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이 시작됐다. 새롭게 만들어진 MB의 방송장악 첨병, 방송통신위원회의 최시중 위원장은 KBS 김금수 이사장에게 “MB의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정연주 탓”이라며 정연주의 해임을 요구했고, 정권의 행동대장 격이었던 감사원은 보수단체로부터 요청받아 KBS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했다.

방송 독립을 연구했던, 진보적인 성향의 유재천 언론학자는 공영방송에 경찰력을 불러들여 정연주 사장을 날려버렸고, 이에 반대하는 직원들과 시민단체 간부들을 그대로 들어내 연행했다. 20세기 유물인 줄 알았던 공영방송 장악은 그렇게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졌고, 공영방송은 맛있는 빵 찾는 법, 더운 날 아스팔트에서 계란 프라이 하는 법 따위의 뉴스나 해대며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민주 정부가 들어선 후 이 정도 수준의 공영방송 장악은 더는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고 벌어지는 일은 2008년의 그때와 거의 유사하다. 윤석열 정권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여야 3대2 구조를 1대2로 역전시키고, 공영방송 수신료 문제를 거론하며 KBS를 압박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 보수단체들과 보수와 가까운 사내 일부 세력이 연일 KBS 김의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감사원은 다시 한번 정권의 행동대장으로 그 역할에 충실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로부터 1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같은 과거가 반복되는 이유는 공영방송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언론장악을 경험했음에도 우리 사회는 공영방송 제도와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바꿔내지 못했다. 박 대통령의 탄핵 이후 언론개혁의 목소리가 높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권하며 국회에서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1. 공영방송의 지배구조가 바뀌었더라면

정부는 KBS와 MBC, 연합뉴스와 YTN의 사장 선임에 사실상 개입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해당 언론사의 사장 선임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정권과 권력에 그와 같은 선의를 기대하긴 어렵다. KBS의 사장이 물러나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KBS 이사회의 지배구조를 타고 정권의 입맛에 걸맞은 사장을 선임할 것이다. 한동훈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고, 이동관이 방송통신위원장 자리에 앉아있는 정부에서 KBS 사장이 어떤 사람이 될지는 명약관화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미디어 업계와 시민사회계에서 꾸준히 요구됐다. 공영방송 이사회의 구조를 확대하고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시켜 사장 선임 과정에 정치권의 개입 가능성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은 이미 여러차례 제안됐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끝나서야 부랴부랴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유력한 마당에, 큰 의미를 두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2. 광고시장을 합리화했더라면

문재인 정부 그나마 성과가 있다면 ABC협회의 부수 조사가 조작 수준이었다는 점을 밝혀냈다는 점이다. 신문을 보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아파트 현관 우편함에 꽃힌 신문이 많아야 2개, 아예 없는 곳도 있는데 조선일보의 부수는 매번 100만 부를 돌파했고 조선일보는 이를 바탕으로 광고를 수주해 왔다.

한 번도 펼쳐지지 않은 조선일보는 계란판 공장으로 직행하거나, 외국의 포장재로 쓰이는 현실이지만, 정부는 그 조선일보에 세금으로 광고를 쏟아부어 왔다. ABC 협회의 자료를 그대로 신뢰하더라도 신문의 발행 부수는 2015년부터 2018년 사이 10% 이상 줄었는데, 정부의 광고비용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권 카르텔은 여기에서나 쓰일법한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정부광고지표’라는 새로운 기준을 들고 왔다. 전국 5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열독률 조사에 언론사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자료를 더한 지표를 바탕으로 정부 광고를 집행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기준은 새로운 행정부의 등장으로 완전히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눈이 뻘게져 정부와 여당 관계자의 말만 열심히 받아쓰는 언론이 정부의 광고를 독식할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3. 미디어 규제가 원칙대로 이뤄졌더라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걸 죄악시하는 사회지만, 공공성이 중요한 미디어 시장에 대한 개입은 법으로 규정돼 있다. 대한민국은 자본이 있다고 아무나 지상파를 통해 뉴스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규제기구도 존재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 정책 수립과 인허가 과정에 개입하고 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의 공공성을 목적으로, 방송 콘텐츠에 대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쟁의 한복판이 됐지만, 그럼에도 방송심의기구의 기능과 위상은 여전히 존재한다. 종편 방송사들, 특히 TV조선과 채널A는 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단골손님이었다. 모회사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김어준을 편향됐다고 주장했지만, 두 종편은 객관성 위반으로 밥 먹듯이 법정제재와 행정지도를 받아왔다.

그렇지만 TV조선과 채널A는 살아남았다. 문재인 정부 체재 방송통신위원회에 책임이 있다면 종편 재승인 점수를 낮게 준 책임이 아니라, 종편을 재승인했다는 그 자체에 있다. TV조선은 일정 기준 이상의 법정제재를 받지 않는 기준으로 조건부 재승인을 받았지만, 방심위는 승인 취소하지 않았다. 방통위는 종편 출범 당시 자본금 불법 충당, 회계 조작 등 위법행위에 저지른 MBN도 조건부 재승인으로 의결했다.

4. 미디어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확장했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제’ 논쟁에서, 당사자인 언론은 전에 없던 저항운동을 벌였다. 돈이 KBS와 TBS의 목줄을 움켜쥐어도,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언론 탄압’이란 말을 쓰이지 않으며, 보수단체들이 방송사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욕을 퍼부어도 그 어느 매체 하나 ‘개딸’ 같은 프레임을 씌우지 않는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 논쟁 당시 언론은 민주당이 돈줄을 쥐고 언론의 목을 흔들고 있다는 비판을 쏟아냈고,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을 ‘극렬 지지자’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꼭 필요한지, 더 나은 대안이 없는지에 대해서는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의 난리통에 미디어 공공성과 책임성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어졌다. 언론은 이런 논의가 나오는 것, 그 자체를 반성하겠다며 기구를 만들어 미디어 공공성에 대해 논의해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그 역시 징벌적 손해배상제 논의가 사라지면서 언론의 자정 노력도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2014년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한국 언론에 많은 질문을 던졌다. ‘기레기’란 신조어는 일반명사가 됐고 법원은 이런 단어를 써도 모욕죄가 아니라고 판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문재인 정부였는데, 2023년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이 2008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건 뼈아프다.

검사들, 10년 전 이미 대한민국에서 사라졌던 MB의 세력들, 교언영색으로 무장한 보수정당의 콜라보레이션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최소 몇 년, 언론계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져 온 암흑기를 다시 맞이하게 됐다.

언론이 제대로 서 있지 못하는 동안 대한민국에 참사가 벌어졌고, 귀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은 여전히 길 한복판에 서 있다. 국정농단이 벌어졌고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언론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것.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도. 언론인 스스로에게도 그 책임은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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