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이전 정부에서 이미 처리, 더 이상 계획 없다’는 식의 답변만 내놔”

“반복되는 참사에 대해 꼬리 자르기 식으로 책임 축소,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부인해”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지난해 9월 조사 활동을 종료하며 종합보고서를 발표, 정부가 수행해야 할 과제 80가지를 권고한 지 1년이 흘렀지만, 아무런 조처도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조위는 지난 2022년 9월 권고를 발표하며 “본 권고를 받은 국가기관 등의 장은 권고 내용을 성실히 이행해 주시고, 권고 내용의 이행 내역과 불이행 사유를 매년 국회에 보고하시길 바란다”며 “국회의장은 ‘권고사항 이행관리계획’을 수립해 본 권고의 이행 여부를 충실히 점검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관계자들은 사참위 권고 대부분이 묵살되고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 역시 “권고사항을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이행하는 게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기보다는 기업들을 위한 비용 절감, 규제 완화 이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어 제도마저 후퇴하는 느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조위, “권고받은 국가기관 등은 특별한 사유 없으면 고 이행해야”

사참위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권고를 받은 국가기관 등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권고 내용을 이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본 보고서들을 통해 가습기살균제참사와 4·16세월호참사에 대한 기록을 명확히 남기고 피해자들의 회복과 안전 사회를 위한 길에 한 걸음 내딛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참사’와 ‘4·16세월호참사’, ‘재난 및 피해자지원 일반, 자료기록 분야’로 나눠 권고사항을 발표했다.

가습기살균제참사 분야에서 대통령과 환경부 장관에게 “가습기살균제참사는 인체에 유해한 제품을 제조·판매해 수많은 사상자를 낸 기업의 책임과 함께, 지난 30여 년간 관련 원료물질과 제품의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이 매우 크다”며 “이에 대통령은 가습기살균제참사를 발생시키고, 부실한 대응으로 국민의 생경과 건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책임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공식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특조위는 “국가의 역할과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재난에 처한 국민을 신속하게 구제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국가는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 및 제품에 대한 부실한 안전관리로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다. 또 가습기살균제 관련 기업에 대한 조사가 부실하게 이뤄져 관련 기업에 대한 처벌과 조치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또 4·16 세월호참사 분야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 희생이 있었으며, 피해자를 포함한 민간인 사찰과 진상규명 방해 등 그 이후 행위로 인한 국민의 권리 침해가 개별 공무원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 피해자 가족과 국민을 적대시하는 정책 기조에 따라 이뤄진 반인권적 국가범죄였다는 점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피해자와 국민에게 사과하기를 바란다”며 “또 재난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대응을 천명하고 관련 업무 체계를 구축하기를 바란다”고 권고했다.

그러면서 “위원회 조사 결과, 국정원·기무사·경찰 등 정보기관이 민간인을 불법사찰을 했고, 이와 같은 행위는 중대한 불법행위이며, 개별 공무원의 일탈 행위가 아닌 피해자 가족과 국민을 적대시하는 정책 기조에 따라 국가 차원에서 수단적으로 이뤄진 행위라는 점을 확인했으나, 이와 관련한 청와대를 비롯한 정보기관의 인정과 사과가 없었다”며 “국가는 민간인 불법 사찰의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국민에게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조위는 환경부와 법무부, 국무총리, 국정원, 경찰청 등 국가기관에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개정 ▲세월호특조위 조사방해에 대한 감사 실시 ▲(가칭)중대재난조사위원회 설립 추진 등 80가지 사안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게 4·16연대와 세월호 유가족들, 살균제 가습기 피해자들의 설명이다.

“재발하는 재난 참사 예방하기 위한최소한의 권고마저도 이행하지 않아”

4·16연대 김선우 사무처장은 지난 10월 13일 평화나무와의 통화에서 “지금 현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이미 처리해 더 이상 할 계획이 없다’는 식의 답변이 많다”며 “몇몇 자잘한 권고안에 대해선 자신들이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답했지만, 대통령의 사과라던가 추가 조사 등 우리가 요청한 사안에 대해선 ‘이전 정부에서 조사가 끝나 추가 계획이 없다’ 이런 게 많다”고 답했다.

김 사무처장은 이전에도 “정부가 사참위 권고를 이행하고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국무조정실을 비롯해 각기관은 ‘확인 중에 있다’고만 답했다”며 “국회가 행정기관을 감시하고 권고 이행에 대해 점검해야 하는데,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낸 바 있다.

