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당선인의 난데없는 용산천도 선언에 국방부가 뒤집히고 외교부가 뒤집히고 반포대교를 건너는 시민들이 뒤집혔다. 소통을 강화한다고 용산 청사 앞에서 집회와 시위를 벌이는 사람을 만나주지도 않을 테고 1인 시위자의 손을 잡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도 아닐 텐데,비싼 돈 들여 지어놓은 청와대는 테마파크로 만들어 놓고 본인은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쌍으로 감싸 주는 구중궁궐로 들어가겠다니!

할 말은 많지만 많이들 하고 계시기에 이 글에서는 이번 천도로 뒤집힌 또 한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바로 기자들이다. 청와대의 넓디넓은 춘추관을 사용해 왔던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대통령 당선인의 천도 선언과 함께 봇짐 싸고 뒤따라 가야 하는 운명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물리적 공간이다. 용산 국방부 청사 1층에 프레스센터를 조성한들 춘추관만큼 크지는 않을 테고 또 청와대 춘추관 출입기자실에 상주하던 기자님들이 작은 매체 따위의 기자들과 함께 브리핑룸을 이용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자님들이 노트북 두고 집에 갈 기자실까지 그 1층 안에 만들어 놓아야 할 텐데, 그렇다면 청와대 브리핑룸에 앉아서 기사를 쓸 수 있는 기자들의 수는 더욱 더 줄어들 것이 명약관화하다. 쉽게 말해, 당선인 측은 현재 청와대에 있는 기자들을 전부 데리고 용산으로 갈 수 없고 그렇다면 대통령실 기자단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자, 그렇다면 윤석열 당선인 측은 어떤 매체의 기자를 데려가고 어떤 매체의 기자는 버리고 갈 것인가? 윤석열 당선인이 입만 열면 부르짖는 공정과 상식의 기준이 여기에 적용될 리는 만무하다. 윤석열 당선인 본인도 언론관을 두고 여러 차례 비판을 받은 바 있고, 더욱이 당선인 주변에는 MB계 인사들이 가득하지 않은가? 이명박 정부 당시 언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생각해보면, 이번 대통령실 출입기자단 재구성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때마침 대통령실 출입 기자를 둘러싼 두 가지 보도가 나왔다. 이 보도들은 새 정부의 ‘출입기자단’ 구성과 관련해 매우 주목되는 보도였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신원진술서’ 관련 보도다. 윤석열 인수위는 대통령실 출입 기자 신청을 받으면서 특정 양식으로 구성된 ‘신원진술서’ 제출을 요구했다. 아니 잠깐, ‘신원진술서’라니, 어디 간첩이라도 잡았단 말인가?

양식의 제목도 제목인데. 가관은 신원진술서의 내용이다. 이 진술서는 기자 개인뿐 아니라 배우자와 미혼자녀의 재산 내역까지 기재하도록 했다. 뭐지? 군부독재 시절 초등학교에서 했던 “집에 TV 있는 사람” 이런 걸 조사하는 건가? 여기에 부모님과 자녀, 심지어 배우자의 부모에 대한 신원정보까지 요구했다.개인정보가 집안 금송아지처럼 다뤄지는 이 시대에 이 무슨 황당한 요구인가?

신원진술서 양식(출처=미디어오늘)
신원진술서 양식(출처=미디어오늘)

또 ‘친교 인물’을 적어내라는 요구도 했다. 내가 누구랑 친한지, 내 친구는 누구인지 밝히라는 황당한 요구다. 게다가 친교 인물의 ‘연락처’까지 요구했다. 이건 또 무슨 경우인가? 그냥 내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 철수, 성동이, 제원이 이런 식으로 이름을 쭉 적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내 친구의 직업은 대체 왜 궁금한 건데? 여기에 ‘정당·사회단체 활동 경력’을 적어내라는 단계는 그냥 ‘노답’이다.

여기에 “기재사항을 누락 하거나 허위로 기재할 경우 ‘국가공무원법’ 등 관계 법령에 따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받았음을 확인한다”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국가공무원법이라니, 기자가 공무원인가? 아니, 기자가 공무원인지 따지기 전에, 공무원이면 내 친구 직업이 뭔지까지 적어내야 하는가?

