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목회’를 쓴 필자의 아버지 김태복 목사에게 ‘서울의 봄’ 당시 상황을 물어봤다.

“내 나이 39세에 발발한 12·12 사태는 계엄 상황이라 정보가 제약되다 보니 신문 기사에 나온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네. 이듬해 5월 광주학살 사건도 언론이 말하는바 ‘폭도의 소요’로 볼 수밖에 없었고. 완전히 암흑시대에 살았던 셈이네. 다만, 12·12와 관련해 신군부의 쿠데타로 사태를 가늠하던 이들 중 일부는 정규 육사 출신(11기)이 부패로 물든 군대를 개혁하기 위해서 일으킨 의거라고 생각했었네.”

정보를 전두환이 틀어쥐던 세월, 국민은 뒤이은 노태우 정권이 끝나고 수년 뒤에야 사악한 내란의 실상을 알게 됐다. 나는 불현듯 윤석열에 의한 검찰 쿠데타를 머리에 떠올렸다.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 국면에서 협조하던 윤석열과 특수통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력을 손에 넣고 일선 검사장 임명권까지 몽땅 넘겨받다시피 했던 2019년 7월, 윤의 대권 플랜 이른바 ‘대호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상사인 법무부 장관을 피의자로 몰고 청와대 압수수색을 하며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 권력 턱밑까지 수사의 칼날을 댔던 그들은 한층 벼린 칼날로 판사의 뒤를 털기도 했고, 국회의원을 사냥감 삼기도 했다. 이로써 입법·사법·행정부는 모두 윤석열에 의해 장악됐다. 검찰 캐비닛의 위용은 단지 영화 ‘더킹’ 속 허구만이 아니었다. 때마침 ‘서울의 봄’ 1,000만 관객 신화가 달성됐다.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몰상식이 상식을 찜쪄먹은 40년 전 일은 기시감을 느끼게 했다. 무엇이 어떻게 닮았다는 것인지 따져보자.

1. 사조직을 방치하다

전두환 일당은 하나회라는 군내 비밀조직을 두고 구성원에게 충성서약을 요구했다. “위반할 시 ‘인격 말살’을 감수한다”라는 섬뜩한 내용도 있었다. 하나회 회원들은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보안사령부, 내사과 등의 진급 담당 요직을 차지하더니, 승진이나 자리 이동 때 선배가 후배를 추천하고 밀어주는 식으로 군내 주요 요직을 독점했다. 1973년 강창성 보안사령관에 의해 발각돼 수술대 위에 올랐지만, 철퇴를 맞은 건 오히려 강 사령관이었다. 전이 집권한 이후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다. 하나회는 누구도 제어 못 하는 존재가 됐다. 박정희는 왜 이를 방치했을까? 군내 사조직이 여차하면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반란의 주력이 될 수 있을 텐데. 그 의문은 하나회의 머리가 박정희인 점에서 어렵지 않게 드러난다. 박의 말 잘 듣는 전에게 군내 사조직을 허용해서 자신을 보위하게 한 것이다.

윤석열은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팀장으로서 박근혜 정권과 각을 세우다가 좌천당했고, 대구고검, 대전고검 등 한직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2017년 박영수 특검 파견 검사로 임명되면서 다시 볕을 쬐기 시작했는데 이때 형성한 인맥이 익숙한 ‘윤석열 사단’이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 당시 윤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됐을 때 그 휘하에 들어갔다. 핵심 수하로는, 박 특검 때 이재용 삼성전자 당시 부회장을, 중앙지검 3차장이 됐을 땐 이명박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털었던 한동훈 현 법무부 장관, 중앙지검 2차장일 때 국정원 댓글 사건 재수사, 국군기무사 세월호 유가족 불법 사찰 의혹을 따졌던 박찬호 전 광주지검장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윤이 검찰총장이 되자 대검에 함께 들어가 반부패부장(한)과 공공수사부장(박)을 맡아 몸을 180도 회전해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일가를 털면서 문재인 대통령 인사권을 도륙 내기 시작했다.

2. 징계를 피하려 하다

보안사령관 전두환의 월권은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보기에도 심각했다. 각 부처 장·차관이 전을 찾아가 보고하고 결재받는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군 안팎의 지휘체계가 문란해지고 있는 터였다. 그래서 1979년 12월 9일 정 총장은 노재현 국방부 장관과 골프를 하면서 전을 동해안경비사령관으로 좌천시키자고 제안했다. 이미 군권이 전에게 넘어간 상황에서 이 정보가 당사자 귀에 안 들어갈 리 없었다.

이미 11월 초부터 몰아내는 구상을 하고 있었다는 설이 있을 만큼 정에게 적대적이던 전은 인사가 나기 전에 ‘거사’를 획책해야만 했다. 전의 권력 찬탈은 군부에서 도태되지 않고자 하는 발로였다.

