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까지 김건희·한동훈·전직검사·극우 유튜버·측근에 밀린 국민의힘
다수 의원, 당권·공천 때문에 ‘국정 난맥상’에 침묵

요즘 정치권 특히, 국민의힘에선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매일 ‘참사 수준’의 대형 사고가 발생하고 있으니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문제는 출범한 지 100일이 겨우 지난 집권여당이 문제해결 능력을 거의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개그콘서트’에서나 어울릴법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

“국민의힘은 오는 17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맞아 당 정책위원회 차원의 백서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 다만 이런 내용을 담은 백서를 당분간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여당의 중점 추진 법안이 공개될 경우 민주당이 ‘표적 제동’에 나설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라고 당 관계자는 전했다.” (중앙일보 8월16일 <與, ‘국민과 함께한 100일의 기록’ 尹정부 백서 발간>)

세상에나!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120건을 입법·정책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집권여당이 상임위원회별로 중점적으로 추진할 법안들’을 백서에 담았는데 그걸 국민들에게 공개하지는 않을 거란다. 민주당이 ‘표적 제동’에 나설 수 있다는 게 이유?

‘소수정당’인 국민의힘이 중점 추진할 법안은 어차피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협조 없이 처리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상임위별로 추진할 주요 법안을 공개하면서 언론의 검증을 받고 야당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건, 집권여당이 당연히 해야 할 일.

그런데 ‘만든 백서’를 기자들 앞에서 흔들며 ‘우리 이런 거 만들었어’라고 하면서 공개는 지금 하지 않을 거란다. 대체 뭘 하자는 걸까. 시민단체들도 백서를 내면서 ‘이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더 웃긴 건,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의 발언이다. 그는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백서를 들어 보이며 “윤석열 정부의 100일은 국정운영의 성공 골든타임이었다. 당과 정책위는 그 ‘100일 작전’을 마무리하는 백서를 마련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국정과제 120건을 현실화하기 위해 총 93건의 입법을 발의했고, 입법 발의를 추진 중이다.”

한편의 코미디가 된 취임 100일 백서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지난 100일 동안 ‘집권여당’ 국민의힘을 대표하고 상징했던 건 ‘윤핵관과 이준석 전 대표의 충돌’, ‘윤석열 대통령의 내부총질 문자와 체리 따봉’ ,‘권성동 원내대표의 대통령 뜻을 받들어’와 같은 말들이었지 ‘국정과제 120건을 현실화하기 위한 입법 행위’가 아니었다. ‘백서 기자회견’ 기사가 기자들의 주목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유는 다름 아닌 국민의힘이 그동안 국정과제 추진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아니 국민의힘 당원들에게 한번 물어보라. 윤석열 정부 출범 100일 동안 국민의힘이 어떤 존재감을 보였는지. 좀 거칠 게 말하면 국민의힘은 용산으로 출근하는 윤 대통령이 ‘약식 문답’을 통해 거의 매일 ‘자폭’ 수류탄을 터뜨릴 때 그 잔해 ‘처리’를 하는 일을 도맡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자들 앞에서 백서 흔든다고 집권여당의 면모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라는 얘기다.

사실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권성동 원내대표의 발언을 필자 식으로 번역하면 이런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조만간 치러질 전당대회에서의 당권 그리고 다음 총선 공천을 획득할 수 있다면 대통령이 사고(?)를 치더라도 그 뒤처리는 우리가 맡겠다. 괘념치 마시라. 그리고 당분간 집권여당의 존재감 따위는 망각하겠다.”

오죽했으면 보수적인 논조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매체 가운데 하나인 매일경제 김인수 논설위원이 지난 7월 28일자 칼럼에서 “‘대통령 뜻을 받들어 하나 된다’라는 말은 대통령 귀에는 좋게 들리겠으나, 실제로 대통령의 올바른 국정 운영에는 독이 될 수도 있다”며 비판을 했겠는가. 김 논설위원은 “때로는 ‘내부 총질’이라고 할 정도의 이견이 나오는 게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尹집권 이후 사라진 국민의힘 정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정치’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아니 배제됐다는 용어가 좀 더 정확한 것 같다.

‘정치 마당’에서 사라진 국민의힘 자리를 대신한 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극우 유튜버,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일부 윤핵관들이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이들 ‘신주류 세력’들이 비공식 무대에서 국정을 ‘휘젓고’ 있을 때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권을 위해, 상당수 의원들은 차기 총선 공천을 위해 침묵했다.

