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김주익을 생각한다

20년 전인 2003년 10월 17일, 한진중공업에서 손배가압류에 항의하며 싸우던 김주익 위원장이 자결했다. 김주익 위원장은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 안에 있는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129일을 버텼다. 2011년에 김진숙 씨가 309일을 올라가 농성했고, 시민들이 희망 버스를 만들어 찾아갔던 바로 그 크레인이었다.

그해 2003년 1월에는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열사가 손배가압류에 항의하며 분신 자결했다. 그는 집과 월급을 압류당해서 마지막 월급 실수령액이 겨우 13만 5,080원, 자녀들에게 약속했던 할리스 운동화 한 켤레도 살 수 없었던 돈만 겨우 받았다. 그때 회사는 노조원 180명에게 150억 원대의 손배가압류로 압박했다. 그 뒤 2012년 12월 한진중공업 최강서는 180억 원이라는 평생 한 번도 손에 쥐어보지도 못할 손해배상을 당한 것에 항의하며 자결했다.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은 옥쇄파업으로 구속된 뒤 손배가압류를 당했고, 그로 인해서 노조원과 가족들 30명이 세상을 등졌다. 2009년으로부터 14년이 흐른 지금까지 아직도 손배가압류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2013년 말에 쌍용자동차 노조에 대해 회사가 건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 재판에서 법원은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47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을 본 시민 배춘환 씨가 ‘시사인’에 4만 7천 원을 봉투에 담아서 편지와 함께 보낸 게 알려졌다. 그에 따라서 2014년에 노란 봉투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가수 이효리 씨도 참가하면서 시민들의 참여가 이뤄졌다. 4만 7천 명의 시민들이 동참해서 14억 원이라는 기금을 모았다. 그만큼 부당한 손배가압류의 문제에 대해서 시민들의 공감이 있었다. 노란 봉투 캠페인이 벌어지는 때에 만들어진 단체가 ‘손잡고’다. 손잡고는 시민들이 모아준 기금을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해고 노동자들에게 긴급 생활지원금으로 지급했다.

손잡고는 국회에 노동조합법 제3조를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19대 국회에서부터 제출하였다. 법안은 19대 국회에서 단 한 차례 법안 심의한 것을 빼고는 20대 국회까지 제대로 된 법안심사조차 없었다. 그 사이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야당 당 대표로서 이 문제를 기필코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법안 심의는 없었다. 그러다가 21대 국회인 지난해에 대우조선해양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 달간 파업을 하면서 노란 봉투법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마침 대우조선해양 사측은 파업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 5명에게 47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나섰고, 이런 행태가 잠자고 있던 법안을 쟁점 법안으로 만드는 계기를 조성했다.

이에 따라 2022년 9월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서 ‘노조법 2, 3조 개정 운동본부’를 결성했다. 운동본부는 혹한의 한겨울 천막농성과 단식투쟁, 집회 등으로 국회를 압박했고, 마침내 올해 2월에 노란 봉투법(노조법 2, 3조 개정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고, 현재는 국회 본회의의 표결만 남겨 놓은 상태다. 동산의료원 노조에 첫 손배가 적용된 1994년 이후 29년, 배달호 열사가 분신한 지 20년, 법안이 처음으로 발의된 지 8년이 지나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김진표 국회의장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여야가 합의해 오라고 주문하면서 본회의 표결을 자꾸 뒤로 미루고 있다.

노조법 2, 3조 개정안의 내용

노동자들의 파업은 불법으로 규정되기 일쑤고, 마지막 수단으로 파업에 나선 노조원들에게 가해지는 천문학적 손배가압류는 살인 무기나 다름이 없었다. 회사만이 아니라 국가도 나서서 손배가압류를 걸면서 노동조합을 파괴해 왔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 노동3권을 부인하는 행태가 수십 년 동안 버젓이 행해져 왔다.

국회 본회의에 올라가 있는 노조법 개정안은 법 제정 70년 만에 제2조의 사용자의 범위를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으로 확대하고 있다. 70년 전에 제정된 노조법으로는 현실의 고용관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간접고용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런 개정안의 내용은 이미 대법원이 2010년도에 현대중공업 사건 때 노조법상의 사용자 개념을 확대한 판례를 내놓았고, 올해 1월 서울행정법원도 CJ대한통운이 대리점 택배기사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했음을 인정하여 단체교섭의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법원의 판례로도 확인된 이런 내용이 법안 개정안에 반영된 것이다. 노동 현장에서는 원청이 근로조건을 구체적으로 제한해서 하청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노동 현장에서는 ‘진짜 사장이 책임지라’는 주장을 하게 되었고, 원청은 교섭을 회피하면서 노사 간의 갈등이 심각해지면서 노동조합은 파업에 내몰리게 되고는 했다. 노동 현장의 이런 실정에 맞게 법을 개정하자는 취지다.

