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6일, JTBC 뉴스룸 두 번째 보도.

“JTBC도 지난해 2월,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을 보도했습니다. 주임 검사가 커피만 타 주고 대장동 관련 조사는 하지 않았단 내용이었습니다. 이때 주임 검사가 윤석열 중수2과장이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저희 자체 검증 결과, 이 보도에는 중요한 진술의 누락과 일부 왜곡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정정 보도에 해당한다. 기자의 실수 혹은 의도로 인터뷰의 특정 대목이 누락되거나 왜곡되었다면 언론사가 정정 보도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이 JTBC의 정정 보도는 기존의 여러 언론에서 해 왔던 정정 보도와는 그 결이 상당히 달랐다.

JTBC는 이 보도를 한 기자, 봉지욱 기자의 이름을 직접 언급했다. “봉지욱 기자는 ‘주임 검사가 커피를 타 줬다는 조 씨의 말을 들었다’는 남욱의 진술을 그대로 전하며, ‘주임 검사는 윤석열 당시 대검 중수2과장이었다’고 기사에 썼다”고 했고. “봉지욱 기자는 ‘대장동 관련 질문은 받은 기억이 없다’는 조 씨의 말만 기사에 반영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봉지욱 기자가 (누락됐다는) 내용을 알고도 기사에 반영하지 않았는지는 현재로선 파악하기 어렵다”고 했고. 마지막으로 “봉지욱 기자는 지난해 10월 JTBC에서 퇴직한 후 뉴스타파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즉 JTBC의 정정 보도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봉지욱이 취재했고, 봉지욱이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고, 봉지욱이 잘못했는데. 이 인간이 지금 뉴스타파에 가 있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주자를 둘러싼 보도가 오로지 봉지욱의 판단으로 이루어졌다고, JTBC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JTBC는 “왜곡 보도를 하게 된 점”을 사과하며, “언론 본연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언론사가 왜곡 보도를 했다면 사과해야 옳다. 당시 중수부가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봐주기 수사했는지 아닌지, 해당 보도가 사실인지 아닌지, 일부 사실이 아니어도 실체에 근접하기 위한 취재였는지 아닌지 검증하기에 앞서, 그 많은 언론사가 일단 사과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이 참 생경하기 그지없지만, 어쨌든 녹취록 속에 누락된 부분이 있고, 그 누락된 부분이 반드시 보도에 반영되어야 했던 내용이라면, 저 언론사들이 이를 일부 왜곡이라고 인정할 수도 있고, 사과할 수도 있다.

그런데, JTBC의 사과문은 비겁하다. JTBC는 메인 뉴스에서 메인 진행자의 입을 빌려 사과했지만, 그 책임은 기자 한 명에게 덮어씌웠다. 저널리즘도 사람과 사람이 모여 하는 일이라,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기자 한 명의 공명심에 왜곡 보도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 책임을 언론사 전체가 지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경우에 있어. 정정 보도를 할 때 기자의 이름을 적시하지 않는다. 현송월 총살 오보에 대해 조선일보는 7년이나 지나 사과했지만, 당시 안용현 기자가 취재했고, 안용현 기자가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정정 보도를 내지 않았다. 당연하다. 모름지기 언론사라면, 게이트키핑이라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나 소셜 미디어 속 혼재한 정보들과 언론사의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면 바로 이 게이트키핑이다. 기자는 자신이 취재한 정보를 윗선에 보고하고. 윗선은 기자의 취재 내용을 점검하며, 보도 가치가 있는지 혹은 보도가 충실한지 판단하고 이를 대중에 공개할지 결정한다. 그래서 때로는 기자들이 가져온 기사가 보도되지 않을 수도 있고, 기자들이 생각하는 기사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기사가 대중에 공개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취재기자와 게이트키퍼 간에 갈등이 생기는 일도 잦다.

이 복잡하고 첨예한 과정을 거친 기사들이 세상에 공개된다. 이것이 언론사가 언론사로서 특수성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게이트키핑 과정을 두고 언론사 안팎으로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어쨌든 이 메커니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단 한 명의 판단으로 정보가 세상에 공개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런데 JTBC는 봉지욱이 취재해서, 봉지욱이 기사 써서, 봉지욱이 보도를 냈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물론 “당시 기사 작성 과정에 있던 관련 담당자들은 업무에서 배제했다”며 게이트키핑 과정이 있었음을 밝혔지만, 굳이 취재기자의 이름을 여러 차례 적시한 것은 취재기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결국 이 사과문은 JTBC가 자신들의 게이트키핑에 대한 책임을 덜기 위해 공표됐지만, 이 얘기를 돌려 말하면 JTBC는 스스로 자신이 언론사가 아님을 만천하에 공표한 것과 다름없다.

