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인생의 최대 위기는 크게 세 가지로 꼽힌다. 젊은 날 ‘9수’로 상징되는 사법시험 줄 낙방, 검사가 되고 (박근혜 정권 집권 정당성에 큰 흠결을 남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 당시 항명,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이 돼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받던 견제. 그러나 윤석열은 몰락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 고비들이 윤석열에게 스토리텔링 즉 큰 정치인이 되려는 자의 핵심 자산인 ‘서사’가 됐다.

‘왕의 목’ 친 나라

그런 윤석열은 대통령이 됐다. 더 이상 위협이 없을 법한 그의 인생은 현재 낭떠러지로 향해가고 있다. 그가 자신의 추락을 염려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정부는 그리 오래 갈 ‘팔자’가 아니다. 걸림돌이 없다. 이 나라는 ‘왕의 목’을 쳐 봤기 때문이다. 임기 100일도 안 돼 ‘탄핵’, ‘타도’ 야기가 자연스러운 이유가 그러하다. 2017년 ‘대통령을 임기 중 끌어내린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는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이던 윤석열의 칼끝에서 시작한 것이다) 여러 의미 있는 지표와 성적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 정부가 정권 연장을 못 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보수 진보가 10년씩 정권을 담당한다는 ‘10년 주기설’의 붕괴는 문재인 한 사람의 잘못만으로 보면 오산이다. 대한민국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여당을 갈아치울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이다. 국민은 봐주고 기다리고 하지 않는다. 나는 이 민심이 생동하는 정치구조를 ‘탄핵 체제’라고 명명한다.

단언한다. 2024년 총선에서 여당은 없을 수도, 또는 바뀔 수도 있다. 총선 이전에 이 나라 정치는 윤석열을 버리고 간다. 기실 모든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이 국민의힘의 그것을 넘지 못한다. 두 자릿수로 벌어진 결과치도 있다. 이대로는 대통령을 탈당케 해 야당이 되거나, 윤석열 조기하야 후 새 대통령을 뽑은 상황을 상상하는 건 자연스럽다.

검찰, 관료, 언론 동원하겠지만

물론 가만히 앉아서 권력을 반납할 윤석열이 아니다. 그의 끄나풀 정치 검사 집단에 ‘캐비닛’을 열게 해 몇 놈만 본보기로 수사 처벌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권을 당장은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사의 강도와 심도는 예전 ‘유망 대권주자 윤석열’일 때와 같을 수 없다. 4년 9개월 뒤 소멸할 때까지 윤석열의 시간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째깍째깍 흐르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권력은 쇠잔해져 간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이 있다. 바로 법무부 장관 한동훈이다. 그는 윤석열과 순장조가 될 마음이 없어 보인다. 현직 장관으로서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자기 이름을 빼달라’라고 요청하는 액션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끄나풀 언론인들의 자신에 대한 미화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윤석열 덕에 출세했지만 언젠가는 그와 차별화할 수밖에 없을 운명임을 통감한다. 대권욕이 살아있다면. 게다가 윤석열에게 한동훈은 자르고 말고 할 일개 장관인가? 공유하는 비밀이 많은데?

게다가 2,000명에 이르는 대한민국 검사가 모두 윤석열 정권과 검찰의 운명이 연동되기를 바랄까? 음습한 곳에서 협잡이나 일삼던 권력형 검사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세상이다. 임은정 검사처럼 선명히 반대하지 않더라도 윤석열 청산이 검찰 집단 청산과 엮이는 일만은 회피할 것이다. 즉, 청부 털기, 청부 덮기는 어느 순간 먹히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검사장 자리에 윤석열 사람을 꽂아둬도 말이다. 친정이 이러한데 국가정보원, 경찰,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등 다른 권력기관은 다를까?

