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프로그램을 제작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기후변화나 재생에너지 동향 뉴스를 검색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하나의 패턴처럼 자리 잡은 풍경이 있다. 바로 해외에서의 재생에너지는 별 희한한 방법까지 동원해 가며 전력 질주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벌써 몇 개월째 ‘태양광’을 검색하면 ‘태양광 수사’, ‘태양광 비리’, ‘태양광 압수수색’이 뜨고 있는 모습이다. 어제도 그랬다. 10월15일 검색 결과...

프랑스 ‘무착륙으로 지구 한 바퀴 돌 수 있는 태양광 비행선 2026년에 뜬다’

국제에너지 기구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증가폭 역대 최대 전망’

미국 ‘미국 태양광 업체 수니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덕분에 공장 재가동’

베트남 ‘베트남 최대 전자제품 유통기업, 전국 900개 매장 옥상에 태양광 설치’

한국 ‘공사대금 부풀려 ‘태양광 대출’ 320억원... 제조업체 대표 실형

물론 법을 어긴 업체는 처벌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이런 식의 수사 소식만 나오고 정책적 의지를 가진 지원 소식은 없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새 정부 출범 후 2년째 태양광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 국무조정실 조사, 금감원·국세청 조사, 최근 조달청 조사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른바 ‘태양광 카르텔’ 프레임...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 인력 투입을 통해 이 분야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과 함께 결국은 이 분야 예산삭감과 지원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9월) 6일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 산업통상자원부 예산안에 따르면, 총예산은 11조 2,214억 원이 편성돼 올해 예산보다 1.3% 늘어났지만 유독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은 큰 폭으로 감액됐다. 특히 태양광·풍력 등으로 생산하는 전력을 우선 구매하도록 가격을 지원하는 사업인 ‘재생에너지 지원’ 예산은 올해 대비 약 4,000억 원 삭감된 약 6,000억 원이 편성됐다. 지난 정부에서 마지막으로 편성했던 2022년도 예산 약 1조 2,000억 원과 비교하면 2년 사이에 반 토막 난 셈이다.’ - 중앙일보, 2023년 9월 6일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 예산’ 삭감이 충격적이다. 전기차를 새로 살 때 지원금 없이 자부담만으로 사는 이가 거의 없듯, 전 세계 어느 나라든 태양광 설치를 지원 없이 자부담 100%로 하도록 하는 나라는 없다. 낯선 에너지원을 좀 더 많이 보급하려면 재생에너지 설치 지원 예산은 필수이다. 그런 지원 예산을 반토막 냈다는 것은 새롭게 태양광 시설을 확충할 의지가 없다는 말과 같다. 관련 연구 개발 예산도 참혹하다. 역대 어느 정부도 삭감하지 않은 국가 연구 개발(R&D) 예산이 일괄 삭감되고 있는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연구 개발 예산은 다른 분야보다 더 큰 폭으로 깎였음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2022년 753억 8,500만 원이었던 (산업통상자원부의) 태양광 기술 R&D 예산은 올해 12.8% 줄더니 내년도 예산안에서는 30%가량 더 축소됐다. 풍력 기술 R&D 예산은 2022년 687억 3,700만 원에서 올해 늘었지만, 내년도 예산안에서는 감소했다.’ - 서울경제, 2023년 10월13일

현재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OECD 최하위 수준이다. 국제 에너지 연구기관 엠버(Ember)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발전량 중 태양광과 풍력을 합한 점유율은 5.4%로 세계 평균(12.0%)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아프리카(4.6%)와 비슷한 수준이다. 남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충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있는 예산마저 삭감하고 있다.

이러니 국내 재생에너지 업계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초상집’이다. 최근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한 재생에너지 관련 중소업체, 협동조합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를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부족한 데 오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허구한 날 뉴스에서 압수수색 소식만 나오는데 젊은 인력들이 무슨 비전을 갖고 오겠어요?” - 태양광 협동조합 관계자

“요즘 계약이 취소되는 일이 늘어나요. 세계적으로 태양광 열풍이 불고 있다는 해외뉴스를 보면 더 우울해집니다.” - 경기도 태양광 중소업체 관계자

정우식 태양광산업 협회 상근부회장은 다수의 업체가 폐업과 매각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기신문’ 인터뷰에서 말했다.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초상집 분위기라고 봐야 한다. 시장 자체가 반 토막이 났고 중소중견 제조 기업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다수 제조 기업이 사업 철수와 매각을 고려 중일 만큼 시장이 좋지 않다.’ - 전기신문, 2023년 10월 12일

이런 가운데 그동안 태양광 산업의 고질병으로 지적되어 오던 중국산 부품 의존도가 새 정부 들어 오히려 더 높아졌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발전업체들이 생산한 태양광 전기가 안정적인 가격에 판매될 수 있다는 정책적 장치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기에, 발전업체들은 중장기적 비전 속에 국산 부품을 구입하는 대신 당장 수익성을 보장하는 값싼 중국산 부품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는 이유다.

