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전 대통령 문재인입니다.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한반도 평화와 외교, 민생 경제 또한 몰락하며, 언론자유는 파괴되고, 나아가 국민은 침수, 압사, 칼부림을 피할 최소한의 안전도 실종됐습니다. 누군가는 국가 부재를 이야기하고, 한편에서는 각자도생을 말합니다. 이 모든 고통 앞에서 제가 마음이 편할 리 없을 것입니다.

윤석열을 제가 키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결론부터 말씀드려 사과합니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오판은 용서받을 여지가 없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 대통령 윤석열 씨를 그가 국민의힘 대선 주자로 나서기 직전까지 키웠습니다. 즉 5년 임기 중 4년을 검찰 최고위 책임자로 기용했습니다.

국민 특히 민주시민 사이에서 ‘누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발탁했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줄 압니다. 실상을 말씀드리지요. 청와대 안에서 노영민 비서실장과 스스로 저의 ‘복심’임을 자처했던 양정철 씨 등이 천거했습니다. 물론 민정수석(조국)이나 공직기강비서관(최강욱)은 검찰 지상주의자의 발탁은 위험하다며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은 제가 했습니다. 저는 검찰 기능 즉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검사 수사를 전담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설치면 충분히 제어될 수 있다고 믿었고, 이 일련의 검찰 개혁을 뒷받침하겠다고 공언한 윤석열 후보자를 또한 믿어서 그를 검찰총장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럴 줄 몰랐습니다. 검찰총장의 지휘권자인 법무부 장관 두 명을 그가 수사로 보복하고 축출하는 동안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스스로 부정한 것입니다. 그 사이 별건에 별건을 거듭해 윤석열 씨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멸문지화식 수사를 감행했고, 총선에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고발 사주를 하는가 하면, 그 전말이 드러날까 두려워 수사에 개입했고, 관심 사안과 관련해 판사를 뒷조사하는 등 서울행정법원이 판시한 대로 ‘면직’ 처분에 모자람이 없는 행각을 벌여왔습니다. 많은 분은 왜 그때 사표를 받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를 발탁했고, 여러 차례 검찰총장 임기보장을 공언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럴 줄 몰랐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칼부림으로 그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되리라는 상상은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그가 분명히 우리에게 정치참여 의사가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천명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에 속은 것입니다. 이를 내다보고 윤석열에게 징계로써 정치적 미래에 쐐기를 박으려 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말을 듣지 않은 점, 뼈 아픕니다. ‘추윤 갈등’ 구도 속에서 윤석열 대신 그를 몰아낸 것도 ‘윤석열은 정치 안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된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권의 검찰총장’이라는 말은 왜 했는지, 지금도 씁쓸하게 복기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친구,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깊은 미안한 마음도 가졌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생을 걸고 검찰 개혁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뜻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물러났다가 검사 집단으로부터 반격을 당해 끝내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지는 비극을 연출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서 지켜본 저는 현실 정치판에 불려 나올 때 일성으로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검찰을 개혁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이래 놓고 집권한 저는, 지독한 검찰 지상주의자에게 개혁의 전권을 맡겼습니다. 그들에 대한 의심의 무장을 해제한 채 말입니다.

검찰 개혁에 있어 우리와 한편인 줄 알았습니다.

사실 윤석열 등에 대해 착시했습니다. 전임 이명박, 박근혜 정권 인사와 재벌 회장에 대한 적극적으로 주도한 적폐 청산 수사에 눈이 홀린 것입니다. 윤석열로 상징되는 검사는 박영수 특검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어오면서 전 정부 털기 수사에서 대단한 성과를 드러냈습니다. 그 수사는 지금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게 하는 방식 그대로, 업무를 범죄로 가공하는 직권남용 혐의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때 옥석 그리고 시시비비를 가렸어야 했는데 우리는 덮어놓고 박수만 보냈습니다. 2022년 10월 29일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압수수색 나온 호승진 검사가 “적폐 수사 사건을 할 때는 민주당 의원님들이 ‘그렇게 해라’. ‘적폐 수사 잘하고 있다’라고 하셨던 분들”이라며 우리를 조롱했습니다. 검찰 개혁 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에 발맞출 수 있는 몇 안 되는 검사였고, 그의 부인 김건희 씨와는 2012년 코바나콘텐츠 행사에 동참하는 등 교분이 적지 않아 나와 그가 뜻과 정신이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습니다.

지금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나라는 두 쪽 났습니다. 정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대화와 타협은 사라졌습니다. 대통령은 야당 대표에게 1년이 다 돼가도록 먼지털기식 수사에 기소 또는 구속 협박으로 정치 파괴를 조장해 왔습니다. 여당 대 야당으로 만들었습니다. 주 69시간이란 황당한 노동시간 개악을 추진하더니 노조를 조폭 카르텔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노조 대 반노조로 만들었습니다. 외교에서도 신냉전 구도 구축의 바람잡이 노릇 하더니 우리의 최대시장 중국을 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한·미·일 대 북·중·러로 만들었습니다. 극심한 편 가르기, 불통 독선 행보에 거침없는 윤석열 정권입니다. 열혈 지지층 결집이 유일한 민심 수습 대책입니다.