대한민국 검찰총장은 막강한 권한을 누리고 있다. 수사권 기소권 등 독점적 권한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중립성은 허울뿐이라도 지켜야 할 필수 덕목이다. 그런데 윤석열은 검찰총장직을 던지고 곧바로 정치에 입문해 대선주자가 됐다. 그는 논란을 초래하면서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 문재인 정부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만들어 자신을 비롯한 검사들을 검찰청 아닌 곳에서 수사받을 수 있고 기소할 수 있게 했던 게 컸다. 검언유착, 고발 사주, 판사 사찰 등 헌정질서 파괴 범죄가 자칫 자신에 불똥이 튀어 징계로 이어질 때 즉각 형사적 책임을 추궁당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감옥행도 각오해야 한다. 이러면 본인은 물론 부인(김건희)과 장모(최은순)의 범죄를 방어할 길이 사라진다. 결국 이 모든 돌파구는 윤 자신이 대통령 되는 길밖에 없다.

3. 하극상을 벌이다

전두환은 자기 상사 정승화를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체포하면서도 대통령 허락을 받지 않았다. 물론 대세가 전두환 편으로 기울자 결재를 주저하던 최규하는 ‘사후 재가’라는 점을 분명히 남기며 사인했지만. (이것이 나중에 12·12의 쿠데타 성을 입증하는 결정적 단서가 된다) 전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에서 주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정을 ‘내란방조범’으로 몰더니 징역 7년 형을 받게 하고 육군 대장에서 이등병으로 예편케 했다. (1997년 재심에서 정은 모든 혐의를 벗었고 명예 회복됐다) 부하 전의 모략에 의한 하극상이 확인된 것이다.

윤석열은 2022년 10월 20일 자기 상사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나는 그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사석에서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비방했다. 법무부 장관은 (비록 검찰총장에 한정하지만) 검찰에 대한 문민 통제의 권한이 부여됐다. 이를 묵살하기라도 하듯 윤석열은 때마다 항명하더니 심지어 추 장관 아들의 군 복무 시절 특혜 휴가 의혹을 들어 수사하는 등 노골적 하극상을 자제하지 않았다. 이에 추 장관은 윤석열 사단이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검언유착과 라임자산운용 로비 의혹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을 수사 지휘에서 배제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리고 끝내 윤을 6가지 사유(조국 전 장관 사건 등 주요 사건 재판부 불법 사찰, 언론사 사주와의 부적절한 접촉, 검언유착 행위 등)를 들어 검사징계위원회에 넘겼다. 결국 검찰의 강력한 저항과 여권의 비겁한 방관으로 정직 2개월이라는 솜방망이 처분이 나왔다.

4. 진압 기회를 놓치다

12·12당일 전두환은 장태완 수경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김진기 헌병감 등을 연희동 만찬에 초대했다. 이는 정승화 체포에 방해 요소로 작용할 이들의 발을 묶어두고자 할 목적이었다. 만찬 도중 정승화의 연행 사실을 알게 된 장태완, 정병주는 즉각 대응 태세를 갖추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든 군내 통신 도청이 가능해진 반란군의 정보망에 포착됐고 번번이 저지, 실패 당했다. 그 길고 길었던 밤에 찰라적 위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교활한 전 일당은 그때마다 육군본부와 화해하는 척했다. 그리고 밑으로는 1공수여단을 동원해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고 3공수여단으로 특전사령부를 습격했으며 북한에 맞서 전방을 지키려 할 9사단 병력까지 동원해 중앙청까지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비 하나회 장성들은 반란군 진압 지시를 받고도 대세가 전에 넘어가자 출동 명령을 거역하거나 회군했다. 사후이긴 하나 정 체포를 승인한 최규하 대통령이나, 반란군을 피해 도망치다 생포돼 그들의 노리개가 된 노재현 국방부 장관의 비겁함은 가장 무거운 과실이다.

검찰총장 윤석열은 고발 사주 사건으로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기획관이 징계에 처하게 되자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거래한 듯 보인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손의 징계를 막기 위해 윤이 청와대에 “한 번 봐주면 추 장관 지도를 따르겠다”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안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이 요구는 받아들여졌고 사실상 면죄부를 쥔 손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 승진 가도를 달렸다. (그러다가 11월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를 점한 국회에서 탄핵 소추됐다) 이때 문과 윤의 타협을 두고 땅을 치고 통곡할 패착이었다고 추는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당시 윤의) ‘검찰 쿠데타’로 가는 길을 깔아준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사실 추는 윤을 반드시 징계해서 레임덕을 막고자 했다. 그러나 번번이 좌절됐다. 처음에는 민주당 중진 탓인 줄 알았다. 2021년 12월 추가 윤에 대한 징계에 시동을 걸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말려달라’라고 한 김종민 당시 수석 최고위원, ‘장관님 검·경 수사권 조정 마무리를 다 지었고 공수처장을 제대로 뽑을 수 있게 법 개정을 했으니 노고가 너무 크신데 다음을 준비하시면 안 되겠나. 남은 거야 국회에서 입법으로 다 해결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했던 홍영표 전 원내대표, 2021년 서울시장 부산시장 재보선 당시 “선거 때문에 (윤과 충돌을 빚는) 추가 퇴장해야 한다”라고 말했던 이낙연 당시 대표 모두 추의 자중자애를 우선 요구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들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뜻을 충직하게 대언했는지 모른다.