‘국산 태양광 모듈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69%에서 올해 30%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말하면 지난해 30% 수준이던 중국산 점유율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예정이다. 점유율 차이가 이렇게까지 벌어진 건 국내 신규 태양광 보급이 줄어들 게 만든 정책적 미스다. 정부는 지난 7월 한국형 FIT 제도를 일몰시켰다, 이는 100kW 이하 소규모 발전소의 생산 전력을 정부가 20년간 의무적으로 구매해 주는 제도로 전체 신규 태양광 보급 물량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때 발전 사업자들이 안정적인 수익이 나는 만큼 중국산보다 국산 제품을 우선 구매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제도가 일몰되면서 국산 제품 수요가 크게 줄었다.’- 정우식 태양광산업협회 부회장, 전기신문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전 세계 재생에너지 투자액은 매년 급속도로 늘어 지난해 4,950억 달러(667조 원) 수준에서 오는 2030년경 최대 2,500조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발전단가면에서 화석연료보다 경쟁력이 있음이 입증된 데다, 조만간 핵폐기물 처리시설 등 갈수록 환경비용이 높아지는 원자력 발전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경제적 판단이 투자자들 사이에 통용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신규 설비량은 2021년 21.9%, 2022년 16.7%로 둔화하고 있고 올해 들어 9.7%로 확실히 얼어붙고 있다. 누가 봐도 역주행.

이런 가운데 탄소국경세 등 재생에너지 기반 탄소 경제를 이루지 못할 경우 수출경쟁력이 흔들리는 기후 관세장벽이 빠르게 현실화하고 있다. 당장 이달(10월)부터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세의 전초전인 탄소 국경 조정제도를 시작했다. 철강이나 알루미늄을 만들어 수출할 때 재생전기나 그린수소로 만들지 못한 채 지금처럼 화석연료에 의존하면 유럽에 내는 탄소배출권 가격과의 차액만큼 관세를 물리겠다는 거다. 참고로 우리나라 탄소배출권 가격은 현재 유럽연합의 1/4 수준이다. 갈수록 우리는 낮아지고 유럽은 비싸지는 추세다. 어떻게 할 것인가?

강산에의 노래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는 힘찬 연어들에 주목한다.

도지사 임기 내에 9기가와트(원전 6기 규모) 신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을 약속한 경기도는 그동안 태양광에 대한 불신 속에 강화되어 온 이격거리(주거지역과 태양광 시설과의 거리 두기) 규제를 없애기 위해 도내 31개 시군 중 이격거리 조례가 있는 13개 ‘그래, 다시 가다 보면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어느 날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야 하겠지’시군과 협의해 이격거리를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이격거리 규제를 완화할수록 우리 동네 태양광 보급률은 높아진다. 2021년 산업부의 연구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이격거리를 주택 100m로 완화할 경우 태양광 235기가와트(GW)를 더 보급할 수 있고, 이격거리를 완전히 폐지하게 되면 전국에 태양광 503기가와트(GW)라는 연간 발전량 642테라와트시(TWh)의 재생에너지 보급이 가능해진다. 2030년 우리나라 전체 전력 수요량(635TWh)을 100% 재생에너지로 감당하는 꿈같은 일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이격거리 규제는 대부분 주민과 직접 소통하는 지자체 조례로 이뤄지기에 경기도의 사례는 귀중한 성과이다.

또 다른 연어들은 시민 역량이다. 남양주 별내신도시에서 사회적 형도 조합 아파트를 일궈온 이상우 경기도 탄소중립 도민추진단 시민은 며칠 전 아파트 옥상에 태양광 설치를 의무화시키자는 정책 제안을 올리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사례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위스테이 별내 아파트는 2021년 기준으로, 태양광 발전 생산 전력 290,532킬로와트(kw)로 3,842만 원 그리고 단일요금제 변경 적용으로 약 4,413만 원을 절감했다. 491세대로 보면 가구당 연간 16만 원, 월 1만 3천 원 이상의 절감 효과를 보았다.’

재생에너지가 민생이자 국가경쟁력이 되는 이 시대, 곳곳에서 거침없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이 결국 시대 흐름을 바로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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