또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과 4·16연대는 2023년 정기 국회가 생명 안전을 중시하는 국회가 되길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10월 5일 ‘4·16세월호참사 관련, 국정감사 3대 방향, 9대 과제 발표’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부의 세월호 참사 지우기 실태 ▲공약 후퇴 및 약속 미이행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권고사항 이행 점검을 확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김종기 운영위원장은 “우리 세월호 엄마, 아빠들은 아직도 그 큰 세월호가 왜 갑자기 침몰했는지, 왜 단 한 명도 구하지 않았는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 이유를 명확히 알지 못한다”며 “참사 이후, 부모로써 당연히 그 이유를 알아야 하고 관련 책임자들에게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묻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왔지만, 그 중요한 핵심적인 부분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아직도 이루어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작년에 종료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폭력 인정과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포함한 80가지의 권고사항도 어렵게 만들어 냈다”며 “하지만 국가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재발하는 재난 참사를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권고마저도 윤석열 정부는 이행하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민변 세월호참사대응TF 오민애 변호사도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이었을 당시 안전한 대한민국이 될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10.29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반복되는 참사에 대해 꼬리 자르기 식으로 책임을 축소하고 재난에서의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부인해 왔다”며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하는 국가에, 재난 참사 상황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고 요구할 수 있을지, 되묻게 하는 상황의 반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참위는 활동을 마치면서 대통령과 정부 부처, 기관들에 권고했다. 조사위원회가 세 차례 구성되었고 검찰 특별 수사단의 활동이 있었지만, 여전히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미진한 부분, 재발 방지를 위한 여러 정책 마련 등 구체적인 권고사항이 있고, 이행 여부의 점검은 국회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 기업들을 위한 비용 절감, 규제 완화로 방향 잡아·· 제도마저 후퇴하는 느낌”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활동해 온 환경운동연합 강홍구 간사는 “세월호도 그렇고 가습기살균제도 딱히 정부 창원에서 적극적으로 이행하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권고사항을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이행하는 게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 간사는 “환경부가 진상규명이라던가 이런 것과 관련해 기능을 조기에 없애버리기도 하는 등 사참위와 환경부의 관계가 매끄럽지도 않았고, 기관 간의 알력 싸움 이런 것 때문에 세부적인 이행이 좀 어렵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추측했다. 그는 “피해자분들도 권고사항이 이행되길 바라지만, 제도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이행되지 않는 지금 상황에 많이 답답해한다”며 “윤석열 정부가 기업을 위해 규제를 완화한다든가 하는 식의 정책을 펴고 있는데, 가습기살균제 참사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기보다는 기업들을 위한 비용 절감, 규제 완화 이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어 제도마저 후퇴하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강 간사는 “시민들도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다 해결된 것으로 아는 분들이 많은데, 아직 항소심이 진행되는 재판도 있다”며 “유죄를 촉구하는 탄원서 캠페인 등 여러 활동을 하는데, 이런 곳에 참여해 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안전 제도와 참사 문제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당장 정부가 워낙 강하게 압박하고 있기에 지금 기조를 바꾸긴 어려워 보이고, 적어도 내년 총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그나마 규제 완화 후퇴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다”며 “그게 아니면 더 어려운 여건이 계속 이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중 한 명인 A 씨도 현재 사참위 권고사항이 1%조차 지켜지지 않았다고 분개했다. A 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하긴 했지만, 사과는 사실에 대한 인정부터 피해 배상까지 일련의 법적, 사회적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며 “그런 부분에서 문 정권이 한 건 사참위를 설치한 게 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는 사참위 권고에 ‘전 정부에서 다 했는데 왜 또 하냐. 이미 했기에 향후 계획이 없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이건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대통령 사과 역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했으니, 향후 또 계획이 없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A 씨는 “환노위 위원장과 위원들에게 의견서도 보내고 비서들과도 여러 차례 통화했지만, 현재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며 “우리 참사는 또 이렇게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문제는 우리가 일차적인 보상도 받지 못해 재정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피해자의 권리가 뭔지도 모르고, 우리는 권리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성토했다.

그는 “아이들이 제일 문제”라며 “주변에서 그 아이들이 왜 힘들어하는지 이해 못 한다. 그래서 미친 사람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기업들은 더 이상 분담금을 내지 않겠다고 행정 소송하는 상황”이라며 “나라가 나서야 하는데 나서질 않는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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