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사유화 – 뉴욕타임스와 KBS의 경우

흔히 생각하기에 언론의 사유화 여부는 지배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외형적으로 언론사의 지배구조는 사적 지배구조와 공적 지배구조가 명확하게 존재한다. 간단히 말해 개인이 주식을 보유하는 주식회사는 사적 지배구조이고 공공이 주식을 보유하거나 공공에 의해 운영되는 조직은 공적 지배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KBS와 뉴스타파를 제외한 모든 언론사는 모두 예외 없이 주식회사다. 경향신문이나 한겨레신문의 경우 주식회사이고, 논조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 있어도 이들 매체가 사유화돼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경향신문은 임직원이 44.8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자기주식, 즉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이 44.41%다. 따라서 경향신문은 임직원이 89.25%가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한겨레신문은 국민주 형태로 공모된 소액주주가 72.0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우리사주조합과 자기주식이 27.94%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매체는 소수 개인이나 기업이 아닌 다수의 임직원이나 소액주주가 다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다른 문제라면 몰라도 사유화 시비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따라서 주식회사냐 아니냐 하는 회사 형태가 사유화 문제를 직접 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주주 구성이 소수의 개인이나 기업에 독점되거나 과점 되어 있다면 그 언론은 사유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경우 회사 형태는 사유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언론’의 차원에서 기능과 역할이 사유화되어 있다고 곧바로 단정할 수는 없다. 대표적인 민영 방송사인 SBS는 언제나 사유화 시비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지역민방들은 대부분 과점 주주에 의해 지배되고 있지만, 모든 민방이 ‘언론’으로서 사유화되어 있다고 지적되지는 않는다. 그들 매체가 공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느냐의 문제와는 별도로 독점 혹은 과점 주주 여부가 곧 ‘사유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유화 통해 자본적인 요인 차단한 뉴욕타임스

우리나라에서는 독과점 주주에 의해 지배되는 언론사가 공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사례를 제시하기 어렵지만, 세계적으로는 이런 형태의 언론사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바로 미국의 뉴욕타임스다. 뉴욕타임스는 1851년 창간했다. 45년이 흐른 1896년 인쇄공 출신 독일계 유대인 아돌프 옥스가 인수했고, 옥스는 사위인 설즈버그에게 딸과 함께 주식을 물려줘 옥스-설즈버거 가문의 지배가 시작됐다. 이 가문은 ‘옥스-설즈버거 가문 신탁’으로 구조화되어 현재도 뉴욕타임스 보통 주식의 50.1%를 지배하고 이사회의 70%를 이 ‘가문 신탁’이 선출한다. 뉴욕타임스의 의결권 주식은 가문 신탁 내에서만 거래할 수 있고, 의결권 없는 주식은 가문 밖으로 매각할 수 있지만 그때도 뉴욕타임스 법인만 그 주식을 인수할 수 있다. 외형적으로 보면 뉴욕타임스는 완벽하게 ‘사유화’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명실상부하게 세계적으로도 가장 바람직한 언론으로 평가받고 있고, 더욱이 디지털화로 인한 종이신문의 위기를 가장 모범적으로 극복하면서 언론의 새로운 모델을제시하고 있는 ‘모범적인’ 언론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1월 8일 3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온라인 유료 구독자가 1,000만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1896년 뉴욕타임스를 인수한 아돌프 옥스는 사주로서 첫 신문을 내던 사설에서 “정당이나 정파 혹은 이해관계와 관계없이, 어떠한 두려움이나 선호 없이 불편부당하게 뉴스를 전달하는 것, 모든 종류의 의견으로부터 지적인 논의를 하는 게 진지한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확인을 거친 사실과 분석, 뛰어난 문장’이라는 제작 원칙을 추구했다.

이러한 옥스의 선언은 현재의 ‘옥스-설즈버거 가문 신탁’의 “뉴욕타임스가 외부 영향에서 자유롭고, 전적으로 두려움이 없으며, 사심 없이 공공의 복리에 헌신하는 독립적인 신문으로 존속하는 것”이라는 목표로 이어지고 있다. 가문 신탁의 지배권 독점은 뉴욕타임스의 공영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부 지분의 개입 가능성을 차단하는 차원에서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내부 지분 구조뿐만 아니라 회사 내부인의 외부 주식 보유도 제한하고 있다. 직무와 관련 있거나 그럴 가능성 있는 기업의 주식을 소유해선 안 된다. 건강 담당 기자의 제약회사 주식 보유, 미디어 담당 기자의 미디어 기업 주식 매매가 금지되는 식이다. 이처럼 뉴욕타임스는 매체의 공적 언론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본적인 요인을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차단하고 있다.

