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극단주의가 국정을 장악

모든 언론이 최근 벌어진 가자지구에서 충돌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묘사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다. 이 전쟁은 극단주의 세력인 시오니즘과 하마스의 전쟁이다. 소수의 극단주의 세력이 정치 전반을 지배하면서 국가는 무엇에 홀린 듯이 전쟁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정치권력의 정당성이 부족하고 제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때 권력은 우군을 찾게 되어 있는데 ,이때 극단적 포퓰리즘 세력이 적극 부응하여 다수의 통치를 무력화하고 국정을 좌우하게 된다. 10월 초에 미국의 캐빈 매카시 하원의장을 해임한 핵심 세력은 겨우 공화당 내 강경파 8명의 의원이었다. 마찬가지로 작년 총선에서 이스라엘의 리쿠드당은 과반 확보가 어렵게 되자 네타냐후는 극우 정당 오츠마 예후디트(Otzma Yehudit)를 이끄는 이타마르 벤 그비르와 손을 잡는다. ‘유대인의 힘’이라는 뜻의 오츠마 예후디트는 이슬람인들을 유대인의 적이라고 규정한다. ‘유대인이 아닌 자는 선거권을 박탈하거나 추방하여 유대 단일의 신정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랍비 메이르 카하네의 사상을 계승한다.

1930년대에 히틀러가 게르만족의 순수함을 주장하며 집권하던 상황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극단주의와 손을 잡아 주변부 청년들의 지지를 받은 네타냐후는 극단적인 극우 민족주의 정당인 종교 시오니스트 당과 유대인 근본주의 정당을 집권 연립정부에 참여시킴으로써 사실상 두 이데올로기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주었다.

핵심적인 두 인물이 있다. 극단주의 정당 몫으로 임명된 안보부 장관인 이타마르 벤-그비르와 재무부 장관이면서 국방부에서도 특별한 역할을 맡은 베잘렐 스모트리히이다. 이들이 이스라엘 사법부의 독립성을 억제하는 것은 요르단강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함이다. 팔레스타인의 국가적 열망을 꺾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웃 요르단을 포함한 다른 아랍 국가로 이주하도록 추방하겠다는 것이 진짜 목표다.

35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40%를 통제하는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파괴하고 서안 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강제로 추방하겠다는 구상은 이스라엘 시민들조차 망상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이를 실행했다. 네타냐후는 스모트리히에게 국방부 장관이라는 특별 직함을 부여하고, 실제 국방부 장관인 요아브 갈란트 밑에서 서안 지구의 사실상의 영토 합병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 이후로 그는 거침이 없었다. 스모트리치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책은 첫째로 폭력, 둘째 강제 이주, 셋째 비인간화다. 팔레스타인인의 개인 토지에서도 강제 이주가 진행되고 유대인을 정착시키는 정책은 현재 이스라엘의 국내법에도 위반된다. 이에 시오니스트들은 불법적인 영토정책에 대해 사법부가 재판하지 못하도록 사법부도 무력화해야 했다. 사법 무력화 단계에 이르러서야 이스라엘 국민들은 국가가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치와 시오니즘은 같은 괴물들

나치가 유대인을 격리한 데 이어 추방한 초기 유대인 정책과 스모트리치의 팔레스타인 정책은 거의 복사판이다. 나치는 유대인에 대해 단계적 분리 정책을 폈는데 ➊ 격리 ➋ 몰수 ➌ 추방 ➍ 수용 ➎ 최종 해결책이다. 마지막 5단계는 가스실에서 이루어진 공장식 대량 살육이다. 나타냐후의 팔레스타인 정책은 지금까지 2단계에 머무르다 3단계로 이행하는 단계에 있다. 악랄한 인종 차별의 가장 피해자였던 유대인이 이제는 같은 차별 정책으로 가해자의 위치에 섰다.

정작 거대한 저항은 서안지구가 아니라 가자지구로부터 터져 나왔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이 에너지와 물, 식량을 완전히 통제한 거대한 감옥이다. 무역까지 이스라엘이 통제하기 때문에 가자 지구에서 암시장과 밀무역으로 생필품 시장을 장악한 하마스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역설적으로 하마스라는 괴물이 나타난 배경은 이스라엘의 가혹한 봉쇄 조치였다. 촘촘한 봉쇄

와 함께 각종 첨단 군사 무기에 의한 압도적 힘의 우위를 유지하여 하마스가 저항할 수 없다고 이스라엘은 인식했다. 올해 5월에 랜드연구소의 하마스에 대한 보고서 역시 “하마스를 너무 가혹하게 처벌하면 더 극단적인 세력이 등장할 우려가 있다”며 하마스를 궤멸시키지 말고 현 상태로 관리하는 게 최선이라고 권고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말살 정책과 하마스의 저항을 억제하는 정책을 동시에 병행하는 것은 애당초 성립될 수 없는 가장 위험한 선택이었다. 10월 7일에 시작된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유대 극우세력의 지정학적 야망의 급소를 치는 극한적인 저항이자, 이스라엘을 종국적으로 부정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의 선택이었다.

