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 한문덕 목사 (생명사랑교회)
찬양인도 : 유기농수도사
'이곳에서', '감사와 찬양 드리며'
패널 : 오광석
진행 : 이경은

재앙을 상징하는 일곱 나팔 중, 여섯 나팔이 울렸고 여섯 재앙이 일어났다. 이때 전갈 메뚜기가 등장했었다(계9:12 참고). 그리고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유프라테스강에 매여 있었던 천사가 풀리면서 2억(이만x만=2억)의 기마대가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인구 3분의 1을 죽였음에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다(계9:20-21 참고).

펼쳐져 있는 두루마리

이런 맥락에서 그 머리 위에는 무지개가 있고, 얼굴은 해와 같고, 발은 불기둥 같은 천사가 새로운 전령으로서 구름에 쌓여 내려온다(10장). 이때 봉인되어 있던 일곱 두루마리와는 달리 펼쳐져 있는 다른 두루마리가 나온다. 이 천사는 이 두루마리를 봉인하여 기록하지 말라(4절)고 전한다. 일곱 번째 나팔이 울리면 더 강력한 심판이 다가올 것이다. 종말이 누군가에게는 심판이고, 누군가에게는 완전한 구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그때가 마지막이다(7절). 그날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때, 저자에게 펼쳐진 두루마리를 받아먹으라는 음성이 들려온다. 저자는 이 두루마리를 입에는 달지만 배에는 쓰다고 표현하는데, 그 이유는 구원받은 14만 4천 명에게는 복음이므로 입에 달지만, 실제 역사 속에서 버텨야 할 고난과 인내를 상징하기에 쓰다고 표현한다. 예언자의 현실은 여전히 포악한 로마 제국 아래에서 증언해야 하기 때문이다(11절).

새롭게 등장하는 두 증인

이제 11장에서 또 다른 예언이 등장한다(1-14절). 일곱째 재앙 전, 새롭게 등장하는 두 증인은 강력하게 복음을 증언하다가 죽임까지 당한다. 그러나 핵심은 이들의 부활이다. 따라서 이 예언을 읽는 사람들은 부활을 바라보며 더 적극적으로 로마 제국에 저항하고, 예배하고, 하나님 말씀을 증언하는 일에 충실하게 될 것이다.

두 증인은 지팡이와 측량자를 받았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고, 성전에서 예배하는 사람을 계수한다. 그러나 성전 밖은 측량하지 말라고 한다. 측량은 새로 건축하거나 보수할 때 하는 것이기에, 성전을 회복하겠다는 의지이다 (겔40장 참고). 여기에서 성전은 특별히 소아시아에서 박해받는 일곱 교회를 상징하고, 하나님의 성전인 기독교 공동체의 재건을 의미한다.

이처럼 성전 안쪽은 회복하고 보호받지만, 성전 밖은 42개월(한 때=1년, 두 때=2년, 반 때=반년 =3년 6개월) 동안 짓밟힌다(단7:25; 12:7 참고). 바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침공하여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유대인을 핍박하던 기간을 의미한다 (다니엘서 기록 시기의 배경).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제단을 측량하신 것이다.

두 증인의 예언

두 증인은 1260일(30일x42개월) 동안 예언하는데, 죽음을 상징하는 상복(원어: 굵은 베옷)을 입었다. 큰 슬픔으로 회개를 촉구한다. 그들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 주님 앞에 서 있는 두 그루의 올리브 나무와 두 개의 촛대로 나타난다. 이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할 때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여호수아 제사장과 왕의 역할을 했던 스룹바벨 총독을 상징한다(스가랴 참고). 그들은 왕이며 제사장이며 곧 예언자이다.(5-6절). 그들은 권세가 있는 자들로서 입에서 불이 나와서 원수를 삼켜버리며(왕하1:10-14 엘리야, 렘5:14 예레미야 참고), 하늘을 닫아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하게 한다(왕상17: 11 참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몇 번이든지 땅을 칠 수 있는 권세가 있다(모세 참고). 이들은 곧 제사장이자 왕이고, 예언자로서의 역할도 모두 감당한다.

그렇다면 왜 둘인가? 이는 증언의 효력 때문이다. 초대 교회가 세상에 증언자를 보낼 때는 반드시 두 명씩 파송했다. 그러나 ‘무저갱’이라고 불리는 ‘심연(아비소스)’에서 짐승이 올라와 이들을 죽이고 큰 도시의 넓은 거리에 버린다. 이 큰 도시는 바벨론이다. 당시는 로마를 바벨론이라고 불렀다. 로마는 폭력 때문에 망한 영적으로 소돔과 같은 도시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예언자들의 시체를 무덤에 안장하는 것을 사흘 반 동안 허락하지 않은다. 왜 사흘 반일까? 사흘은 예수님이 무덤에 있던 시간인데, 예수님처럼 죽었다가 부활하는 모티브가 있는 것이다. 앞서 살핀 것처럼, 예언자들이 3년 반(42개월) 동안 증언하고 죽기 때문이다.

부활과 심판

이렇게 사흘 반이 지난 뒤, 하나님이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고(창2:7 참고), 마른 뼈들을(겔37장 참고), 살리신다. 이 두 예언자는 예수님처럼 부활하고 승천한다. 이들이 승천하는 모습을 다 지켜보는 가운데 지진이 일어나고 도시의 10분의 1이 무너지면서 7천 명이 죽는다. 일곱 번째 재앙이 아직 오기 전에 이런 일이 벌어지니, 남은 자들이 모두 두려워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구약에서는 살아남은 자가 바로 7천 명인 반면(왕상19:18 참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심판받은 자가 7천 명이다. 심판받은 자들을 통해서 도시의 10분의 9인 나머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렇게 둘째 재앙은 지나갔고, 이제 셋째 재앙, 곧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을 분다(15-19절). 그리스도교는 과거,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서 오시는 분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장차 오실 자’라는 표현이 빠졌다. 왜냐하면 이미 오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이미 권세를 잡으셔서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제는 드디어 마지막 나팔로 종말의 때를 알린다. 이것은 축제의 나팔인가? 더 큰 심판의 나팔인가? 하늘이 열리고 성전을 보니, 거기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인다. 언약궤 안에 든 것은 십계명 돌판이지만, 이는 하나님이 확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보여주는 것이고, 마침내 번개와 천둥과 지진과 우박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면서, 종말을 시작한다(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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