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사장 임기를 마치고 ‘MBC를 날리면’이라는 책을 냈다. 공영방송을 망치고 무너뜨리려 하는 윤석열 정권의 방송장악에 맞서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어서다.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고 공영방송이 얼마나 중요한지 토론하다 보면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MBC, KBS가 망가지거나 민영화된다고 해도 우리 삶에 무슨 변화가 있을까요? 어차피 사람들은 이제 TV 뉴스를 보지 않죠. 유튜브에 모든 뉴스가 다 있는데 굳이 우리가 공영방송을 지켜줘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나요?”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 뉴스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미디어는 유튜브와 포털로 주도권이 넘어간 지 오래다. 특히 뉴스 플랫폼으로서 유튜브의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비율은 약 44%에 이른다. 다른 나라보다 10%포인트가량 높은 수치다.

그런데 사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목할 만한 점이 보인다. 수많은 유튜브 뉴스 채널 중 조회수 기준으로 순위를 보면 MBC가 1위를 차지한다. ‘MBC 뉴스’ 채널의 월간 조회수는 5억 뷰를 넘나들 정도로 압도적이고 그 뒤를 KBS, YTN, SBS 등 이른바 레거시 TV 매체들의 유튜브 채널들이 자리 잡고 있다. TV 뉴스 시청률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락했지만, TV 매체들의 유튜브 채널은 오히려 구독자와 조회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통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들은 TV 대신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절대적 다수는 TV 수상기 대신 스마트폰이나 PC를 통해 TV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스의 플랫폼만 유튜브로 바뀌었을 뿐이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극장과 비디오의 시대가 저물고 스트리밍에 기반한 OTT의 시대가 만개했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할리우드가 만든 작품을 즐겨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유튜브 성장세를 근거로 TV 뉴스의 몰락을 단언하는 것은 성급한 분석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여전히 TV 뉴스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유튜브와 결합하면서 오히려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도 가능하다. 관심도 높은 중대한 이슈가 터졌을 때 조회수 수백만에 이르는 TV 뉴스 리포트가 많이 나오는 것이 대표적인 증거다.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발언이 이슈가 됐을 때, 첫 보도인 MBC의 유튜브 뉴스 조회수는 며칠 만에 6백만을 넘어섰다.

필자는 그래서 공영방송과 인터넷, 유튜브는 한 몸이라고 늘 강조해 왔다. 순망치한이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장악은 KBS, MBC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미 수순은 진행되고 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취임 직후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가짜뉴스 심의 전담센터’를 설치한 것이 인터넷과 유튜브 통제를 위한 첫 번째 조치일 것이다. 노림수는 명확하고 투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포털 사업자인 네이버, 다음을 압박해 ‘가짜뉴스’로 낙인찍은 보도에 접근할 수 없도록 블라인드 처리하는 것이 일상화될 것이다.

여기에 이동관 위원장이 도입하겠다고 천명한 이른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가짜뉴스로 단 한 번만 걸려도 해당 미디어를 포털에서 퇴출할 수도 있다. 유튜브 역시 마찬가지다. 구글을 압박해서 ‘가짜뉴스 동영상’을 내려버리거나 채널을 삭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으로서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맘에 들지 않는 인터넷 뉴스 매체를 직접 처벌하거나 등록 취소하는 것은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무엇보다 직접 통제는 여론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 반면 시스템을 통해 네이버, 다음, 구글이 뉴스 내용을 컨트롤하는 모양새가 되면 비난의 화살이 되려 그쪽으로 향할 것이다.

‘가짜뉴스 근절’이라는 프레임이 왜 언론 탄압일까? 심지어 2년 전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가짜뉴스 근절을 위해 언론중재법을 만들어 통과시키려 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자. ‘가짜뉴스’가 문제 되는 대표적인 경우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피해를 입었을 때일 것이다.

그럴 경우 당연히 반론, 정정보도가 이루어져야 하고 나아가 재판을 통한 손해배상까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뉴스나 오보의 피해자가 대통령, 영부인, 장관, 국회의원, 대기업 등 이른바 ‘힘 있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첫 번째 보도에서 문제가 있더라도 이런 권력자들은 반론을 제기하면 언론들이 그대로 반영해 추가 보도를 하기 마련이다.

