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 한문덕 목사 (생명사랑교회)
찬양인도 : 천광우목사
'비전', '죽임 당하신 어린양'
패널 : 오광석
진행 : 이경은

묵시문학의 전통 따른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저자는 본문(6:1-8)에서 특별히 구약의 묵시 문학 전통을 인용한다.  오늘 본분에서는 네 종류의 붉은 말 탄 사람을 보내는데, 이들을 보내는 목적은 이 땅의 현실을 두루 살피기 위함이다(슥1:7-17). 그 결과, 땅이 조용하고 평온하다고(11절) 했지만, 그것은 12절에 가짜 평화로 나타난다. 마치 로마 제국 전체의 지배층을 보면 아무 문제 없이 평온해 보이지만,  서민들의 괴로운 현실을  의미한다.

첫째 봉인

어린양이 첫 번째 봉인(2절)을 떼니, 흰 말 위에 탄 사람이 활을 가지고 있는데, 그는 말을 타면서 활을 쏠 수 있는 사람이다. 참고로 이것은 고대에 엄청난 기술이다. (몽골, 파르티아 제국이 이 기술로 유명함) 흰 말을 탄 자가 면류관을 쓴 채 이기려고 나아가는데, 이는 다시 로마 제국이  전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칠 것이라는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현실 가운데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구원받는 사람들이 14만 4천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땅의 현실은 다시 군사주의가 대두되면서 면류관을 새로 쓰려는 자에 의해 군사 확장 정책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봉인

두 번째 봉인(4절)을 떼니, 전쟁에서 이긴 지배자가 평화를 없애버린다. 그리고 평화를 없애는 사람이 큰 칼을 가지고 있다. ‘큰 칼’은 헬라어에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롱파이아’이고, 다른 하나는 ‘마카이라’이다. ‘롬파이아’는 전쟁할 때 직접 쓰는 무기이고, ‘마카이라’는 ‘지배자의 통치 권력’을 상징하는 칼이다. 여기서 사용된 것은 ‘마카이라’이다.  즉 두 번째 땅의 현실은 군사주의의 확장과 지배자의 무력 통치의 정치적 억압 상황을 묘사한다.

셋째 봉인

이어 경제적 억압이 이어진다. 어린 양이 셋째 봉인(5, 6절)을 떼니, 검은색 말 한 마리가 있는데, 위에 탄 사람은 손에 저울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생물 가운데서 음성이 들리는데, “밀 한 되도 하루 품삯이요. 보리 석 되도 하루 품삯이다. 올리브기름과 포도주에는 해를 끼치지 말아라.”라고 말하였다. ‘밀 한 되’는 한 명이 하루 먹을 양이다. 보리는 밀보다 품질이 떨어지기에 석되이다. 결국, 당시 원래의 하루 품삯보다 더 적은 양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하루 품삯으로 ‘밀 한 되’, ‘보리 석 되’를 받으면 혼자 소화할 양 일뿐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 그런데 올리브기름과 포도주에는 해를 끼치지 말라고 말한다. 곡식은 민중들의 양식이다. 그러나 곡식을 심으면  손이 많이 가기에 일꾼을 많이 써야 하고, 급료도  높아진다. 그래서 일꾼을 제일 적게 보내고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것 중 1위가 포도였다. 포도나무를 심어놓고 그냥 두었다가 가을에 한번 일꾼을 불러서 즙을 짜고 팔면 되었다. 그러므로 이 상황은 ‘빈익빈 부익부’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군사적으로는 군사주의가 확장되고, 정치적으로는 전쟁에서 이긴 지배자가 억압하고, 경제적으로는 가진 자들의 횡포가 극에 달했다.

넷째 봉인

이제 어린 양이 넷째 봉인(7, 8절)을 떼니, 청황색 말 한 마리가 있는데, 위에 탄 사람의 이름은 사망이고, 지옥이 그를 뒤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칼과 기근과 죽음과 들짐승으로서, 3분의 1에 이르는 땅의 주민들을 멸하는 권세를 받았다. 이런 사회 속에서 기득권 세력은 죽은 사람에게 신경도 안 쓴다. 이것은 지옥과 죽음의 체제가 가득한 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섯째 봉인

