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의 법적 기반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약칭 한미상호방위조약(韓美相互防衛條約)으로 1954년 11월 18일 발효한 대한민국과 미국 사이의 군사동맹에 관한 조약이다.

한국 전쟁 이후 북한의 재침략에 대비하고 러시아, 중국 등 지역 강호에 맞설 군사력을 미국이 제공하고, 한국은 미군에게 영토를 제공했다. 미국으로선 대륙의 첫 관문인 한국에 자신들의 영토와 기지를 확보하고 공산권을 견제하는 전진기지로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적극 활용했다. 그 후로 70년간 한미동맹은 언제나 굳건했다. 여야가 서로의 실정을 덮으려고 ‘한미동맹을 훼손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서로를 비판하긴 했지만, 보수와 진보할 것 없이 한미동맹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원내정당은 없었다. 한국 입장에선 미국은 맹방.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미국 입장에선 어땠을까? 전세계방위 사령부의 사령관 노릇을 반세기 넘게 하는 미국의 입장에선 태평양 건너 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존재감이 매우 낮은 여러 우방 국가 중 하나였을 뿐이다. 2019년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가 원유의 가치를 넘어서는 존재에 대해 발표하면서 이와 같은 상황은 조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원유는 세상 모든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이었다. 미국이 끊임없이 중동에서 전쟁을 일으키거나 중동 분쟁에 끊임없이 개입해 왔던 것은 석유라는 지상 최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영국의 권위 있는 보수 잡지 이코노미스트에서 원유의 가치를 넘어서는 존재로 Data(정보)를 세운 것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석유에 이어 등장한 Data의 1위 등극은 그 Data를 담는 도구, 즉 반도체의 중요성을 한껏 강조한 계기가 되었다. 반도체의 중요성이 전에 없이 높아지니 반도체 시장을 놓고 미국이 다방면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내수시장과 (상대적으로) 값싼 양질의 노동력을 구할 수 있었던 중국이 먼저 치고 나왔다. 중국은 반도체 생산 시장을 키우고 공격적으로 수입하던 삼성과 SK하이닉스의 반도체를 대체할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어떤 식으로든 잡아 중동 석유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은 반도체 전쟁에서 한국과 일본을 주요 파트너로 삼았다. 반도체 패권을 잠식해 들어오려는 중국을 막는 것이 최우선 임무가 됐다. 군사동맹이라고 하면 상호 간의 위험이 발생했을 때 그 위험을 막아주는 것이 일이지만, 허울 좋은 가치동맹은 경제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주변이 쓰러지든 말든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난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인해 장기간 저성장 늪에 빠졌으며 반도체에 있어서도 한국을 쫓아올 수 없는 궁지에 몰렸었다. 최근 일본은 미국과 공격적인 제휴를 통해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다시 한번 꿈꾸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높은 출산율, 탄탄한 중소기업, 세계 경찰 미국이 아시아 지역(최근 일본은 이를 ‘인도 태평양 지역’이라고 부르려 한다)의 관할권을 일본으로 이양하려는 움직임 등을 보이면서 다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일본은 전체 시장 규모에서 내수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80%나 되기 때문에 미국이 준비하는 대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타격 역시 그다지 크지 않고, 그간 중-일 관계라는 것이 서로 큰 기대 없이 비즈니스 차원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을 좇는다 해서 큰 문제가 될 게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어떤가? 지난 20년간 대한민국 수출 흑자의 80%가 대중무역에서만 들어질 만큼 중국과의 교역 비중은 막대하다. 작년부터 시작된 대중무역 적자는 멈출 줄 모르는 가운데 미국은 “중국과 미국 중 택일하라”라는 압박을 강하게 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을 강조하면서도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이 미국에 생산 공장을 세우고 중국과의 교역을 거의 끊는 수준으로 가져가길 원하고 있다. 최근 중국이 미국 마이크론 반도체의 중국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하자 미국은 재빠르게 “한국이 중국서 마이크론이 빠져나온 시장을 채워 선 안될 것”이라는 요구하고 나섰다. 시장 질서를 존중하고 기업의 자유를 보장한다던 윤석열 대통령은 그 약속을 뒷전에 밀어두고 삼성과 SK하이닉스에게 미국의 반도체 전쟁에 동참할 것을 강권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 엔비디아의 대표가 최근 미국에게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미국 빅테크 기업 매출의 30%가 중국으로부터 나오는데, 중국과의 거래를 끊으면 그만큼의 시장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미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반도체는 중국 아닌 어디에 팔 것인가? 중국 시장의 규모는 다른 곳에서 채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바이든은 2024년 11월 대선에서 승리를 위해 의욕적으로 LG, SK, 삼성 등 한국 회사의 미국 유치를 서둘러왔고 그 결실을 본인의 치적으로 자랑하기 바쁘다. 세계에서 가장 평균 학력 수준이 높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물건의 품질과 동일한 것을 미국 공장에서 뽑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도 상당히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문제는 미국 내 공장 유치가 실패한 것이 확인되는 시점에선 이미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된 이후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간 관계라면 몰라도, 가치 동맹을 맺고 자유민주주의 국가 간 교역량을 늘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 생각하는 속 편한 윤석열 대통령의 뒤에서 한번 웃어주고, 한번 등 두들겨 주고 말 그대로 탈탈 털어가는 바이든 행정부의 능수능란한 외교전에 장탄식이 나온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 역시 외무상 출신. 두 나라의 외교전에 ‘북한이 우리나라를 침공할지 모르니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 외엔 아무런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상대방이 달라는 것은 다 내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점을 지금이라도 직시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단기적 목표는 무엇일까? 지지율 상승이다. 장기 목표는? 2024년 대선 승리다.

