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 나비효과

11월 1일 강진구, 박대용이 진행하는 뉴탐사에 정유라가 전격적으로 출연했다. 뉴탐사는 시민언론 더탐사(열린공감TV)의 구 경영진이었던 강진구, 박대용 이사 등이 정천천수 대주주와의 경영권 찬탈 소송에서 패소하자 새롭게 만든 유튜브 기반의 인터넷 언론사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강진구, 박대용은 여전히 더탐사의 사내이사 지위는 유지하면서 뉴탐사를 설립해서 나갔고, 더탐사 채널의 커뮤니티 게시판을 강제 점거한 상태로 각종 공지와 글을 이어 나가는 중이기도 하다.

정유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가져온 국정농단 배후로 알려진 최순실의 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스모킹건은 최순실 태블릿 PC에 담긴 충격적인 내용이었지만 탄핵의 시작은 정유라가 승마 특기생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한 입시 비리 의혹이었으니 정유라도 박근혜 탄핵에 나름 크게 기여한 셈이다.

정유라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 전 장관 딸 조민에 대한 끝없는 조롱성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는데, 특히 이재명 대표의 단식 농성에 대한 조롱은 민주당 지지자들을 크게 분노하게 했던 이슈다. 정유라는 2022년 극우 유튜브 채널인 ‘가로세로연구소’에 출연해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애틋하고 미안한 감정과 민주당에 대한 분노를 표출해서 절대로 민주당 혹은 범민주 진영과는 어떤 일도 도모하기 힘든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런 정유라가 진보 진영의 뉴스채널인 뉴탐사에 출연하게 된 것은 꽤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정작 뉴탐사의 정유라 방송에서는 특별한 내용은 나온 것이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장관이 과거 검사 시절 증거를 조작했다고 알려진 제2의 태블릿 PC 관련한 중요한 제보를 한다는 예고가 무색하게 그저 정유라의 생활고와 그에 따른 후원을 요청하는 내용이 방송의 핵심이었다. 게다가 문제의 태블릿 관련해서는 진행자인 강진구, 박대용이나 출연자인 정유라도 해당 내용을 거의 모르는 눈치였다. 결국 그 방송은 정유라 돕기 모금방송의 성격으로 마무리되었는데 뉴탐사를 적극 지지하는 구독자들이야 변함없이 정유라 모금에 동참했다지만 많은 민주 진영의 시민들은 “왜 우리가 정유라를 지지하고 후원해야 하느냐?”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뉴탐사의 구독자가 정체현상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졌다. 11월 27일 정유라는 가로세로연구소에 출연했다. 그리고 강진구 기자뿐만 아니라 송영길 민주당 전 대표 측과 나눈 대화의 각종 녹취 파일들을 공개했다. 심지어 정유라는 자신이 뉴탐사에 출연한 이유가 이런 녹취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취지로 이야기까지 한다.

정유라가 가로세로연구소에서 공개한 녹취는 심각한 내용들이 많았다. 강진구 기자는 정유라에게 “이해찬 전 총리와의 면담을 주선해 주겠다”는 이상한 제안을 했고, 송영길 측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존재하고 혹시 그런 일이 발생하면 그 대안이 송영길 대표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함으로써 많은 민주당 지지자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송영길 전 대표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 후 프랑스에서 체류 중이었는데 민주당 내 이정근 돈봉투 파문에 연루가 되어 귀국해야만 했다. 정유라와의 녹취에서는 송영길 측근의 발언이기는 하지만 당시 송영길의 귀국을 이재명 대표가 종용했는데 막상 귀국 이후 민주당 차원에서 혹은 당대표 차원에서의 배려가 없었다는 은근히 서운함을 내비치는 발언까지 있었다. 그 때문에 송영길 전 대표 측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금기어나 다름없는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 이야기가 나온 것이 아닐지 추측해 본다.

또 하나의 안 좋은 내용은 송영길의 측근인 ‘윤 피디’라는 인물이 정유라에게 950만 원의 현금이 들어있는 돈봉투를 전달했다는 점이다. 그 돈은 뉴탐사에게 제공한 일종의 출연료 형식으로 보이는데, 왜 송영길의 측근이 전달자 역할을 맡는다는 말인가?

이 또한 송영길을 지지했던 많은 이들에게 큰 실망감을 주었다. 논외의 이야기지만 정유라는 1천만 원도 안 되는 액수에 실망해서 가세연에 출연하고 각종 녹취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2022년 가세연에 출연했을 때는 가세연 구독자들로부터 약 7억 원을 순식간에 제공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극우 진영과 민주 진영의 후원 액수가 큰 차이가 있다는 점도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민주 진영에 뒤통수(?)를 친 정유라는 이후에도 뉴탐사에 출연하기 전에 했던 방식으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조롱하는 글을 자신의 SNS에 이어 나갔다. 다만 조롱의 대상에 송영길 대표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이번 사태를 복기해보면 송영길 전 대표와 민주 진영의 시민들은 철저하게 정유라 한 개인에게 농락당한 셈이다.

