 

김용민 : 교회개혁 단체가 흥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로 악취를 풍기는 교회들은 살찌고 교회개혁 단체들은 힘을 잃고 이러면 교회는 망하는 거죠. 교회개혁실천연대가 부자는 아니더라고 활동할 수 있는 충분한 기반이 마련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십시오. 

남오성 : 세상이 무척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정말 급변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과거 틀과 담론으로만 생각하면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영적전쟁이라는 말을 창의력 전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사탄의 프레임을 깨고 ‘왜 그래야 하는데? 나는 다른 식으로 할 건데’, 라고 하는 게 영적 전쟁의 승리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것이 변했다고 생각하는데 교회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창의력을 가지고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독교가 좋은 문화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개혁을 한다는 사람들이 동기를 어디서 찾느냐 하면, 분노에서 찾아요. 저는 그 의로운 분노가 최초의 동기는 될 수 있지만, 그게 모든 동기가 되면 망해요. 교회개혁의 동기는 감정적으로 보면 분노가 아니라 슬픔이에요. 내 사랑하는 교회, 존재 자체인 교회가 이렇게 망하다니 분노와 한탄, 예레미야의 눈물이 동기가 되어야 진정성이 있고 그 과정은 반드시 웃음이어야 해요. 벙커1교회 오니까 안내판이 위트있게 붙어 있는데 잘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 결과는 기쁨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개혁의 결과로 개혁된 교회는 뭐냐, 제도와 형식이 올바른 교회냐. 사랑이 넘치는 교회라고 생각해요. 사랑이 넘치고 이웃을 사랑하면 사랑이 넘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거 하자고 교회개혁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웃음을 주고 함께 웃고 그러자고 교회개혁 하는 거죠. 기쁨으로 사랑이 넘치는 교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용민 : 문화를 말씀하셨는데 개인적인 소신은 저도 나이 60되면 내가 지지하는 정치세력이나 정치인이 젊은이들에게는 별로 동의가 안 되는 사람일 수 있잖아요. 내가 지지하는 사람과 2030 세대가 지지하는 사람이 다르면 저는 투표를 안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어린 것들이 경험도 없고 역사의식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건데, 그렇지 않아요. 자기들이 더 오랫동안 온 몸을 던져 느끼게 될, 적응해야 할 세상은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지지하는 사람과 젊은이들이 지지하는 사람이 다르면 투표권을 포기할 만큼의 각오가 있는 거예요.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그래서 우리세대가 느끼는 직장 내 갑질이라는 것이 최악의 갑질이겠죠. 매를 맞는다든지 급여를 띵까먹는다든지 멋대로 해고한다든지. 그런데 젊은이들은 의무에 없는 일을 시키는 것도 갑질로 생각하거든요. 적어도 그 기준에 맞춰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시대가 젊은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예전에 극동방송에 있을 때 노털들의 전당입니다. 제가 한 말이 아니라 총무국장이 한 말이에요. 그런데 노털들의 세상. 노털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 안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교회도 마땅히 그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이죠. 예전에 제가 극동방송에 있을 때 어느 교회 장로님이 기도를 하시는데, 교회에서 젊은이들에게 드럼을 사줬어요. 드럼을 사탄의 악기라고 하면서 없애달라고 기도를 하는 거예요. 엽기적이다. 드럼이 무슨, 가요콘서트를 하는 것도 아니고 찬양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고 드럼이 또 교회에서 시작됐거든요. 제가 그래서 방송에서 대여섯 번 언급했더니 그 장로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발 자기 얘기 하지 말라’고. 실명도 언급 안 했고, 어느 교회인지도 연락을 안 했는데, 아, 정말 이런 문화 지체를 자랑으로 여기는 기성세대가 되지 말아야겠다, 젊은이들에게 똥이 되든 떡이 되든 그들이 선택해서 하는 일에 대해서 스스로 교정해가고 바로 세워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가는 일을 교회가 먼저 앞장서서 할 때 가장 앞서가는 집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도 여성은 목사도 안 된다, 장로도 안 된다. 이런 게 어딨습니까. 

김디모데 : 87년도 옥한흠 목사님이 살아계셨을 때 공명선거 장소가 사랑의교회였다는 사실이 되게 서글프게 느껴집니다. 이 교회개혁 운동을 20년 가까이 해오면서 한국교회의 변화와 교회라는 공동체 사람들을 섬기고 회복시키고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게 하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해 온 교회개혁실천연대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요, 앞으로도 연대해서 눈앞에 당장 가시적인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다하더라도 손잡고 웃으면서 갈 수 있는 길임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권지연 : 교회개혁실천연대 함께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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