추는 2020년 12월 16일 문으로부터 “물러나 달라”라는 말을 들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은 윤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평가했다. 이로써 추는 ‘추풍낙엽’이 됐고, 윤은 그로부터 두 달도 안 돼 총장직을 내놓고 국민의힘 대선 경선 레이스에 뛰어들어 대통령이 된다.

5. 대통령 권력 찬탈하다

노태우는 대선후보 시절인 1987년 11월 12일 관훈클럽 토론회에 나와 12·12와 관련해 “쿠데타란 정권을 잡는 것을 말한다. 우린 그 사건 후 군 본연의 임무만 수행했다. 쿠데타는 천부당만부당하다”라고 했다. 그러나 전두환은 12·12 당시 대통령 최규하를 겁박해 자기 상사를 구속하게 했다. 이미 이 순간 권력은 전에게 넘어갔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모든 군권이 그의 수중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듬해 4월 중앙정보부 서리가 된 전은 군 안팎의 모든 정보 권력을 손에 넣더니 5·17 비상계엄을 밀어붙여 김대중 문익환 등 체제 비판적 인사들을 체포 구금하고는 광주 시민을 학살하는가 하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이른바 국보위라는 옥상옥 권력을 만들었다. 현실 권력을 모두 손에 넣은 전 앞에 누구도 제동을 걸 수 없었다.

최는 직함만 대통령이었을 뿐이고 그마저도 8월 16일 내려놓았다. 그리고 전이 9월 1일 대통령이 된다. 형식과 절차에 따라 대통령이 됐다고 하기엔 전의 권력 찬탈은 가공할 반칙과 불법의 연속이었다. 12·12는 어쩌면 역사상 가장 긴 쿠데타로 보는 게 옳다.

윤석열은 박근혜 정권에서 찬밥 취급받다가 2017년 박영수 특검에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그리고 박 시대의 적폐를 청산하기에 이른다. 전 대통령 이명박도, 삼성 현대차 SK 등 재벌총수도 그의 칼날 앞에서 힘을 못 썼다. 자신 대신 손에 피를 묻히는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윤을 높이 평가했고 마침내 검찰총장으로 발탁했다. 그러나 윤을 간택한 것은 문만이 아니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족벌언론의 오너도 그를 차기로 봤다. 당시 야권의 차기로. 윤은 문에게 검찰총장 임명장을 받는 순간부터, 자기를 지배할 윗선을 하나하나 제거해갔다. 상사인 법무부 장관 조국과 추미애를 피의자로 엮었다. 문 대통령에 대해서도 ‘울산시장 선거 개입’ 등의 명목으로 주변부부터 샅샅이 털었다. 쌍끌이였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윤은, 피의사실 정보와 우호적 보도를 맞바꾸며 유착한 언론과 윤석열 사단의 특수통 엘리트 검사 말이다. 그렇게 윤은 야권 대선주자로 발돋움한다. 그리고 집권에 성공한다. 적폐 청산한다며 밀어준 윤 사단이 끝내 자기를 임명한 문 정부를 짓밟고 대한민국 권부의 최정점에 섰다.

‘서울의 봄’은 기회주의를 고발하고자 했던 것 같다. 초기 전두광(전두환 모티브)의 쿠데타를 직감했고 진압으로써 행동을 이어가야 할 군 지휘부와 주요 장성들은 전세가 전에게 기울어지자 급격히 이태신(장태완 모티브)에 등 돌려 몸보신하려 한 것이나, 전의 지휘부 안에서 사태가 일희할 때마다 환호를, 일비할 때마다 원망을 쏟아내는 하나회 선배급 장성들의 태도를 보면 전과 이가 주연인 이 영화는 기회주의를 이용한 또는 기회주의에 희생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테마로 삼았다고 봐야 한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이끌어주기를 바란다”라는 전두광의 대사는 영화를 축약한 한마디이다.

전두광을 과거의 인물로만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현재의 불행, 미래의 비극 앞에 무력해진다. 검찰개혁 국면에서 윤석열 사단이 하극상을 시전하며 자기를 임명한 대통령 정부를 뒤흔들 때와 겹치지 않는다면 영화의 모든 메시지를 소화한 게 아니다. 요컨대 ‘서울의 봄’을 봤다면 1979년에서 2019년으로 인식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저작권자 © 평화나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