그렇다면 왜 송영길 전 대표는 정유라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의 속내를 노출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뉴탐사는 정유라를 방송 출연시키기 위해 모금까지 하는 무리수까지 둔 것일까? 이는 내년도 총선과 깊숙한 연관이 있다. 정유라가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제2의 태블릿 PC가 내년 총선에 결정적 스모킹건이 될 수 있다고 송영길 측에서나 뉴탐사 측에서나 믿었던 것 같다.

민주당에서 탈당한 송영길은 내년 총선을 위한 신당에 참여할 의사를 피력하던 중이었다. 윤석열 퇴진을 명분 삼아 범민주진영의 개혁신당 창당을 위해 손혜원 전 의원 등과 활발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는데 여기에 강진구의 뉴탐사도 충분한 교감을 하면서 함께 움직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뉴탐사의 현 대표는 안원구 전 대구지방 국세청장인데 그는 손혜원이 지난 총선에 창당한 열린민주당의 후보이자 당의 상근직 사무총장으로 오랜 시간 재직했었기 때문이다.

현재 송영길, 손혜원이 추진하는 신당에는 강진구, 변희재, 김성수, 최한욱 등 유튜브 기반의 언론인이나 스피커 등이 대거 참여해서 힘을 모으는 중인데 이들은 내년 총선의 비례 의석 관련한 선거구 제도에 관심이 매우 높다.

민주당 지도부에서는 내년 총선의 확실한 승리를 위한 방편으로 병립형 비례제도로 선거법을 개정할 것을 검토 중인데 신당 입장에서는 기존의 연동형 비례제도가 유지가 되어야만 민주당의 비례 의석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하게 연동형을 주장하는 중이다. 물론 대다수 민주당 당원의 입장은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보다는 민주당의 확실한 승리를 원하는 쪽인지라 병립형을 원하고 있다.

이 선거법에 대한 논란은 적어도 설 전후까지 이어질 전망이었는데 어쩌면 좀 더 빨리 마무리가 될 수 있겠다. 그 이유는 송영길 전 대표가 12월 18일 예상 밖으로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송영길의 구속으로 연동형을 가장 뜨겁게 주장하던 신당 세력의 동력은 크게 꺾일 전망이다.

송 전 대표는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하고 당대표 경선 관련해서 금품수수에 일정 부분 관여한 점이 소명되었다고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는데 사실 이는 검찰의 별건 수사와 주변인들에 대한 강압수사에 결과물이지 실제 구속수사의 이유는 되지 않는다. 검찰이 최초 이정근 돈봉투의 최종 종착지가 송영길이라고 타겟을 삼고 표적 수사를 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가 않자, 송영길의 외곽후원 조직인 ‘평화와먹고사는문제연구소’를 강제 수사해서 그곳으로 들어간 모든 후원금을 송영길의 정치자금으로 엮은 것이 이번 구속영장 발부의 이유다.

또한 법원에서 송영길에게 영장을 발부한 이유는 검찰이 지난번 이재명 대표 영장 청구 실패에서 얻은 교훈인지 영장 청구 자체는 대단히 허술하게 하고, 대신 영장실질심사가 있던 당일 엄청난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해서 송영길 변호인단의 방어권을 무력하게 한 전술적인 측면도 강했다. 따라서 송영길은 대단히 억울하게 구속당했고, 이는 변호인단의 충분한 방어권을 통해 해결해야 할 할 문제이다.

다만 필자는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송영길이 정유라 녹취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또 최근 신당 관련해서 지나치게 과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면 적어도 송영길 전 대표에 대한 검찰의 과잉수사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들은 더 높은 관심을 보였고, 송영길을 지키기 위해 좀 더 적극적인 탄원서 작성 등 집단행동에 나섰을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여론의 눈치를 많이 보는 재판부의 성향상 좀 더 신중하게 판단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송영길에 대한 이번 구속의 억울함이나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이번 영장 청구에 민주당 지지자나 혹은 민주 진영의 시민들은 예상보다 집단적인 움직임이나 분노지수가 높지 않았다. 아마도 정유라와의 녹취를 들은 민주당의 지지층이 이재명과 민주당에 부담이 될 수 있겠다는 걱정을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현재까지의 일련의 상황이 정유라의 나비효과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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