또 노조법 제3조는 ‘정당한 파업’의 경우에는 손해배상 책임을 면제하고 있는데, 앞서도 말한 것처럼 정당한 파업의 범위가 매우 좁아서 대부분 불법파업으로 내몰린다. 불법파업으로 내몰린 노동조합과 노조원들에게 연대책임을 물어서 수십억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묻고, 만약 노조를 탈퇴하면 대상자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사측이 악용해 왔다. 이를 통해서 사측은 눈엣가시 같은 노동조합을 파괴하거나 사측의 입장에서 고분고분한 노조를 만들 수 있었다. 손해배상 폭탄을 감당하기 어려운 점도, 노동조합이 파괴되는 것을 막으려는 절박함도 결국 노동자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가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노조법 제2조 5호에 있는 쟁의 범위에 권리분쟁도 포함했고, 노조법 제3조에서는 포괄적인 연대책임을 묻는 손해배상청구 방식이 아니라 개별 노조원들의 파업 가담과 구체적인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노조원 개인들에게 가해지는 손해배상 폭탄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않았지만, 손해배상 청구의 요건을 강화함으로써 무분별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취지다.

이는 손잡고나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입장보다 많이 후퇴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경총을 비롯한 경영계는 이 법안을 강력히 반대하고, 지금도 노조법 개정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10월 18일, 경총을 비롯한 경제계 6단체는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지금도 산업현장은 강성노조의 폭력과 파괴, 사업장 점거 등 불법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정안대로 노동쟁의 개념이 확대되고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사실상 제한될 경우 산업현장에 ‘파업 만능주의’를 조장하고 불법파업이 만연해 국내기업들의 투자뿐만 아니라, 해외기업들의 직접투자에도 큰 타격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온갖 부당노동행위와 교섭 기피로 산업현장의 분위기를 극단 대립으로 몰아온 책임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다시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개정안의 내용은 이미 국제노동기구(ILO)가 거듭 확인하고, 권고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노동조합과 하청·파견노동자의 고용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자(원청기업) 사이의 단체교섭은 항상 가능해야 한다” (2012년), “정부가 할 일은, 하청이 법에서 규정된 결사의 자유 보장의 적용을 회피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 그리고 하청노조가 노동조건의 개선을 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2012년)라고 밝혀왔다. 이는 노조법 제2조 개정안의 내용과 다를 게 없다. 또, 2017년에는 코레일이 철도노조에 낸 손배소에 대해 “거액의 손배소가 노조의 자유로운 운영에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는 손해배상 폭탄이 노동조합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문제를 짚은 것이고, 이 또한 지금 노조법 개정안 제3조의 내용과 같다. 우리나라는 ILO 핵심 협약에 모두 가입하고 있고, 지난해 4월부터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발생하고 있다. ILO의 결정과 권고 등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기준에 비추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훨씬 못 미치는 열악한 노동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금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노조법 2, 3조의 개정이 시급하다.

노동조합이 살아야 시민이 살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조 혐오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지난해 정부가 건설노조를 조폭으로 몰면서 노조 탄압을 본격화하자 도리어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올라갔다. 그동안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경제적인 이득만 챙긴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던 탓이다. 그렇지만, 건설 현장에서 건설노조가 탄압으로 인해 힘을 쓰지 못하자 아파트 건설 과정에서 철근을 빼먹어서 공사 중이던 아파트 주차장 지붕이 무너져 내리는 일이 발생했다. 그것도 어쩌다 한 곳이 아니라 매우 광범위하게 이런 불법 수법이 자행되고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그것은 시공사와 하청 업체들의 불법을 감시할 눈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건설노조는 건설 현장에서 감시자의 역할도 해왔다는 점이 이번에 확인된 것이다.

건강한 노동조합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노동조합이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할 때, 부정부패에 대한 감시도 가능하고, 우리 사회는 사회복지국가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서구 사회복지국가가 탄생할 수 있었던 힘은 노동조합에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귀족’으로 표현되는 노조 혐오증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형성되어 왔음은 안타깝다. 시민과 노동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대부분의 시민이 누군가에 고용되어 임금을 받고, 그 소득으로 자기 삶과 가족들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시민 대부분은 노동자이고, 따라서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이 실현되면 시민 대부분이 행복해지게 된다. 특히 하청을 비롯한 간접,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과 교섭할 수 있어야 하고, 파업했다고 손해배상 폭탄을 맞은 일은 없어야 한다.

갈수록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드는 현실, 이전과는 달리 비정규직 노동에 종사해야 하는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게 노동조합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사용자가 노동자의 인격도 무시하고, 일회용 상품처럼 노동자를 맘대로 썼다가 버리고, 위험한 작업일수록 비정규직에게 떠넘기고, 항상 죽음이 곁에 있는 노동, 이걸 바꾸지 않고는 시민 대부분의 삶도 위태롭기만 하다. 더 이상 노동조합이 불온시되고, 노동자가 교섭을 요구하고, 파업했다는 이유로 탄압당하는 세상은 아니어야 한다. 건강한 노동조합은 사회연대를 통해서 시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런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노조법 2, 3조 개정을 시작으로 70년 전에 제정된 노동조합법, 근로기준법까지 전면적으로 개정하는 길을 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야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이 실현되게 된다.

저작권자 © 평화나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