민주당 내 경쟁자가 없는 구도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 관계도, 산업도 전부 자신의 대선을 이기는 발판 정도로 여길 것이다. G7에서 열렸던 120초짜리 굴욕적 한·미·일 정상회담의 다음 수순은 무엇이 될까? 미국 내에서 더 그럴싸한 그림과 조건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자기 양쪽에 불러 세워놓고 “일본과 한국이 이만큼 더 투자하기로 했다”, “러시아, 중국 등 대륙 세력에 공조해 대응을 위해 인도태평양전략을 본격화하고 일본이 책임을 맡기로 했다”

이는 미국이 인도 태평양지역에서 더 이상 예전처럼 큰 예산을 들여가며 군대를 운영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지상 레이더는 한국군에, 대잠함용 수중 레이더는 자위대에 각각 맡기고 한미일 3국 공동수역을 대한민국 동해상에 마련 대북 잠수함 탐지 능력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다.”라는 류의 합의문이 나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미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위해 미국은 중국 시장 견제가 필요하다. G7과 유럽연합을 포함해 두터운 공급망을 가진 미국의 입장에선 ASEAN 시장은 작게 느껴질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가치 중심의 외교정책을 펼치는 것을 넘어서 경제적 교류와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도 이념을 앞세우겠다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 아니던가? 문재인 대통령이 대중 무역 감소를 예측하고 ASEAN 10개국 정상을 다 만나며 ‘신남방 정책’을 펼쳐왔다. 그 큰 결실 중 하나가 이번 인도네시아에 들어서는 현대차 아이오닉 생산 공장이다. 이 아세안 10개국 중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소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반열에 올라 우리와 함께 ‘가치 중심의 외교’를 벌일 수 있는 나라는 얼마나 될까? 아니 아시아 국가 중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의 자유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나라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러면 남은 나라와의 교역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바이든 대통령이 대중무역 갈등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쓰러지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줄까? 내년 대선 재선 가도에 도움이 되지 않아도 한미동맹을 살리기 위해 정말 바이든은 어떤 결단을 할까?

그럴 리 만무하다. 사회정의구현이니 자유민주주의 수호니. 국제 관계에선 자국에 어떤 이익을 가져올 것인가, 국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어느 나라나 이것만 고민한다. 미국도 예외는 없다. 미국의 선의와 호의를 바라며 외교를 펼쳐서는 안 된다. 언제나 우리가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열어두고 미국과의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외교 전문 정치인 바이든은 윤석열 대통령을 홀딱 털어갔다. 벌거벗은 임금님 주변엔 “아 각하, 너무나 대단한 성과이옵니다”만 외치는 간신뿐. 벌거벗은 임금이 벌거벗은 채로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주변에 단 한 명의 사람, “각하, 옷을 입으셔야겠습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미국이 다 털어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용기를 낼 단 한 명의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민국이 외교적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국민에게 경고해야 할 것이다.

(* 이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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