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 칼럼] 아니면 ‘김장환 데뷔 집회’

1973년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연인원 334만 명을 불러 모았던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년이 지났다. 이를 기념한 대회가 지난 주말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있었다. 빌리 그래함을 앞세웠지만 실은 김장환 데뷔 50년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부흥사 빌리 그래함을 불러 여의도광장(현 여의도공원)에서 연 대규모 전도 집회. 그가 무슨 메시지를 남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통역했던 김장환(행사 상임고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여태 귓가에 쟁쟁하다.

이 행사를 계기로 김장환은 그야말로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 친구 카터의 대통령 당선과 맞물려 대표적인 미국(보수정치)통으로 통하게 됐다. 처음에는 김장환을 미국 스파이로 의심했지만, 박정희는 훗날 그를 미국 정치와의 네트워크로 활용했고, 광주학살을 앞두고 ‘실세 중 실실세’ 전두환은 수원 인계동 그의 집을 찾아가 줄 댔다. 군부독재자만인가? 촛불혁명으로 2017년 집권한 문재인도 김장환을 통해 트럼프의 측근과 연을 이으려고 했다. (그 측근이 바로 빌리 그래함의 아들이자 이번 집회 강사인 프랭클린 그래함이다.)

1973년 그 집회가 당시 유신독재에 지배당하고, 압축성장 시대에 부품처럼 취급받던 민중에게 무슨 큰 도움이 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하다못해 기독교 교세 성장에 결정적 전기를 마련했는지 뚜렷하게 정량화하기 어렵다. (이미 한국 개신교인수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상승세를 탔는데 1970년대 초에 특별한 ‘가파름’은 없었다. 어떤 지표는 완만한 상승세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50주년 집회라, 트윈폴리오가 다시 모여서 추억의 콘서트를 하는 것처럼 빌리 그래함과 김장환이 다시 연단에 서는 것도 아니고, (빌리 그래함은 이미 고인이다) 빌리 그래함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이 주 강사로 나서는 일이라면 모양이 이상하다.

결국 김장환의 데뷔 50년 행사라고 보는 것이 옳다. 행사의 주관부터 인원 동원을 위한 바람잡이 모두 그가 회장으로 있는 극동방송이 도맡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빌리 그래함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은 과연 아버지의 50년 전 한국 활동의 맥을 이을 정신적 신앙적 유산을 계승했는지 점검해야 한다. 아버지 빌리 그래함은 ‘정치 목사’라는 혹평은 있었어도 가톨릭은 물론 성 소수자에 대해서도 벽을 쌓지 않았고, 북한도 방문해 평화의 사도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아들은 수년 전 경찰 흑인간 충돌 사태 때 저항한 흑인을 향해 아무리 경관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할지라도 당신은 복종하라”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그 배경에는 근본주의 기독교의 틀에 갇힌 백인 복음주의(White Evangelicalism)가 깔려있다. 실제로 프랭클린 그래함은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2007년 단 한 명뿐이던 흑인 직원으로부터 전도협회 인종차별 문제로 항의받다가 파면했고 피소되기도 했다. 

관련해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대학교에서 교회사를 전공한 최은수 교수가 ‘교회와신앙’에 기고한 글이 있다. “프랭클린 그래함이 언급될 때마다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돌아온 탕자라고 말하듯이, 그는 인격과 성품이 형성되던 중요한 시기를 지내면서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늘 부재중인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라고 했다. 요컨대 부흥사로 전미, 전 세계를 돌아다니던 아버지와의 부자간 신뢰가 원만치 않았다는 점이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사로 치부하기엔, 50년 전 빌리 그래함 ‘부흥 사역’을 “재현”한다는 이번 대회 주최 측 선전 문구는 과도하다.

게다가 최 교수는 “프랭클린 그래함은 신학훈련을 받지 않았고 성경과 교리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초급대학을 마치고 주립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았을 뿐 신학훈련을 받지 않았다”라고 밝힌다. 아버지와의 관계와는 별개로, 목사의 자격에 의문을 품게 한다.

이런 가운데 빌리그래함전도협회의 이사회를 두고도 뒷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최 교수는 “전도협회 이사회 가운데 네 명이 가족이고 그중에서 세 명이 최고위급 실권자들”인데 이사회 의장이 프랭클린 그래함이다. 부의장은 빌리 그래함의 손자이자, 프랭클린 그래함의 아들이다.

제대로 된 신학 수업도 없이 아버지에 대한 저항심을 품고 살아온 사람, 프랭클린 그래함. 그는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 이사장으로, 또 본인이 이끄는 기독교 구호단체 ‘사마리아인의 지갑’ 대표로 급여를 포함, 2014년 한화로 13억 원 규모의 연봉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논란이 되자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 연봉은 안 받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1년만 그렇게 했고 다시 연봉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의 물적 토대 또 명성을 계승하면서 정신마저 계승한 것인 양 행세하는 점은 한국에서 낯익다. 바로 ‘세습’이기 때문이다. 아들 그래함의 통역사로 나선 사람은 명성교회를 물려받은 김하나였다. 주관하는 극동방송 말고 명성교회마저 왜 이 전도 집회에 교인을 동원하려 했는지 의문이 풀렸다. 대회장이 차기 예장통합 총회장이자 9월 교단 총회를 명성교회에서 열려고 하는 김의식이라는 점에서도 밑자락이 있었지만. 

이 집회는 ‘김장환 데뷔 50년 행사’가 주제라면 부제는 '한미 교회 세습 정당화 축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거기서 무슨 은혜와 복음이 있다고 하는지, 모인 교인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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