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선물한 한국현대사 강제 산책

“한국 현대사 70년이 두 달 동안 압축적으로 전개된 모습”

국민의힘의 신임 당대표를 선출하는 3·8 전당대회에 관한 필자의 한 줄 논평이다. 일반 국민에 대한 여론조사 없이 오로지 당원들로만 선거인단이 구성돼 실시되는 전당대회의 경선전은 김대중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유력 정당의 제왕적 총재로 제각기 군림하며 여의도 정치권을 호령하던 고색창연한 3김시대로 국민의힘이 통째로 회귀한 모양새였다.

용산 대통령실이 집권여당의 당대표를 사실상 하향식으로 지명하려는 움직임은 전두환과 노태우 두 군인 출신 대통령이 청와대 밀실에서 누가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 될지를 일방적으로 낙점하던 권위주의 시대를 연상시켰다.

나경원 전 의원이 당대표 경선 출마 의사를 피력하자마자 장제원 의원을 비롯한 윤핵관들이 수십 명의 초선 국회의원들을 동원해 연판장까지 돌려가며 나경원의 불출마를 조직적으로 일제히 압박한 사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자유당 정권 시대를 최첨단 인공지능 프로그램 챗GPT가 장안의 화제로 떠오른 2023년으로 느닷없이 소환한 형국이었다. 친윤세력의 나경원 조리돌림이 드라마 「야인시대」에서의 동대문파 조직원들의 협객 시라소니 집단린치만큼이나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던 까닭에서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무지막지한 철권통치를 펼치던 유신체제 시대 역시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연진에서 빠지지 않았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 국면의 키 플레이어는 단연 용산 대통령실이다. 대통령실은 ‘윤핵관’과 ‘윤안연대’라는 표현을 다시는 쓰지 말라고 협박조로 경고하며 안철수 의원의 입에다 거칠게 재갈을 물렸다. 단지 ‘개헌’이란 특정 단어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야당 정치인들과 내로라하는 재야인사들은 물론이고 평범한 보통의 시민들까지 서울 남산 중턱에 위치한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연행해가 흠씬 두들겨 팬 다음 감옥에 처넣던 저 악명 자자한 긴급조치가 자유의 수호자이자 신봉자임을 자처하는 윤석열 대통령 치하에서 완벽히 재림해 발동된 격이었다.

‘참여정부 집권기’ 또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억지로 차출당하는 수모 아닌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며 ‘수석 윤핵관’으로 통해온 장제원 의원이 열린우리당 실험이 당정분리 기조를 무모하게 고집한 탓에 실패했다며 생뚱맞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걸고넘어진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공식 출범 이후 등장한 거의 모든 역대 정권이 집권 당시에 표방했던 이념과 노선에는 관계없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차례차례 출석 체크를 당하는 황당한 양상이 빚어졌다고 하겠다.

정당 민주주의가 파괴되면 나라의 민주주의도 파괴돼

우리나라 헌법 제8조는 정당에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두 가지 사안이 핵심이다. 첫째는 ①항에 규정된 복수정당 제도의 보장이다. 대한민국이 일당독재가 고착된 현재의 중국이나 북한과 결정적으로 차별화되는 요소이다. 둘째는 ②항에 명문화된 정당의 민주적 운영이다. 그 조직과 활동이 민주주의적 원리원칙에 충실히 근거해야만 한다는 명령이다.

지금의 한국은 일당독재를 하고 싶어도 여간해서는 할 수가 없는 풍토다. ‘이당독재’로 손가락질당해도 항변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 기득권 양당이 오랫동안 적대적 공생을 구가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당독재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지만, 정당의 조직과 활동에서 당내 민주주의가 유린·훼손될 위험성은 항시 높은 가능성으로 상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내 민주주의가 무력화될 확률은 야당과 비교해 여당에 더 크기 마련이다. 당권파의 전횡에 분노하고 항거하다 입을 수 있는 불이익의 강도와 피해 규모가 여당과 야당이 다르다. 야당에서는 선거에서 공천장을 받지 못하거나, 비중 있는 당직을 맡지 못하는 수준에 그친다. 반면, 집권당에서 당의 주류와 척을 지는 선택은 대통령을 위시한 정권 수뇌부의 눈 밖에 나면서 자칫하다간 검찰과 경찰, 국세청과 국정원과 금융감독원 등의 막강한 공권력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위험천만한 길이 되기 십상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자발적 승복과 소수를 향한 다수의 존중과 배려를 전제한다. 자발적 승복을 이끌어내려면 경쟁의 규칙과 절차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존중과 배려의 핵심은 오늘의 패자가 꾸준히 실력을 기르고 단점을 부지런히 보완하면 내일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데 있다.

