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 한문덕 목사 (생명사랑교회)
찬양인도 : 유기농수도사
'고백', '송축해 내영혼'
패널 : 오광석 / 진행 : 이경은

새로운 세상, 즉 새 하늘, 새 땅에서는 정의와 평화가 깃들고, 생명을 해하는 폭력이 사라져야 한다(벧후3:13 참고). 그래서 이사야서는 상징적으로 이리가 풀을 먹고, 사자가 여물을 먹는 비전을 말한다(사65:17-25 참고).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역시 이전의 하늘과 땅, 바다는 사라지고, 구약에서 이미 예언한 새 하늘, 새 땅이 등장한다(21:1-8). 다만, 이사야서와 요한계시록의 차이라면 이사야서에는 여전히 죽음이 남아있지만, 요한계시록에는 죽음도 없다. 요한계시록 저자의 관점에서 죽음은 가장 두려운 것이기에, 진정한 새 하늘, 새 땅에서는 죽음도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본문에는 비겁하고 신실하지 못한 자들이 차지할 몫이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바다’(8절)라고 말한다. 혼돈과 두려움의 상징인 바다가 아직 남아있다. 이는 바다가 영원히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유황불못’이 존재하지만, 신실한 순교자들은 그것이 없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땅에는 바다가 사라진다. 역시 저자는 아직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온전한 신앙으로 돌아오라 권면한다.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 새 하늘, 새 땅이 있고,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 나아가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겔37:27 참고). 흔히 천국으로 간다고 말하지만, 천국은 이 땅 가운데 오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 가운데’라고 말한다. 여기서 사람들의 원어는 ‘라오스’인데, ‘라오스’는 일반적인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즉 모든 사람 가운데로 천국이 온다. 여기에는 모든 민족의 왕들도 포함된다. 다만 그들이 한때는 왕이었을지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모두 평등한 공동체의 일원이다. 새하늘 새땅에는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고, 울부짖음도 없다(사25:8 참고). 그리고 목마른 사람은 로마 제국과는 달리 생명수 샘물을 거저 마신다(사55장:1 참고). 돈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상황에 반대하는 맥락이 내포되어 있다. 이처럼 구약에서 이미 선포된 비전들이 요한계시록 저자를 통해서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새 예루살렘은 한 번도 보지 못한 보석들이 등장한다. 로마 제국에서 극소수의 상류층만 누릴 수 있었던 경제적 사치가 모두 사라지고, 도성에 들어간 모든 사람은 누구나 부를 누릴 수 있는 것이 된다는 의미이다. 도성 열두 대문은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다. 그 대문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적혀 있고(12절), 성벽의 주춧돌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적혀 있다(14절). 이처럼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새로 생긴 기독교공동체를 이어주며 모두가 하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도성은 네모반듯하게 지어졌는데,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2,000(12x1,000)스타디온(2,304km)이다. 즉, 열두 지파의 수(12)와 고대의 가장 큰 수(1000)를 곱하여 더 이상 셀 수 없는 완벽 수를 의미한다.

성전이신 어린양

여기서 일곱 대접 재앙에서 등장했던 음녀와는 대조적으로 어린 양의 신부가 등장한다. 예루살렘 도성 안에서 더 이상 성전을 볼 수 없다(22절).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어린 양이 곧 성전이기 때문이다. 성전이 없으니 제사장도 없다. 새 하늘, 새 땅에는 교회도 없고, 목사도 없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매개체는 모두 사라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로마 제국에 반대되는 새로운 비전의 대안공동체 세계를 만들어 간다. 바벨론에서 풀려나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제3이사야의 비전이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 로마에 빌붙어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권력을 쥐고, 은행 역할을 했던 제사장들도 사라진다. 시온주의처럼 열두 제자들이 새 하늘, 새 땅에서 또 다른 왕 노릇을 하는 개념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사는 평화적 개념이고,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포함한다.

이제 새 하늘, 새 땅이 만들어졌지만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늘과 땅의 구분이 없다(22:1-5).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 세상이다.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 이미지를 인용하지만, 추가로 그 한가운데는 어린 양의 보좌가 있고, 거기로부터 생수의 근원이 흘러 내려온 세상을 감싼다.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게 될 것이다(4절). 모든 것이 치료되고, 슬픔도 없고, 다시는 죽음도 없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이다. 드디어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이 서신서를 읽고 어떤 위로를 받았을까? 알파와 오메가와 같은 표현은 다 하나님께 사용했었는데 요한계시록에서 “나는 알파 오메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요, 시작이며 끝이다(13절).”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예수님이다. 이들에게는 예수님과 하나님이 크게 구별되지 않았다. 그리고 저자는 15절에서 끝까지 경고와 회개의 권면을 놓치지 않는다. 모든 문은 24시간 열려 있기에 누구나 들어올 수는 있지만, 바깥은 없는 것이다. 이는 마지막까지도 회개를 촉구하기 위한 역설적인 내용이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곧 오신다.’이다. 요한계시록은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함과 동시에, 회개를 촉구함으로 서신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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