윤석열 권력을 지탱하는 또 다른 축은 언론이다. 윤석열은 거짓말을 잘한다. 기억력 탓으로 돌릴 수 없을 가까운 시점의 앞뒤 다른 말에도 스스로 아무런 가책함이 없다.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는다. ‘믿고 거를 지도자 유형’ 1장 1절 격인 ‘지도자의 부정직성’은 그런데 잘 두드러지지 않았다. (필자가 이사장으로 있는 평화나무는 윤석열 취임 한 달여 전인 4월 13일, 대선 토론회와 기자회견 등 여러 공식 석상에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하는 발언을 한 윤석열을 고발했지만, 취임 100일 지난 지금 시점까지 고발인 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언론이 민감하게 반응했다면 이렇게 철저히 무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론 탓이다. 언론만 제대로 윤석열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렸다면 나라가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동훈도 그러한데 언론이 윤석열과 순장조가 되겠는가? 금을 넘어 반대편에 넘어가는 순간, 윤석열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언론의 십자포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문제의 근원, 변수는 저조한 지지율

결국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또 변수는 저조한 지지율이다. 진보는 취임 3개월도 안 돼 타도의 깃발을 들었고, 중도는 진작에 마음에서 지웠다. 다만 최대 40%에 이르는 보수의 3/5 정도만 기대 어린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게 현재 스코어다. 그러나 이들도 언제 이탈할지 알 수 없다. 60대, 영남의 부정 평가가 절반을 넘어선 조사까지 나온 마당이다. 집권 초인데 이 정도 지지도로는 정상적 국정운영이 불가능하다.

지지율 반등은 불가능한가? 그래 보인다. 윤석열에게 반대편을 끌어안는 정치력은 부재하고, 따라서 직언 고언을 배격하는 것은 물론 발언자 자체를 배격하며, 그러나 ‘아부의 달인’만 중용하다 보니 저질인사 참사는 멈추지 않고, 잊을만하면 음주 및 망언 논란은 터트리는 그 아닌가? 여기서 ‘플러스’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하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불거질지 모를 위기와 비상 상황을 수습할 공적 책임 의식은 기대 이상의 일이다. 몰락의 조건은 충분히 무르익었다.

아니 이미 시작됐다. 물꼬를 튼 사람은 윤석열에게 ‘이 새끼, 저 새끼’로 불린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이다. 윤석열은 자신이 입당하기도 전에 투표를 거쳐 선출한 대표 이준석을 과거 비위를 들어 축출했다. 물론 당무와 선을 그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지만, “내부총질 하는 당 대표”를 비난하는 메시지가 그의 휴대전화에서 전송됐다. 이게 드러났음에도 자신은 다른 정치인 발언에 일언반구 대꾸한 바 없다고도 했다. 체리 따봉은 허깨비가 보냈다는 것인가? 이에 이준석이 자신을 대표직에서 몰아내고 재기조차 못 하게 하려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안 즉 당헌 개정안을 막아달라며 8월 13일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리고 윤석열에게 포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어마어마하다. 김건희를 거론했기 때문이다. 이 말이었다.

“팬클럽 회장(강신업 변호사)이 본인의 지위를 스스로 칭하는 것이라면 대통령실에서 한마디로 정리할 수도 있다.”

강신업이 누구인가? 변호사이며 김건희 팬클럽 회장이다. 강신업 변호사는 이 팬클럽을 김건희의 요청으로 만들었다고 ‘여성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통상 타의에 의해 생기는 게 팬클럽이다. 어색하고 황당하기는 하나 넘어가자. 그런데 강신업은 통상의 팬클럽 회장과 달리 정치 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더니 이준석 대표 축출 운동을 전개했다. 이게 대통령과 부인의 뜻으로 곡해될 여지가 충분함에도 강 변호사는 거침없었다.

“권력 정점에 윤석열 아닌 김건희 있다”

결국 이준석 전 대표의 앞선 말은 강 변호사 뒤에 윤석열과 김건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고문은 이미 6월부터 “윤석열 정부의 권력 1순위는 천공, 2순위는 김건희, 3순위는 강신업, 4순위는 윤석열”이라고 했다. 시중의 말을 인용했다지만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8월 19일 “권력 서열 1위가 김건희”라고 했다. 대통령의 아내 김건희의 위세가 대단하다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그 권력을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강신업마저 윤석열의 권위를 뛰어넘었다는 이야기이다.