‘바이든-날리면’ 사태를 상기해 보자. 처음 MBC를 비롯한 140여 개 언론사가 윤 대통령의 발언을 들리는 대로 보도했지만, 16시간 뒤 대통령실이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반박하자 그대로 기사를 썼다. 대통령실의 입장이 충실하게 반영된 반론 보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MBC가 가짜뉴스로 국익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주장하면서 기자들과 경영진을 형사고발 했다. ‘날리면’이라는 대통령실 주장을 모든 국민들이 알게 됐는데도 불구하고, 첫 보도를 한 MBC만 지목해서 수사시킨 것이다. 권력자가 가짜뉴스를 말할 때는 ‘불편한 언론에 재갈 물리기’의 빌미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가짜뉴스 처벌’은 언론 탄압의 명분일 뿐이다.

많은 분이 ‘뉴스타파’나 ‘김어준의 뉴스공장’처럼 정권이 싫어하는 독립 언론들이 우선적인 목표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반면 나는 KBS, MBC 등 TV 매체들이 먼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 글 앞머리에서 설명했듯이 포털-유튜브와 TV 뉴스는 분리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동관 방통위가 추진하는 가짜뉴스 근절은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을 통제하고 장악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뉴스 플랫폼을 압박해서 모든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문을 닫게 하려는 전략이 숨어 있다. 여기에 여당인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과반을 확보한다면 법을 통한 언론통제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넷 동영상 관리와 규제에 관한 법률’ 같은 악법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근본부터무너지게 된다.

다시 영화에 비유해 보자. 예전 독재정권 시절에는 시나리오를 미리 검열하거나 작품을 심의해 직접 가위질했다. 반면 이번에는 개봉 후 ‘나쁜 영화’로 낙인찍으면,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가 알아서 작품을 내려버리는 시스템이 도입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 환경에서 창의력 있는 작품이 어떻게 나오고 영화산업이 어찌 발전할 수 있을까?

이미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주도하는 공영방송 장악은 수순대로 진행되고 있다. KBS는 사장이 해임되고 보수신문 논설위원 출신의 낙하산 사장이 내정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MBC는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한 해임 작업이 진행 중이다. 역시 사장을 바꾸기 위함이다. 양대 공영방송 사장들이 낙하산으로 교체되면 가장 먼저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들이 힘을 잃게 된다. 신뢰도 1, 2위를 다투던 MBC, KBS 뉴스가 몰락하면 사람들은 뉴스에 대한 흥미 자체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특히 민주주의의 신념과 합리적 상식을 지닌 사람들이 뉴스를 멀리하게 되면 정파성과 선정성만 남은 ‘기레기 언론’의 세상이 될 것이다. ‘공영방송 지키기’가 ‘민주주의 지키기’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공영방송과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만 빼고 모두 동의하는 해결책은 공영방송 경영진을 선출할 때 정파적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는 제도 개혁이다. 이미 민주당이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다. 공영방송 이사진을 20명 이상으로 대폭 늘리고, 국회와 방송 현업단체, 학계 등에서 추천하는 다양한 전문가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경영진을 선출하게 하는 게 이 법안의 핵심이다. 필자는 이 법이 비록 100점짜리는 아니라도 80점 이상은 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통과되면 시행령으로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100점짜리 법안으로 완성해 나가면 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에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강력한 의지와 세심한 전략이 필수적이다.

그렇다고 국회에만 맡겨놓고 정권의 탄압을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무엇보다 양대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언론자유를 지키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낙하산 사장에 맞서 저널리즘의 독립을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라는 명확한 인식, 권력이 아니라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고 뉴스를 만들겠다는 단호한 신념을 다져야 한다. 예전처럼 파업을 벌이고 거리에서 전단을 눠주는 투쟁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효과적으로, 영리하게, 무엇보다 끈질기게 싸울 방법은 있다.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는 KBS와 MBC 언론인들에게 말해야 한다. ‘윤석열 정권의 무도한 언론장악에 맞서 싸우라’고 명령을 내려야 한다. 수신료 분리 수나 광고 탄압 같은 눈앞의 이슈에 연연하지 말라, 권력의 선처를 기대하지 말고, 일터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싸움에 나서라고 명령해야 한다. 우리는 공영방송 구성원들에게 명령할 자격이 있다. KBS와 MBC의 주인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국민,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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