허나 한국의 정당에서는 이 당연한 명제가 좀처럼 실천에 옮겨지지 않아 왔다. 승복하지 않기에 짓누르는지, 혹은 짓누르니까 승복하지 않는지를 논하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처럼 지루하고 소모적 일일 수 있다. 관건은 정당이 민주적으로 꾸려지지 않으면 국가도 민주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는 부분에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민주주의 열방들은 해당 국가의 주요 정당들이 민주적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나라는 독재체제인데 정당들은 민주적이거나, 아니면 정당들은 민주적인데 국가가 비민주주의적인 경우는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찾기가 곤란하다. 특히나 비민주적 여당이 민주적으로 국정을 관리하는 사례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전무후무하다시피 하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패 달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여당의 정당 민주주의가 정상적 궤도에서 탈선한 상황은 나라 자체의 민주주의에 적신호가 켜졌음을 뜻한다. 민주주의가 종말을 고하는 과정은 여당이 야당을 악랄하게 탄압할 때가 아니라 여당의 주류가 같은 여당 내부의 비주류를 모질게 박해할 적에 시작되기 쉽다.

예를 들어 박정희는 유신체제를 선포하기에 앞서서 삼선개헌을 반대하는 당내의 김종필 계파원들부터 사전에 이 잡듯이 모조리 샅샅이 뒤져 잡았다. 스탈린과 김일성의 전체주의적 일인독재 시스템은 전자가 영구혁명 이론의 제창자 트로츠키를 소련공산당 정치국에서 추방한 순간에, 후자가 남로당 지도자 박헌영을 미국의 간첩으로 음해해 숙청한 시점에 실질적으로 완성되었다.

당내 민주주의가 고사하면 머잖아 나라의 민주주의도 질식당하는 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준석을 극우 유튜버들의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을 구실로 삼아 국민의힘의 당대표직에서 축출한 행동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징후로 포착·해석돼야 옳다. 민심의 척도인 여론조사 결과까지 제대로 반영된 공정하고 민주적인 경선을 거쳐 뽑힌 정당하고 합법적인 새롭고 참신한 당대표를 낡고 부패한 구정치인들과 끈끈하게 유착된 현직 대통령이 힘으로 몰아낸 사건을 윤석열과 이준석의 개인적 감정싸움쯤으로 단순하고 가볍게 치부해선 안 된다.

그러므로 필자는 3월 8일로 예정된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흥폐를 가르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걸로 전망하고 있다. 당내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여세를 몰아 나라의 민주주의마저 붕괴시키려 획책하는 구태 기득권 세력이 이기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1987년의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래로 최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정당의 민주주의가 유지·보전되어야 본인들의 장기적 정치적 활로가 개척·확보된다고 믿는 개혁보수 흐름이 승리하면 검찰이 주도하는 작금의 살풍경한 신공안정국에 드디어 확실한 마침표가 찍히면서 현 정권 들어와 줄곧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사회 각 분야의 민주주의의 시곗바늘이 다시금 앞으로 힘차게 나아갈 개연성이 짙다.

정당의 민주주의와 나라의 민주주의는 입술이 사라지면 이가 시려지는 순망치한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형성해왔다. 이제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유권자인 책임당원들이 애당초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한국의 민주주의를 사수하기 위한 최전선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최전선에서 권력의 광기 어린 폭주와 횡포에 최선을 다해 용감히 맞서 싸우는 젊은 후보의 건투를 빈다. 당신 어깨에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무거운 짐이 실렸다. 지금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일 터이다.

(* 이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평화나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