‘독점적 지배구조’가 공적 기능 지켜

이처럼 뉴욕타임스는 지배구조가 사적 소유인 주식회사 형태이면서 사주 가문이 독점적이고 배타적으로 회사의 지분 구조를 지배하고 있지만, 거꾸로 이러한 구조가 매체의 공적 기능을 지키는 보루가 되는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독점적 지배구조가 갖고 있는 ‘정신’에 따라 매체가 외부의 영향을 받을 다른 가능성도 방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기자와 구성원들은 보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업의 주식을 소유하지 않는 것뿐만이 아니라 모든 특혜와 편의 제공도 금지하고 있다.

매체에 기사가 실리기를 원하는 기관들이 기자들에게 이런저런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대단히 일반적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필수적인 내용 외에 특별한 편의를 제공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스포츠 취재 담당자는 경기장 출입증 외에 식사, 선물 등 어떠한 특혜도 제공받을 수 없다. 레스토랑 리뷰 담당 기자는 반드시 익명으로 하고, 식당 예약에서도 기자 신분을 숨겨서 특별한 편의가 제공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자사 기자가 쓴 책을 자사 서평에 소개할 경우, 경쟁사 기자가 쓰도록 한다.

또한 직원들은 외부 강연의 경우 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회사가 참가를 승인할 경우에도 해도, 회사가 강연료를 지불한다. 뉴욕타임스 직원의 강연이 초청 측이나 공공에 유익한 것이라면 회사가 비용을 지출해 강연을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경우에도 외부 강연료를 받아선 안 된다. 단 교육 목적이거나 비영리단체 활동의 경우 강연료, 사례비, 경비, 교통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처럼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매체의 본분을 지키도록 하려는 ‘독점적 지배구조’의 정신은 내부 구성원 역시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청렴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공영 방송, 정치권력이 지배해

‘언론의 사유화’는 소유 구조를 이용해 매체의 공적 기능을 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단지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영리 추구’라는 차원을 넘어서 정치권력이나 특정 정치세력이 매체의 공적 기능을 그들의 목적에 따라 좌우하는 것 역시 ‘언론의 사유화’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KBS는 명실상부하게 법률에 따라 공적 조직에 의해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다. 재원은 광고도 있지만, 공적 재원인 시청료가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MBC는 주식회사 형태이고 시청료와 같은 공공 수익은 없지만, 법률에 따라 설립된 방송문화진흥회가 7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역시 공적인 성격을 가지는 정수장학회가 30%의 지분을 소유해 ‘공적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회사의 대표를 선임하는 이사회 구성이 정치권력에 의해 이루어짐에 따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사회 구성이 바뀌고, 그에 따라 대표의 성향도 바뀌며, 자동으로 보도 운영자들의 구성도 180도로 바뀌는 기형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배구조는 명백하게 ‘공공 지배’이지만, 사실상 정치권력이 지배하는 체제이다.

특히 최근 임명된 KBS 박민 사장의 경우 정권 교체에 따라 극과 극으로 체제와 행태가 달라지는 양상이 극단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박민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공식 계통과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9시 뉴스 앵커를 비롯한 방송의 주요 진행자를 일거에 교체해 버렸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속도와 폭에 있어서 ‘과격함’을 넘어서 ‘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박민 사장은 11월 15일 ▲2019년 윤지오 씨의 뉴스9 출연 허위 주장 ▲2020년 ‘검언유착’ 보도 ▲2021년 ‘오세훈 시장 생태탕’ 집중 보도 ▲작년 대통령 선거 직전 김만배 녹취록 보도 등 4가지를 대표적인 불공정 보도 사례로 꼽으면서 대국민 사과문을 냈다. 이들 모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어도 결코 ‘불공정 보도’로 볼 수는 없는 보도였다. KBS를 특정 세력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공영방송의 철학과 기준’마저 깡그리 무너뜨리는 행위다.

이처럼 ‘언론의 사유화’는 단순히 외형적 지배구조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개인이나 기업이 지배하든 외형상 공공이나 공공조직이 지배하든 그들이 가진 철학과 원칙에 따라 결정된다. 뉴욕타임스의 ‘사적 지배구조’와 KBS의 ‘공적 지배구조’는 매체의 공적 기능 수행에 정확하게 거꾸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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