냉정히 말해 이 같은 상황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경원 전 의원이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일을 기억하는가. 나 전 의원은 대통령 취임식 초청을 받지 못한 점을 언급하며 “좌석 한장도 배정받지 못하고 TV로 취임식을 봤다. 정몽준 전 당 대표도 초청장 한장 못 받았다니 문제”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나 전 의원이 지적한 ‘취임식 초청장’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말 그대로 누구는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받지 못했다는 게 중요한 문제였을까. 아니다. 그것은 향후 윤석열 정부의 ‘정치’와 ‘국정운영’이 누구에 의해 주도되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일종의 바로미터였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였다.

나 전 의원을 초청대상에 배제한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양산 집 앞 욕설 시위를 주도한 안정권씨 등 다수의 극우 유튜버들을 ‘김건희 여사 추천’으로 취임식에 초청했다. 이뿐인가. 주가조작 의혹 업체인 도이치모터스 관련자들과 윤석열 대통령 장모의 ‘사문서 위조’ 공범도 취임식에 초청을 받고 참석했다. 최근 한겨레는 서울 한남동 대통령 공관 리모델링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따낸 업체 대표를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했다고 보도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겠지만 국민의힘은 2020년 총선 패배 이후 이른바 극우 세력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태극기 부대’는 물론 일부 극우 유튜버들과 일정 부분 불편한 관계를 형성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이준석 대표 체제를 거쳐 ‘극우세력’과의 거리 두기가 강화된 것도 이 즈음이다.

여당 배제된 자리에 극우 유튜버 기승‘그랬던’ 국민의힘에서 최근 극우 유튜버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지난해 말 이준석 전 대표 성 상납 의혹을 처음 제기하고, 사건 관련자 통화 녹음 파일을 공개한 게 누구였나. 가로세로연구소였다. 이들이 제기한 의혹 때문에 이준석 대표는 윤리위로부터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고, 주호영 비대위가 출범하면서 대표직에서 강제적으로 물러났다. 지금 범여권 내부에서 전개되고 있는 ‘비정상적인’ 권력투쟁에서 국민의힘은 ‘힘이 좀 더 강한 쪽’이 누구인가에 관심이 있지 다른 것은 전혀 관심이 없다. 정치가 실종된 이유다.

지금 윤 대통령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참모들을 보면 왜 국민의힘이 ‘정치’에서 배제됐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이른바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검사 출신들이 주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면 대통령과 과거 사적으로 인연이 있었던 인사들 혹은 그 자녀들, 김건희 여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극우 유튜버 및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인사들이 다른 축을 이루고 있다. 이른바 ‘서초동 그룹’과 ‘여사 그룹’이 주요 중심축이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참여했던 관료집단과 학자 그룹 등이 일부 대통령 주변에 포진되어 있으나 이들의 활약은 미미한 실정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청문회 과정에서 여론의 집중 공격을 받고 이미 낙마 대열에 들어선 이들도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지난 대선과정에서 열심히 뛴 인사들과 나름 여의도에서 오랫동안 ‘정치’에 관여해 온 이른바 ‘여의도 그룹’은 용산에 끼어들 틈과 여지가 없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정권교체 이후 청와대나 용산으로 이동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잡으려 했을 터. 하지만 그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한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실종된 직언 직보’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힘 내부에서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 대해 쓴소리를 전혀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 여당 초선의원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강성층이 득세한다는 오해가 굳어지기 전에 당과 대통령실 모두 긴장감을 늦추지 말고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해당 초선의원도 참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본인은 그 얘기를 공개적으로 국민의힘 지도부와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하지 못하는 걸까. 기껏(?) 언론에 익명으로 인터뷰 하는 정도로는 현재의 국정난맥을 타개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취임 100일’이 넘도록 김건희·한동훈·극우 유튜버·사장 아들에게 밀리는 혹은 눈치보는 집권 여당이라니? 이 정도면 말 다 한 것 아닌가. 당권도 중요하고 공천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집권여당이라면 거기에 맞는 자세와 태도를 보였으면 싶다. 누구처럼 시간이 지난 뒤 “국민도 속았고 우리도 속았다”고 한다면 그땐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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