세상이 하수상한지라 미성년 자녀의 편입학 여부라든가 혹은 자녀의 논문작성 현황을 요구한다면 모를까. 대체 우리 엄마 생일과 내 친구의 직업과 대통령실 출입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논란이 되자 인수위는 “일부 실무진의 착오였다”는 입장을 밝혔다. 새 기자실은 기존 춘추관과는 달리 대통령 집무실과 동일 공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강화된 보안기준이 적용된다는 것이 인수위의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내용확인절차에 소홀함이 있었다”면서 “정정된 신원진술서 양식을 재공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래. 인수위의 해명을 최대한 선의로 해석해보자. 새 대통령실에서는 기자들이 대통령이 한 건물에서 일하고 있기때문에, 기자들에게도 더 강화된 신원 양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무자가 대충 검색해봤더니 이런 신원 양식이 최고등급의 보안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내용 확인도 안 하고 일단 기자들에게 뿌렸다는 말이 된다. 무능할 뿐, 사상검증을 하려던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선의로 해석한다 한들 두 번째 주목되는 보도까지 종합해보면, 대통령실의 ‘선의’ 보다는 어떤 ‘의도’가 더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미디어오늘은 윤석열 당선인 측이 출입 기자 등록 기준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기자는 특정 협회의 추천을 받은 회원사 소속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고 보도했다.

그 ‘특정 협회’는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인터넷신문협회, 인터넷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 한국온라인신문협회, 서울외신기자클럽을 말하는데, 이전 정부도 비슷한 기준을 제시한 바 있고 대한민국 언론 상당수가 해당 협회에 적어도 1개 이상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것만 놓고 보면 사실 큰 문제라고 지적하긴 어렵다. 물론 특정 협회에 가입해야 대통령실을 취재할 수 있다는 발상 그 자체는 현 시대상과 역행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인수위가 대통령실 출입기준으로 정한 ‘특정 협회’ 중 하나로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라는 조직이 새롭게 들어갔다는 점이다.이 협회는 2007년 설립된 곳으로, 미디어워치, 프리존뉴스, 독립신문 등이 포함돼 있다.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 등이 이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의 회장을 지낸 바 있는데, 신혜식 씨는 ‘신의한수’라는 유튜브의 대표이기도 하다.

즉 ‘인미협’은 강경보수 성향의 매체들이 중심이 된 협회다. 물론 강경보수라고 언론 활동을 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출입처의 문턱은 최대한 낮추는 것이 좋기 때문에 이들은 대통령실 출입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할 건 아니지만, 이들 소속 매체 중 일부는 5.18 북한개입설을 주장한 바 있고 부정선거를 주장한 바 있는 등 반사회적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생산 기지 역할을 하고 있거나, 한 바 있다.

그런데 대체 이 협회가 대통령실 출입기준 중 하나로 포함된 이유는 무엇인가?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당선인 측은 ‘그냥 예전 기준 그대로’라는 입장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미협’은 지금까지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들의 기준이 된 바 없다는 것이 미디어오늘 보도 내용이다.

물리적으로 줄어든 기자실의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이유로 새롭게 구성될 것으로 보이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단, 그리고 그들의 자격 요건이 된 ‘인미협’의 존재, 출입 기자들이 작성해야 하는 여러 가지 사상검열 서류, 이 내용을 종합하면, 윤석열 당선인 측이 구성하려는 새로운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은 윤석열 정부의 필요에 의한 형태와 인력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 안에는 윤석열 정부와 크게 각을 세우는 한겨레 등도 포함되겠지만 뉴스타파, 뉴스버스 등은 출입이 거부될 가능성이 높고 심지어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포함된 미디어오늘도 새 대통령실 출입기자단 명단에 포함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출입기자단 상당수가 윤석열 정부 입맛에 맞는 기자들로 채워진다면 국민의 알 권리는 선택적으로 채워지는 비극적 결말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윤석열 정부가 지금 언론을 고르고 있다는 의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정상근 프리랜서 기자/ '언론 혐오 사회' 저자
정상근 프리랜서 기자/ '언론 혐오 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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