문재인 정부 성과가 모두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를 비롯해 역대 민주정권의 모든 정책 기조가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촛불 민주주의는 적폐 인사의 대거 복권 및 귀환으로 부정당하고 있고, 한일 과거사의 정의로운 문제 해결은 윤석열 정부의 굴욕스러운 배상안으로 표류하고 있으며, 소득주도성장의 동반성장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자영업자 골탕 먹이는 사악한 정책으로 매도됐고, 재벌 총수 일가의 전횡은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며, 안전을 위한 노후 원전 폐기 및 원전 신설 중단은 탈원전으로 왜곡되고 있고, 포용적 복지국가의 이상은 증발했습니다.

아울러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미래 구상은 실종됐습니다. 이 모든 것은 되돌릴 수 없을 가치로 못 박지 못한 저의 책임이 큽니다. 미국이 반대한다고 한반도 운전자석에서 내려왔습니다. 2018년 남북 정상 상봉으로 급진전하는 듯했던 남북 관계가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결렬되자 갈피를 잡지 못했고 이로써 백두산 관광은 고사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중단된 금강산, 개성공단 사업의 재개는 아무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폭파된 개성공업지구 사무실은 문재인 정부 한반도 평화 정책의 상징이 됐습니다. 2018년 9월 19일 평양에서 호기롭게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라는 말은 왜 했는지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하다 만 것에는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과제였던 세월호 진상규명도 있었습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이현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검사, 대검 세월호참사특별수사단을 동원했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개별 수사에 대통령이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서 수사를 공안 권력 기구와 수사기구, 특별조사기구의 자율에 맡긴 것이 화근이 됐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진상규명을 진두지휘했다면 결과가 지금과 같을 수 있었을까 자성해 봅니다. 세월호 가족을 위해 한 것은 야당 국회의원 시절, 28일 단식한 것이 전부라는 비판 앞에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으니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입니다.

이재명 당선, 솔직히 관심 없었습니다.

결국 촛불의 여망은 모두 깨지고 수구 정권이 부활했습니다. 0.7%포인트 격차로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고 그들은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2016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어차피 내가 대선후보가 될 판이었는데도, 치고 올라오겠다는 후발주자들의 듣기 싫은 소리에 상심한 나머지, 5년 뒤 민주당 후보가 돼 나타난 이재명 씨의 당선이 간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절박하게 요구했던 재난 지원금 등을 정세균 국무총리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앞세워 반대했습니다. 선제적 적극적 코로나19 대응 행정을 자랑했던 나는 이재명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대선 개입’이라는 구설에 오르는 게 싫었습니다. 인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돈이 없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윤석열이 집권하자마자 국채 없이 60조 추경을 세운 것을 보셨잖습니까? 결과적으로 이재명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전두환도 노태우에게 “나를 밟고 가라”고 했건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재명은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까 고민하다가 고배를 마셨습니다.

선의였다지만 윤석열을 발탁한 사람이 나고, 그의 검은 속을 다 봤음에도 크도록 방치한 사람이 나고, 대선까지 질주할 때 조국을 희생양 되게 만들고 추미애 또한 무릎 꿇리고 이재명마저 힘 못 쓰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대통령 되게 한 사람이 나였습니다. 그런 윤석열이 무슨 일만 터지면 제 책임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는 내가 없으면 어떻게 대통령 일을 할까요? 맞습니다. 그는 나 때문에 대통령이 됐습니다. 여러분, 나를 비난해주십시오. 다 내 과오입니다.

22대 총선이 코앞입니다. 제가 있었던 청와대 출신이 곳곳에서 배지를 달겠다고 하고 출사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고 그래서 국민에게 극한적 고통을 안겨준 전 정부 책임자 스태프의 간판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겠다고 하니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팬덤 기반으로 정치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그들은 알고 있을까요? 도올 김용옥 선생이 저를 비판하면서 했던 말을, 여전히 정치 일선에 남아있는 그들은 새겨들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씹어선 안 될 사람이다. 문재인의 문빠 정치가 진보세력을 망친 것이다. 문재인처럼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을 한마디도 못 한 정권은 없었다. 김대중 때도 내가 마음대로 이야기 다 했는데 문재인 때는 못 했다. 아무도 못 한다. 그러면서 당내에 건강한 토론 문화가 사라졌다.” 내용 없이 이미지로 경쟁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이재명 대표도 마음에 새겨야 할 일입니다.

나 같은 불운한 민주당 대통령 없도록 합시다.

적어도 민주 정부 책임자라면 정권을 넘겨준다는 것이 국가의 미래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금융자본과 언론 권력을 저들이 독점하는 현실에서 민주 정부는 아주 취약합니다. 비정규직 권력입니다. 2020년 총선에서 180석을 얻었지만 2년 뒤 대선에서 질 수 있는 게 정치 현실입니다. 신임받았을 때는 좀 더 간절한 마음으로 국정의 고삐를 죄고 최선의 국정을 펼쳤어야 하는데, 우리는 ‘더 잘하라’라는 신호를 ‘아주 잘하고 있다’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저 이후로 ‘다음 정부는 누가 맡아도 상관없다’라는 안이한 사고가 사라지길 바랍니다. 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불운한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없도록 합시다.

(* 이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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