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문가니 내 말이 옳다”는 말을 못 믿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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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문가니 내 말이 옳다”는 말을 못 믿는 이유
  •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 승인 2020.01.1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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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새해 벽두부터 전문가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JTBC 신년 토론에서 ‘전문가의 권위’에 관한 토론이 시작되면서 촉발된 현상으로 보인다. 

지금부터 이 논쟁에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하나 얹으려 한다. 감히 이 논쟁에 뛰어들 능력은 나에게 없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꼭 소개하고 싶은 품격 있는 공동연구가 하나 있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자연주의 의사결정론의 창시자’로 불리는 심리학자 게리 클라인(Gary Klein)이 두 주인공이다. 카너먼과 클라인은 인간이 어떤 경로로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를 연구한 의사결정이론 분야의 양대 산맥이다. 

그런데 이 두 거장은 전문가의 의사결정에 대해 매우 상반된 시각을 가졌다. 카너먼은 “전문가라도 많은 편향이 있어서 형편없는 결정을 자주 내린다”고 주장한다. 반면 클라인은 “전문가의 직관은 이성을 뛰어넘는 훌륭한 것이다”라고 반론한다. 

비꼬기 경연장을 피해야 한다

그런데 이 상반된 견해의 두 학자가 ‘전문가의 직관’을 주제로 공동연구를 벌인 적이 있었다. 정반대의 의견을 좁히기 위해 카너먼이 먼저 클라인에게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클라인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는 이 대목에서 진심으로 거장들의 품격을 느꼈다. 이건 거의 칼 마르크스와 애덤 스미스가 공동연구를 벌이는 격이다. 두 사람은 모두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학문의 발전을 위해 흔쾌히 공동연구에 동참한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기대한 것은 공동연구가 아니라 한 판 대차게 붙는 논쟁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 심리가 그렇지 않은가? 싸움 구경은 원래 재미난 법이다. 하지만 카너먼은 그런 논쟁이 학문 발전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을 잠깐 들어보자.  

“학계에서 전문가들의 논쟁은 최악의 상황을 불러온다. 과학신문이나 잡지에는 흔히 어떤 연구를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에 대한 답변, 그리고 답변의 재답변이 이어지는 식의 의견교환이 가끔씩 실리곤 한다. 나는 이런 의견교환이 낭비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특히 첫 비판의 논조가 날카로우면 답변과 재답변은 비꼬기의 경연장이 되기 일쑤다. 답변은 신랄한 비판에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처음에 비판했던 사람은 그 비판의 실수나 잘못이 있었다고 시인하는 법이 없다. 나도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비판에 몇 번 대답한 적이 있다. 대답하지 않으면 오류를 시인하는 꼴이 될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악의적인 의견교환이 유익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비꼬기의 경연장은 학문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우리끼리는 좀 더 따뜻한 태도로 의견을 교환해야 하는 이유다. 

험난했던 공동연구

두 거장은 이후 꽤 오랜 기간 연구를 진행했는데, 예상대로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의견이 조금 다른 게 아니라 정반대였던 데다가, 양쪽 다 30, 40년의 오랜 연구 결과를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카너먼의 회고다. 

“클라인은 직관을 주장하는 전문가를 신뢰 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내게 말한 대로 진정한 전문가는 자기 지식의 한계를 알기 때문이었다. 반면 나는 전문가 중에는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자기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가짜 전문가도 많다고, 그리고 주관적 확신은 너무 확고하고 무익한 때가 많아서 보편적 제안이나 진술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평행선을 달리던 두 사람이 마침내 합의에 이를 중요한 힌트를 하나 찾아냈다. 그 힌트란 두 사람이 말하는 ‘전문가’가 각각 서로 다른 전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클라인이 말하는 전문가는 소방지휘관이나 임상 간호사 같이 정말 오랫동안 현장에서 경험을 누적한 진짜 전문가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직관이 뛰어난 이유는 이들 스스로가 ‘내 지식이 사람을 살리는 일에 충분하지 않다’는 한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클라인이 “진정한 전문가는 자기 지식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반면 카너먼이 연구한 전문가들은 속된 말로 야부리만 터는 전문가, 즉 정치학자나 주식 감별사, 50년 뒤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 등이었다. 

위대한(!) 합의

이 힌트를 기반으로 두 사람은 마침내 한 가지 합의에 도달한다. 전문가의 직관이 뛰어날 수도 있고(클라인의 견해), 엉망진창일 수도 있는데(카너먼의 견해),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잘난 척 하는 전문가들은 대부분 틀렸다는 사실이다. 이 역사적(!) 합의에 대한 카너먼의 회고는 이렇다. 

“클라인과 나는 마침내 중요한 원칙에 동의했다. 사람들이 자기 직관을 확신한다고 해서 그 직관이 타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바꿔 말하면 내 판단을 이 정도는 믿어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일지라도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내가 전문가니 내 말을 믿어라”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카너먼에 따르면 이 사람은 자신감 착각에 빠져 오류를 저지르는 중이다. 그리고 클라인에 따르면 이 사람은 ‘진정한 전문가’가 아니다. 전문가의 능력에 매우 우호적이었던 클라인조차도 “진정한 전문가는 자기 지식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너먼은 이렇게 덧붙인다.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서 예측이 부족하다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믿는 전문가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자신의 직관이 정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좋게 말해 자기기만이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예측이 틀릴 수도 있다. 틀렸다고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만큼 이 세상은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안 틀려. 내가 항상 옳아”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은 매우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카너먼에 따르면 대중을 속이는 것을 넘어 자기 자신조차 속이는 일이다. 

이 두 거장의 공동연구는 나에게 참 많은 교훈을 선물해줬다. 이들은 ‘내가 틀렸을 수 있다’는 전제로 정반대의 사람과도 함께 진실을 찾아 떠난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전문가는 이런 겸손한 전문가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더 빨리, 더 가까이 진실에 다가간다.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는 “나는 다른 사람보다 절대로 뛰어나지 않다.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보다 한 가지 나은 점이 있다면, 나는 적어도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세상에나, 소크라테스 선생님. 선생님 같은 분이 “나는 다른 사람보다 절대로 뛰어나지 않다”고 말하면 우리는 뭐가 됩니까?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이가 자신을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실에 다가가는 첫걸음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문가는 이런 사람들이다. “내가 전문가이니 내 말이 옳아”라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아니고!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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