윤석열에게서 보이는 네타냐후 망령

극우 뉴라이트 세력과 사실상 연정을 했고, “힘에 의한 평화”, “압도적 전쟁 준비”를 외치는 윤석열 정부는 사실상 네타냐후의 길을 가려는가 보다. 정치적 경륜과 뿌리가 약한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소수의 여당만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버거웠는지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의 핵심 세력들을 대거 흡수하고 검찰을 국정의 전면에 나서는 돌격대로 만들었다. 각종 주술 세력과 극우 유튜버를 권력의 주변에 포진시켰다.

과거 경제 성장 시대의 정통 엘리트들과 세대로 단절된 신진 극우세력들은 실력과 품격으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기 어려웠지만, 새로운 대통령이라는 숙주에 바이러스처럼 잠입하여 권력을 누리는 기술은 충분했다. 이런 권력 행태는 수구 보수세력이 반공과 친일을 필두로 기사회생하는 적합한 토양과 환경도 제공했다. 여기서 극소수의 극단주의 세력이 국정 전반에 권력을 행사하는 이스라엘형 국정 파탄의 조짐이 반복된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윤석열 정부는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의 9.19 군사합의를 즉각 무력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이 군사합의로 인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우리 군의 정찰 활동이 제한되기 때문이란다.

이런 설명에는 군사합의서로 인해 남북한 간에 정전협정 위반 사례가 거의 사라졌고, 긴장이 완화된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북 도서에서 우리 어민의 소득이 크게 증대되었으며, 확성기와 대북 전단이 사라진 접경 지역 200만 주민들의 삶의 크게 향상되었다는 사실은 빠져 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당시의 남북 합의가 “가짜 평화”라며 전면 백지화할 작정이다. 2018년 9월의 평양 남북 공동선언과 군사합의서가 무력화되면 연쇄적으로 그해 4월의 판문점 남북 선언(4.27 선언)도 무력화될 수순이다. 이렇게 되면 최근 위헌 결정을 받은 대북 전단 금지법도 무력화되어 남북 관계는 문재인 정부 이전으로 회귀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군사합의서 파기는 삶의 파괴

9.19 군사합의로 사단급 무인정찰기의 정찰 비행이 제한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반도 평화의 판을 깨겠다는 건 어이없는 발상이다. 이 군사합의서는 정전협정 이래 한반도에서 군사력을 통제하는 유일무이한 군비통제 규범이다. 이스라엘이 1993년에 체결된 2차 오슬로 협정을 파기하면서 비극이 시작된 것처럼, 단 하나뿐인 평화의 자산인 군사합의서를 파기하게 되면 우리에게도 비극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에 펼쳤던 망상이나 거의 다를 바가 없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은 이스라엘이 무인정찰기나 인공위성 정찰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2005년에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한 이래 첨단 정찰기, 센서, 인공위성, 암호해독, 감청 등 기계 정보에 의한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데이터는 지금이 최고 전성기다. 그런데도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알려진 모사드와 미국의 CIA는 왜 실패했을까?

기계 정보는 인간의 의지와 집단의 심리를 알려주지 않는다. 집단의 상실감과 굴욕감, 저항의 의지는 인문적으로 해석되는 영역이지 기계가 알아서 판단해 주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이러한 능력은 현저하게 쇠퇴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차량에 네비게이션을 장착하고 난 후 길을 찾고, 지도를 보는 운전자의 능력이 현저하게 퇴화한 것과 같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 도발을 억제하고 평화를 정착시킨다는 의미는 북한의 실제 구성원인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인문적 힘을 바탕으로 한다. 이 때문에 북한과 어느 정도의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한 북한 관리의 외교 자산은 사활을 걸고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서 이런 자산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거다.

정보는 판단하는 힘이자 상상력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군 정보 분석관들이 서해에서 피격된 공무원을 두고 북한에 대한 정보 분석에 문제가 있었다고 대거 조사하고 처벌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최근 군 정보 분석관들은 자기 판단력과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고 기계 정보에 정보 판단을 아웃소싱해 버렸다. 이게 바로 안보에 있어 치명적 결함이며 거대한 재앙의 전초라는 점을 윤 정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기계적으로 정보를 판단하면서 극단주의 세력의 감정적 충동에 힘을 실어주는 대통령실의 행태야말로 바로 이스라엘처럼 안보가 실패하게 되는 길임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하마스 침공 이후 이스라엘의 뛰어난 학자 유발 하라리는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이스라엘을 망쳤다”고 탄식했다. 이스라엘 작가 그로스먼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이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더욱 인종차별적이며 극우적인 나라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스웨덴의 J-DEM 민주주의 연구소는 이스라엘을 민주주의 국가 목록에서 삭제해 버렸다.

정보의 실패는 민주주의 붕괴로부터 각종 편견과 왜곡으로 인간의 이성이 오염된 결과다. 이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전혀 아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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