이 기사는 뉴스 말미, 기자 브리핑 없이 앵커가 대독한 단신 기사 차원이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기사는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유력 대선주자와 관련된 보도였고, 특히나 대장동은 대선을 뒤흔들고 있던 주요 이슈였다. 이 중요한 기사를, 단지 취재기자 한 명의 판단으로, 취재기자가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서, 취재기자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결과적으로 게이트키핑도 없이 내보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다.

게다가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봉지욱 기자는 JTBC가 자기 의견도 물어보지 않았고, 자료 요청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인터뷰에 대한 정권과 검찰의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되자 언론사로서의 자기 위상과 체면은 고민도 하지 않고, 해당 기사의 실체가 무엇인지 깊은 고민 없이, 때마침 회사를 그만두고 뉴스타파로 간 당시 취재기자를 제물로 내놓은 셈이다.

JTBC의 해명이 이해되는 지점도 있다. 가만히 보면 JTBC는 사건의 맥을 짚고 보도에 신중을 기울이는 언론사가 아니다.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것들을 ‘단독’을 달고 시청자들에게 던져대는 언론사에 가깝다. 손석희 사장 시절, ‘단독’을 붙이지 않겠다는 JTBC의 다짐, 저널리즘 원리원칙에 대한 고민은 이미 휴지통에 들어갔다.

지금의 JTBC는 팽목항에서 수십일을 버티며, 유가족들이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던 그 JTBC보다는 토끼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던 먼 옛날 JTBC와 성격이 유사하다.

다만, 지금도 JTBC에서 나름의 사명을 갖고 취재하는 기자들이 이 사과문을 어떻게 생각할지가 궁금하다. JTBC는 회사를 둘러싼 상황과 조건, 즉 정권에 따라 취재기자를 얼마든지 불 속으로 집어 던져넣을 수 있는 회사임을 자인했다. 기자들이 과거처럼 JTBC의 게이트키핑을 믿고 신뢰할 수 있을까?

“언론 본연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JTBC의 다짐은 그래서 아무런 힘이 없다. 언론 본연의 사명은 게이트키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언론 본연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 잘못된 보도를 사과한다면, 먼저 내지 않았어야 옳고, 실수는 빨리 바로잡았어야 옳고, 나중에야 실수를 알았다면 자신들의 게이트키핑에 대해 사과했어야 옳다. 그러면서 게이트키핑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하겠다고 밝히는 것이 옳다. 그리고 취재기자의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적어도 당사자에게는 먼저 정확한 사실을 확인했어야 옳다. 해당 보도에 일부 사실이 아닌 부분이 있어도,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더라도 진실에 근접하기 위한 노력을 했는지 물은 뒤에 해당 기자의 책임을 물었어야 옳다.

뉴스타파는 김만배의 돈을 받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의 행위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보도에 대한 책임을 신학림 전 위원장의 온전한 책임으로 몰지 않았다.마지막으로, 김만배와 인터뷰하며 책값이라는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받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의 행위는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며, 취재 윤리에 벗어나는 행동이 분명하다. 신학림 전 위원장뿐 아니라 김만배로부터 이런저런 명목으로 크고 작은 돈을 받은 기자들의 수가 꽤 많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당시 김만배가 그들에게 취재원도 아니었고 청탁을 할 만한 대상이 아니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기자가 돈이 필요하면 노동하면 그만이고, 급전이 필요하면 은행에서 서류 작성해서 빌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것이 해당 인터뷰의 ‘기획’을 증명하는 증거는 아니다. 부산저축은행 사건이 최초 수사에서 왜 무마됐는지는 여전히 중요한 의혹 중 하나다. 그런데 신학림 위원장이 개인이 돈을 받은 언론 윤리 문제가 정치공작 사건으로 전환됐다. 이 프레임 전환에 JTBC의 정정 보도가 결정적인 힘을 실어 줬다. 봉지욱 기자의 부산저축은행 사건 관련 보도, JTBC의 정정 보도. 기획된 보도는 어디에 더 가까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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