그러면 지배 계급이 아닌 일반 백성들의 삶은 어떻게 되는가? 어린 양이 다섯째 봉인(9, 10절)을 떼니, 자신이 한 증언 때문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이 보였다. 그들은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거룩하시고 참되신 지배자님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지배자님께서 땅 위에 사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우리가 흘린 피의 원한을 풀어주시겠습니까?” 이것이 당시 현실이었다. 여기에 요한계시록에 딱 한 번 언급되는 거룩하시고 참되신 지배자님(대 주재)이라는 말이 나온다. 저자는 오직 하나님만을 대 주재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당시 로마 황제가 대 주재인데, 하나님만을 지배자라고 불렀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었고, 바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은 것이다. 에녹서에 보면, 이때 그들이 당한 처절한 상황을 잘 알려주는 글이 있다. (에녹1서 103:9-13 참조 *별첨) 하늘 보좌에 하나님이 계시고, 옆에 어린양이 계시는데 일곱 봉인을 뗐더니, 땅의 현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런데 윗사람들은 지금 로마가 평온하다고 생각했다.

흰 두루마기를 받았다(11절)는 것은 로마 황제를 섬기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이미 인정받은 것이다. 비록 아직도 고난과 고통이 더 있을 것이지만, 때가 차면 분명히 하나님의 손길이 펼쳐질 것이니, 오히려 지금은 그런 것을 준비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위로한다.

여섯째 봉인

여섯째 봉인(12-14절)을 떼니, 세상의 종말 현상이다(겔38:19; 사:50:3; 욜2:10; 사34:2, 4 참조). 이는 불의로 가득한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고, 이러한 역사적 파국 예고에 권력자들은 두려워 떨게 된다. 중요한 것은 세도가들에게 빌붙어 사는 자유인과 노예들도 똑같이 당할 것이라는 선포이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한다고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7장에서 천사 넷이 각각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바람을 막아주는데, 하나님의 종들 이마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는 그들을 해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선포한다(7:1-8). 하나님이 불의 가득한 세상에서 이마에 도장 찍은 사람들은 살려주실 것인데, 그 수가 14만 4천 명이다. 이는 열두 지파와 열두 제자 즉, 신약의 백성들과 구약의 백성들을 합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상징이다. 1000이라는 숫자는 고대에 가장 많은 수를 나타낸다. (일천번제, 천대까지의 은혜 참고) 종합하면, 14만 4천 명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상징한다.

하늘 보좌 옆에는 모든 민족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흰 두루마기를 입었다. 이것은 이 땅에서 고통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7:9-17).

일곱째 봉인

이제 마지막 일곱째 봉인(8:1-5)을 떼니, 하늘의 성가대가 잠시 고요해지는데, 이는 일곱을 매듭짓고 다음 일곱으로 넘어가는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보여주는 동시에, 땅에 있는 사람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있음을 선포하면서,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별첨 (에녹1서 103:9-13)

우리의 곤경의 날들에 우리는 정말로 여러 가지 고난을 당했고 온갖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는 많은 악한 것들에 직면했고 지쳤다. 우리는 죽었고 소수가 되었으며, 그리고 우리의 정신은 약해졌다. 우리는 살해되었고 우리는 말로써든지 다른 것으로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전혀 찾지 못했다. 우리는 고문을 당해 파괴되었고, 그리고 우리는 하루를 살고 나면 그다음 날에도 생명을 부지하는 것을 희망할 수조차 없었다. 우리는 머리가 되길 희망했는데 꼬리가 되었다. 우리는 일터에서 고된 일을 했지만, 우리의 수고에 대한 권한은 전혀 없었다. 우리는 죄인들과 압제자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멍에를 우리에게 무겁게 지었다 막대기로 우리를 때리고 괴롭히면서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주인들이 되었다.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우리의 목을 굽혔지만, 그들은 우리를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피신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그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원했지만, 그러나 우리는 도망가서 그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장소를 전혀 찾지 못했다. 당시 우리의 환란 속에서 우리는 사법 당국에 그들을 고발했다. 고함을 지르면서 우리를 삼키고 있던 자들을 비난했지만, 당국은 우리의 외침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듣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이와 반대로 당국은 오히려 우리를 강탈하고 삼켰던 자들과 우리를 한 사람씩 죽였던 자들을 지원해 주었다 당국은 그들의 불의를 숨겼으며 그리고 우리를 삼키고 우리를 흩어지게 하고 우리를 살해하는 자들의 멍에를 벗겨주지 않았다. 당국은 우리가 당한 학살을 은폐하고 압제자들이 손을 쳐들고 우리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았다.

정리/천광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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