김건희는 현재 공흥지구 개발 특혜성 투자유치, 아크로비스타 전세자금 뇌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코바나콘텐츠 불법 협찬, 허위 이력 기재, 논문표절 등의 의혹을 사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의 아내’로 공적 무대에 선을 보인 이후로 처벌은커녕 소환조사조차 받지 않고 있다. 정부만인가? 사립대인 국민대는 명징한 논문표절에도 불구하고 “김건희 논문표절 아님”으로 결론내렸다. 남들 같으면 논란 발발 단계부터 남편인 대통령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학위를 반납하고 사과하며 상황 수습에 나설 텐데 김건희는 끝까지 버틴 보람이 있었다. 아니 이런 황당한 결론을 확신한 것은 아니었을까? 김건희가 과거에 한 말이다. “사실 권력이라는 게 무섭거든.”

대통령 부인의 국정농단 의혹

게다가 구설에 오르는 현 정부 상당수 인사들 발탁 배경에는 ‘여사와의 인연’이 거론된다. 동성애 혐오 발언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다 끝내 사퇴한 김성회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윤석열이라는 시골 검사를 대선 후보의 반열에 올려세운 것은 '평강공주 김건희'였다”라는 칼럼을 기고해 대선 당일 전광훈 씨 딸이 발행인인 자유일보에 싣게 했다. ‘김성회 기용에 김건희의 역할이 있었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실은 “노 코멘트”로 답했다.

최근 대통령실이 대기업에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성배 씨를 주의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살아있는 소가죽을 벗긴 무속행사의 주최자인 건진법사의 뒷배는 누구일까? 건진법사는 김건희가 대표로 있는 ‘코바나콘텐츠 고문’ 명함을 들고 다닌 바 있다.

응당 김건희는 정무에, 인사에 개입할 수 없다. 대통령 배우자는 엄연히 민간인이기 때문이다. 피선거권을 행사해 선택받거나 혹은 공직에 발탁되지 않는 한 내조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 사십년지기 최서원(최순실 개명 전 이름)이 조언자 노릇을 했다는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파면됐다.

이준석이 당 대표 꼬리표를 달고 있었던 7월 1일, 나토 정상회의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윤석열 부부를 환영하기 위해 공항에 나갔다. 트랩을 내려온 윤석열에는 대등한 눈높이로 악수를, 그런데 김건희에게는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액션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버지의 친구인 유승민 전 의원에조차 인사하지 않는다는 이준석은 퍼포먼스로써 윤석열 정부의 진정한 권력이 누구인지를 국민에게 일러준 것이다.

요컨대 윤석열 몰락은 김건희 때문일 것이다. 대차게 박근혜에 줄 댔던 여당, 검찰 및 관료사회, 언론이 박근혜 몰락 당시 어떻게 표변하는지 우리는 똑똑히 봤다. 원조 ‘친박’ 유승민 김무성의 탄핵 주도, 검찰 특검의 박근혜·최서원 수사, 조선일보 중앙일보 계열 종합편성채널의 국정농단 고발이 그러했다. 권력 창출에 크게 이바지했지만, 몰락할 상황에 이를 때는 앞장서 숨통을 끊으려 하는 일종의 ‘정치적 증거인멸’, 새롭지 않다.

윤석열과 큰 싸움을 각오한 이준석은 열쇳말을 제시했다. 이 나라 진짜 권력이 형사 피의자 “김건희”에게 있음을. ‘대통령이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고 지배된다’라는 인식이 국민 저변에서 뿌리내린다면 단지 시간문제일 뿐, 이 권력은 끝난다고 보는 게 맞다.

윤석열은 해법을 알고 있을까? 윤석열이 극우세력에게 ‘우리 편’으로 인식되기 직전, 배승희 변호사가 2018년 10월 19일 이봉규TV에서 했던 말이 있다. “그러면 이혼하던가.” 이게 답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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