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3 제국은 요제프 괴벨스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실의에 빠진 독일 국민에게 지지받아 나치당이 원내 1당이 되었다지만, 사실 나치당의 지지율은 37.4%에 불과했고, 공산당의 참여를 제한하면서까지 벌인 총선 결과에도 나치당 연합에 대한 독일 국민 지지는 과반이 채 안 됐다.

적지 않은 지지임은 분명하지만, 나치가 독일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의 지지기반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돌프 히틀러는 이를 정치 공작으로 극복하며 집권했고 독일 전체를 병영 국가로 개조했다. 그리고, 나치를 지지했던 이들은 물론, 지지하지 않았던 독일 국민은 히틀러를 막아내지 못했다.

이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했을까? 여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바로 요제프 괴벨스다. 괴벨스는 검열을 통해 기성 언론을 통제했고, 당시 라디오와 영화 같은 최신기술을 통해 선전·선동을 했다. 그렇게 괴벨스는 독일 국민의 의식을 잠식해갔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악명높은 기술 때문에, 백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언론장악’이란 화두에는 언제나 요제프 괴벨스가 등장한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독일 제3 제국은 패망했다. 괴벨스는 언론을 장악하면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겠지만, 역으로 언론이 장악된 그 순간부터 제3 제국의 위기는 시작됐다. 언론의, 야당의 견제를 받지 않는 절대권력은 안에서부터 썩어들어갔고, 위기의 순간 현실을 직시하고 판단을 조언할 참모는 사라졌다.

‘언론장악’이라는 착각

백 년 전까지 갈 것도 없다. 언론장악 이후 벌어진 권력의 비참한 말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그는 집권 후 늘 언론을 통제해 왔다. 기자들을 위협하기도 하고 유착하기도 하며 언론을 주물렀다. 비판적인 보도로 많은 청취자를 확보하고 있던 동아방송의 뉴스쇼를 폐지하고 사상계의 장준하 선생은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언론자유 수호 선언을 주도한 기자들은 해직됐고, 한국신문협회는 “향도적 사명을 수행하겠다”라는 항복문서를 썼다. 그 결과 박정희 정권은 언론의 열렬한 찬양과 환호 속에 권력을 유지해 나갔다.

하지만, 흐르는 물을 가래로 막을 수는 없다. 박정희 정권 말기, 유신 독재 시대 언론사의 보도는 끔찍할 만큼 평화로웠지만, 진짜 뉴스와 정보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어졌다. 박정희 정권은 착각한 것이다. 언론사를 통제했다고, 언론을 통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위기에 봉착한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만 연이어 발동했다. 그렇게 눈과 귀를 가리고, 국민의 입을 막으면 종신 집권이 가능하다고 봤겠지만, 민주주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결국 저항 운동이 시작됐고, 부산, 마산으로 이어졌다. 정권 내부에서 위기감이 팽배해졌고, 권력의 말로는 10.26으로 이어졌다.

 

전두환 정권도 마찬가지다. 신군부는 권력의 정점에 오르자마자 비상계엄령을 통해 1년간 언론 보도 1만여 건을 삭제했다. 언론을 통폐합하며 기자들을 관리했고, 관리되는 기자들을 대상으로 보도지침을 쏟아냈다. 신군부는 마찬가지로 언론사만 통제하면 영구 집권이 가능할 줄알았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할 리 없다. 보도가 통제된 광주의 참상은 수년이 흐르는 동안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져갔고, 결국 19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이어졌다. 기자들의 수를 줄이고, 방송국에서 ‘땡전 뉴스’를 아무리 내보내도, 통제된 것은 언론사였을 뿐, 언론의 기능 그 자체가 아니었다. 전두환은 결국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적 항쟁에 봉착했고, 백담사에 유폐됐다가 감옥으로 갔다. 비록 사면되었을지언정, 영원할 것 같았던 그 독재자는 대다수의 국민에게서 미움을 받는, 조롱거리가 됐다.

괴벨스와 히틀러로부터 박정희와 전두환까지, 독재정권은 늘 언론을 장악하려 해왔지만, 그 결말은 늘 초라하고 비참했다. 언론장악이 그들의 집권 기간을 좀 늘리는 데는 도움이 됐을지언정, 그 반작용은 더 강력했다. 당장 감기를 치료하겠다며 항생제를 들이붓다간 장염에 걸리기 마련이다.

언론에 대한 착각

민주화 이후에도 언론장악 시도는 있었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은 집권 후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언론장악 계획을 세웠다. 그 세력이 해 왔던 일이 늘 그러하니, 사실 예견된 순서긴 했다.

이명박 정권은 정연주 KBS 사장을 감사원을 동원해 해임하고 캠프 출신 낙하산 사장을 임명했다. MBC도 YTN도 마찬가지였다.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내고 이에 저항하는 기자·PD들을 숙청했다. 박근혜 정권은 이명박 정권이 닦아 놓은 언론장악의 길을 그대로 걸었다. 청와대 홍보수석 이정현은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세월호 보도를 통제하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의 언론장악은 그 이전과는 전개 양상이 매우 달랐다. 당연한 결과였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언론사는 장악할 수 있어도 언론은 장악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저들이 더욱 간과했던 것은 기술의 발전이다. 과거 언론사의 역할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대자보를 쓰고 유인물을 찍어 나눠주는 번거로운 일을 거쳐야 했다. 시간도 돈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강릉에서 군이 발사한 미사일이 낙탄했고, 군은 이 사실을 즉각 알리지 않았다. 또 언론사에 엠바고를 요청하며 정보 유통을 통제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과거에는 잠시라도 그게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이미 강릉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은 사건 직후부터 SNS 등을 통해 유통됐다.

이전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은 언론사를 통제하면 언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네이버를 정복해도 세상에 정보를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은 어디에나 있다.

언론 통제는 불가능했고 언론 통제자는 비극 맞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지금 그 실패를 되풀이하려 하고 있다. 감사원을 동원해 KBS 사장을 겨누고 있고, MBC를 검찰을 통해 압박하려는 기미가 보인다. 양대 공영방송 사장을 바꾸고 연합뉴스·YTN 사장을 바꾸고 민영화하면, 또 비판 언론으로 가는 정보를 적절히 통제하면 언론을 장악할 수 있으리라 믿는 듯하다. 여기에 검찰이 가진 권력으로 오랜 기간 언론을 컨트롤 해 왔다는 자신감도 배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불가능하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도, 그 누구도 언론을 완전히 통제해내지 못했다. 하물며 전 국민이 언론의 기능을 갖게 된 시대에 몇몇 언론을 통제한다고 정보의 유통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몇몇 언론을 쉽게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뜻이 있는 공영방송 노동자들은 뉴스타파를 만들고 리셋KBS를 만들어 감춰놓은 정보를 찾아내고 이를 보도했다.

언론은 통제할 수 없지만, 언론을 통제하려 시도했던 자들의 결말은 늘 비슷했다. 히틀러와 괴벨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박정희는 부하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전두환은 사면됐으나 사형 선고를 받았고, 노태우도 감옥에 갔었다. 이명박과 박근혜 역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하며 전직 대통령의 예우도 박탈당했다. 그런데 이 정권은 할 수도 없고, 결말도 뻔한 일을 두고. 자신들의 끝없는 욕심을 위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다들 아는데 그들만 모른다. 그거, 안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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